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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71> 윤동주 시에 있어서의 양심과 신념의 문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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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6월01일 16시43분
  • 최종수정 2024년05월13일 11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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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그가 지향하고자 하는 절대적 양심과 실제적 자아가 처해 있는 현격한 편차를 지속적으로 노래해 보여 준 시인이다. 그는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 도달점으로 ‘절대적 양심’을 설정하였으며, 그곳에 도달할 수 없는 현실 속의 자기를 자책하면서 쉬임없이 번민하였던 것이다. 절대적 양심과 실제적 자아 사이에 존재하는 이 현격한 괴리는 그러나 그가 절대적 양심을 상대적 양심으로 재조정하거나 그런 절대치에 도달하려는 신념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적당히 타협하려 했으면 쉽게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윤동주는 강한 정신으로 번민 속으로 접근해 갔으며,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선명한 인식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동주의 시에 나타나는 ‘절대적 양심’과 ‘신념’의 문제를 해명하는 일은 그의 시의 실체를 이해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윤동주는 강한 신념으로 양심을 지켜 살려는 의욕을 시로 실천하려고 노력한 시인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강한 신념은 확고한 가치를 토대로 하는 것이고 양심은 그것을 수호하기 위한 자아의 판단 기준인 셈이다. 그런데, 정제된 사회, 가치가 확고하게 정립된 사회에서 양심과 신념을 지켜 사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치가 혼란된 사회의 내부에서 양심과 신념을 지켜 살려는 자아는 엄청난 좌절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시인이 감내해야 할 가치혼란의 주체가 부정한 지배 권력이고 그 속에서 자기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면, 시인은 형극의 길을 걸어 갈 각오가 필요하게 된다. 윤동주<사진>는 그런 경우였던 것이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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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1917년에 출생하였으며 1945년 2월 적지 후쿠오카 감옥에서 27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하였다. 그런데, 삶의 길을 택한 윤동주의 시가 죽음의 길을 택한 황매천의 ‘절명시’가 보여 주는 비장감 못지않은 긴장을 띤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불가능한 응전의 길’을 택한 시인의 신념이 강한 것이면 강한 것일수록 시는 비장한 것이 되게 마련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

 

하늘 앞에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간구하는 이 시의 화자는 스스로 형극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늘’이라는 절대 가치 앞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골라 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더구나, ‘죽는 날’까지 평생을 절대적 양심의 구현자로 살아가기를 천명하고 있는 그의 선택은 모진 시련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모진 시련의 길에서 신념을 구현하고자 하는 이 시의 화자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고 술회하는 감성적이며 서정적인 인물이다. 이 서정적 화자가 스스로 형극의 길을 선택한 것은 절대적 양심에 도달하려는 신념 때문이다.

 

‘하늘’은 어떤 파멸에도 침윤되지 않은 온전한 모랄리티를 상징한다. 즉 이 시인이 바라마지 않는 부끄럽지 않은 삶의 전범이 되어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간절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고’ 있다. 바람에 스치우는 별은 수난자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즉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 부끄럼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양심의 수난자’의 모습인 것이다.

 

부정한 가치가 권력의 힘이 되어 지배하고 있는 시대상황은 원천적으로 청명한 신념을 구현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양심과 신념의 길을 가기로 한 자아에게 있어서 비극은 회피할 수 없는 숙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은 현실의 직접적인 반영이 아니라 그 나름의 가치와 미학을 지니는 실체이다. 따라서 문학이 저항의식을 수용, 표출하게 될 때는 그 나름의 독특한 표현양식을 필요로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윤동주에게 있어서 정서의 근원은 ‘고향’인데 그곳은 항상 떨어진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도달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그래서 그리움의 정서를 지닌다. 이 그리움의 등가물로 제시되는 것이 天上物(천상물 : 하늘․별․달․바람)들이다. 윤동주는 이 천상물들과의 부단한 조응을 통하여 자기를 발견하려 한다. 이 자기 의식의 결과 얻어지는 최초의 자기 표명이 <서시>에서 천명된대로 ‘하늘을 우러러 /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인격의 완성인 것이다.

