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22> 도도한 풍자의 언어와 현실 응전 -전영경 시인의 시 읽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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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전영경은 1930년 함경남도 북청군 거산면 성천리 880번지에서 부 전성우(全性遇)와 모 안형순(安亨順)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중 월남하여 연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1954. 2)하였다. 동명여고(1954. 4 ~ 1956. 3) 교사, 수도여자사범대학(1956. 4 ~ 1962. 2) 교수, 동아일보 문화부장, 조사부장(1962. 4 ~ 1968. 2)을 역임하였으며 국제대학(1969. 6 ~ 1973. 2) 교수, 동덕여대 대우전임 및 교수(1970. 3 ~ 1995. 12)로 정년퇴임 후 2001년 작고하였다. 비교적 자주 직장을 옮긴 편인데, 그의 비타협적인 성격의 일면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영경은 서사와 풍자의 언어를 통해 현실 응전의 시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시에 개성적 면모를 보여준 시인이다. 그는 그가 당면한 현실의 위압에 위축되거나 축소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도도한 호흡의 풍자 언어와 서사 문체를 통해 현실이 지닌 허위의 본질을 들어내고자 하였다. 고향을 버리고 월남을 하게 되었으며, 한국전쟁의 비인간성과 잔인성 속에서도 여전히 주도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부패와 타락의 현실과, 4ㆍ19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허위의 현실 속에서 응전의 시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는 그런 현실 속에서 부단히 원래적인 가치를 되찾으려 하였다. 역시 같은 현실에 놓였던 동년배의 후반기 동인들이 모더니즘적인 기법으로 현실을 객관화하려 한데 반하여, 전영경은 비어 속어 등으로 근접해가면서 현실을 투시하고자 하였다.
전영경의 시가 솔직하게 현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진술에 함몰되지 않는 것은, 그가 서사적 이야기를 적절하게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고향 회상이나, 전쟁 체험들은 실제 현실과 짝을 이루면서 시적(詩的) 긴장을 유발시킨다. 비유나 알레고리, 풍자가 되어 현실 투시력을 확장한다. 특히, 전영경의 시에 현실 투시의 방법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풍자인데, 그의 풍자는 욕설과 비어에 의한 시니시즘이 두드러진다.
전영경은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선사시대』가, 195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정의와 미소』가 당선되어 시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시집 『선사시대』(수문사. 1956). 『김산월 여사』(신구문화사. 1958). 『나의 취미는 고독이다』(현문사. 1959). 『어두운 다릿목에서』(일조각. 1964) 등을 발표하였다.
Ⅱ
전영경의 시 세계를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보려 한다. 첫째, 한국전쟁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오는 삶의 페이소스와 고향상실을 현란한 이미지로 노래한 시집 『선사시대』. 둘째, 서사성이 강화되면서 도도한 풍자적 언어로 몰가치의 현실을 투사해 보여준 시집 『김산월 여사』, 『나의 취미는 고독이다』. 셋째, 4ㆍ19 이후의 혼란된 사회에서 겪는 허위의 삶을 진술적으로 노래한 시집 『어두운 다릿목에서』가 그것이다.
Ⅱ-1
1956년에 간행된 시집 『선사시대』에는 39편의 시가 실려 있다. 시집 『선사시대』에 발문을 쓴 정한숙은 “그의 작품은 배재 당시의 것도 몇 편 보았지만 많이 접한 것은 부산 피난시 연희 계절의 것이라 생각한다.”고 지적하고 있어 그의 시작 수업이 고등학교 시절로부터 피난지 부산의 대학시절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선사시대』가 당선되고 다시 195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정의와 미소』가 당선된 후 그해 12월 첫 시집 『선사시대』를 낸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첫 시집 『선사시대』에 실린 시편들은 전쟁 중이었거나 1953년 휴전 후의 혼란 속에서 쓰여진 것들인 셈이다. 전영경은 시집 『선사시대』를 내면서 “슬픈 광장에서 숙명과도같이 쓰러져간 친구들의 얼골과 어제의 의지와 그리고 어제의 학살이 그 무슨 결의처럼” 다가오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고 친구들이 전사자의 명단에 오르기도 한 그런 시기에, 친구들과 학살된 사람들의 죽음의 의미의 중압 속에서 그의 시가 쓰여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집 『선사시대』의 시편들은 이런 전쟁의 현실에 정면으로 응전하기 보다는 정서적인 대응 방식으로 나타난다. 회상의 방법으로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며 삶의 페이소스를 투명한 이미지들로 노래한다.
