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언어의 품격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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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외친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에게 유형, 무형의 해를 끼칠 수 있는 표현이라면 이것을 무한정 허용해도 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표현의 자유’의 가치
‘표현의 자유’는 소중하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시절, 이 표현의 자유는 가뭄 속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물 한 모금과도 같았을 것이다.
예전의 유교문화 지배 하에서 여성들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을 미덕으로 여기며 장기적인 좌절 상황에서 그나마 이를 표출할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도 없었기에 ‘한(恨)’을 품게 되었다. 요즘에는 장기적 좌절이 있다 하더라도 이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의 출구가 온라인, 오프라인에 열려 있기에 커뮤니케이션의 억눌림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 ‘한(恨)’까지 쌓이지는 않는다.
일제 점령기나 독재정권 하에서 지배 권력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표현의 자유는 인간답게 살 권리의 기본 조건이었다. ‘정당한 쓴소리’에까지 재갈을 물리려는 권력자의 부당한 압력에는 당연히 ‘표현의 자유’가 정당한 저항의 수단이 되었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가 환영을 받게 된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억눌림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우리의 숨통을 트이게 하여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키는 데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표현의 자유’ 가치의 훼손
그런데 요즘은 표현의 자유의 ‘지나침’ 또는 ‘부적절함’이 문제가 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억눌림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다양한 미디어의 발전으로 표현의 채널이 많아지다 보니, 이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무절제하게’ 표현을 하여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들이 많아졌다. 언어의 종류와 강도, 그 영향력 등을 고려해 ‘적절히’ 표현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거의 제한 없이 허용되다 보니 ‘아무 말이나’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겉으로 표현해 내는 도구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때와 그것을 겉으로 표현했을 때는 다른 효과를 지닌다. 표현의 자유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중에서 ‘밖으로 표현했을 때’에 해당한다.
예컨대, 다른 사람을 신체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해치고 싶은 의도를 속으로만 지니고 있을 때는 비록 그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범죄 행위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의도가 밖으로 발산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혼자만의 생각이나 감정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러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행위가 된다.
‘표현의 자유’가 지니는 가치를 소중히 지키기 위해서는 이를 악용해서는 안된다. 악용하는 순간 ‘표현의 자유’의 가치는 훼손되고 만다.
□ 모욕적 혐오 언어와 지지층 결집을 위한 공격 언어의 문제
표현하여 문제가 될 수 있는 언어는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먼저, 배설하듯 내뱉는 욕설과 무례한 언어의 유형이다. 이 중 일부는 비의도적일 수 있으나, 내뱉는 사람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은 모욕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는다. 두 번째 유형은 의도적으로 지지층의 결집과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려는 막말의 유형이다. 심지어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강한 언어를 사용해야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어에도 권력 관계가 드러나고, 비록 부적절한 막말일지라도 큰 소리로 강하게 말해야 더 리더처럼 보인다고 믿는 것이다.
때로는 어느 한 편의 강한 막말이 지지자들에게 ‘사이다’처럼 속 시원한 느낌을 줄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언어는 자극의 강도가 강하기에 사람들의 ‘주의집중(attention)’을 더 쉽게 끌어당긴다. 바로 이것 때문에 공격적인 언어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도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할 수 있기에 의도적으로 막말이나 공격적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날카로운 칼이 사람의 신체를 다치게 할 수 있듯이 날카로운 언어는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는 점이다. 사람을 직접 마주보고 하는 언어도 그렇지만, 미디어에 쏟아놓는 막말이나 욕설도 결국은 ‘사람’이 보게 된다. 요즘 힘들어 하는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최근으로 올수록 점점 더 난무하는 날카로운 언어들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에서도 그러한 언어에 특별히 조명을 비추는 일은 삼가야 한다. 모욕적인 언어, 험한 언어가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해당 기사에 대한 클릭 수를 늘일 수는 있겠으나, 그런 언어일수록 사람들의 주의집중에서 멀어지도록 해야 그나마 조금씩 언어의 정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내 표현의 자유와 상대의 인격권의 충돌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대개 ‘상대방’이 있다. 혼잣말은 그 영향력이 자기 자신에게만 향하겠지만, 상대가 있는 언어는 당연히 나를 떠나는 순간 상대에게 더 큰 영향력으로 꽂힌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든지,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라는 말은 언어적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리 속담이다. 그런데 요즘은 ‘일단 내뱉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서로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언어를 교환하다 보니, 점점 더 악화되는 ‘퇴보적 나선’이 이어지고 있다.
본인은 날카로운 언어를 쏟아내면서 그런 언어를 듣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면, 이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본인이 어떤 언어를 사용할 때, 이것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사람이듯 상대방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이 다른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피폐하게 하고 나아가 사회 전체를 부정적 분위기로 물들이게 된다면, 결국 그 부정적인 결과는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부정적 언어들이 떠돌아다니는 사회에서는 결국 본인도 그 부정적 언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모두가 언어의 칼에 찔려 상처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사회를 상상해 보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 아니겠는가.
□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까: 품격 있는 언어로 올바른 비판을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리는 것이 좋을까? 정당한 쓴소리는 막을 필요가 없지만 상대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 ‘품격 있는 언어 사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타인에게 모욕이나 상처를 주는 언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리더의 위치에 있는 대표자들의 언어는 사람들에게 더욱 큰 영향을 주므로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언어가 나를 떠나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꽂힐지, 상대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충분히 고려한 ‘슬기로운 언어생활’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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