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가격 급등, 근본 대책을 생각해 본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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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일 가격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농산물 가격안정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 있다. 대통령이 TV 대담프로그램에서 사과 가격 폭등 문제를 언급하고, 대파 가격이 총선의 주요 이슈가 되기도 했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조사한 3월 셋째 주의 사과 및 배의 도매가격은 kg당 9,168원과 6,859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각각 121.3%, 132.9% 상승하였다. 참외, 딸기, 토마토 등 과채류와 배추, 상추 등의 엽채류도 일조량 부족 등으로 작황이 좋지 않아 가격이 오름세에 있다.
올해 들어 과일 가격이 급등한 것은 2023년 생산량이 전년도에 비해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사과의 경우 2023년 재배면적은 2% 감소했지만 생산량은 39만 4,000톤으로 2022년 생산량 56만 6,000톤에 비해 30% 정도 감소하였다. 배도 2023년 재배면적은 0.8% 감소했으나 생산량은 20만 3,100 톤으로 2022년 25만 1,100 톤에 비해 19.1% 감소하였다. 2023년도 과일 생산량이 크게 감소한 이유는 지난해 봄 개화기에 이상저온으로 저온피해(냉해)가 발생한 데 이어 여름엔 장마로 일조량 감소, 탄저병 확산, 가을철엔 주산지에 우박까지 쏟아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과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바나나 등 대체 과일 수입 확대, 할당관세 품목 확대, 납품단가 지원 품목과 할인 지원 확대, 대형 유통업체 과일 직수입 허용 등 다각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정부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통해 바나나와 오렌지를 직수입하였고, 농축산물 물가 안정을 위해 대형마트에 수입과일 할당관세 물량 수입·판매 자격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1,500억원의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을 투입하기도 했다. 할인지원은 전국 하나로마트, 대형·중소형 마트, 온라인몰 등 유통업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가격할인율은 최대 30%이며, 매주 1인 1만원 한도로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에 참여해 할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전국 51개 전통시장에서 국산 농축산물을 구입한 소비자에게 구매 금액의 최대 30%를 1인당 2만원 한도로 온누리상품권을 환급해주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 농산물 가격은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과일과 일부 농산물 가격이 기상 악화에 따라 가격이 폭등하여 가계에 주름이 지게 하지만, 일부 품목에서는 가격이 하락하여 소비자후생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와 같이 주요 농산물의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도 마늘, 생강,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은 가격이 전년보다 하락하였다. 2024년 3월 3주 현재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마늘 37.2%, 생강 15.8%, 소고기 1.3%, 돼지고기 4.2%, 닭고기 10.1% 하락하였다. 또한 농산물 가격은 상승, 하락을 주기적으로 반복하기 때문에 농산물가격 문제를 분석할 때는 단기적인 변동성만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추세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효과적인 가격안정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농산물 가격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농산물은 수요의 가격 비탄력성과 공급 불안정성 때문에 가격의 변동성(variability)이 심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농산물은 기후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상 기후가 발생하면 공급이 줄어 가격이 폭등하고 기상조건이 좋아 생산량이 늘면 가격이 폭락하게 된다. 농산물을 포함한 식품은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재이기 때문에 수요가 가격변화에 비탄력적이며, 이 때문에 물량이 조금만 변해도 가격은 크게 변하게 된다. 공급탄력성이 어느 정도 있는 시설원예의 경우 가격등락이 단기간에 조정되지만 한 해의 공급량이 수확철에 정해지는 곡물, 과일, 노지채소류 등은 가격 조정에 시간이 걸리게 된다. 이러한 특성때문에 현재 급등세에 있는 주요 농산물의 가격도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과, 배의 경우도 가격이 연도별로 안정적이지 않고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사과, 배 가격은 2018년 이후 안정세를 보이다 2020년 말에 급등했다. 그 후 다시 안정세를 보이다 2023년 말부터 급등하였으며 2024년 수확기부터는 다시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그림 1 참조>
우리 나라에서는 가격 등락이 심한 신선농산물의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전체 1000)가 미국보다 한국이 두 배 이상 크다. 한국의 신선농축수산물의 가중치는 75.6(과일 14.6, 채소 14.3, 축산물 26.4 등), 미국은 27.9(과일 5.7, 채소 5.1, 축산물 14.6 등)다. 최근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사과의 가중치는 한국이 2.3인데 미국은 0.7에 불과하다. 가중치가 큰 나라의 농산물 가격이 폭등할 때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거나 언론의 보도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울러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특정 시기 위주로 생산·소비되는 농산물의 계절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문제점도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1% 오른 것으로 집계됐는데, 농축수산물 지수가 11.4% 상승한 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제는 2월에 사실상 소비되지 않는 수박·참외 등도 지수 산출에 포함되어 실제 가격변동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은 특정 농산물이 출하되지 않는 단경기(보합 기간)에는 ‘보합’ 처리를 통해 물가지수를 산출한다. 보합 품목은 소비자의 월평균 소비지출액, 시장반입량, 가격 조사 가능성 등을 고려해 정하며, 현재 과실류에선 9개가 보합 품목으로 관리된다. 2월 조사 땐 복숭아·포도(국산)·참외·수박이, 3월엔 복숭아·포도·수박·체리가 보합 품목이다.