파아랗게 짙은 느티나무 그늘에 턱을 고이고 앉아
목을 놓고 부르고싶은 것은
(……………… )
짙은 느티나무 그늘에서 고향이 무척 그리웠기 때문이다.
느티나무잎 사이로
파아랗게 짙은 달 빛 뿌리우고.
두견이 우는 처량한 달 밤에 상여여, 고운 상여여 나가라.
요령도 없이 나가라.
두견이 목청에 맞춰 상여는 흔들려 나가고.
너는 고향도 없이 가고.
파아랗게 짙은 느티나무 그늘에 턱을 고이고 앉아, 목을 놓고 싫건 울고싶은 것은 쫒겨온 고향이 못이나 박힌 듯이 가슴에 저려들기 때문이다.
짙은 느티나무 그늘에서 너는 고향도 없이, 너는
목을 맬 허리끈도 없이
다시 느티나무 잎 사이로 파아랗게 짙은 달빛 뿌리우고.
네가 뿌리우고.
목 쉰 모가지를 비벼잡고 어슬레 어슬레 두견이 목청에 맞춰 고운 상여의 뒤를 따라야만 했다.
비 고인 물에는 달 빛 뿌리우고.
- 「십년」
위의 시에서 화자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 턱을 괴고 앉아 <고향>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는 고향을 떠나왔고 다시 그 고향에 갈 수 없는 자리에 있다. 그가 놓여 있는 현실과 그가 그리움의 근원으로 상정하고 있는 고향 사이에는 3 년여의 한국전쟁이 가로 놓여 있고, 4백 만 여의 사망자와 천 만 여의 이산가족이 가로 놓여 있다. 이 엄청난 좌절과 파멸을 전영경은 시 「십년」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며 <두견이 우는 처량한 달밤에 상여여, 고운 상여여 나가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가 <상여>에 실어 떠나보내려는 것은 슬픔과 좌절의 현실일 것이다. 그는 이 슬픔과 좌절을 떠나보내며 <파아랗게 짙은 느티나무 그늘에 턱을 고이고 앉아, 목을 놓고 싫건 울고싶다>고 한다. 그리고, <목을 맬 허리끈도 없이> <어슬레 어슬레 두견이 목청에 맞춰 고운 상여의 뒤를 따라야만 했다>고 한다. 이 시의 화자가 현실에 응전하는 방식은 이처럼 순응적이고, 운명적이며 소극적인 것이다.
전영경은 시 「선사시대」에서 그가 처한 파멸의 현실로부터 벗어나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시공을 상정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시공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선사시대>이다. 집단적 욕구 충족을 위한 살육이 행해지기 이전의 안온하고 온존한 시공을 노래함으로써 파멸의 현실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느티나무 위에 금속분처럼 쏟아지는
하늘이 있었
고
깨어진 석기와 더부러, 그 어느 옛날.
옛날이 있었
고
금속분처럼 파아랗게 쏟아지는 햇 속에서 무고 하게도
학살을 당한 것은 당신과 같은
흡사 당신과도 같은
포승 그대로의 주검이었
고
느티나무와 더부러, 그 어느 옛날이
있었
고
지도자가 있었
고
깨어진 석기, 석기 속에 말없이 흩어진
이 얘기와.
그 어느 조문과.
그 누구의 남루한 직함과.
때 묻은 족보가 있었
고.
꿈이 있었다.
몇 포기의 화초를 가꾸다가
느티나무와 더부러, 그 어느 옛날에
서 서.
세상을 버린 것은
금속분처럼 파아랗게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황소가 움메………, 하고 울었기 때문이다.
- 「선사시대」
위의 시에서 전영경이 노래하는 것은 선사시대 이래의 파멸과 타락의 역사이다. <선사시대>의 현란과 평화의 시대가 집단 욕구와 부딪치면서 파괴되고 학살을 자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영경은 최초의 인류 역사에는 <느티나무 위에 금속분처럼 쏟아지는 / 하늘>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늘의 은총과 축복이 <금속분>처럼 쏟아지던 선사의 공간이야말로 인간이 살아야 할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그런 바램과는 반대로 치달아 <금속분처럼 파아랗게 쏟아지는 햇 속에서 무고하게도 / 학살을 당>하게 되었으며, <포승 그대로의 주검>으로 버려지게 되었다.
전영경은 이런 인간의 타락의 원인을 <지도자>와 <조문> <직함>과 <족보>에서 찾아 제시해 보여준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느티나무 위에 금속분처럼 쏟아지는 / 하늘>의 선사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인간의 본연적인 삶을 규제하고 제약하며 <나>를 중심으로 현실을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와 연관된 것들이다.
