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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당대표의 사명 -한동훈에 대한 바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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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6월03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06월03일 19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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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감각과 국제감각

 

빠르면 7월 말, 늦어도 8월 중순에는 열릴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통해 탄생할 당대표는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 당면한 위기를 알아야 한다. 또한 4.10 총선으로 확연하게 드러난 윤석열 정부의 공과(功過)와 한동훈 비대위의 한계와 오류를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해 국힘당을 바로 세워야,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은 윤정부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있고, 대한민국의 심각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 국힘당과 윤정부의 한계·오류, 그리고 대한민국의 위기는 통상 보수·우파로 불리우는 정치세력과 그 중핵인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역사적 업보의 산물이자, 1987년 이후 형성된 한국 특유의 정치 지형(제도, 문화 등)의 산물이기에, 이 역시 바로 보아야 한다.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미국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케네디, 레이건과 더불어 재임 중 국정 운영을 매우 잘한 대통령으로 꼽힌 조사결과를 놓고 그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첫째는 자신이 이끄는 나라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역사의 조류 속에서 나라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깨닫고, 그 바탕 위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둘째는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더 번영한 나라와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조선일보, 2005. 2. 24.) 

 

역사의 조류 속에서 나라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깨닫는 것은 역사감각(sense of history)이라 한다.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선상에서 나라의 위치(처지, 위기, 기회)와 방향을 파악하는 것이기에, 시대인식 혹은 역사인식이라고도 한다.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흔히 국제감각 혹은 국제정세인식이라고도 한다. 역사감각과 국제감각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당대표나 당 최고지도부에게도 절실히 필요하다. 실은 국회의원과 국가경영(경세)을 논하는 모든 논객들에게도 필요하다. 당대표는 역사의 조류 속에서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윤정부의 역사적 사명과 한계와 오류가 무엇인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국힘당과 보수가 국민들에게 어떤 존재(정체성)로 인식되어 있는지, 이를 어떻게 개선할 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산업화, 민주화 그 다음?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쇠락하고 퇴행하고 수축되고 있다. 인구구조, 주력산업, 경제사회적 활력, 복지·의료시스템, 사법시스템, 가족공동체, 기업가정신, 직업윤리, 근로윤리, 시민종교, 정치문화 등 모든 것이 수축되고 퇴행하고 있다. 경제적 활력이 말라붙고, 사회적 연대성(공동체성)이 증발하고, 정치적 혼미와 무기력이 일상이 되고, 몰상식·몰염치가 능사로 되고 있다. 능력있는 인재는 해외로 탈출하고, 청년·미래세대는 졸아든 물에서 아귀다툼 하는 물고기 신세가 되었다. 보수가 자랑하던 ‘더 큰 대한민국’도, 진보가 자랑하던 ‘더 따뜻한 대한민국’도 먼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건국-산업화-민주화가 퇴행화, 수축화, 3류화, 조선화를 거쳐 국가 자살로 내달리는 것은 청년시절부터 대안 체제 내지 종합적 국가비전--러시아, 북한, 대만, 북유럽, 네덜란드, 독일, 미국, 스위스 등이 유력하게 검토됐다--을 염두에 두고 운동을 전개한, 성찰할 줄 아는 운동권 출신들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다시 4.10 총선을 복기한다

 

