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33> 미술진흥법에 대한 단상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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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2023년 7월 ‘미술진흥법’을 제정 공표했다. 이 법은 올 7월 시행될 예정인데 최근 이를 위한 법 시행령을 제정하고 공청회를 치른 바 있다. 음악이나 문학, 공연 등 타 분야의 진흥법을 고려할 때, 늦었지만 법의 제정은 시장 확대 등 미술 환경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이전의 법적 근거는 문화예술진흥법에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었지만, 별도의 법령을 제정한 목적은 미술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미술의 창작과 유통 및 향유를 촉진하고 이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국가를 실현하는 것이다. 최근 국내의 미술 환경은 생태계가 확장되고 국제적 수준의 여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활성화되고 중요한 해외 갤러리의 한국 지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공미술이나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소유한 작품 등 공공적 성격의 작품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필요성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신설된 미술진흥법의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는 미술진흥의 중·장기 기본방향을 포함한 미술진흥을 위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ㆍ시행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매년 계획수립 시행에 필요한 창작 및 유통 환경 등에 관한 실태조사를 시행토록 하고 있다. 국가나 지방 자체 단체는 미술진흥을 위한 지원을 규정하고 있으며, 지방 미술 진흥과 미술 국제교류 등을 지원토록 하고 있다. 아울러 시장의 활성화, 거래의 공정성과 투명화를 규정하고 있다.
미술 서비스업의 활성화와 미술품의 공정한 거래 및 유통 질서 조성하기 위한 법적 조치를 규정하고 있는데, 화상은 자신이 유통한 미술품에 대한 내용을 관리토록 하며 경매 시 낙찰된 경매물의 낙찰가격과 경매 대금의 완납 여부를 공시토록 한다. 아울러 미술 관련 정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이해관계자에게 미술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통합 미술 정보시스템을 구축ㆍ운영할 수 있게 하였다.
또 미술품 거래에 있어 중요한 작가의 권리를 중시하기 위해 작품의 저작권 관리 강화하는 문제와 시장에서의 작품 재판매 시 미술품 재판매에 대한 작가보상금 제도인 추급권을 신설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미술진흥을 위한 연구ㆍ조사ㆍ기술개발 및 그에 대한 지원, 전문인력 양성, 국제교류 및 미술품과 작가의 해외 진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거래에 따른 표준계약서를 작성토록 하였다. 또한 각종 진흥 사업을 전담할 전담 기관을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공공미술품 관리 전문기관을 지정하고 공공미술품 관리 전문기관 내에 공공미술은행을 설치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그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과거 단순한 미술 단체나 작가에 대한 기금의 지원 등 재정적 지원 일변도의 진흥 정책에 비해, 미술 생태계 전반의 변화 환경에 부응하기 위한 다각적인 진흥 정책을 수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장과 유통의 문제에 방점이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미술 시장이 글로벌 환경에 부응하는 데 필요한 부분들이 반영되었고 미술품 유통의 활성화를 위한 작가의 저작권 강화, 투명성과 공정성, 현황조사와 데이터베이스화 등은 필요한 조치이다. 특히 해외 미술시장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작품의 재판매에 따른 ‘재판매 보상청구권(추급권,Resale right)’은 향후 작가들의 권리를 강화하고 유통의 투명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조치일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이 관리해 온 미술은행의 문제를 전담 기구를 지정하여 전문적으로 관리하며 공공조형물과 같은 공공의 미술 자산을 전문적으로 관리토록 하는 것도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시의적절한 처사로 보인다.
세부적인 사항은 시행령으로 보충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오는 7월 시행을 앞둔 미술진흥법은 여전히 기본적인 몇 가지 요건들의 미흡함을 지적할 수 있다.
미술진흥을 위한 시장 활성화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중요하지만, 창작-매개-향유 3개 영역의 균형 강화와 선순환구조의 확충이라는 기본 원칙과 함께 각 영역 주체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중시해야 한다. 미술진흥법에 따르면 창작을 위한 지원 부분은 모두가 ‘지원해야 한다’라는 의무 조항이 아니라 ‘지원할 수 있다’라고 권고사항으로 규정되어 있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한 매우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진전된 미술진흥법의 미흡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매개 영역에는 시장, 비평, 전문지, 전시기획 등 주요 기능들이 존재하는데, 시장 부분은 미술진흥법에 상대적으로 많은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만 비평 기능 강화, 전문지 활성화, 전시기획자들의 획기적 역량 강화 등의 관련 사항은 원칙적인 수준에서 단순하게 언급되어 있다. 실제로 시장을 활성화하고 미술시장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비평 기능이나 큐레이팅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강화 의지가 법안에 담겨있지 않고 있어 내용이 부실한 시장 시스템에 관한 내용만 언급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비평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비평 활동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강화와 큐레이터 역량 강화를 위한 진흥책을 모색해야 한다. 시장 영역에서도 화랑이나 경매시스템의 선진화나 화랑과 경매를 병행한다거나 시장의 독과점으로 인한 시장 왜곡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법안에 언급되고 있지 않다. 또한 향유영역은 작품의 구입이나 감상 기회 확대를 의미하지만, 컬렉터들을 수준을 높이거나 컬렉터들을 늘리는 전략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컬렉터들의 작품 수집의 문턱을 낮추거나, 국공립미술관에서의 소장품 구매 강화 및 구입과 기증에 따른 세제 혜택 등 향유영역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고려도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진흥 업무를 전담할 전문기관들을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정부가 이를 감독하도록 하며, 이 기관 임직원의 신분과 관련하여서는 벌칙적용에서의 공무원 의제 공무원 규정에 따라 운영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구체적인 향후 계획을 알 수 없지만, 기존의 기관에 업무를 부가하여 전문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을 염두에 둔 듯한 느낌인데, 되도록 기존의 기관과는 독립된 별개의 전문기관을 만드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 같고, 특히 미술품 감정이나 화랑과 경매회사의 거래 등의 자료를 관리하는 기관의 경우, 기존의 화랑협회 등과 같이 해당 업무의 이해관계가 있는 기관의 경우는 반드시 별도의 기관을 신설하여 전문성을 강화하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해 온 미술진흥법이 입법취지를 살리려면 미흡한 부분들을 시행령과 후속 규칙을 정치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 추급권 등 때에 따라서는 현실적인 여건 성숙 때까지 특정 사항의 시행 시기를 유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새로 시행될 미술진흥법이 명실상부한 미술진흥의 촉매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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