이런 인간의 욕구와 제약이 강제되면서 세상은 <무고한 학살>과 <포승 그대로의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 전영경은 인류 파멸의 원인을 체제나 이데올로기와 같은 현실 가치에서 규명하려하지 않는다. <세상을 버린 것은 / 금속분처럼 파아랗게 쏟아지는 / 하늘을 향해 황소가 움메………,하고 울었기 때문이다.>라는 진술에서 보듯이 <황소>의 울음을 파멸의 원인으로 제시해 보여주고 있다. 황소의 <움메……>하는 울음이 인류 파멸과 타락의 원인일 수 없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시인이 그것을 원인으로 제시함으로써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아이러니는 독자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을 시의 화자만 모르는 것으로 진술할 때 발생되는, 일테면 시침떼기 기법이다. 아이러니는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표현으로 두루 쓰이고 있다.
그런데, 전영경의 위의 시에는 낯설게 하기의 배려가 도처에 나타난다. 위의 시에 보이는 낯설게 하기 전략은 특히 시의 행 구분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령, <느티나무 위에 금속분처럼 쏟아지는 / 하늘이 있었 / 고>에서처럼 <있었>과 <고>를 별행으로 쓰면서 독립적 의미나 문법 기능을 지니지 못한 <고>를 한 행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 시의 도처에 쓰이고 있고 시집 『선사시대』의 도처에서 관행을 무시한 행 가르기, 문장부호 등의 용법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이처럼, 낯설게 하기 장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 가치나 관행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전경화 하려 하고 있음을 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집 『선사시대』의 시편들은 이런 전쟁의 현실에 정면으로 응전하기 보다는 정서적인 대응 방식으로 나타난다. 회상의 방법으로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며 삶의 페이소스를 노래한다.
전영경은 그가 처한 파멸의 현실로부터 벗어나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시공을 상정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시공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원초적 시공이며 떠나온 고향이다. 그의 원초적 공간은 감각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이처럼 집단적 욕구 충족을 위한 살육이 행해지기 이전의 안온하고 온존한 시공을 노래함으로써 파멸의 현실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또한 도처에서 관행을 무시한 행 가르기, 문장부호 등의 용법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처럼, 낯설게 하기 장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 가치나 관행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Ⅱ-2
전영경은 시집『김산월 여사』와 『나의 취미는 고독이다』에서 허구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현실을 투시한다. <김산월 여사>나 <이간구 각하>와 같은 인물은 이 시기 전영경의 시가 등장시킨 허구적 인물들이다. 이들 허구적 인물들은 허위와 가식의 현실을 헤치고 나름대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주도해 가는 현실적 가치가 이 시대의 정신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시인은 그런 현실적 가치가 타기 되어야 하며 순정한 가치가 정립되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부정이나 허위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서 참 가지의 정립을 바라는 순정한 기대를 좌절시킨다.
시인이 특유의 입담이나 욕설의 언어를 토해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서사적 이야기가 욕설이나 비어와 어울리고, 풍자적 어조를 들어낸다. 이런 그의 태도는 전기시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전영경은 시집 『선사시대』의 시편들은 현실에 정면으로 응전하기 보다는 정서적으로 받아들였다. 주로 회상의 방법으로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며 삶의 페이소스를 노래해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기시에서의 태도는 중기시에 와서 변모를 보인다. 현실에 대한 태도가 적극적인 것으로 바뀌면서 속어, 비어들을 쏟아내고 풍자를 통해 현실의 모순과 허위를 벗겨낸다. 특히, 이 시기의 시에는 허구적인 인물들이 다수등장하고 그 인물들의 타락의 과정이 다양한 서사로 제시되면서 서사성을 강화한다. 그리고, 그렇게 강화된 서사성이 중기시의 특질을 이룬다.
바람부는 언덕 아래 돌각담을끼고 가깝게는 철따라 빠알갛게 익어가는 능금나무가 있고.
능금나무가 있는 마을을 구비구비 돌아서
남으로는 이씨나 김서방이 산다는, 그 십리 밖에는
파도치는 봄 바다가 있고.
그 바다 수평선 머얼리에는 일찍이 아버지가 청춘을 바쳤다는 이웃나라가 있다는데
어쩌면 구름은 두만강 쪽으로만 밀리어 가는가.
