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도체산업 정책과 우리의 대응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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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의 주요 내용
지난해 8월 미국 정부는 국내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반도체 지원법을 발표했다. 중국 관련 기업을 제외하고 국내외 기업에 차별 없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며 역내에 반도체 제조시설을 유치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다만, 수혜를 입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에 투자 제한이 있고, 이를 위반하면 지원금을 반납해야 하는 조건이 부과되었다.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과 R&D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우리 기업에는 반가우면서도 부담스러운 소식이었다. 미국에 투자하면서 보조금을 받게 되면 비용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분명히 반가운 소식이지만, 향후 10년간 대(對)중국 투자 제한은 현재 가동 중인 중국 공장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10월에 미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제한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레거시 공정 이상의 기술이 필요한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은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수출 금지 조치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기업은 1년간 유예기간을 적용받았으나 이후 향방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 과도한 미국 반도체 보조금 지급 조건
지난 2월 28일(미국 현지 시각) 미국 상무부는 미국 반도체 시설 투자 보조금 신청조건들을 제시했다. 그런데 그 조건들을 살펴보면 이것은 미국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단순한 보조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사전에 투자액과 현금흐름, 매출액, 예상 수익 등 상세한 내용의 재무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1억 5천만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당초 제출한 예상보다 더 많은 수익이 발생하면 받은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환원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외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주체가 요구하는 조건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중앙 정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은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미국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보조금 지급 조건은 오히려 자금이 부족한 기업에 투자를 제안하는 투자회사가 요구할 만한 내용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 곤란한 상황에 빠진 우리 기업
우리 기업으로서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조건인 중국 투자 제한도 큰 부담이었는데 기업의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상세한 재무 계획서까지 제출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과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예상보다 많은 수익이 발생하면 받은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환원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고 미국 정부의 간섭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보조금 신청을 받는다고 했기 때문에 분명 신청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국 정부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반도체 제조 관련 원천 기술의 상당 부분을 미국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조금 신청조건이 우리에게 불리하더라도 우리 기업은 신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 기업이 어쩔 수 없이 보조금을 신청하더라도 지금의 조건을 완화해서 우리 기업에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 실익을 더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기업 차원에서 미국 정부에 요청하기는 어렵고 우리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다.
○ 달려가는 미국과 기어가는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 정책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으로 국내외 기업을 유치하면서도 자국의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어떠한 상황인가? 반도체가 우리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기간산업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은 인색하다. 왜냐하면 반도체산업은 대기업만 참여하고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메모리반도체를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그 과정에서 대기업만 주목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반도체산업 생태계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것은 더욱 많은 수의 중소기업들이다. 반도체 기업 지원이 비단 대기업 지원만은 아니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2021년 미국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점검 이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 올린 메모리반도체 강국이라는 지위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반도체산업이 지속해서 발전하고 메모리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리 정부와 국회는 국내외 반도체 기업의 한국 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을 포함한 경쟁국보다 과감한 수준의 정책 지원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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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고문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산업연구원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혀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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