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전망> 세계경제는 회복 가능할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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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비관이 교차하는 한 해
새해 경제에 대한 기대와 비관이 교차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경제 GDP는 2.9% 성장에 머물렀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평균 성장률이 3.3%였고 2018년에 3.5% 수준의 성장을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세계경제는 꽤 큰 폭의 성장 하락을 겪은 셈이다. 지난해 초 IMF, OECD 등 국제기관들도 성장률 하락을 경고했지만 이렇게 골이 깊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기관들이 세계경제가 3%대 초반의 성장률은 유지할 것으로 예측했으니 말이다. 2019년 대부분의 국가들이 성장률 하락을 겪었고 특히 세계 교역은 극도로 부진했다.
올해를 내다보는 국제기관들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지난 1월 IMF가 내놓은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올해와 내년 각각 3.3%와 3.4%에 머물렀다. 지난해 성장률이 워낙 낮았기 때문에 조금만 회복세를 보여도 올해 성장률이 높게 나올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수치는 지난해 10월 전망했던 것보다 각각 0.1%, 0.2% 포인트 하향 수정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OECD는 올해와 내년의 세계경제 성장률을 각각 2.9%, 3.0%로 IMF보다 더 비관적으로 전망한 적이 있다.
반면 최근 세계 주요국 금융시장은 다소 희망적이다. 선진국 금리인하와 풍부한 유동성이 주식시장을 떠받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1단계 무역합의안, 일부 글로벌 제조업 체감지표의 개선 등이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중동사태의 악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등으로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지만 지난 수년간 세계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지목됐던 미중 무역갈등이 큰 고비를 넘긴 것은 분명 세계경제에 긍정적 요소라 할 수 있다.
향후 세계경제에 대한 전망이 기관마다 엇갈리고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사이에 괴리가 나타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과연 세계경제는 올해 회복될 수 있을까? 회복된다면 그 속도는 어떨 것이고 회복의 전제 조건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부 긍정적 징후들
우선 글로벌 제조업 체감 지수가 호전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경기침체의 가장 큰 특징이 세계 교역이 둔화되고 그 중심에 제조업의 부진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글로벌 제조업체들의 향후 매출에 대한 체감지표인 PMI 지수가 15개월 연속 하락하다가 지난해 8월 이후 상승세로 돌아섰다. 향후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난해 하반기 주요국들의 통화정책이 경기부양 쪽으로 선회한 것
이 경기 하락 추세를 반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금리를 인하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실업률이 큰 폭으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과 물가 안정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예측기관들이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의 성장률 상승에 필수요소로 꼽고 있는 것도 지속적인 통화완화 정책이다. IMF는 통화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세계 성장률이 무려 0.5% 포인트나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PMI 지수가 회복되고 있는 것에 대해 향후 수요에 대한 비관적 전망으로 생산을 줄이고 재고를 조정해왔던 제조 기업들이 다시 재고를 축적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환경기준 강화로 인한 자동차 산업의 부진이라든가 첨단기술 분야의 소강 상태 등 일부 산업, 일부 국가에 해당하는 일시적 악재들이 해소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12월 멕킨지 컨설팅사가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봐도 지난해 9월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6개월 전과 비교한 현재의 경제 여건을 묻는 질문에 9월에는 무려 74%가 악화됐다고 응답한 반면 12월 조사에서는 53%가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향후 6개월 후 경제 여건을 묻는 질문에서도 현재와 같거나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이 지난해 9월 34%(‘현재와 같다’ 26%, ‘개선’ 8%)에서 12월엔 53%(‘현재와 같다’ 39%, ‘개선’ 14%)로 늘었다. 국가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글로벌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지난해 9월경을 저점으로 서서히 바닥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실물통계로는 경기회복 징후 미흡
일부 긍정적 지표들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회복을 확인할 수 있는 거시경제 데이터는 아직 미흡하다. 지난해 4분기 실물경제 통계가 아직 완전히 집계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 3분기까지 경기 하강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OECD 국가의 투자는 지난해 1% 증가에 머물렀고 아직 반등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건설 분야도 여전히 부진하다. 지난 몇 년간 잠재 성장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했던 미국과 중국 경제가 이제 확연히 둔화되며 잠재 성장 수준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양상이다. 소비 역시 2018년 2.1%에서 2019년 1.6%로 둔화됐다. 그나마 이 정도 증가율을 유지한 것이 세계경제의 추가적인 하락을 막는 버팀목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역통계에서도 회복의 징후를 확인하기 어렵다. 지난해 3분기까지 발표된 분기 통계는 물론 지난해 11월 WTO가 집계한 월별 무역통계들도 8월에 비해선 다소 나아졌지만 여전히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수출 주문이나 해운 등은 일부 개선됐지만 전자제품, 원자재 등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0월까지 미국, 중국, 일본의 수출입 통계에서도 회복의 징후는 없었다.
