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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범위 확대의 후폭풍 만만찮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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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12월31일 16시21분

작성자

  • 김기승
  • 부산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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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9일 대법원이 우리 노사관계에 중대 파장을 낳을 수 있는 판결을 새로 내놓았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이른바 ‘조건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것으로, 근로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임금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사용자인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의 상승과 경영의 불확실성 제고로 다가올 수 있다.

 

<10년 만에 달라진 대법원의 판단>

 

통상임금은 기능적·도구적 임금개념으로, 기본급 외에 초과근로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등 여러 부수적인 임금 항목들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되는 임금이다. 통상임금은 쉽게 말해 근로의 대가를 시간당 가치로 환산한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상여금 등이 추가로 통상임금에 포함되어 통상임금 액수가 커지면 그만큼 초과근로 수당이나 연차수당, 퇴직금 등의 금액이 늘어난다. 따라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통상임금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될수록 총인건비가 늘어나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총임금이 오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구체적으로 무엇까지 포함시키느냐라는 ‘범위’의 문제가 노사간 중요 쟁점사항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서 잠깐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2013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 당시에도 통상임금과 관련한 매우 중요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2013년 대법원은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진 임금은 소정근로 대가성 및 고정성을 결여한 것이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시하면서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요건으로 명확히 제시하였고, 특히 이 기준을 소급해서 적용하기까지 했다. 통상임금과 관련한 대법원의 이런 해석은 당시 노동시장에 적잖은 혼란과 파장을 낳기는 했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기업들은 대법원의 판결에 적응해 노사간 임금협상을 무리 없이 진행해 왔다. 통상임금과 관련한 크고 작은 분쟁은 그 이후에도 지속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법적 안정성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난 12월 19일, 대법원은 그동안의 입장을 바꾸어 기존의 ‘고정성’ 개념을 통상임금 판단 기준에서 다시 제외하는 새로운 판결을 내놓았다. 소정의 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한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은 “조건을 달지 말고” 통상임금에 포함하라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침대를 떠올리게 하는 판결>

 

이 판결을 보면서 그리스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의 침대'를 떠올리게 된다. 2013년 대법원 판결이라는 ‘침대’에 몸을 맞추어 적응해 온 산업현장의 노사가 2024년 판결에 따라 등장한 완전히 다른 ‘침대’에 몸을 끼워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법원의 통상임금 기준에 맞추어 통상임금의 지불주체인 기업은 마치 프로메테우스의 손님들처럼 몸을 잘라 내거나 사지를 무리하게 늘려야 하는 형편이다. 

 

여기에다 새로운 통상임금 기준은 이번 선고 이후부터 적용된다고 하는 소위 ‘장래효’ 부분은 더욱 기막힌 대목이다. 법적 안정성과 기업의 재정적 충격 완화를 도모하려 했다는 대법원의 친절한 설명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2013년 판결 시 소급적용 부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 아닌가.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렸다는 것이다. 더불어 자유시장 제체 하에서 온전히 사적자치 영역이어야 할 임금결정 문제에 대법원이 자꾸 개입하면서 경제주체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노사간에 나누게 될 파이(pie)가 더욱 쪼그라들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할 대목이다.   

 

이번에 대법원이 정한 새로운 통상임금 기준이 산업현장에 적용되면 통상임금과 관련된 분쟁은 말끔히 해소될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제 노조는 통상임금 확대를 위한 교섭을 우후죽순 격으로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협상에 임하는 노사 양측의 자세가 달라질 것이고 서로 간에 갈등과 불신은 불을 보듯 뻔하다. 2013년 판결에 근거하여 통상임금 고정성을 전제로 노사가 맺어온  임금협약은 변경이 불가피하다. 기업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을 피하기 위해 상여금을 실적에 따른 성과급으로 바꾸자고 나설 것이고 노사갈등은 증폭될 수 있다. 기업들은 기존 임금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며,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새로운 의견충돌과 갈등이 빚어질 소지가 충분하다.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불안정성>

 

물론 우리 경제의 한편에는 이런 갈등도 배부른 소리라고 할 기업이 있다. 정기상여금을 줄 수 없는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에게는 이 문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추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그나마 있던 일자리를 줄일 것이고 청년채용은 씨가 마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금지급 여력이 적은 중소기업 근로자들과 여력이 있는 대기업 근로자 사이의 임금격차는 커질 것이다. 대기업 임금이 오르면 그만큼 하청기업에 대한 비용전가가 이루어지는 원하청 구조 하에서 기업 간 양극화도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우리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경제의 양극화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은 자명하다. 

 

이번 판결로 인한 ‘고정성 있는 상여금’마저도 통상임금 범위에 포함됨에 따라, 기업들은 향후 초과근무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등에서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경총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 26.7%가 영향을 받고, 연간 6조7천 억 원 이상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인건비가 높은 제조업, 서비스업, 대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건비 부담 증가는 기업의 재정 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고용을 불안하게 한다. 특히 중소기업과 한계기업들은 이로 인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거나 고용을 축소하는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 외국인 기업의 국내투자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 질 수도 있다. 노동 시장 전체의 불안정성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 

 

글로벌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여건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런 추가적인 비용 부담은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미 코로나 팬데믹, 세계적인 정정불안에 따른 고금리, 고환율, 경기 침체에다가 국내 정치불안이라는 초유의 복합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에게 이번 판결은 또 다른 중대 부담이다. 

 

<노사자치 영역 존중되어야>

 

그 동안 우리노사는 판례가 제시한 고정성 요건에 맞추어 교섭과 합의를 거치며 임금체계를 정비해 왔다. 통상임금의 범위가 갑자기 넓어질 경우 예측하기 어려운 인건비 지급부담이 발생하므로 일단 정해진 통상임금의 범위를 사법부가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으로 기업들은 믿어 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경영의 안정성과 근로대가의 공정성 간의 균형성을 함께 담보하기 위한 노사 간의 사적자치가 성숙해 오고 있는 현시점에 나온 대법원의 돌연한 태도 변화는 다시금 큰 혼란과 비용을 야기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로 인해 사적자치 보다는 소송과 분쟁이 이익관철의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인식을 노사 양측에 심어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대법원의 이번 판단이 노사 양측 가운데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유리한 일도양단식 승자독식으로 해석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향후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입법과 쟁송과 관련된 모든 단계에서 노사자치, 사회적 협의를 고려한 제도와 절차가 더 구비되고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사법부도 노사가 사적자치의 원리에 따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형성해 온 질서를 존중하고 이를 판결로 안정화하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임금체계 개선 서둘러야>

 

기업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임금체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노동시장의 고령화에 따른 고용연장 문제와도 맞물려 있어 임금체계 개편은 우리 기업에게 절체절명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임금체계 개선을 위한 민관 컨설팅을 확대하고 경영자 단체 주도로 임금체계의 업종별 모범사례(best practice)를 확산하여 미래지향적 임금체계를 조속히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정기상여금을 성과급으로 돌려막는 수준의 미봉책으로 일관하다가는 조만간 또 다른 프로테메우스의 침대에 눕게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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