4.10 총선에서 국힘당은 선거 직전 114석에서 무려 6석이 줄어든 108석(지역구 90석+비례 18석)을 얻었다. 2020년 4.15 총선은 행정권력, 지방권력, 공공기관, 공영언론 등을 다 빼앗긴 상태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빌미로 한 무차별 현금 살포도 자행되는 등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서 103석(지역구 84석+ 비례 19석)을 얻었다. 그런데 현재의 국힘당은 여기에 무소속 5명(홍준표·김태호·윤상현·권성동 +이용호), 국민의당 3명(안철수 등), 시대전환 1명(조정훈), 재보궐선거 승리로 몇석 추가(최재형·정우택·김학용)하고, 국힘당으로 당선되었지만, 개인 비리 혐의로 황보승희·하영제 의원이 탈당한, 외연이 훨씬 확장된 집권여당인데, 2020년 총선 보다 의석수가 더 줄어들었으니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이재명·조국 대표의 명백한 부정비리 혐의와 이들이 주도한 정치도의와 상식을 짓밟은 공천 과정과 내용(인물)을 감안하면 어마무시한 참패가 아닐 수 없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4.10총선 패배가 일과성 실수나 불운(돌발 악재)의 산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실 2016년, 2020년, 2024년 총선 판세는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었다. 투표 한 달 전까지는 보수당에 유리해 보여서, 200석 압승을 점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판세는 급전직하(急轉直下)하여 보수당의 참패로 귀결되었다. 따지고 보면 2022년 3.9 대선도 투표 한 달 전에는 보수(윤석열)후보가 크게 유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막판 결집이 일어나면서 0.73%p(24만 7천 표)차로 신승하였다. 문재인 정부의 누적된 폭정과 실정, 그리고 민주당 후보 이재명의 엄청난 흠결을 생각하면, 3.9 대선도 3번의 총선과 비슷한 패턴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뭐든 반복되는 패턴은 일과성 원인의 산물이 아니라, 어떤 구조의 산물이 아닐까 의심해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중요한 패인으로 널리 거론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와 스타일,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독단(공천 등)과 경험 부족, 윤-한 갈등, 그리고 돌발 악재(대파값, 황상무 실언, 이종섭 출국, 의대정원 2천명 늘리기와 관련 51분 담화 등)로 인한 우연적·일과성 참패가 아니라, 1987년 이후 시나브로 불리해진 어떤 구조 내지 정치 지형의 결과가 아닐까 의심해 봐야 한다는 얘기다. 단적으로 대파값, 디올백, 황상무, 이종섭, 채상병 사망 사건 등 허물의 성격으로 보면, 정권 심판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윤정부와 국힘당에는 엄청나게 큰 악재로 다가왔다. 하지만 문정부와 민주당은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이재명·조국과 김정숙·김혜경의 권력형 부정비리, 대장동변호사와 역대급 막말 후보 공천, 명백한 사당화 징후 등에 대한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 그 증거다. 

 

요컨대 상당수 국민의 눈에는 보수의 티끌 같은 허물은 들보(beam)처럼, 진보의 들보 같은 허물은 티끌처럼 비친다는 것이다. 이는 SNS화력이나 선전선동·편집조작 기술의 차이라기 보다는, 보수와 진보를 보는 대중의 인지심리나 프레임의 차이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요컨대 보수는 대한민국의 온갖 모순부조리의 원흉인 수구·기득권·현상유지 세력이고 진보는 그에 반대하여 싸워온 개혁·비기득권·현상변경 세력으로 각인되어 있다는 얘기다. 아무튼 비판은 날카로워야 하고, 성찰은 깊어야 한다. 

 

전당대회가 대통령 후보를 뽑는 행사라면, 윤대통령과 후보들의 공과(功過)와 한계·오류를 집중적으로 논해야한다. 하지만 전당대회는 어디까지나 향후 2년 간 당을 이끌 당대표를 뽑는 행사다. 역대 당대표·비대위원장(김기현, 이준석, 김종인, 황교안, 홍준표, 주호영, 정진석, 김병준 등) 중에서 한동훈만큼 그 누구(대통령이나 다른 계파 수장)의 간섭도 받지 않고, 총선 공천을 포함한 당무를 주도·전횡한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12월 26일 이후 한동훈은 그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당내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행운을 누렸다. 총선 목전이고, 다른 대안을 세울 수 없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권한이 크면 책임도 큰 법이다. 비판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비판의 봇물이 터지는 것이 정상이다. 더군다나 대선 패배 직후 보궐선거를 거쳐 민주당 전당대회에 나온 이재명처럼, 통상의 정치문법을 깨고, 패배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는 한동훈이 당대표에 나오려고 한다면, 더 찬찬히 복기하고 비판해야 마땅하다.   