………
인제 세상도 변하구, 산천도 변하구, 네것 내것 탓하지 않던 인심도 변하구, 칠순, 그렇지 칠순이 훨씬 넘었을 와당태 할아버지도, 스물 일곱에 과부된 보배 할머니도 돌아갔을꺼구, 아랫 동네 주열이나 저 건너 물방아깐 홍섭이 아들이나, 주촌의 그이 역시 살아 있다면 몇이구, 아무 육촌은 갖 설흔이구………
다시 아버지는 술잔을 받으면서
우리들은 해방이 되지 못한채 죽어간다면서 풍경화 속에 능금이 그려져 있는 벽의 그림을 뚫어지게 보는데
산 너머 또 산 너머 고개 너머 아득한 구름끝 천리 밖에서
철따라 능금은 빠알갛게 익어만 가는 것이가.
- 「고향」에서
풀 한 포기라도 뿌리를 박는 땅은 있다는데
내려 갈기는 방망이에 얻어맞으면 죽고 죽으면 땅 속이나 시궁찬에서 썩게 마련인 세상은 밤.
그 많은 밤의 거점에서
눈물과 괴로움의 누하동 셋방에서
이제 남자는 여자 앞에서 상갓집 개와 같다고 넉두리를 하다가도
고독과 영감을 안고.
수제비국과 낯짝을 뜯어 먹으며 살아온 해사한 얼굴만이 살아서 수작을 떨다보면 열 한시 싸이렌은 안타까운 사정을 재촉하고.
무엄한 달빛은 창 틈으로 기어들고 모든 세상 진미 때문에
잠자리 맛 때문에
손길은 애정의 표시, 사시장춘 애정의 요구도 될 수 있는
근로와 숫한 거래에서/뻔뻔스럽기 한량없던 넙적다리 때문에
그의 가슴에서 저도 모르게 절구통같이 팍 퍼진 어깨팍 쭉지를
그의 어깨팍 쭉지에 얹으며
그의 안가슴에서
정복을 당한다는 쾌감과 함께
마주 닿는 입술과 입술은 한 평생을 맹세하는 가므잡잡한 입술이기에
속되고 다급한 것인가.
열 여덟, 열 아홉, 그리고 유두분면의 명월관 시절이나, 보따리 장수를 하던 어제나 지금이나 악착같이 살 생각도 없었지만은
구태어 죽을 맛도 없어서
조심스럽게 조촐하게
다모토리 한 잔과
기웃기웃 흘러다니다 보니 고집과.
줏어 섬긴 교양과.
애교와 그리고 그리고 젖통을 들어내놓고.
소위 돈깨나 있다는 것들과.
소위 벼슬아치나 얻어 한다는 것들과, 소위 잘났다고 우겨대는 것들과, 소위 낫살이나 처먹었다는 것들과, 소위 오입깨나 한다는 것들의 환상을 더듬으며
가슴을 쓱쓱 쓸기도 하다가
사내란 이름은 함부로 부르기 쉬운 이름은 아니라고.
봄 바람과 함께
뚜껑없는 화물 열차에 몸을 싣고.
꽃잎에 잘못 머문 정거장이 설흔하고도 설흔하고도 일곱 살인가.
- 「김산월 여사」
앞의 시 「고향」은 시적 화자의 독백 형식을 빌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고향 사람들에 대한 회상이 이야기 형식으로 노래되어 있다. 위의 시에서 시인은 떠나온 고향을 그리고 있다. 그가 그리는 고향은 민족사의 수난과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특별할 것도 유별한 것도 없는 곳이다. 그러나, 시인은 고향을 그리면서 고향 사람들을 그리움의 근원으로 회상해내고 있다.
전영경이 그리는 <고향>은 구체적인 이미지들로 제시되어 사실성을 강화시켜준다. <바람부는 언덕 아래 돌각담>, <빠알갛게 익어가는 능금나무>, <능금나무가 있는 마을을 구비구비 돌아 남으로 이씨나 김서방>이 살고, <그 십리 밖 파도치는 봄 바다>, <수평선 머얼리 아버지가 청춘을 바쳤다는 이웃나라>이런 것들이 고향을 정서적 환기물로 만들어 간다.
이처럼 정서적으로 환기된 고향은 다시 그 고향의 사람들에게로 전이되어간다. 그런데, 그 고향 사람들은 이제 세월의 흐름 속에 추정을 통해서나 회상해 볼 수 있는 잊혀진 사람들이 되었다. <칠순이 훨씬 넘었을 와당태 할아버지>, <스물 일곱에 과부된 보배 할머니>는 이미 타계한 것으로 보이며 <아랫 동네 주열이>, <물방아깐 홍섭이 아들>, <주촌의 그이>, <아무 육촌>같은 회상의 인물들도 그렇게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해갔을 것을 떠 올리고 있는 것이다. 고향 풍경과 사람들을 통해 환기된 고향 회상은 다시 현실의 시점으로 복귀된다.
