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세상의 속도: 음악과 춤의 사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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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4차산업혁명 기술 꽃피울 때 한국은 ‘땅파기’에 열중했다
2000년대 중후반 글로벌 기술 기업들의 흐름을 되짚어 보자. 2005년 12월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가 공식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큰 인기를 얻자 구글은 2016년 10월 ‘인터넷 진화의 다음 단계’라면서 16억 5000만 달러(2조 원)에 유튜브를 인수했다. 유튜브의 창업자들은 1년여 만에 엄청난 성공신화를 썼고, 구글은 유튜브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성장시켰다. 2007년에는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했고, 2008년에는 테슬라가 최초의 양산 전기차 로드스터를 출시했다. 2009년에는 구글이 자율주행차 개발을 선언하였고, 2010년에는 공유차 네트워크 우버가 영업을 개시하였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의 기술과 플랫폼들이 싹트는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2008~2012년까지 4대강 사업에 국가재정이 무려 22조원이나 투입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거나 말거나 땅파기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4대강 사업의 유용성 논란은 차치하고 시대의 흐름을 잘못 짚어도 크게 잘못 짚은 국가적 역량과 시간의 낭비였다고 할 수 있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 미국과 영국, 중국 등 주요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블록체인, 자율주행차, 핀테크 등이 실생활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이야말로 미래의 성장동력이자 먹거리라면서 국가 차원의 지원은 물론 기업들도 경쟁적으로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한마디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가는 ‘미래지향형(forward looking)’ 국가와 기업들이 치고 나가는 시기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0년대로 들어서도 말로는 4차 산업혁명을 외치면서 속을 들여다보면 4차 산업혁명과는 관계없는 일들이 국가적 아젠다로 자리 잡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만 4회나 실시되었고, 결국에는 4대강 사업이 원위치되고 말았다. 군대에서 병사들이 할 일이 없으면 사고가 터진다면서 여기저기 땅을 팠다가 다시 메우는 것과 같은 격이었다.
게다가 대통령 탄핵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고, 탄핵 이후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과 한일 무역분쟁에다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친 가운데 이런저런 이유로 사회적 갈등까지 고조되었다.
지난 10여년 한국경제, 과거 패러다임 갇혀 허송세월…음악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하는데
미국 등 주요국이 미래지향형 국가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것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과거만 돌아보면서 과거만 파고드는 ‘과거지향형(backward looking)’ 국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앞으로 나가도 시원찮을 판국에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까지 10년 넘어 땅이나 파고 뒤만 쳐다보면서 뒷걸음질을 쳤으니 나라의 꼴이 영 말이 아닌 상황까지 치달은 것이다.
“When the music changes, so does the dance.”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다. 춤을 잘 추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잘 들어맞는 속담이다. 그러나 속담과 달리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난 수백년 동안 변화하는 세상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하는 것처럼 패러다임이 바뀌면 그에 따라 국가와 사회, 산업과 기업, 개개인의 성향과 비전ㆍ전략ㆍ정책 등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음악이 바뀐 줄도 모르고 출 수 있는 춤도 과거의 한두 가지밖에 없다면 그런 국가와 사회, 산업과 기업, 개인이 과연 보다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난 10여년 간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는 음악이 바뀐 줄도 모르고 출 수 있는 춤도 몇 가지 되지 않는 우물안 개구리로 허송세월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트렌드나 패러다임의 변화를 하나씩 떼어서 보면 천천히 바뀌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패러다임이 산발적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변하고 있다. 다수의 트렌드가 한꺼번에 바뀐다는 것은 거대 쓰나미와 같은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같은 ‘메가 시프트(mega-shift)’, 즉 메가 트렌드 또는 패러다임의 동시다발적 변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온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성장률이 2%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고성장시대의 환상에 젖어 있거나 서비스업 시대에 제조업 시대의 성공신화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소득 3만 달러 시대,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아직도 못살던 때와 아날로그 시대만 떠올리면서 과거의 성공방식이나 법칙에 목매달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 ‘메가시프트 시대’에 맞는 미래 청사진과 비전·전략 제시 “절실”
“경영의 속도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2016년 일본의 샤프가 대만의 훙하이정밀(폭스콘)에 인수된 다음 마지막 주주총회에서 샤프의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이다. 개인이나 기업은 물론 국가도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을 인지하기도 어렵지만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지하면서 그에 따라 전략과 수단을 바꿔 가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바뀌는 패러다임을 쫓아가지 못하는 개인과 기업, 국가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망하는 것이다.
최근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 경제와 사회의 새로운 비전과 정책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지난 정부의 과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새 정부의 굼뜬 행보와 혼선을 빚고 있는 인사 등에다 급격한 물가와 금리 상승 및 불안한 경기 등이 겹치면서 새 정부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다. 이제 출범한지 몇 달 안 되는 새 정부에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새 정부는 여론의 향방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와 사회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과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맞는 전략과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경기가 침체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와 함께 포스트 코로나, 포스트 인플레이션 시대를 예상하고 이에 맞는 대응 전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새 정부가 내건 3대 개혁 과제인 교육, 노동, 연금 개혁을 필두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규제 및 세제 개혁, 핀테크와 원전 등 신성장동력의 발굴과 육성,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걸맞는 경제 외교 정책, 국회 및 지방자치제도 개혁, 징병제 축소와 모병제 확대, 저출산ㆍ고령화 대책 등에 초점을 맞춘 명확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중장기적 안목에서 4차 산업혁명 등 패러다임의 변화를 선도하는 기업과 인재(first movers)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승자독식(winner takes it all)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경제와 사회를 후손들에게 넘겨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남는 것을 넘어 미래 먹거리와 그 먹거리를 만들 선도적 기업과 인재를 키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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