보합이란 출하되지 않는 농산물 가격을 간접적으로 산출하는 작업을 말한다. 포도는 보합 기간 수입 포도의 가격을 활용하고, 수박·참외·체리 등은 해당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 과실 전체의 가격 변동률을 먼저 구한 뒤 제외된 품목에 적용한다. 사과 등의 가격이 오르면 수박 가격도 올랐다고 보는 것이다.
보합 품목은 가격 변동률이 간접적으로 산출되는 데다 여기에 적용되는 소비자물가 가중치 역시 연중 고정돼 문제다. 통계청은 연도 끝이 0·2·5·7인 해를 기준으로 가중치를 개편할 뿐 연중에는 동일한 가중치를 적용한다. 수박과 참외의 가중치는 각각 1이다. 이들 과일은 특정 시기에 소비가 집중적으로 이뤄지지만, 매달 소비자가 1000원 중 1원씩은 수박과 참외에 쓰는 것으로 계산되는 셈이다. 우리도 일본 등과 같이 신선식품에는 매달 다른 가중치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농산물 가격은 공산품에 비해 상승률이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농산물의 판매가격 지수는 2016년의 87.9에서 2022년에는 107.7로 22.5% 상승하였으나, 농가가 구입하는 공산품, 농자재 등의 구입가격지수는 동기간 93.6에서 120.1로 28.3% 상승하였다. 이는 다시 말해 농가가 판매하는 농산물 가격에 비해 구입하는 공산품의 가격이 더욱 가파르게 올라 농가의 교역조건이 악화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농가판매가격과 농가구입가격은 시간이 감에 따라 더욱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를 협상가격차라고 부른다. 전통적으로 각국 정부는 농가구입가격 대비 농가판매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패리티지수 등을 활용하여 농산물가격지지 수준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패리티지수는 농가판매가격지수를 농가구입가격지수로 나눈 값이다.
■ 과일 수입에 의한 가격 안정화는 불가능한가?
일각에서는 다른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과일도 수입을 통해 수급을 안정시키고 결과적으로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사과, 배 등의 수입을 검역상의 문제로 금지하고 있고 오렌지, 바나나 등 대체과일 수입을 허용하고 있어 수입에 의한 사과, 배 가격의 안정화가 쉽지 않은 상태이다.
사과, 배 등의 과일 수입으로 인해 위험 병해충인 과실파리류나 잎말이나방류가 유입되면 사과, 배뿐 아니라 파프리카·배·딸기·포도·감귤·단감 등의 생육에도 악영향을 줘 수출이 중단될 수 있다. 따라서 과일류의 수입은 과학적인 수입 위험분석 절차에 따르고 있다. 수입위험분석이란 지정 검역물을 통해 동식물 전염병이 국내로 유입, 전파될 경우 예상되는 생물학적, 경제적 피해를 사전에 평가하고, 도출된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적절한 위험관리방안을 마련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외국산 농산물 수입위험분석 절차(Import Risk Analysis)와 SPS(Sanitary and Phytosanitary, 위생 및 식품위생 조치) 제도는 외래병해충의 국내 유입으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이다. 동 절차는 전문가들이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여 진행하게 된다.
