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괴담과 억지 선동이 과학을 밀어내는 사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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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에 대한 사회적 혼란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엉터리 전문가의 ‘횡설수설’에서 시작됐다. 시사 프로그램이 엉터리 ‘가짜과학’(fake science)의 확산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후쿠시마 괴담·선동은 엉터리 전문가와 선정적인 황색 저널리즘이 만들어낸 재앙인 셈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위험 사회(risk society)에서 국민 안전을 지켜주는 유일한 등불인 현대과학을 통째로 거부하는 반(反)과학적 정서에 찌들어버린 엉터리 과학자‧인문학자의 폐해도 심각하다.
가짜‧유사(類似) 과학으로 시작하는 엉터리 괴담과 선동의 폐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순진한 소비자들이 주머니를 터는 것은 오히려 작은 부작용이다. 멀쩡한 소비자의 건강을 망가뜨리고, 영혼과 자존감을 무너뜨리게 만드는 것도 심각하다. 국정(國政)을 마비시켜버릴 정도로 심각한 상항이 벌어지기도 한다. 광우병 사태와 가습기 살균제와 라돈 침대 논란이 모두 엉터리 괴담 때문이었다. 현재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도 가짜과학과 반(反)과학으로 촉발된 안타까운 일이다.
유사과학은 과학기술 기반의 21세기 선진 사회를 꿈꾸는 우리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대판 ‘미신’(迷信)이다. 물론 유사과학의 피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이성과 합리성을 내던져버리고 오로지 속 좁은 이기심에 이끌려서 엉터리 괴담·선동을 선택하는 것은 소비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전문가의 책임도 절대 가볍지 않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하도록 해주는 법과 제도를 시행하고, 생산·유통·소비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책임은 온전하게 정부와 전문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을 위해 엉터리 괴담의 정체를 밝혀내는 전문가를 보호해주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
대부분의 괴담은 비윤리적인 기업의 ‘노이즈마케팅’이나 무책임한 ‘황색 저널리즘’을 통해서 확산된다.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한 시민·소비자·정치단체의 억지가 문제를 더욱 증폭시키기도 한다. 엉터리 괴담에 대한 국민의 분명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화려한 광고·홍보·선전으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고, 환경도 보호해주는 기적은 기대할 수 없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효과가 있다’는 상품 광고는 소비자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황당한 궤변이다.
괴담의 확산을 차단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평범한 요구르트인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사멸시켜준다고 우기던 남양유업이 정부의 강력한 철퇴에 주저앉고 말았던 경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양유업의 시도는 구태의연한 것이었다. 전문성과 윤리성이 의심스러운 국립대학 수의학과 교수를 동원해서 만들어낸 어설픈 결과로 국민을 속이는 일은 조금도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장관을 역임한 노(老)정치인까지 들러리로 내세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부의 노력을 뒷받침해주는 법과 제도는 이미 충분히 구축되어 있다.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유사과학을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상품이나 용역(서비스)에서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거짓·과장·기만·부당·비방이 모두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결국 공정위가 유사과학 퇴출의 선봉장인 셈이다. 유사과학이 가장 심각하게 판을 치는 식품·의약품·공산품에 대한 별도의 법률적 규제도 있다. 식품위생법,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 제품안전법,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 등이 모두 유사과학을 금지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식품·의약품·공산품의 관리를 전담하는 행정기구도 넘쳐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국가기술표준원, 소비자원,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비롯해서 검찰·경찰·관세청·검역소와 일반 행정기관에서도 엉터리 유사과학을 앞세운 제품과 서비스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의 관리가 만족스러운 것은 절대 아니다. 유사과학을 관리하기에는 정부의 전문성과 윤리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공정위의 유사과학 퇴치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식약처·소비자원·기술표준원·원자력안전위원회의 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식약처의 경우에는 ‘질병의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는 의약품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공산품의 성능과 안전성을 관리하는 국가기술표준원의 전문성도 의심스럽다. 국가적 참사가 돼버린 가습기 살균제(세정제)도 막아내지 못했다. 라돈 침대 사건도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성급한 조처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특허청도 유사과학 퇴치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유사과학을 앞세우는 제품이나 서비스들이 예외 없이 엉터리 ‘특허’를 자랑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전혀 없는 음이온의 효능을 강조하는 특허가 무려 5,855건이나 되고, 음이온 제품이 무려 18만 종이나 된다. 우리가 ‘음이온 공화국’에 살게 된 것은 특허청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특허청이 발급해준 특허에 등장하는 음이온은 대부분 전기방전이나 자외선으로 만들어낸 ‘오존’이거나 모나자이트와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이다.
전문가의 사회적 책임
과학기술자의 일차적인 책임은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 현대 과학과 기술을 활용해서 더욱 편리하고, 더욱 안전하고, 더욱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역시 과학자의 중요한 사회적 책무이다. 이제 과학자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는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강력하게 요구하는 무거운 책무이다.
전문가의 사회 참여가 쉬운 일은 아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마련인 사회문제는 본질적으로 과학자가 연구실에서 다루던 연구과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과학자는 복잡한 사회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확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후쿠시마 괴담을 만들어낸 원자핵공학자는 오염수의 처리 현실은 물론이고 방사능 오염과 관련된 기본적인 과학적 사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조차 포기해버렸다. 해류의 기능도 이해하지 못했고, 물속에서의 열(熱)운동에 대한 기초상식도 갖추지 못했다.
사회 참여에 나서는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덕목은 전문성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와 관련된 폭넓은 전문 분야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전문 지식이 꼭 필요하다. 우리의 건강에 꼭 필요한 아미노산인 MSG를 ‘화학·합성’ 조미료라고 몰아붙였던 것이 식품과학자들의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생산·유통·소비의 현장은 학술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실이나 학술대회의 현장과는 전혀 다르다. 사회적 논란과 관련된 종합적이고 광범위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과학적 안전성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갖추지 못한 전문가도 적지 않다. 과기부 장관을 역임한 전자공학자가 주장하는 ‘100% 안전성’은 어떤 경우에도 보장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꿈이다. 100% 안전성을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자동차·비행기는 물론이고 가장 기본적인 식품과 음용수의 공급도 불가능해진다.
충분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과학자가 어설프게 나섰다가는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부작용만 증폭시키고, 반(反)과학적 정서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논란에서는 자칫 무고한 이해당사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엉터리 가짜·유사과학으로 만들어지는 괴담·선동과 반(反)과학적 정서가 진짜 과학을 밀어내는 사회는 절대 지속가능할 수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어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경우는 대한민국뿐이라는 사실은 매우 부끄러운 것이다.
서울시가 하루에 한강으로 통해 처리·희석·방류하는 하수·오수·폐수의 양이 하루 600만 톤이나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해양 쓰레기가 대마도와 일본으로 흘러가지만, 일본의 해양 쓰레기가 우리나라 해안으로 떠밀려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엉터리 가짜 과학으로 만들어낸 후쿠시마 괴담이 일본의 오염수 처리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다. 오로지 우리의 어민과 수산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자해(自害)행위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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