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36> 예술의 힘 또는 자유와 평화 > News Insight

 지난 6월 26일 막을 내린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페스티벌은 1970년부터 영국의 서머싯(Somerset)주 필튼(Pilton)근처에서 열리기 시작한 세계적인 예술 축제 중 하나이다. 5일간에 걸쳐 개최된 이 페스티벌은 현대음악 외에 댄스, 코미디, 연극, 서커스 및 기타 예술 분야가 참여하며, 80개가 넘는 무대에서 약 3,000회의 공연을 선보였다. 축제는 1,500에이커 규모의 농장에서 열리며 보통 약 20만 명 내외의 관객을 자랑한다. 주로 팝 및 록 음악가들이 중요출연진으로 등장하고, 수천 명의 다른 예술가들이 작은 무대와 공연장에서 연주한다. 이 페스티벌은 영상과 앨범으로 기록되고 광범위한 언론에 보도된다. 이 행사는 활기찬 분위기와 상징적인 피라미드 무대로 유명한 데, 다양한 예술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창의성, 지역 사회의 이슈, 환경 의식에 관한 정신을 구현한다. 영국 문화의 주요 행사로 자리잡은 이 축제는 원래 히피족의 정신, 1960년대의 반문화, 자유 축제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현재도 문화적 해방구로 기능한다. 이 축제는 1970년부터 1981년까지 간헐적으로 열렸고, 대부분 5년 간격의 휴지기를 제외하고 매해에 열리고 있는데, 휴지기는 토지, 지역 주민이나 주최자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것이다. 2020년과 21년은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두 해 연속 행사를 치루지 못하였다. 

  매년 사회적 이슈를 화두로 삼아 열리는 축제의 이번 화두는 전세계적 예술행사의 주요 관심사인 ‘이주’였다. 이번 행사에는 화두와 관련한 독특한 두 개의 예술적 이벤트가 있었는데, 모두 세계적인 시각 예술가들에 의해 기획, 발표된 것으로 예술의 사회적 의미와 힘이 무엇이여야 하나를 음미해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나는 세르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퍼포먼스 예술가이며 개념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7분간의 묵념>이며, 또 다른 하나는 얼굴 없는 거리의 예술가인 방크시(Banksy)에 의해 진행된 ‘이민자용 풍선 뗏목’을 관중 속으로 띄운 이벤트가 그것이었다.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다양한 아티스트, 밴드, DJ의 공연 외에도 평화를 기원하는 정치적 메시지들로 구성되었다. 올해는 팔레스타인 깃발로 가득했고 현재 진행 중인 대량 학살에 대한 언급도 많았다. 쾌락주의로 가득한 군중들의 함성은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팬들은 SZA, 콜드플레이, 폴 매카트니, 에이브릴 라빈 등의 예술가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축제 3일 차인 26일. 이러한 군중들 속에서 하나의 인상적인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아브라모비치가 <7분간의 묵념>으로 모든 소란함을 잠재웠다. 이것은 “인간 역사의 어두운 순간”을 기념하는 제스처였고 그녀는 이것이 갈등의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게 하려는 의도의 “공적 개입”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의도가 생각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무척 긴장했다.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는 산, 버섯, 존재하는 모든 것을 넘어 그들의 영혼 속의 그 순간을 만지고 7분 동안 모든 것을 멈추는 방법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주 무대인 피라미드 무대에 올라 25만 명의 관객 앞에 선 그녀는 글래스턴베리의 주제에 맞는 ‘평화’를 색다른 방식으로 외쳤다. 아브라모비치는 친구인 전 버버리 예술 감독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가 디자인한 실크 소재의 흰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다. 기모노에서 영감을 얻은 그녀의 드레스는 평화를 상징하는 ‘핵 군축 캠페인(NCD: 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의 심볼 마크를 형상화했다. 드레스를 입고 두 팔을 벌리면 이 심볼의 형태가 완성된다. 그녀는 관객에게 눈을 감고 옆 사람 어깨에 손을 올린 뒤 420초 동안 조용히 묵념할 것을 권했다. 단 하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이 퍼포먼스는 음악가 PJ 하비의 공연 전에 진행되었는데, PJ 하비가 자신의 연주곡 한 곡을 포기하면서 그녀가 무대에 설 수 있는 10분의 시간이 제공된 것이다. 그녀의 침묵은 가장 강력한 도구였다. 그녀가 꿈꾼 대로 놀라운 순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얼굴 없는 거리의 예술가’, ‘테러리스트 예술가’로 알려진 방크시가 관여한 또 하나의 이벤트는 영국 밴드 ‘아이들스’(IDLES)의 공연 도중 갑자기 아무도 예기치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해당 밴드의  ‘대니 네델코’(Danny Nedelko)’라는 곡의 연주가 시작되자, 이민자들의 옷차림을 한 인형을 태운 구명보트가 관중들 머리 위로 등장했다. 해당 보트는 관중들 위를 옮겨 다녔다. 이 노래는 “두려움은 공황으로 이어지고, 공황은 고통으로 이어지고 고통은 분노로 이어지고, 분노는 증오로 이어진다”와 같은 이주와 관련된 가사를 담고 있다. 