 

그러나 부끄럼이 없기를 지향하는 개인적 의욕은 1930년대 말로부터 1940년대 초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완강한 규제와 만난다. 윤동주는 이 완강한 규제 속에서 현실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을 노래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서 있는 단애(斷崖)를 인식하고 그리움의 대상으로서의 천상을 상정한다. 그러므로 윤동주에게 있어서의 현실은 언제나 참담한 것이고 피안은 까마득히 먼 곳에 존재한다. 지향과 규제의 상호배반적 속성 위에서 ‘양심의 수난자’로서의 실존적 자아에 대한 성찰이 비롯된다. 윤동주가 구현하고자 하는 양심의 세계는 부정한 현실에 의해서 훼절되지 않은 순정한 자아의 모습으로 그의 시 속에 나타난다.

 

윤동주는 광명학원 5학년 과정을 마치고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해서 영문학을 공부하게 된다. 연희전문에 입학하게 되면서 이제까지의 순진무구한 그의 동시 세계는 어쩔 수 없는 변혁의 자발적 욕구와 만나게 된다. 자신이 서 있는 위상을 새롭게 파악하게 되면서 차츰 구체적 상황에 대응하게 된 것이다.

 

영시를 배우고 조선어를 배웠으며 민족의식의 깨우침을 받게 되면서 시 자체도 이제까지의 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로부터 벗어난다.

 

윤동주가 <슬픈 족속>이나 <팔복>에서 노래하는 ‘슬픔’은 앞서의 동시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슬픔과는 다른 일면을 지닌다. <슬픈 족속>이나 <팔복>에서의 슬픔은 민족적 연계성 위에서 파악된 것이다. 그가 막연한 슬픔의 세계에서 구체적 슬픔의 대상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은 굴욕적인 이민족의 지배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말과 같다. 윤동주가 막연한 그리움의 세계로부터 슬픔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말과 같다. 윤동주가 막연한 그리움의 세계로부터 슬픔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위상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를 표명하려는 구체적 의지가 비롯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라 할 것이다. 윤동주가 자신을 표명하려는 구체적 의지를 가지고 바라본 자아의 모습은 절대적 자아의 까마득한 높이에 도달할 수 없는 참담한 모습이다. 윤동주가 발견한 그런 자아의 객관적 상관물이 ‘백골’이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 <또 다른 고향>

 

도달해야 할 ‘절대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가 공존하는 ‘방’에 누워 이 시의 화자는 참담한 ‘백골’의 인식에 도달해 있다. 그러므로, 이 방은 그가 도달해야할 이상과 현실, 그리고 인식적 자아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어 있다. 그리고 제각기 다른 층위로 분리된 자아가 지상의 한계를 벗어나 ‘하늘’과의 연계를 획득할 수도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가 추구하는 자아 탐구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짓는’ 실제적 자아와 ‘백골’로서의 인식적 자아, 그리고 ‘아름다운 혼’으로서의 이상적 자아로 분리된 자기를 찾아내는 데서 그친다. ‘쫒기우는 사람’처럼 또 다른 고향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이다.

 

윤동주는 보다 포괄적이고 온전한 자기 자신을 표명하기 위한 몇 개의 상징들을 동원하고 있다. 그가 자기 표명을 위해 동원하고 있는 대표적인 상징들은 ‘우물’․‘거울’․‘하늘’․‘간’․‘십자가’와 같은 것들이다. 윤동주는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절대적 양심과 강한 신념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시적 상징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상징의 매개물은 반성과 성찰의 관념을 전달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 경우의 상징물은 맑고 투명한 평면을 지닌 것으로서 투사체의 실상을 반사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윤동주의 시에 나타나는 ‘우물’과 ‘거울’의 상징이 그 대표적인 매개물이 되어 있다. 슬픔의 포우즈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라면 희망의 포우즈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는 것이다. 그리고 슬픔의 희망은 항상 한 쪽 손을 마주잡고 있는 다정한 친구의 다른 이름과 같다. 윤동주가 슬픔의 내면으로부터 고개를 치켜들었을 때 눈에 띤 대상들은 모두가 지상을 떠난 것들이었던 것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 <自畵像(자화상)>에서