이런 무역 부진은 제조업 분야에 계속 큰 짐이 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제조업은 지난해 4분기까지도 전혀 회복되지 못하고 제조업 생산이나 신규 주문 등은 7년만에 최저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조분야 무역 침체의 영향으로 독일 경제는 아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중간 무역마찰은 세계 교역을 둔화시켰을 뿐 아니라 경제심리마저 크게 위축시키고 투자 부진으로 이어져 세계경제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당분간 경기회복 부진할 듯
각국의 경기부양 노력에 힘입어 올해 세계경제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더라도 회복다운 회복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올해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예상한 IMF도 세계경제 회복엔 많은 불안 요인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모두 올해와 내년 저성장이 예상된다. 기업 투자와 수출 모두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비가 유지되어 추가적인 경기 하락을 막고 있지만 추가적인 고용 창출은 어렵고 근무시간도 감소 추세라 소비가 경기 회복을 이끌긴 힘든 상황이다.
IMF와 OECD 모두 개도국이 선진국보다 성장세가 높을 것으로 분석하면서도 중국 경제의 성장률은 5%대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IMF는 인도, 브라질 등 일부 신흥개발국의 성장률이 지난해보다는 높아지겠지만 사회 불안 등으로 인해 지난해 말 기대했던 것보다 부진할 것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지난해 3분기까지 인도, 멕시코의 거시경제 통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기관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역시 기업 투자의 부진이다. 2016년 설비투자가반짝 회복됐던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의 저성장 기간 동안 철강, 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 분야와 반도체 등 기술 분야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데 따른 일시적 반등의 성격이 컸다. 그러나 지금은 전반적인 공급과잉으로 제조업 가동률이 저조해 신규 투자 압력이 별로 높지 않다. 통상 마찰이 일상화된 상태에서 그 동안 세계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해외투자와 생산성 향상, 교역 활성화로 이어지는 세계경제의 선순환 고리가 끊긴 것이다. 결국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통상마찰이 완화되어 다시 기업의 심리와 투자 활동이 재개되고 글로벌 공급망의 전개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해야 세계경제는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경기하강 압력 거셀 듯
세계경제 회복에 대한 희망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이란사태와 브렉시트 후속조치, 최근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다양한 잠재적 위협 요인들이 상존해 있다. 미중 무역합의안의 지속 여부 등 무역마찰에 대한 우려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라 세계경제의 회복을 기대하긴 다소 이른 상황이다. 위기 요인들이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기업의 심리가 살아나서 다시 기업 투자가 재개될 때까지는 회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세계경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해외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GDP에서 수출과 제조업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경제에 세계경제의 부진은 큰 악재일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는 자체적인 내수 부양의 효과가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과열 같은 부작용도 피해야 돼 세계경제 여건이 안 좋으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세계경제의 하락이 제조업과 교역의 침체를 동반한 형태여서 우리 경제가 받고 있는 하락 압력도 매우 크고 지속적이다.
그나마 세계경제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국제기관들의 전망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주요 수출 시장인 선진국과 중국의 성장률은 올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우리에게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한국 경제의 여건이 지난해보다 그리 개선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인도와 중남미 등지의 성장세가 높아진다면 일부 기업들에게 시장을 넓혀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우리 수출의 회복을 견인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투자 심리가 얼어붙어 있는 게 큰 문제다. 그 동안 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신 사업을 전개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이렇다 할 결실을 맺진 못했다. 기술 장벽과 시장 개척의 난제이기도 하지만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도전과 변화보다는 생존과 현 상태 유지에 급급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벤처업계가 그나마 정부 지원에 힘입어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투입되는 자원과 시간에 비해 성과는 미미해 보인다.
정부는 당장 내수 부양을 위한 정책에도 신경을 써야겠지만 세계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장기적 시각으로 경제 곳곳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경제 주체들의 활력을 높일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세계경제의 부진이 길어지면 기업들의 도산과 부실 채권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에 힘을 써야 하고 비상시를 대비해 국가 채무와 재정 건전성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당장 효과를 보긴 어렵겠지만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 내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장기전을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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