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6> 각하, 떡볶이는 혼자 드시옵소서 (上)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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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이끄는 지도자와 그 집단에 대해 야박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들이 힘들어 울어야 국민이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건… 정책이나 전문가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국민보다 힘들지 않고 편하게 살기 때문이다.> (졸저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중) |
“이형, 얼마 전에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에서 재벌 총수들과 함께 떡볶이 먹은 뉴스 있잖아?”
“그런 일 있었죠. 왜요?”
“대기업 회장님과 약속이 있었는데 갑자기 취소된 적이 있었거든. 그때 비서실에서 취소 이유는 안 알려줘 몰랐는데…거참.”
올(2024년) 1월 어느 날, 식사 모임 뒤 한 지인과 지하철역까지 가는데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얼마 전에 모 그룹에서 강의를 부탁받았거든. 회장님이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준비했는데 갑자기 비서실에서 ‘구체적인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회장님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취소해야겠다’라고 하는 거야. 정말 죄송하다면서.”
“중요한 일이 생겼나 보네요.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재벌 총수쯤 되면 중요한 일이 많을 테니…. 그래서 괜찮다고 하고 끊었어. 근데 그게….”
“설마, 지금 제가 생각하는 그 이유 때문은 아니겠죠?”
“그거 맞아. 나도 기사 보고 알았는데, 강의하기로 한 날과 같은 날이더라고.”
“헐….”
지루하게 말하지 말자. 회장님이 갑자기 대통령의 떡볶이 시식 행사에 동원돼 공부 약속을 취소해야 했던 거다. 왜 비서실이 “구체적인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이라고 했는지 알만하지 않을까? 몇 달 지난 터라 어떤 일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독자들을 위해 당시 뉴스를 첨부한다. 조선일보 지난해 12월 7일자 기사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2월 6일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부산 중구 국제시장의 분식집을 찾았다. 온라인에서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떡볶이와 국물 어묵을 먹는 회장님들의 각기 다른 모습이 화제가 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한국경제인협회장인 류진 풍산그룹 회장 등과 함께 취임 후 처음으로 부산 국제시장을 찾았다. 윤 대통령은 이들과 함께 떡볶이, 튀김, 빈대떡 등 시장 음식을 맛봤다. 윤 대통령은 자른 빈대떡을 기업 총수들에게 직접 나눠주고, 상인에게 “엄청 맛있다”라며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런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후 각종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재벌 총수들의 떡볶이 먹방’이 화제가 됐다.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재벌 총수들의 소탈한 모습과 함께 각자의 저마다 다른 개성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은 ‘적극성’으로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이 시민들과 만나는 동안 분식집에 먼저 도착한 이 회장은 상인에게 “뭐가 맛있어요?”라고 말을 걸었다. “떡볶이”라는 답변을 들은 이 회장은 밝은 표정으로 손가락을 하나를 폈다. 다 함께 시장 음식을 맛보던 중 이 회장은 갑자기 앞으로 나서기도 했다. 어묵 국물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이 회장은 “사장님, 저는 오뎅 국물 좀…”이라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뜨거운 국물 맛을 본 이 회장이 만족한 듯 “와…”라고 탄성을 내뱉는 모습도 포착됐다.
정기선 HD 현대 부회장도 떡볶이에 큰 관심을 보였다. 분식집에 도착하자마자 “식기 전에 먹어도 되느냐”고 물어보더니, 떡볶이가 나오자 접시를 향해 달려들듯 공격적으로 머리를 들이밀곤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고, 만족한 듯 잇달아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겼다. 이 모습을 본 네티즌들은 “회장님들이 진짜 ‘먹방’ 유튜버처럼 맛있게 먹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동관 한화 부회장의 떡볶이 ‘먹방’은 여러 장면이 올라오며 이재용 회장 못지않은 관심을 끌었다. 처음엔 떡볶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편집된 영상이 온라인에 퍼져나가며 화제가 됐는데, 이내 반박 영상이 올라왔다. “???(김동관): 떡볶이 많이 먹었는데요?”라는 제목이었다. 이 영상에선 떡볶이 접시에서 커다란 어묵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이빨로 끊지도 않고 통째 입에 털어 넣곤 우물우물 먹는 장면이 담겼다. 또 다른 영상에선 김 부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뭐가 제일 맛있었느냐”고 묻는 장면도 있었다. 그에 대한 대통령 답변은 “빈대떡도 맛있고…”였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부산에서 가덕도 신공항 개항과 한국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북항 재개발 사업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재용 회장은 기업 대표 자격으로 발언했다. “부산을 글로벌 허브 도시로 키우려는 대통령의 담대한 비전과 부산시민의 염원이 함께한다면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며 “부산의 도전에 삼성도 함께 하겠다”고 했다.>
기사만 보면 마치 대통령이 재벌 총수와 떡볶이를 먹기 위해 부산 나들이를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윤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은 시장 방문 전에 부산항 국제 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부산시민의 꿈과 도전’ 격려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과 북항 재개발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간담회는 일주일 전 있은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로 인한 부산 민심 달래기 차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간담회 부분은 거의 보도가 안 되고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 데리고 떡볶이 ‘먹방’ 부분만 관심을 받았다.
억울하다고? 나는 억울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행사를 기획한 사람들은 오히려 속으로 이런 비판을 즐겼을 거라 확신한다. 형식은 간담회 때문에 갔다가 시장에 들른 모습을 취했지만, 실제 기획 의도는 서민들을 격려, 위로하기 위해 재벌 총수들을 대동하고 시장을 방문한 대통령의 친서민적 모습을 부각하는 데 있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삼류는 삼류의 눈높이로 세상을 본다. 옆에 아무리 일류들이 있어도 결국 삼류의 필터링을 거치기 때문에 결과물은 늘 수준 이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삼류가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있으면 집단이 망한다. (계속)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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