시적 화자는 아버지와 마주하고 있고 이들은 모두 현실적 조건 때문에 고향을 떠나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버지는 술잔을 받으면서 / 우리들은 해방이 되지 못한채 죽어간다면서 풍경화 속에 능금이 그려져 있는 벽의 그림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이다. <능금이 그려진 풍경화>는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고향이면서, 쉬임 없이 고향을 환기시켜주는 대상이다.
뒤의 시는 <김산월 여사>의 생애를 서사적으로 그려 보여준다. 김산월 여사는 간난의 시대 환경이 만들어 낸 비극적 인물의 전형이다. 고난과 좌절 속에서 살아남아 허위와 부정의 세태에 기생해가면서 잡초 같은 생명력을 유지해 가는 여인이 <김산월>이다. 이 여인은 어떤 도덕적 잣대와도 무관하다. <해사한 얼굴>을 발판으로 <잠자리 맛>을 팔면서도 <정복을 당한다는 쾌감>에 안주한다. <줏어 섬긴 교양>과 <애교>와 <젖통>을 밑천 삼아 <소위 돈깨나 있다는 것들과. / 소위 벼슬아치나 얻어 한다는 것들과, 소위 잘났다고 우겨대는 것들과, 소위 낫살이나 처먹었다는 것들과, 소위 오입깨나 한다는 것들> 위에 기생하며 나름대로의 현실에 안주한다.
위의 시의 화자는 제3자의 입장에서 한 여인의 생애를 기술해 보여준다. 다만, 이 시의 끝 마무리 <뚜껑없는 화물 열차에 몸을 싣고. / 꽃잎에 잘못 머문 정거장이 설흔하고도 설흔하고도 일곱 살인가.>에서 이 비극적 여인의 삶을 평가해 보여주고 있다. 전영경이『김산월 여사』에서 도덕적 타락과 허위의 인물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당대 현실의 본질을 밝히려는 의도에서이다. 그의 시에는 속어 비어들이 다수 등장하기도 한다.
개새끼는 개새끼대로 식칼이 가고, 어깨는 어깨대로 주정뱅이는 주정뱅이대로
다정하게 목침이 나르고, 고함이 오고가고, 배때기는 배때기대로 띵따라는 띵따라대로 올챙이는 올챙이대로 미안하게 다급하게
목덜미 위로 두 수 더 떠보는 요지경 속에서
옳지 못한 홀애비는 홀애비대로 신세 타령이 노래가락으로 변하여 에헤야가 나오다가도 쑤세미같은 마음을 걷잡을 수 없다면서
한쪽 다리를 들면서까지 개새끼가 되어보
는 우리의 최후의 백작은 이번에는 씹다 뱉은 라이스 카레를 토하면서 떠나가
는, 여기는 더러운 돈이지마는 받어들고.
손을 잡아보고싶은 뭇 친구들이나 입 맞춰보고 싶은 이웃들이나, 그리고 무슨 약속이나 허락, 그리고 그리고 흥분된 어조로 꼬이고 달래고 돈을 뿌리고, 다시 없이 호감을 사 보겠다는 살을 섞어 보겠다는 오입쟁이들이 들락날락하
는, 여기는 꼭지 떨어진 호박이나 바람맞은 과부들이 저마다 익살을 부려가면서 호들갑스럽게 엉뎅이를 좌우로 흔드는 여기는, 여기는 망태나 밀가루 자루같은
구제품같은 것을 걸치고 기름진 놈팽이나 어느 색골이나 거지발싸개 하나쯤 얻어 걸리지나 않을까 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는 명동,
- 「속ㆍ명동백작과 종로씨」에서
명동과 종로는 한국의 대표적인 환락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의 환난 속에서 참담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도덕적 가치의 타락이 극에 달해 있는 것이다. 이런 도덕적 타락을 보여주는 군상들이 <개새끼>, <어깨>, <주정뱅이>, <배때기>, <띵따라>, <올챙이>, <홀애비>와 같은 비어들로 제시되어 있다. 이런 비어들은 타락의 군상들의 타락상을 여실하게 의미화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군상들에게 <식칼이 가고>, <다정하게 목침이 날고>있다. 개새끼들에게 <식칼이 가고> 주정뱅이끼리 <다정하게 목침이 날>은다. 다정하게 나는 목침의 아이러니가 혼란상을 구체화해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도덕적 타락을 보여주는 군상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혼란과 가난의 현실 속에서 <망태나 밀가루 자루같은 / 구제품같은 것을 걸치고> <기름진 놈팽이나 어느 색골이나 거지발싸개 하나쯤 얻어 걸리지나 않을까 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전영경이 보여주는 타락의 군상들이 환락 속에 젖어들고 있지만 그들은 또한 삶의 페이소스를 느끼게 해주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전영경이 그의 시에 등장시키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가 허장성세로 부풀어 있거나 허위와 가식적인 인격의 소유자들이다. 전영경은 이런 허구적 인물들을 통해서 그런 현실의 모습을 여실히 들어내 보여준다.
