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지주의 거버넌스 (governance) 이슈 및 개선방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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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2001년 우리금융 출범 이후 국내 은행지주회사(이하 은행지주)들은 자산 및 순이익 등 규모 측면에서 크게 성장하였으며, 특히 비은행 부문의 약진으로 비교적 다변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 ▶ 이러한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내 은행지주들은 ①거수기(rubber stamp) 수준을 탈피하지 못하는 이사회 운영, ②주총시즌만 되면 어김없이 제기되는 경영 승계의 불투명성, ③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옥상옥의 지주회사 역할 등의 거버넌스 이슈로 공격받고 있는 것이 현실임. ▶ 이사회의 경우 금속탐지기와 같은 예방적 기능을 수행하는 등 운영방식이 개선되고 있지만, 경영진에 도전하는 ‘일하는 이사회’(working board)를 구축하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현직 CEO의 사외이사 선임을 확대하고 사외이사만의 간담회 의무화 등의 조치가 요구됨. ▶ 은행지주 CEO의 경영승계 계획과 관련하여 투명성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부 임원 및 외부 명망가 위주의 롱리스트를 형식적으로 관리하기보다 숏리스트의 후보군을 우선 선정하고 상시적인 접촉 및 의견 청취 등을 통해 후보군의 능력과 자질을 평상시에 검증할 필요가 있음. ▶ 현행 전업주의 체제 하에서 지주회사가 내부통제, IT, 인사 등의 서비스를 자회사에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는 집중형 지주회사 모델이 정착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대신에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주회사 경영진에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음. |
주총시즌이 다가왔다. 2001년 우리금융이 국내 최초로 금융지주회사를 출범시킨 이후 국내 은행지주회사들은 지속적인 성장세1)를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은행지주에 대한 여론과 당국의 질타는 그 어느 때보다 매섭다. 지주회사는 조직이 비대해진 채 관리기능만 남아있는 옥상옥이라든지, 주인 없는 회사에서 경영진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경영진과 이사회가 셀프연임을 조장하고 있다는 등 지배구조 측면의 각종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까지 거세지는 등 우리나라 은행지주들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거버넌스는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하여, 사전 또는 사후에 이를 확인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조직의 말단에서부터 최상층까지 이중 삼중 구축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좋은 거버넌스를 갖춘 회사는 직위와 상관없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따라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 있다. 협의의 거버넌스는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를 의미하지만 광의의 거버넌스는 회사 전체의 운영체계를 포함한다. 본고에서는 국내 은행지주회사의 거버넌스 현황을 살펴보고 이사회2) 및 지주회사 본부조직의 운영체계를 중심으로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무용론’에는 동의할 수 없어
이사회 운영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듣는 질책은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언론기사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국내 5대 금융지주 이사회의 안건은 모두 통과되었으며 표결 과정에서 반대표는 단 한 차례에 그쳤다는 식의 비난이다. 그러나 안건 대부분은 이전에 개최된 정기이사회들을 통해 반복하여 논의되기 때문에 이미 이사 상호 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사안들이다. 따라서 새삼스럽게 특별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며, 또 많은 안건이 법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 이사회에 보고되거나 결의를 얻는 거라 논쟁할 만한 이슈가 아니다. 경영계획 승인과 같이 경영진과 이사회 간 이견을 보일 수 있는 안건의 경우 충분한 토의가 되도록 이사회 개최 전에 간담회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따라서 안건 통과비율, 반대의견 비중 등에 의존하여 이사회의 거수기 역할을 운운하는 지적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제도가 정착된 이후 경영진은 통과될 가능성이 낮은 안건의 경우 부의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보고할 사안이 있는데 이사회에 상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경영활동을 애초부터 추진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사외이사의 역할은 금속탐지기와 같아서 울리지 않는다고 역할이 없는 것이 아니며, 예방적 조치(preventive approach)를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사회의 역할에 대한 학계의 실증분석 결과3)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 일반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사회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나친 폄하 또한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사회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 美 사법부의 배심원 제도를 참고할 만
많은 경우 오늘날의 선진은행 이사회는 회사의 전략 방향 등에 대한 자문기능을 수행한다. 즉, 이사회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대해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challenge)함으로써 경영진이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든다. 이사회는 기업을 단지 통할(govern)하는 것이지 경영(manage)하는 것이 아니다.