 

본투수와 구원투수

 

4.10 총선 직후 윤대통령과 한비대위원장의 참패 책임 비중을 놓고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한마디로 무익한 논쟁이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윤대통령이 1~7회를 책임진 본투수·본타자라면, 한동훈은 불리한 상황(1사 만루에 비유하기도 한다)에서 등장하여 8~9회를 책임진 구원투수·대타자다. 각각의 책임 시기 및 내용이 다르다. 책임의 비중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한동훈 때문에 ‘108석이나 했다’는 주장과 ‘108석 밖에 못했다’는 주장은 둘 다 성립가능하고, 둘 다 검증이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윤정부가 지난 2년 간 국정운영을 잘 했다면,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누가 국힘당 대표를 해도 180석을 가뿐히 넘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12월 말부터라도 비대위원장 한동훈이 잘 했다면 150석을 너끈히 넘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주장 역시 검증 불가능한 가설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윤대통령 책임이 압도적이었다고 해서, 비대위원장으로서 전권을 휘둘렀던 한동훈의 책임이 별 것 아닌 것이 아니다. 구원투수와 대타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으면 된다. 당연히 본투수와 본타자들의 에러나 실점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한동훈의 탁월한 강점과 매력은 말 솜씨와 나이와 맵시다. 거두절미하고 뒤틀어도 흠잡기가 쉽지 않은 깔끔한 말 솜씨가 첫째요, 박력을 얘기하면 그럴듯해 보이는 1973년생이라는 젊음이 둘째요, 스마트한 용모와 옷 맵시가 셋째다. 그 외에 몇 가지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동훈의 말은 시대의 아우성을 정확히 받아안은 말, 즉 비전, 아젠다, 프레임, 서사 등이 아니다. 민주당의 서툴고 야비한 공격을 날카롭고 재치있게 받아쳐서 지지층에게 쾌감을 주었지만, 한동훈이 나라와 국힘당을 이끌면,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인 국가적 위기들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은 주지 못하였다. 

 

호랑이는 가죽, 사람은 이름, 당대표는 무엇을 남기나?

 

2023년 12월 26일 비대위원장 공식 취임 이후 총선 관련된 정치 행위는 압도적으로 한동훈의 책임 하에 이뤄졌고, 이것이 선거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거칠지만 본질적인 평가부터 하자. 사실 여기에 당대표의 사명 대부분이 들어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던가? 그렇다면 총선을 지휘하고 공천을 주도한 당대표는 무엇을 남겨야 하나? 핵심은 사람이다. 시대정신과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는 의원이다. 이는 사실상 임명직이나 다름없는 비례대표와 텃밭(서울강남+대구경북 등) 공천자=당선자들의 면면이 말해준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시대의 아우성을 받아안은 국정아젠다, 즉 대통령 프로젝트다. 이는 국힘당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보수·국힘당의 흐릿한 정체성이 정립되고, 당은 위대한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동지적 결사가 된다.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보수·국힘당의 감동적 서사(敍事)다. 그런데 한동훈의 일정·메시지·정책·공천과 인사에는 이것이 완벽히 빠져있었다. 물론 역대 당대표·비대위원장도 오십보백보이기는 했지만!

 

민주당은 동학혁명(?) 서사, 도덕 서사(항일·양심 대 친일·기회주의), 민주화투쟁 서사, 노동·민중투쟁 서사 한반도평화 서사, 촛불시민혁명 서사 등을 배경으로 '민주당=비기득권·호남·약자·소외자·노동·민중·평화' 대(對) '국힘당=기득권·강남·강자·자본·대결'의 구도를 만들었다. 저성장·저활력·기회부족과 다양한 격차 확대, 아니 그에 대한 보수의 무대응이 이 부조리의 책임을 주로 보수가 덮어쓰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공천도 이 허구적 구도를 뒷받침하였다. 비례위성 정당도 제2촛불혁명(윤석열 탄핵)을 위한 정치연합으로 만들었다. 비례순번 투표 등으로 지지층의 참여도 끌어냈다. 하지만 국힘당은 민주당을 압도하는 서사와 구도를 만들어내지 못하였고, 지지층의 참여도 전혀 끌어내지 못했다. 

 

국힘당은 1876년 개항이후 150년 간 한반도 근대화·문명화·산업화·민주화를 주도한 위대한 정치 세력으로, 때론 급진적·혁명적 개혁도 마다하지 않은 친발전·친기업·친시장·친청년·친성밖서민(진짜 서민) 세력이라는 정체성을 전혀 인식하지도 선전하지도 못하였다. 비례공천과 텃밭공천은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대라면 괜찮을 것 같은, 얌전한 전문가 일색이었다. 요컨대 한동훈의 정교하고 깔끔한 메시지에는 정작 중요한 서사와 정체성도, 시대의 아우성을 받아안은 담대한 변화와 개혁 비전도 빠져 있었다. 국회의 세종시 완전 이전, 경기도 일부 시의 서울 편입,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은 언 발에 오줌 누기거나 신발 신고 발 긁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한동훈은 정당·공천 시스템도 개혁한 것이 거의 없다. 게다가 한동훈은 윤 대통령과만 불화한 것이 아니라, 강성 지지층과도 불화하였다. 담대하고 정곡을 찌르는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사람들과도 불화하였다. 무너진 정치연합이 더 무너져 버렸다.