나는 대한 제국에서 태어나서 나는 대 일본 제국 조선 총독부의 벼슬아치를 얻어 군수가 되고.
가장 세도 당당하던 경찰부장이라는
높은 자리 하늘의 별같은 것을 거쳐서
체조 끝에
자자 손손 위대할 수밖에 없는 도 참여관이 되고 각하가 되어
충추원 참의 이간구 각하가 되었는데
밤과 벽이라는 것은 하난데
각하, 각하가 말씀하시던 윤리라든가 도덕, 그리고 각하가 호령호령하시던 삼강오륜은
주먹과 발길이 아래 위로 날뛰는 이거리에서
………… 실은 할아버지같은 어른들이지켜야겠는데, 실은 실은 아버지같은 분들이 고집해야겠는데,
- 「이간구 각하」에서
내가 일찍이 미국에 있을 때 내가 일찍이 콜롬비아 대학 피이 에잇치 디 코오스를 부득불한 사정으로 중퇴하던 때만 하드래도
오 주책은 아니고 미스타 오도성이었고.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던 때만 하드래도 지금과 같이 오 주책은 였어도 구름을 타고 학같이 금의 환향을 꿈꾸던 선비지 딱타 옷도세이는 아니었고.
그러면 당신들도 아다시피 대학에서
무슨 과장을 지내고 뽑혀서 벼락 학장 감트를 거쳐 본업인 교회로 돌아온 전 과장 전 학장 오도성 목사이지마는
목사, 그 자체도 직업이기에 천만 다행,
………
- 「오도성 목사」
앞의 시 『이간구 각하』는 195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가 지닌 문제점의 일면을 지적해주고 있다. 일제치하에서 동족 수탈에 앞장서거나 일제의 식민정책 수행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친일주의자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지도자를 자임하고 선량을 자임하면서 부정 부패의 앞장에 서 있는 자들은 너무 많았다. 정치적으로 자유당 정권의 타락과 부패 역시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간구 각하>는 그런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서 전영경이 만들어 낸 허구적 인물이다.
<이간구>는 <대한 제국에서 태어나서 대 일본 제국 조선 총독부의 벼슬아치>가 된 인물이다. <대한제국>에 태어난 이 인물이 <대 일본 제국 조선 총독부>의 벼슬아치가 되었다는 진술에서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그런데, 이 아이러니적 인물이 부단한 변신과 처세로 영달의 길을 치닫는다. 세도가 당당하던 <경찰부장>이 되고 <도참여관>을 거쳐 <충추원 참의> 벼슬로 각하 칭호까지 받게 된 인물이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친일의 앞잡이인 셈이다. 그런 허구적 인물은 또한 현실의 타락에 젖어 있는 몰가치적 인물이다. <그 구멍과 같은 입으로 밥을 처먹고 키스하고, 그 구멍과 같은 입으로 술을 먹고 토하고, 그 구멍과 같은 입으로 가래침을 테테 밷는> 사람이다. 그리고, 역시 그 입으로 <윤리>와 <도덕>을 말하고 때로는 <삼강오륜>을 강조하며 호령호령하기도 한다.
자신은 시의에 따라 표변하고 양심을 초개같이 버리기도 하는 인물 <이간구>같은 자가 <각하>가 되어 있고, 그런 그가 도덕적 가치를 천명하기도 함으로써 풍자가 된다. 그리고, 그런 풍자의 근본 의도가 현실의 허위성을 밝혀내는데 있음은 물론이다.