경영진보다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 · 현직 CEO나 금융전문가가 이상적인 사외이사 후보지만 국내 금융권의 순혈주의 및 후보자의 이해 상충 문제 등으로 인해 인력의 풀(pool)이 대단히 부족하다. 전문성 있는 사외이사의 확보가 긴요한 만큼 사외이사의 보상수준이나 임기 등에 대한 정부의 긍정적인 시각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만약 인수 · 합병과 같이 회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사전에 이해와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진행되다가 마무리 단계에서 안건으로 상정되고 이사회는 지엽적인 문제만 논의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사외이사만의 비공개 간담회의 정기개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4) 고려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배심원제도와 유사하다. 배심원들은 재판을 통하여 충분한 정보를 습득한 후 최종판결에 앞서 배심원들만의 비공개회의를 진행한다. 비공개회의에서는 토론을 주도하는 배심원을 중심으로 합리적 의견을 도출해 내고자 최선을 다한다. 배심원들의 의견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만장일치의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하게 된다.
익명성은 생각보다 위력이 대단하다. 판사 앞에서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라 했다면 배심원들은 자신의 부족한 전문성이 발각될까 두려워 다른 배심원의 의견을 추종하거나 처음부터 아예 배심원 선정 자체를 피했을 것이다. 이처럼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고 더욱 심도 있는 토론이 이사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미국 사법부의 배심원제도를 참고할 만하다.
경영진 승계 절차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평가
이사회가 일상적으로 경영진을 감시(oversight)할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개 이사회는 경영진에게 자문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사회가 경영진을 통할해야 하는 시점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고경영진의 연임 결정이나 신규 선임에 관한 건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내부 임원 및 외부 명망가 위주의 롱리스트(long list)를 형식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소속의 사외이사가 검색엔진에서 제공하는 정보 수준으로 후보자 대부분을 알고 있다면 경영진 승계 과정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은행지주 CEO의 경영 승계 계획과 관련하여 거버넌스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롱리스트 방식보다 숏리스트의 후보군(예시: 3명 이내)을 우선 선정하고 상시적인 접촉 및 의견 청취 등을 통해 후보군의 능력과 자질을 평상시에 검증할 필요가 있다. 후보자의 성품이나 업무 능력,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나 위기관리 대처 능력 등을 지켜볼 기회를 얻어야만 이사회가 제대로 된 경영진을 선임할 수 있을 것이다.
현 CEO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 후보들을 상임이사로 임명하여 임기를 보장하고 이사회와의 교감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겠으나, 현 경영진의 리더십이 훼손되는 단점이 있어 채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운영체계 개선으로 지주회사 경영진의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어
지주회사 본부조직은 크게 기업센터(corporate center)와 공유서비스센터(shared service center)로 구분된다. 시대 상황이나 운영모델 등에 따라 그 역할이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기업센터에는 CSO(chief strategy officer)와 CFO(chief financial officer) 산하의 조직이 있고 공유서비스센터에는 IT 및 통합구매 등의 조직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지주회사 본부조직의 운영체계는 집중형, 분산형, 혼합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집중형은 그룹의 핵심기능을 지주회사 본부에 모두 집중시키고 각 사업부문(또는 자회사)에 대하여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이다. 자회사는 전적으로 영업에만 매진하고 전략, 재무, IT 등 제반 인프라 기능을 지주회사본부에서 책임지게 된다.