 

국힘당 대표의 업보와 과제

 

국힘당 당대표의 사명=조건은 역대 당대표·비대위원장에게도 해당된다. 사실 공천 갈등은 당대표(당권파)의 전횡을 방치한 후진적 정당시스템 하에서1),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비례를 많이 보유한 민주당과 국힘당이 항상 빠져드는 늪이다. 다만 뺄셈정치와 자기정치(先私後黨) 습성과 공격을 당하면 꼬리 자르고 도망가는 것을 능사로 아는 초식동물·온실화초 습성(투지·근성 부족)은 보수·국힘당이 상대적으로 심하다고 알려져 있다.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6070과 4050세대가 각축하는 구도에서 선거 승패를 가르기 마련인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의 지지율 제고 방략도 어제오늘의 과제가 아니다. 집토끼 다지고 산토끼를 잡아야 승리한다는 공식도 일종의 선거 산수지만 역시 풀지 못한 난제로 되어 있다. 그 결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갈등과 실패는 반복된다. 당연히 차기 국힘당 대표는 이 오래고 준엄한 난제를 해결할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깊이 있는 진단과 설득력 있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 

 

국힘당 대표는 무엇을 해야 하나? 

 

1) 기울어진 운동장 대응


 지난 총선은 보수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요인이 세 개가 있었다. 첫째는 경제·민생 사정, 둘째는 보수·국힘당의 비호감 정체성(수구·기득권 이미지), 셋째는 윤대통령에 대한 두터운 반감과 비호감이었다. 

한동훈과 윤정부는 악화된 경제민생 사정에 너무 둔감했고, 따라서 안이하게 대처했다. 인간은 배 고픈 상태로 백화점에 가면, 사고 싶은 물건이 눈에 많이 띈다. 마찬가지로 미국발 고금리-세계최고 수준의 가계부채-부동산시장 경색-미국·중국·러시아발 경기침체-고물가 등이 사중오중으로 겹쳐 돈이 고프고, 생활이 팍팍하고, 정의가 고프면(다양한 분야에서 쌓인 전정권의 적폐 청산이 지체되면), 정권의 작은 허물도 크게 보이는 법이다. 티끌이 들보처럼 보이고, 들보가 티끌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민생 상황은 국힘당에 무조건 불리한 환경이 아니었다. 경제민생의 어려움의 상당부분은 문정부와 민주당의 시대착오적인 철학, 가치, 정책(소주성, 부동산 정책, 탈원전, 방만재정 등)의 후과요, 민주당의 대안은 더 설득력이 없었기에 얼마든지 유리한 환경으로 반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윤정부와 한비대위의 정책적·정무적 무능으로 인해 큰 악재로 만들고 말았다. 

 

경제·민생 문제는 민주당이 당차원에서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않았. 민주당이 공격하면 책임 공방전이 벌어지기 마련인데, 소주성과 부동산 정책 등은 민주당 책임이 크기에 공방전이 그리 유리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그럴듯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민생 문제는 국민과 중도층은 피부로 느꼈고, 민주당 지지층은 이심전심으로 자발적으로 공격하였다. 대파값 소동이 단적인 예다. 

윤대통령에 대한 두터운 반감과 비호감은 한동훈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완화하려 하였는데, 한동훈은 이를 덮을만한 이슈를 충분히 만들지 못하였고, 윤대통령은 의대정원 등으로 갈등의 전면에 서는 우를 범하였다. 

정체성 문제는 1987년 이후 점점 악화된 문제인데, 한동훈은 거의 의식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대응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는 윤정부와 역대 국힘당 최고지도부와 중진들의 업보이기도 하다. 사실 이는 종합적·체계적인 경세방략의 총화인 국정운영 플랫폼의 부실에서 연유한다.  

