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의 인증행정(認證行政) 개혁 없이 바이오산업 발전 어렵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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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7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제약 바이오산업의 발전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7월엔 “바이오 헬스를 국가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했고, 11월엔 “제약 바이오산업의 성장을 위해 규제혁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런 대통령의 의지가 실현됐으면 한다. 바이오헬스 산업이 디지털 산업과 함께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상황을 보면 윤 대통령의 이런 의지가 정부 행정 현장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이오 헬스 산업의 질적 고도화와 신기술 진입을 주로 담당하는 식약처의 인증 행정은 지속되어온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70년대 말, 디지털 산업 발전의 초석을 쌓는 과정에서 체신부는 현상유지형 마인드로 그 발전 속도를 지체 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현재 바이오 헬스 업계가 식약처의 인증 행정에서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바이오산업에 대한 투자는 회임기간의 장기화와 성공의 높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바이오 산업의 연구자들은 170만 종의 생물 종(알려진 것만. 잠재적으로는 1000만~1500만 종이 있는 것으로 추정)이라는 광범위한 연구의 바다에서 이들의 생태계를 분석해야 한다.
바이오산업에 관한 연구에서는 수학 공학 컴퓨터 뿐 아니라 인문∙사회학 등과의 융∙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고급 전문 기술인력과 ICT를 활용할 수 있는 융합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복잡계 생명 현상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물론 Biomolecular Platform(생체분자 플랫폼)의 구축을 통해서 시간을 단축하고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지만, Platform 구축 자체에 막대한 시간과 투자가 소요된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기업인들이 바이오산업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장기간에 걸친 막대한 투자금 지출과 그 연구 성과의 불투명성, 그리고 동종 해외 연구 결과와의 상업적 경쟁력 우위 확보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낮은 위험성과 높은 수익성을 추구하는 자본의 생리와 바이오산업은 병립(竝立)이 쉽지 않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그 병립이 가능하도록 여건을 구축해 주는 것이다.
바이오산업의 미래는 기술 혁신에 있다. 더욱이 개방경제 하에서 투자자들은 세계시장의 기술 변화를 혁신의 기준으로 삼는다. 혁신의 속도가 중요한 것이다. 기술의 진화 과정에서, 세계시장에서 가장 앞선 신기술제품을 국내기업이 가장 먼저 상업화 할 때, 그 바이오 제품은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식약처의 인증 규제 행정이 이 속도를 지체시키고 있다면?
식약처장이 가끔 관련 업계와 간담회를 하여 애로사항을 청취한다. 그러나 그 결과 어떤 본질적 개선이 이루어졌는지는 불명확하다. 실제로 식품 의약품 인증행정에서 식약처장의 역할은 크지 않다.
식약처장이 관장하고 있는 업무들이 대부분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에서 원장이 각 진료과별 전문의들의 진료영역에 개입할 수 없는 이유와 유사하다.
식약처의 인증업무 수행은 유관 법규와 각 직무의 창구를 담당하는 사무관들의 판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인증업무 수행의 법적 인적 구조가 현재 바이오산업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우선 법규가 낡았다. 신기술은 기술 진보의 흐름에서 가장 앞서있는 부분인데 관련 법규는 구 기술을 기준으로 과거에 제정된 것들이다. 법이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포지티브 시스템이라는 행정규제 제도에서 유관 법규가 내포하지 못한 신기술은 인증될 수 없다.
창구에서 실무를 맡아 인증업무를 집행하는 사무관들이 관련 업무에 관한 지식을 습득한 시점도 문제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데 이들이 교육 받은 시점은 과거의 어느 한 기간이다. 이들을 감독하는 과장, 국장들은 일반적으로 10여 년 전에 교육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과거의 법규를 바탕으로 과거에 습득한 옛 기술에 관한 지식으로 오늘의 새로운 기술을 재단(裁斷)하는 것이다. 법규에 없고 그들의 지식 범위를 벗어난 신기술을 그들이 인증할 수 있을까? 못할 것이다. 심지어 전임자가 요구한 인증 조건과 인증 절차 과정에서 새로 부임한 후임자가 요구하는 인증 조건이 다른 경우도 발생한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해당 신기술에 대한 지식 차이 때문이다.
인력의 절대수 부족과 인력의 전문성 제고 노력 미흡도 문제다. 바이오산업 관련한 경제활동이 크게 증대되고,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데도 식약처의 인증업무 행정 인력은 이에 상응하여 증원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기존 인력의 재교육 재훈련 프로그램도 취약하기 때문에 인증 행정 담당자들이 세계시장에서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신기술의 흐름을 인지하기도 쉽지 않다.
금년 상반기에 WHO가 한국의 식약처를 우수 규제기관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문제는 국내 바이오 업계가 실제로 그렇게 체감하고 있느냐와 우리의 경쟁 상대인 선진 기술국의 업계가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냐에 있다. WHO의 우수 규제기관의 기준 평균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개도국 포함인가?
바이오 헬스산업은 고령화와 소득수준 상승에 따라 세계시장에서 그 수요가 급증할 유망산업이다. 한국이 디지털 산업의 일정 부문에서 세계를 선도하듯 바이오 헬스 산업에서도 세계시장에서 큰 몫을 차지할 수 있다면 한국의 선진경제 국가 위상은 더 확고해질 것이다.
이런 꿈이 실현되려면 식약처의 신기술 인증 행정이 개혁되어야 한다. 신기술의 상용화를 발목 잡는 현재의 인증 행정으로는 한국의 바이오 헬스산업은 우물 안 개구리에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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