 

이 시의 화자는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가만히 그 속을 들여다 본다. 그 속에는 밝은 달과 흐르는 구름, 그리고 파아란 바람과 가을의 정황들이 투영되어 있다. 윤동주는 ‘우물’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의식을 조명해 보여준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된 나르시스와는 달리 윤동주는 연민과 갈등의 모습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우물 속에 비치는 천상물들은 완벽한 균형의 상태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다. 즉 ‘우물’이라는 상징은 완벽한 조화와 균형 앞에 선 왜소한 개인을 들어내 보여준다. 즉 균형과 조화의 의미망에 자신을 투영시켜 보지만 부끄럼없는 삶을 지향하는 자신과 그 지향을 규제하는 외부적 상황 때문에 심한 갈등에 싸여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미워지고 가엾어지고 그리워지는 심리적 갈등을 겪는 양심의 수난자로서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 ‘우물’은 적나라한 자신의 모습을 구체화함으로써 존재로서의 위상을 인식하게 해준다. 그리고 개인적 지향과 그 지향을 규제하는 상황과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응전의 형태가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 응전은 내면화의 과정을 나타난다. 그러나 이 내면화는 자신을 규제하는 완강한 외피를 언제나 전제로 한 것이다. 윤동주의 시가 긴장을 유지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내면화의 깊이와 넓이는‘우물’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획득하게 되어 있다.

 

개인은 사회라는 하나의 테두리 속에 참여해 있는 개체이기 때문에 어떤 형식으로든 사회라는 테두리의 규제 속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회라는 큰 테두리와 개인의 의지가 상충될 경우 개인의 의지가 굴절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윤동주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해버린 멸망한 왕조의 후예로서의 자기를 인식하게 되고 그런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구체적 상징물로 ‘거울’을 상정한다. ‘거울’은 앞에서의 ‘우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물체를 반사할 수 있는 맑고 깨끗한 평면을 지닌다. 즉 자신의 실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반성과 성찰의 매개물인 셈이다. 그러나 윤동주가 상정하고 있는 ‘거울’은 맑고 깨끗해서 물체의 모습을 명확하게 반사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그의 거울은 녹이 슬어 있으며, 어느 멸망한 왕조의 유물로 남겨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윤동주에게 남겨진 유일한 자기 성찰의 도구가 되어 있는 것이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내용을 한 줄에 줄이자.

-滿二十四年一個月(만 이십사년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告白(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隕石(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懺悔錄(참회록)>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생이다. 이 시기 씌어진 것이 1942년 1월 24일로 되어있으니까 이 시에 기술된 ‘滿二十四年一個月’은 그의 실제 전 생애를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이 시에서 그의 전 생애를 참회하면서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첫 행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은 역사의 유물로 남겨진 물건으로 되어 있다. 즉 지금은 녹이 끼어 제 몫을 할 수 없는 이 거울도 한때는 맑고 투명한 평면에 구체적 실상을 반사해주면서 제 몫을 다 했던 그런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거울은 ‘파란 녹’이 낀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 하는 윤동주의 오늘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이 ‘거울’을 포기하지 않고 발바닥으로 손바닥으로 닦으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거울은 지나간 왕조의 유물이며, 지나간 왕조는 멸망한 왕조이다. 멸망한 왕조의 후예로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상징이 ‘거울’인 셈이다.