 

2) 서사와 정체성의 재건축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고백은 아마 시몬 베드로의 고백일 것이다. 이 고백 위에 기독교가 서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6장 16절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가 그것이다. 이는 예수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예수가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과 베드로의 고백이 일치하면서, 베드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축복을 받았다. 사도신경(使徒信經)은 베드로의 고백을 앞뒤로 연장한 짧고 강력한 서사(敍事)다. 하나님의 전능함-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베드로의 고백)과 예수의 잉태-탄생-고난-죽음-부활-승천-심판과 죄 사함-부활-영생에 대한 믿음이 근간이다.

 

지금 한동훈을 비롯하여 국힘당 대표를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일은 ‘보수와 국힘당은 누구인가’를 스스로 묻고, 국민에게는 ‘우리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를 정중히 물어서, 감동적인 고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감동적인 서사와 매력적인 정체성을 사도신경처럼 단숨에 읊을 수 있는 신조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대통령 및 국힘당의 전략과제(가치·정책·비전)가 나오고, 당헌당규(당명 강령 시스템 등) 개정안이 나온다.  

 

그런데 한동훈을 비롯하여 역대 당대표들은 흐릿할 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제를 외면한 보수의 서사와 정체성을 거의 방치하였다. 서사와 정체성은 진보·민주당의 불굴의 힘의 원천이다. 반대로 보수·국힘당의 비호감과 수많은 악덕의 원천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초 이명박정부가 초래한(?) 3대 위기를 비판하면서 민주당의 정체성을, 한반도평화‧민주주의‧서민(민생)을 위해 싸우는 정당으로 규정했다. 그냥 ‘추구·갈구·염원하는’ 정당이 아니라, ‘싸우는’ 정당이라 하였다. 사실 정체성은 대립물 혹은 대립물과 투쟁을 통해 형성된다. 과거에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웠고, 지금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가 자신의 정체성이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포부와 염원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과거·현재의 대립물과 처절한 투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멋진 비전은 그냥 구라(감언이설)로 취급될 뿐이다. 

 

위대한 가치·비전을 위해 싸우는 정당이라는 자의식 내지 정체성에서 대한 소명의식과 높은 긍지·자부심이 나온다. 동시에 대동단결 기풍, 동지의식, 불굴의 투지·근성과 선전선동(정무)과 진영(운동)생태계 중시 문화도 나온다. 진보의 SNS 화력이 월등한 것은 핵심 지지층이 40대·50대인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지층이 서사와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진보의 정체성이던 친소·친북·친중 사회주의를 슬그머니 지우고, 변화와 개혁에 대한 전향적 태도라는 사전적 의미를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았다. 여기에 진보는 사회적 약자·소외자·노동자·민중(비기득권)편이라는 것, 성장과 시장의 그늘 해소를 위해 분배·평등·공동체·인권·환경 등을 중시한다는 것 등을 덧붙였다. 최근에는 유럽 좌파가 주도하는 이념·정책적 최신 유행(페미니즘, 환경생태중시주의, 탈원전 등)도 덧붙였다. 하지만 중심은 어디까지나 평등·인권·공동체·환경·지속가능성 같은 가치가 아니라 권력과 부(지대추구)였기에 ‘지금’ ‘여기’ 문제에 기민하고도 포퓰리즘적으로 반응하였다. 그 결과가 다른 나라에서 전례를 찾아 보기 힘든 소득주도성장정책, 무상=기본=공짜 시리즈, 25만원 민생지원금 등이다. 문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역시 김정은의 선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외교안보의 기본 상식을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남북 화해협력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포퓰리즘적 정책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사후에 운동권의 장악력이 점점 높아진 민주당은 동학·항일·통일·민주·노동·민중 투쟁 서사를 구축하였다. 이를 토대로 황토현과 우금치, 4.3기념공원, 4.19묘역, 5.18묘역, 김구가 묻힌 효창공원, 전태일이 묻힌 마석모란공원, 노무현이 묻힌 봉하마을 등을 성지로 만들었다. 이렇듯 외세, 친일, 분단, 독재, 착취, 환경파괴 등 불의에 맞서 싸운 ‘투쟁·항쟁 서사’를 공유하니 싸움닭·투사 에토스가 생겨났다. 