뒤의 시 『오도성 목사』 역시 현실의 허상을 짚어 보여준다. 앞의 시 『이간구 각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도성 목사』는 자신이 시의 화자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앞의 시 『이간구 각하』에서는 제3의 화자가 문제적 인물 이간구의 허위성을 묘사해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오도성 목사』는 오도성 자신이 시적 화자이다.
전영경은 시집 『김산월 여사』와 『나의 취미는 고독이다』에서 허구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현실을 투시한다. <김산월 여사>나 <이간구 각하>와 같은 인물은 이 시기 전영경의 시가 등장시킨 허구적 인물들이다. 이들 허구적 인물들은 허위와 가식의 현실을 헤치고 나름대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주도해 가는 현실적 가치가 이 시대의 정신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시인은 그런 현실적 가치가 타기 되어야 하며 순정한 가치가 정립되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부정이나 허위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서 참 가지의 정립을 바라는 순정한 기대를 좌절시킨다.
Ⅱ-3
전영경의 시집 『어두운 다릿목에서』가 간행된 것은 1964년이었다. 시집 『김산월 여사』와 『나의 취미는 고독이다』에서 도도한 풍자언어로 몰가치적 현실을 노래해 보여준 시인은 4ㆍ19 이후에도 변함없는 부패한 사회상에 대한 비판의 언어를 『어두운 다릿목에서』에 담아내고 있다. 그러니까, 시집 『나의 취미는 고독이다』가 간행된 1959년 이후, 4ㆍ19 혁명을 겪게 되면서 그가 접하게 된 사회적 혼란과 부패상이 그의 응전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집 『어두운 다릿목에서』에서는 이전의 시들과는 좀 다른 면모가 나타난다. 이전의 시들이 지녔던 도도한 풍자와 공격적 언어들이 줄어들면서 독백적 진술과 대화적 진술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심의 범위도 산업화가 가져오는 부정적 요소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시기(1962년 이후)에 그는 강단을 떠나 언론계로 진출, 관심의 범주도 변화를 보인 것으로 보인다. 전영경은 이 시집의 시편들에 대해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어두운 다릿목에서』속에 수록한 시편들은 슬픈 조국에 태어난 몸부림, 가난하다는 것, 어질다는 것, 이 모든 잃어버린 생존권에 대한 내 안에서 일어난 언어들이다. 선배와 동료, 친구와 이웃, 어진 선비들의 금기의 풍경을 형상화한 어둡고 우울한 시대의 소산이다
이전의 시들이 주로 부정과 타락의 인물을 정형화한 이간구 각하나 명동백작, 김산월 여사 등이 시적 대상으로 노래되었으나 이 시기에 와서 선배와 동료 이웃과 같은 현실 속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산업화의 그늘에 묻혀 가는 인물들이고 소외된 인물들이다.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누데기같은 양복 한 벌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프로이드류로 말하면 열등의식밖에는 없습니다
정말 제가 사는 이 세상에서 사정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습니다
좁은 세상에 소문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하다는 죄밖에는 없습니다
지루하던 장마가 걷히고 칠월이 가고 팔월은 오는가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고
그리고 춥고 배고픈 겨울이 올 것입니다
낙엽만 생각해도 미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사느냐 이것뿐입니다
북악에 삼각에 눈이 오면 선생님 애국애족만 가지고는 배가 고픕니다
저는 오늘 아침도 굶었습니다
- 「둥글다 못해 모가 났어요」에서
위의 시에서 화자는 삶의 현실에 좌절하고 있는 인물이다. 정신과 육신의 궁핍 속에 허기를 느끼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미시적 현실과 응전하고 있다. 이전의 시들이 윤리적 타락이나 정신 가치의 결핍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오도성 목사」나 「김산월 여사」, 「이간구 각하」와 같은 인물들에 응전했었던 것과는 퍽 대조적이다.
위의 시의 화자는 그러므로 매우 현실적이다. <애국애족만 가지고는 배가 고프다>고 말할 수 있는 가난과 소외의 인물이다. 그리고, 이 화자가 느끼는 허기는 매우 심각하고 절실하다. 그래서 그는 <살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애원한다. <가난하다는 죄> 때문이다. 이전의 <가난한> 화자들이 도도하게 외치면서 풍자적 언어를 구사하던 데 비하면 이 시기의 화자들은 축소되어 있다. <가난>을 <죄>로 받아들이면서 <누데기같은 양복 한 벌> 로서의 허기를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오늘 아침도 굶었읍니다>는 진술이 이 화자가 느끼는 허기의 절박성을 말해주고 있다.
