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3> 토착 비리와 지역 문화예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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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넘게 한 정치인의 토착 비리 문제가 온 나라를 블랙홀처럼 집어삼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 시절 행했던 각종 부정부패의 혐의가 그것이다. 물론 혐의점에 대한 최종 판단이야 법원의 몫이지만, 그 종류와 규모에서 가히 비리의 종합세트라 할만하다. 또한 내용의 파렴치함으로 많은 이들이 허탈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으로 도대체 세계 6위의 국가경쟁력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후진국에서나 있을법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토착 비리 문제는 지방자치와 자치분권이 가지는 하나의 심각한 딜레마이다. 민주주의의 발전에서 자치분권이란 명제는 매우 중요하며 정당성을 가진다. 하지만 선거라는 구조와 민선 지자체장들에게 주어진 막강한 인사권과 예산집행권은 그들을 쉽게 비리의 유혹에 빠지게 한다. 여기에는 당선에 기여한 토호 세력들의 이권이나 그들과의 공생의 먹이사슬이 복잡하게 얽힌 토양이 자리한다. 승자독식의 논리도 한몫한다. 지자체장들은 이런 현실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지자체장 스스로가 사리사욕을 엄격히 끊어내고 이러한 토양 내에 서식하는 부패의 고리를 원천 차단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역마다 많은 축제와 문화행사가 있고 앞다투어 문화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문화행사 개최나 문화시설 조성은 지자체장들의 이미지 관리와 관광수익에 효율적인 아이템이어서인지 지역 특색이나 전통과 무관한 비슷비슷한 성격의 축제들이 난무한다. 지역마다 정부가 지정하는 법정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도 하다. 지방마다 거의 한 개씩 비엔날레라는 대규모 미술 행사나 아트페어와 같은 축제를 운영하기도 한다. 일견 지방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해 관심과 지원이 풍성해 보인다. 대개의 행사나 축제들은 정부와 지자체 지원금의 매칭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어 중앙정부에서는 성격이 불분명한 소모성 문화행사나 축제들을 걸러내고 있다. 하지만 1만여 개에 달하는 지차체 차원의 소소한 것들은 걸러 낼 길이 없고,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문화행사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문화행사들의 신설과 난무의 이면에는 배타적인 토착 세력들의 이권과 먹거리가 도사리고 있다. 물론, 국내외적으로 검증된 대규모 행사야 비교적 덜하지만, 군소 행사들의 경우 토호들의 이권이어서 이를 둘러싼 세력들 간의 알력도 작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내용에 비해 불필요하게 과다한 예산이 책정되기도 하는데, 사업을 빌미로 한 토호 단체들의 예산 빼먹기인 경우가 허다하다.
규모와 외형은 커 보이지만 사업의 본질과는 무관한 시설 조성이나 이벤트, 홍보비 등 부대 경비가 많이 지출되고, 그 경비는 지역의 문화권력자들과 결탁된 업자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큰 행사의 책임을 맡는 감독 선임에 있어서도 공모 등의 절차적 합리성을 거치긴 하지만 적당한 인지도를 갖춘 중앙의 인사를 내정하되, 능력보다는 자신들의 이권에 도움이 되는 인사를 선정하고 전문가를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이 예사로 되어 있다. 전문가는 그들의 이권 충족의 구색으로 동원되고 행사의 질이나 수준은 부차적인 것이 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비리와 부패의 고리는 일반 주민들이나 문화예술의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 행정공무원들이 파악할 수 없으며, 파악하더라도 막을 방도가 없는 실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도덕한 공무원들이 토호 세력들과 깊이 결탁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절차나 구조로 숱한 문화행사들이 치뤄지고 있지만, 우수한 축제 콘텐츠의 생산은 부족하고 지역주민들을 위한 고급문화의 향유 기회가 제공되지 못하는 비생산적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토착 비리의 출발은 대개 지자체장의 당선에 기여한 지역 토호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지자체장을 이용하거나 결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지역 자치분권이란 미명 아래 지역 차원의 각종 이권 카르텔의 복잡한 네트워크가 음험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지자체장의 권한이 강력한 만큼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행정편의와 절차적 합리성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존재가 아닌 실질적 공의를 구현하는 엄정한 관리자이면서 성실한 봉사자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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