 

반면에 국힘당은 보수라는 이름의 포로가 되었다. ‘지금’ ‘여기’의 문제와 대결하지 않고, 영국의 버크, 디즈데일리, 처칠, 대처, 캐머런과 독일의 비스마르크, 아데나워 등의 신조·태도와 정책을 보수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그 결과 (노블레스도 전혀 아니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제, 병역 의무, 품격(주로 막말 후보 퇴출 등), 점진적 변화 추구=급진적 변화 반대, 역사와 전통에 대한 존중=보수적 태도 등을 핵심 정체성으로 삼았다. 또한 역사적 맥락을 사상하고, 다시말해 수십년 주기로 변해온 주류·지배적인 컨센서스를 보지않고, 케인즈주의, 복지강화, 노동존중, 경제민주화,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을 ‘따뜻한 보수’ ‘개혁 보수’의 금과옥조로 삼았다. 요컨대 '보수다움=정체성'의 준거를 개화파·김성수·이승만·박정희 등이 보여준 ‘지금’ ‘여기’의 문제(시대의 아우성)에 대한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반응에서 찾은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1930년대 대공황 대응, 68혁명 등 유럽의 급진적 변화 내지 파괴에 대한 반발심을 근간으로 하는 영미 보수주의에서 찾았다. ‘인간의 근원적인 도덕적, 지적 불완전성을 인정해 이상적 설계에 기초한 급격한 변화에 반대할 뿐 자생적, 점진적 변화에 반대하지 않으며, 고유의 확정된 설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 이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 ‘여기’ 문제에 대한 반응이 빠져있다. 그 결과 보수·국힘당의 가치정책적 기조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되었다. 한마디로 얌전한 전문가·직업공무원 에토스다. 이 결과가 민주당은 잡초·육식동물 기질을, 국힘당은 화초·초식동물 기질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보수·국힘당의 기질이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그 정치적 조상인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잠들어있는 선교사들은 위대한 사랑, 헌신, 희생의 모범이다. 이후 친일·친미 개화파와 김성수·조만식 등 일제하 실력양성파와 이승만·박정희는 실용주의적인 반공·근대화 혁명가였다. 전두환·노태우도 상무정신과 실용주의를 체화한 개혁가였고, 김영삼은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과도하게 부정하긴 했지만, 어쨌든 ‘신한국창조’를 표방한 민주투사이자 대개혁가였다. 하나같이 짙은 그늘을 가지고 있지만, 공칠과삼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보수의 서사에서 이승만·박정희 외에 대부분을 지우면서 오늘날의 보수 체질 내지 에토스 위기가 초래됐다고 보아야한다. 

 

3) 국정운영 플랫폼의 재건축


 국힘당의 모호한 정체성은 과거에 무엇과 싸워왔고, 지금 누구를 위해 무엇과 싸워야 하는 지를 깊이 연구고민 하지 않은 후과다. 이는 기본적으로 국정운영 플랫폼 개념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자잘한 정책·사업·예산·조직은 알아도, 그 전체를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멋지게 포장하는 국정운영 플랫폼을 모르는 것은 직업공무원 에토스의 발로다. 

윤정부는 정책 방향은 옳은데, 전달 태도 혹은 정무가 문제라는 진단은 치명적인 착각 중의 하나이다. 윤 정부와 국힘당의 정책플랫폼의 근간은 국힘당 강령(2020.9.2.), 대선정책공약집, 인수위 백서(2022.6.), 120대 국정과제(2022.7.), ‘관계부처 합동’ 명의의 경제정책 방향(2022년, 2023년, 2024년), 다시 대한민국(2023년 업무보고로 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철학(2023.3.), 2024년 예산안(2023.8.29.)과 3대 개혁과 의료개혁 등인데, 한마디로 직업공무원(주로 경제관료와 외교안보 관료)의 사업계획 내지 업무보고를 받아 안았을 뿐이다. 시대의 아우성(시대적 요구) 내지 국민의 기대·요구·불만·신음을 온전히, 그것도 전투적으로 받아 안지 않았다. 윤 정부의 태도(정무), 인사, 말 등 대부분의 문제는 여기서 기인한다.