어이 여자 이리좀 와
우리 영감님 되실랴구
벌써 나한테 반한 건 아니겠지
아이구 선생님한데 반한 줄 아우
돈에 반했지
술이 들어오고 우랑에 곱창에 우족에 그리고 간천엽을 찾으면서 다시 술이 들어오고 육회에
갈비에 여자가 들어오고
………
거짓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서
눈을 아래로 흘기고는 갑자기 웃으면서 그의 목을 끌어안는다
자고가 응
어떻게 자고가
꼭 이렇게
응 정말
나이 몇이냐
갓스물에 둘
아직 철부지
그러면 싫어요
부모하고 형제는
부모가 있으면 여기서 이짓을해요
왜 이짓이 나쁘냐
- 「왜 이짓이 나쁘냐」에서
시집 『어두운 다릿목에서』의 시편들에는 위의 시와 같은 술집에서의 객담 형식을 빌어 토로된 삶의 애환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전영경은 삶의 허위와 진실, 좌절과 소외의 모습이 자연스레 토로되는 공간으로서의 술자리를 상정해내고 있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타락과 일탈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화자는 대부분의 경우 지식인이다. 그러나, 지식이 그 효용을 상실하고 지식인의 자리가 소멸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시적 화자는 자포자기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위의 시의 화자는 현실의 허위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 있다. 이 시의 화자가 던져진 허위의 현실은 <돈>이 평가척이 되는 곳이고 <술>과 <우랑>과 <곱창>과 <간천엽>과 <육회>와 <갈비>와 <여자>가 동일 수준에서 거래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랑>이 아니라 <돈>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시인은 여인에게 <왜 이짓이 나쁘냐>고 반문한다.
전영경의 시집『어두운 다릿목에서』에서 부패한 사회상에 대한 비판의 언어를 담아내고 있다. 그러니까, 4ㆍ19 혁명을 겪게 되면서 그가 접하게 된 사회적 혼란과 부패상이 그의 응전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집『어두운 다릿목에서』에서는 이전의 시들과는 좀 다른 면모가 나타난다. 이전의 시들이 지녔던 도도한 풍자와 공격적 언어들이 줄어들면서 독백적 진술과 대화적 진술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심의 범위도 산업화가 가져오는 부정적 요소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들을 주로 노래해 보여주었다.
Ⅲ
전영경은 서사와 풍자의 언어를 통해 현실 응전의 시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시에 개성적 면모를 보여준 시인이다. 그는 그가 당면한 현실의 위압에 위축되거나 축소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도도한 호흡의 풍자 언어를 통해 현실이 지닌 허위의 본질을 들어내고자 하였다.
전영경은 시집 『선사시대』에서 전쟁의 현실을 정서적으로 수용하고자 하였다. 그는 회상의 방법으로 상실된 고향을 복원하고자 하였으며 삶의 페이소스를 노래한다. 전영경은 그가 처한 파멸의 현실 속에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시공을 상정하였다. 그가 도달해야 할 시공으로 상정하려 한 것은 원초적 시공으로서의 고향이었다. 그의 원초적 공간은 감각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이처럼 집단적 욕구 충족을 위한 살육이 행해지기 이전의 안온하고 온존한 시공을 노래하려 하였다. 또한 관행을 무시한 행 가르기, 문장부호 등의 용법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처럼, 낯설게 하기 장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 가치나 관행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영경은 시집 『김산월 여사』와 『나의 취미는 고독이다』에서 허구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현실을 투시하고자 하였다. 「김산월 여사」나 「이간구 각하」와 같은 인물은 이 시기 전영경의 시가 등장시킨 허구적 인물들이다. 이들 허구적 인물들은 허위와 가식의 현실을 헤치고 전형의 자리에 오른 안면몰수의 뻔뻔한 인물들이다. 이런 부정직한 인물들이 주도해 가는 현실적 가치가 이 시대의 정신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시인은 그런 현실적 가치를 타기하고 순정한 가치를 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부정이나 허위가 완강하기 때문에 참 가지의 정립을 바라는 순정한 기대는 좌절된다. 전영경은 이런 좌절을 통해 현실의 본질을 찾아내려 하였다.
전영경의 시집 『어두운 다릿목에서』에서 부패한 사회상에 대한 비판의 언어를 담아내고 있다. 4ㆍ19 혁명을 겪게 되면서 그가 접하게 된 사회적 혼란과 부패상이 그의 응전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집『어두운 다릿목에서』에서는 이전의 시들이 지녔던 도도한 풍자와 공격적 언어들이 줄어들면서 독백적 진술과 대화적 진술들이 많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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