 

윤동주는 파란 녹이 낀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 것이며, ‘욕’된 물건인 거울 속에서 자신의 존재까지를 욕된 것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뭉뚱그려 참회의 내용을 대신하고자 한다. 즉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현재까지를 참회의 내용으로 한 줄에 줄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3연에 와서는 먼 후일의 일을 적고 있다. 즉 3연이야말로 오늘의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내용의 구체적 표명인 셈이다. 그 구체적 내용이란 ‘滿二十四年一個月(만이십사년일개월)을 /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라고 적었던 오늘의 참회의 내용이 ‘그때 그 젊은 나이에 /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고 적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날을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로 못박고 있다. 아주 먼 후일의 일이 아니라 ‘내일이나 모레’이며 그런 ‘즐거운 날의 참회록을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든지 ‘쓰게 될 것이다’가 아니라 ‘써야 한다’는 단호한 의지가 나타난다.

 

자신의 삶을 치욕으로 느껴 참회하는 오늘의 부끄러운 삶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또 다른 하나의 참회 내용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라고 적을 수 있는 날, 그 즐거운 날이 오기를 염원해마지 않는 것이다.

 

밤마다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으면서 ‘파란 녹이 낀 거울’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발견하려는 그의 집념은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 ‘녹이 낀 거울’을 통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윤동주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욕된 과거로부터 벗어나려 하면서도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 욕된 과거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윤동주가 자신을 ‘슬픈 사람’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지막 연의 ‘그러면’은 제4연 모두의 의미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즉 밤이면 밤마다 이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보면 ‘어느 隕石(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는 것이다. ‘隕石(운석)’은 외계에서 떨어져나온 돌이 공기와의 격렬한 마찰로 몸을 태우고 나머지 부분이 지상에 떨어진 것이다. 몸을 태우는 격렬한 낙하의 과정을 지나 땅 위에 떨어져 지금은 침묵하고 있는 돌이다. 윤동주는 이런 ‘隕石’과 ‘슬픈 사람’을 대비시킴으로써 시적 환기력을 얻어내고 있다. 역사적 시간 속에서의 욕된 과거와 그것의 연장선상의 자신을 발견하고 욕되지 않은 자신을 찾고자 하는 안스러움이 나타나 있다.

 

‘하늘’의 전능한 모랄리티를 궁극적 지향점으로 상정하면 할수록 자아의 모습은 왜소한 것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는 수도자의 고행처럼 아픔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려 한다. 그의 시 <肝(간)>으로 대표되는 이 극복의 양식은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와 용궁설화에 나타나는 ‘肝(간)’의 의미를 통하여 개진된다.

 

바닷가 햇비치 바른 바위우에

습한 肝(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쓰 山中(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들러리를 빙빙 돌며 肝(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龍宮(용궁)의 誘惑(유혹)에 안 떨어진다.


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沈澱(침전)하는

푸로메디어쓰


─ <肝(간)> 

 

이 시에서의 ‘肝(간)’은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푸로메디어쓰의 ‘肝(간)’은 아픔을 통해서만 그의 실존이 확인되는 비극적 숙명을 상징한다. 그의 ‘간’은 독수리에게 쪼아 먹힘으로 소진돼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다시 생겨난다. 즉 이 경우의 ‘간’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아픔의 환치물인 셈이다. 그런데 푸로메디어쓰는 신의 불을 인간에게 건네줌으로써 아픈 시련을 겪어야 하는 숙명을 지니게 되었고 그 숙명을 통해서만 자신의 실존이 확인된다.

 

그런데 푸로메디어쓰의 ‘肝(간)’을 쪼아 먹는 독수리는 ‘내가 오래 기르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조아 먹히기 위한 간과 쪼아 먹는 독수리를 모두 공유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아픔은 무한정 계속될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이 아픔의 ‘간’을 소중하게 지키면서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푸로메디어쓰는 아픔의 간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한다. 즉 푸로메디어쓰의 아픔은 절망적 비젼으로서가 아니라 아픔의 확인을 통해 ‘내가 여기 있음’을 천명한다.