분산형은 각 사업부문별로 핵심기능을 독자적으로 수행한다. 이는 연관성이 거의 없는 회사들이 세제 혜택을 목적으로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경우에 채택하는 운영방식이다.
혼합형은 지주회사 본부에서 개별 사업부문의 시스템을 통합 관리 및 지원하고, 각 사업부문은 시스템의 기획 · 개발, 운용 · 관리를 행하는 형태로써 책임은 원칙적으로 각 사업부문에 있다. 국내 은행지주들은 지주회사 본부와 개별 자회사에 인적·물적 자원을 안분하는 혼합형 형태의 운영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선진 금융지주의 대부분이 채택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혼합형 운영체계가 지주회사 본부조직의 이상적인 모델일 수 있으나, 잘못하면 지주회사 경영진이 권한만 보유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5)을 받을 수 있다. 지주회사 경영진의 책임성(accountability)은 책임소재가 분명한 집중형 운영체계의 도입으로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집중형 모델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겸직 범위를 임원뿐만 아니라 직원까지 확대하고, 자회사 IT시스템 및 콜센터 등 각종 물적 기반의 실질적 통합이 가능하게 조치하는 등 제도개선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편 순수지주만 허용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개선하여 제한적으로 사업지주를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사,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인사 등의 서비스를 지주회사에 집중시킨 후 자회사에 한정하여 동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사업모델을 생각할 수 있다. 관련 서비스가 지주회사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지주회사 경영진의 역할과 책임이 뚜렷해지는 장점이 있다. 사업지주의 허용은 전업주의 체제하에서 작동하기 힘든 매트릭스조직의 한계를 극복하고 CEO의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여서 추진에 어려움이 있다.
거버넌스 확립으로 지속성장의 기반을 강화해 나갈 필요
국내 은행지주들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에 기반을 두고 기업가치 제고에 노력해 왔다. 그렇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이사회 운영 및 지주회사 운영체계 측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금융회사의 경쟁력은 규모, 자본금 등과 같은 하드웨어 측면보다 지배구조 및 조직구조, 성과 중심의 문화, 리스크관리 등 무형자산(intangible asset)의 가치에 좌우된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 은행지주들이 방향성을 가지고 지속성장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구조를 더욱더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한편 지주회사의 운영방식을 다양화하는 등의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K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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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늦게 설립된 JB금융지주 출범(2013년 9월) 이후 2022년 9월까지 국내 8개 은행지주회사의 연평균 성장률(CAGR)은 총자산 기준으로 8.6%,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15.5%에 달하였다. 특히 비은행 부문의 약진으로 금융투자, 손보 및 생보, 캐피탈, 자산운용, 저축은행까지 금융권을 망라한 다변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 국내 은행권의 이사회는 제도적 측면에서 선진지배구조의 기틀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중 및 개최 주기, 위원회의 구성과 활동내용, CEO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등 이사회 관련 주요 거버넌스가 글로벌 모범사례 은행과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내 은행권 이사회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실제 운영상에 있어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점에 기인한다
3) 김환일· 박용근·김동근(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는 기업의 투명성 제고와 경쟁력 강화 등의 장점이 있는 반면에 경영진과 가까운 내부관계인에 해당하는 자들이 사외이사에 선임되어 견제와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참호 구축(CEO entrenchment) 문제점 역시 존재한다.
4) 美 OCC(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의 Directors’ Manual에서도 이사회의장과 별개로 선임이사(lead outside director)를 선정하고 사외이사만의 간담회 개최를 권유하고 있다.
5) 매트릭스조직이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다면 그룹 내 금융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를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국내 금융시스템이 전업주의 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관계로 매트릭스조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에 따라 금융사고와 관련한 책임소재를 법적 조직(legal entity)을 기준으로 묻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순수지주회사인 은행지주의 경영진은 책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된다.
※ 이 글은 한국금융연구원(KIF)이 발간하는 [금융브리프 32권 04호] (2023.3.4.) ‘논단’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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