이는 우리 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국가가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절차이다. 수입위험분석 절차는 접수, 착수통보, 예비위험평가, 개별병해충위험평가, 위험관리방안 평가, 검역 요건 초안 작성, 입법 예고, 고시 등 8단계를 거치게 된다. 한국에 사과 수입위험분석 절차 개시를 요청한 11개 국가 가운데 일본이 5단계, 미국·뉴질랜드·독일이 3단계 절차를 진행 중이다. 수입 검역 협상에 평균 8년1개월의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올해 사과 가격이 높아 당장 수입을 진행한다고 해서 가격안정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 가격안정화를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과일 등 일부 농산물 가격 상승을 완화시키기 위해 정부는 바나나 등 대체 과일 수입 확대, 할당관세 품목 확대, 납품단가 지원 품목과 할인 지원 확대, 대형 유통업체 과일 직수입 허용 등 다각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대책은 단기 대책으로서 실효성이 크지 않고 임시방편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바나나, 오렌지 등 대체과일 수입은 즉각적으로 국내산 과일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고 정부 예산에 의한 할인지원은 수급조절에 의한 가격인하라기 보다는 보조를 통한 소비자 체감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커 중장기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정책 수단이다. 아울러 보조금 지급에 의한 할인은 대형마트, 전자상거래 이용자 등에 집중됨으로써 전통시장, 구멍가게 등을 주로 이용하는 취약계층에는 혜택이 크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가격할인 정책은 취약계층이 보다 많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계약재배(수급안정) 사업, 수매비축사업, 자조금사업, 유통협약·명령제, 관측사업 등 다양한 수급안정정책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안정화 효과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가 수입 확대, 산지폐기와 같은 단기적이며·대증적인 대책을 남발해 생산자의 자율적 수급조절 능력이 취약해지고, 시장참여자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유발하기도 했다. 생산자나 상인들은 정부가 가격안정화 정책을 수행하면 그것에 편승하여 생산량을 늘리거나 출하량을 조절하여 이득을 취하려고 하고, 그에 따라 정부의 가격안정화 노력이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는 단기적이며 직접적인 시장개입에 의한 가격안정화 정책 추진에 신중을 기하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고민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과일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한 예산을 투입해 생산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응한 생산, 유통기반 보완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자연재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품목별 관리 요령, 기술 지도, 예방 약제와 시설 지원 확대, 보다 정밀한 기상정보 제공, 관측 정확도 제고 등이 필요하다. 아울러 기후위기에 강하고 수량이 많은 품종 육성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생산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주요 농산물을 수익성을 안정화시켜 가격하락에 의한 농업인들의 하방리스크를 경감시켜 주어야 한다. 쌀의 경우 가격이 안정화된 이유가 정부가 다양한 정책개입을 통해 쌀 농가의 소득을 안정화시켰기 때문이다. 만약 쌀 농가의 소득을 안정화시키지 않았으면 우리 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기상이변에 따른 수급 불안 시 가격이 급상승하였을 것이다.
미국·일본 등에서는 수매, 비축, 시장격리와 같은 시장개입보다는 직접적인 농가 소득안정 대책을 최우선 농정과제로 인식하여 각종 정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시장가격이 기준가격 이하로 하락할 경우 그 차액의 80∼90% 보전하는 가격안정제도와 수입보험 등의 경영안정제도를 광범위하게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가격이 기준가격 이하로 하락하면 기준가격과 시장가격 차이의 일부를 정부가 보전해 주는 가격안정제도를 도입하여 농가의 소득안정화에 주력하는 것이 주요 농산물의 수급안정을 위해 바람직할 것이다.
아울러 주요 농산물의 수급관리를 위해서는 정보기술 및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농업통계 및 관측 사업의 개선이 필요하다. 농산물 관련한 데이터는 기본적으로 통계청에서 생산하고 있으나 통계청 자료는 자료제공 주기가 1년이고 5년 단위로 샘플이 재설계되기 때문에 정보의 시의적절성이 부족하다. 농업관측본부에서 제공하는 관측 정보는 공식 통계 수준의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계가 있다. 아울러 통계청 데이터와 관측 데이터가 상이하여 수급관리에 혼선을 빗는 경우도 간혹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수급관리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생산·유통관련 통계 기능을 농림축산식품부로 일원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급관리시에는 공식 통계 정보 이외에 농업경영체 등록정보 DB, 산지유통조직의 생산유통정보, 소비지의 POS 데이터 및 비정형 데이터 등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생산, 유통 및 수요 변화에 대해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예측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농협, 영농법인 등 산지유통조직에 생산·유통 정보시스템(ERP)을 보급하여 실시간으로 계약재배물량, 저장량, 작황, 출하량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스마트 팜, 드론 등을 이용한 원격탐사, 농기계 부착 센서 등에서 수집된 정보도 수급관련 정보로서 광범위하게 활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의 농산물 수급관리는 도매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도매시장 가격은 경매를 통해 결정되고 있어 실제 수급상황보다 변동성이 큰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경매는 거래내역이 공개되고 투명성이 높은 장점이 있으나 수급이 불안정한 경우에는 가격 변동성이 큰 측면이 있다. 도매시장 경락가격의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 가격 급등락에 대응한 경매 제한 장치 등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브레따뉴 지역 산지경매장의 경우 농산물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급락하거나 급등하는 경우 경매를 중지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상으로 최근 과일을 중심으로 한 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농산물 가격에 대한 이해와 안정화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단기적인 처방보다는 중장기적이며 근본적인 수급안정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주요 농산물에 대한 중장기 수급안정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농산물가격의 급등락을 완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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