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위한 제도 개선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12월15일 17시10분

작성자

  • 김용진
  •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동반성장 위원회 공익위원,(전) 금융위원회 비상임위원

메타정보

  • 8

본문

최근 야당이 추진중인 ‘상법 개정’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이 논란의 핵심은 그룹(대기업 집단) 내 계열사 간 합병이나 주식 교환 등 자본거래를 할 때 총수 일가의 이익 등 일부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이사회가 의사 결정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관련된 법조항은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이다. 1998년 만들어진 이 조항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쓰여 있다. 민주당은 기존 조문에 3개의 조문​을 더해 이를 개정하려고 한다고 알려져 있다. ​추가되는 조항은 "1. 이사는 회사의 수임인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그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3.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특정 주주의 이익이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4.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환경과 사회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 등이다. 민주당의 이러한 제안은 소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최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흐름도 반영한 것으로 합리적 대안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민주당의 대안에 대해 정부는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고, 재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가 상법 개정에 있어 가장 반대하는 부분은 이사 충실의무 확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이다. 한국경제인협회를 중심으로 한 재계는 이러한 제도의 도입이 경영권을 크게 위축시키고, 해외투기자본 등에게 먹튀의 길을 열어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대주주 혹은 지배주주라는 이유로 아무런 법적 권한이나 책임이 없는 사람들이 엄연히 주주가 존재하는 계열사의 이사회도 자신의 뜻대로 구성하고, 임원 인사나 투자의사결정도 원하는 대로 해왔을 뿐만 아니라 투자실패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왔던 과거의 관행에 비추어 보면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소수주주와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상법의 개정은 매우 불편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사실 상법개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부터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상법 개정 언급 이후, 상법 소관부처인 법무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관계부처가 상법 개정 검토에 들어갔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이 상법 개정 필요성을 연이어 강조했다. 특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하지만 재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생기면서 정부의 상법 개정 움직임은 약간 주춤한 상태이다. 기재부와 금융위는 상법을 개정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하고, 상법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21대 국회부터 상법 개정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 

 

정부가 상법 개정 노력에 맞춰 금년 초부터 증시를 부양하겠다면서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놨지만, 국내 증시는 연초보다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 정부가 밸류업지수를 만든다든지, 밸류업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에 대한 세제, 금융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어서 주가를 부양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실제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트럼프 전대통령이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주가가 대폭 하락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는 전쟁 중인 러시아나 이스라엘 보다 주식가치가 낮게 평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에서 밸류업이 힘을 못 받는 이유는 상법 개정이 빠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상법개정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금융시장을 성장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즉 기업이 주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증권시장에서 기업들은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회사나 소수주주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많은 일들을 해왔고, 언론을 비롯한 여론 또한 이런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최근에 일어났던 SK이노베이션과 SKE&S의 합병, 두산 에너빌리티와 두산 로보틱스의 합병, 풍산과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등이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결국, 지배주주의 선의에만 의존해 주가를 높이거나 배당을 늘리는 방법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보다 제도적 방법으로서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져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상법만 개정하면 주가가 오르고 배당률이 높아질까? 상법 개정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다시 말해, 상법만 개정한다고 주가가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각종 제도들이 동시에 재정비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주식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투자자들이 선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스튜어드십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 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장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를 들면 이사회의 구성을 어떤 사람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법령 재정비가 필요하고, 이사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공시제도도 상법 개정의 취지에 맞게 정비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집단 규율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법은 상호출자제한집단이나 공시대상기업집단과 같은 제도를 두고 기업을 집단으로 규율하고 있는데, 이 제도의 운영에서 핵심은 총수, 동일인, 특수관계인 개념이다. 총수와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인이나 자연인을 의미하고, 특수관계인은 동일인과 일정한 관계에 있는 개인이나 법인을 의미한다. 동일인제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집단의 범위를 결정하고 기업집단내 기업들 간 부당한 내부 거래(특히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감시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다. 결국 동일인제도는 자연인인 최대주주(최근에는 법인도 포함)를 정부가 총수로 인정하고 기업 집단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인데, 이 제도가 오히려 아무런 법적 권한도 없는 사람이 기업집단의 인사나 투자를 결정하는 불법적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시대, 제조업시대,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에서의 기업규율 방식이다 보니, 한계에 다달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를 개별기업 이사회 중심의 구조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개별 기업들이 자신들의 주주와 이해관계자를 위한 최선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소수주주와 이해관계자 이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상법의 개정은 장기전략의 수립이나 승계구도의 수립 등에 있어 개별회사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하고 역량있는 이사들의 지혜를 활용함으로써 개별회사 단위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fsPOST>

8
  • 기사입력 2024년12월15일 17시10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