 

국정운영 플랫폼이 집이라면, 그 초석, 기둥, 대들보, 외벽, 지붕 등 골조에 해당되는 것은 서사와 정체성, 시대인식(국내정세인식)과 국제정세인식, 그리고 이들을 종합한 시대정신과 시대적 소명이다. 수백 개의 국정과제는 이 집의 방이나 가구나 소품 쯤 될 것이다. 서사와 정체성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이고, 시대인식은 거시적 통찰인데, 대한민국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고(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도정에서 주된 극복 대상(대립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다. 이는 우물안에서 그 위 하늘만 바라보아온 공무원이나 전문가가 알기 어렵다. 해외 석학이나 전문가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다. 국제정세 인식은 지구촌(자연환경)과 동북아가 어디로 가는 지, 대한민국에 어떤 도전이 밀려오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당연히 해외 석학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등산에 비유하면 시대정신은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올라야 할 주요한 산들에 대한 얘기라면, 시대적 소명은 그중에서 자신의 가치‧이념, 처지‧조건‧역량 등을 종합하여 오르기로 결단한 산들에 대한 얘기다. 국정철학과 국정과제는 그 산을 오르는 자세와 경로·침로에 대한 얘기다. 이는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120대 과제가 아니라, 12대 중점 개혁 과제가 필요하다.  

 

4) 당 개혁과 대선승리연합의 복원


 국힘당을 교회에 비유하면, 성경도 없고, 신앙의 정수를 정리한 사도신경도 없고, 성경을 공부하는 학교도 없고, 목회자(활동가 등)를 키우는 신학교도 없다. 국힘당은 개혁할 것이 지천이다. 노선, 시스템, 체질(당풍), 리더십(공천과 당직인사) 등. 요컨대 국힘당 대표는 서사와 정체성을 바로 잡고, 시대의 아우성에 조응하는 노선을 정립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와 당과 보수의 체질 혁신이 가능하다. 대선 승리연합을 복원하고, 지자체 등을 통해 보수의 운동생태계를 풍성하게 해야 한다. 원외 위원장 등이 보수 시민활동가가 될 수있도록 물적·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는 보수의 풀뿌리를 강화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최종적으로 당명과 강령을 포함한 당헌당규도 개정해야 한다.

 

5) 강력한 네거티브 위에 포지티브한 비전을 세워야


 김대중이 규정한 민주당 정체성은 이제는 찢어지고 더러워진 걸레가 되었다. 이재명의 ‘셰셰’ 발언으로 그 본질이 폭로되고, 북한의 핵 공갈,  트럼프의 문정부 패싱과 국제정세 변화(미중 갈등과 북중러 밀착 등)로 인해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한반도평화 정책은 완전히 파탄이 났다. 이재명의 당무독재·방탄정당·사당화로 인해 민주주의는 완전히 걸레가 되었다. 소주성(최저임금, 노동시간 규제, 공공부문 폭증 등)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오히려 심화시키는 노동·노조정책, 그리고 사지도 팔지도 갖고 있기도 힘들게 만든 부동산(세금·규제) 정책, 중대재해처벌법 등 수많은 포퓰리즘적 규제 정책, 무리한 탈원전과 탄소중립(NDC)목표 등으로 국내 투자·고용 의지를 질식시키니, 서민경제가 먼저 질식할 수 밖에!! 그런데 한동훈 비대위와 윤정부는 이를 제대로 부각시키지도, 책임을 명확히 하지도 못하였다. 

 

5.16 군사혁명은 식민지 경험과 전쟁(중일전쟁, 태평양전쟁, 6.25 등) 경험을 가진 젊은 군인들의, 1950년대의 지독한 가난과 부패, 정치적 혼돈과 사회적 무기력을 좌시할 수 없다는 분노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한국 정치와 국힘당을 환골탈태시킬 정치 혁명은 총체적 퇴행, 수축, 침체, 격차(불평등 양극화), 합법적 약탈(지대추구)과 보수의 비겁, 안일, 땅개정치, 먹고사니즘, 그리고 정치 전반의 혼미와 경제사회적 무기력에 대한 분노와 위기의식이 동력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위대한 나라가 망가지는 것을 앉아서 두고 앉아서 볼 수없다는 탄식, 절규, 포효가 보수 혁신의 에너지요, 소명이 되어야 한다. 강력한 네거티브; 즉 단절, 청산, 혁파 의지  위에 포지티브한 비전(선진화 등)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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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87년 민주화가 완벽히 비껴간 곳이 정당 체제(양당 독과점)와 정당 지배운영구조다. 당권파 아니 당대표 독재에 대비한 내부 견제 장치가 거의 없다. 경쟁정당에 의한 외부 견제가 실패하면 사당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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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6월03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06월03일 19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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