 

자신을 지켜 사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아픔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견해내고 있는 이 시는 양심의 수난자로서의 윤동주의 정신의 궤적의 일단을 보여준다. 천상의 세계를 지향하는 준엄한 삶의 의미를 구체화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아픔을 통한 수난자로의 자신을 노래한 시가 <肝>이다. 그러나 수난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윤리적 인격을 완성하려 하지만 완강한 규제에 부딪친다. 때문에 그의 개인적 지향이 강하면 강할수록 현실의 오욕은 크고 깊게 된다. 윤동주에게 있어 자아의 성찰은 비극적 자아의 인식이라는 아픔을 절감케 했을 뿐이며, 식민지적 상황 속에서의 그의 존재는 모멸과 오욕의 실체였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十字架(십자가)’의 상징이 등장한다. 십자가는 자기 희생을 통한 속죄양 의식을 내포한 상징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천상에 닿으려는 상승적 의지의 표현으로 높은 첨탑 위에 서 있다.

 

쫒아오던 햇볕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읍니다.

尖塔(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鍾(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든 사나이,

幸福(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十字架(십자가)가 許諾(허락)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十字架(십자가)>

 

십자가는 순교의 표시이다. 이 시는 ‘十字架(십자가)’라는 상징이 내포하는 속죄양 의식을 활용함으로써 시의 깊이를 더한다. 순교란 종교적 신념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다면 윤동주는 이 시에서 무엇을 위하여 순교하려 하는가, 왜, 자신에게 ‘십자가’가 허락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이 시에서는 십자가의 의미를 자신의 현재 속에 담음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위상을 극명하게 표명한다. 신의 영광을 증명하기 위하여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힌다. 따라서 예수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일지언정 자신의 실존을 무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해서 오히려 진리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며 그의 생은 영원한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부활의 위업을 구현한다. 윤동주의 ‘十字架(십자가)’는 이상의 의미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 시의 중심 상징인 ‘십자가’는 교회당 꼭대기에 있고 그 십자가를 햇빛이 비추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지향점이기도 한 십자가는 너무나 멀리 있다. 그래서 시인은 ‘尖塔(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한다. 다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란 귀절에서 윤동주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명백히 알 수 있다.

 

윤동주는 자신이 처해 있는 식민지적 상황 속에서 좀더 적극적이며 구체적인 자기 실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은 몇 편의 시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자신에 대해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꼈던 것이다.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에서 ‘이나’의 뉘앙스나 ‘서성거리다가’의 뉘앙스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그리고 ‘괴로왔든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이라는 귀절에선 ‘괴로왔든’과 ‘행복한’이라는 용어가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음이 발견된다. ‘사나이’와 ‘예수 그리스도’가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면 동일인이 반대의 의미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상당한 모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윤동주는 이 모순을 통하여 자신의 정신적 위상을 명확히 밝혀낸다. 현실의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그는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현실적 괴로움은 참된 가치에 도달하기 위해 겪어야 할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읍니다’는 진술도 아픈 자기 인식의 발로이며 십자가라는 지고의 가치가 존재함으로써 도달되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는 절대적 양심을 지켜가려는 강한 신념을 노래하고 있다. 윤동주는 절대적 양심을 향해 현실적 자아를 근접시켜 가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현실적 자아로부터 上昇하여 절대적 양심의 세계에 도달하려 한다. 상승의 궁극적 도달점은 天上이며, 이 상승의 바탕은 그리움이다.

 

그러나, 절대적 양심에 자신을 근접시켜가는 일은 어려운 것이고 시인이 처한 현실적 상황이 원천적으로 부정한 지배권력에 침윤되어 있다. 그러므로 윤동주는 가치와 양심의 부재 속에서 가치와 양심을 추구하면서 자신을 그 세계에 접근시켜가야 하는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완강한 현실과의 힘든 응전의 길에 나선 시적 자아는 서정적 개인이다. 윤동주의 시가 내면화된 채 절대적 양심을 향한 그리움을 지니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이다.

2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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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6월01일 16시43분
  • 최종수정 2024년05월13일 11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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