  영국의 내무부 장관은 풍선 뗏목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 대해 보수당의 정책에 반하는 것으로 ‘사악하다’고 실랄하게 비판하였지만, 방크시는 보수당 정부의 이민 정책의 비인도적 성격을 고발한 것이다. 그는 이전에도 이민에 대한 예술 작품, 즉 난민 구출 수송선에 그의 작품 중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인 <풍선을 든 소녀(Girl With Balloon)>를 그리기도 했다. (같은 이미지의 작품은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15억 원에 팔렸는데, 낙찰되자마자 작품은 이미 액자 속에 설치된 장치에 의해 파쇄되어 참관자들을 경악케 했다.) 이 풍선은 하트 모양의 구명보트와 비슷했다. 영국의 경우,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8년 이래 영국 해협을 건너온 불법 이민자 수가 급격히 증가해 2024년 상반기에 12,646명에 달하고 있는데,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 증가한 수치라 한다. 지난 5월 불법이주자들의 입국 과정에서, 7세 소녀를 포함한 5명을 익사하게 한 혐의로 범죄 조직의 남성들이 기소되었다. 

영국의 리시 수낵(Rishi Sunak) 총리(그는 보수당이 하원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7월 5일 사임함)는 기자들에게, 해협을 건너는 여행은 “범죄 조직이 취약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이주민들을 항해가 불가능한 소형 딩기(Dinghy) 요트에 태워 밀입국시키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은 난민 신청자 수용에 40억 파운드, 우리 돈 6조 원이 넘는 세금을 쓴다는 통계도 있다. 난민 문제 해결이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자, 영국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이른바 ‘르완다 정책’인데, 심각한 인권 문제가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영국에 불법으로 도착한 망명 신청자들을 르완다로 추방하고 있다. 실제로 수낵 총리는 인도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강경 노선을 추진하고 있다. 방크시의 이번 이벤트는 영국 해협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되었고 이민 문제에 대한 커다란 사회적 논쟁을 일으켰다.

  예술은 사회의 산물이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요소이다. 시대정신의 발로이며 집단지성과 시대적 담론의 생산처이기도 하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 그리고 그 힘은 무엇일까? 정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호이거나 직설적인 발언인가? 직접적인 투쟁인가? 위에서 살핀 두 명의 예술가의 사례에서 보듯, 서로 다른 어법으로 작품을 구현하지만, 정치나 사회적 이슈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들을 관통하는 요소들을 예술적 어법 안에서 상징적으로 제시함으로 더 큰 호소력과 파급력을 가진다. 훌륭한 예술은 인간의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많은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하며 그들을 새롭게 각성시켜 세상을 변화시키는 정신이며 힘이다.

<ifs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