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파리 구석구석 돌아보기(12)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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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쩌면 이 시리즈에서 가장 재미없는 스토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들이 다녀왔을 그래서 너무나 식상할 베르사이유 궁전을 다녀왔으니까요. 물론 나비고 패스와 뮤지엄 패스 두 카드를 믿고 나선 길이지요. 한 가지 출발부터 삐꺽거린 점은 제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가까운 역인 노트르담 생미셸 (Notre Dame St Michel) 역에서 RER C선 (노랑색)을 타면 바로 베르사이유 샤또 (Versailles Chateau) 역으로 갈 수 있었는데 역에 들어서자 그리로 가는 기차가 40분 후에나 들어온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빠리 교외선 열차가 운행되는 몽빠르나스 역으로 가서 기차로 베르사이유 샹티에 (Versailles Chantiers) 역에서 내려 다시 베르사이유 시내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저로서도 처음으로 가보는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버스에서 내린 뒤 몽빠르나스 역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기도 하는 실수를 저지르며 겨우 베르사이유 궁전에 당도했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 (Chateau de Versailles).
프랑스가 가장 번성했던 시대인 태양왕 루이 14세 치세의 상징이지요. 그렇지만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지고 난 뒤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체결한 곳도 역시 이곳. 달리 말한다면 프랑스 영욕을 동시에 상징하는 곳이지요.
루이 14세는 프랑스가 당시 유럽 열강들 중에서 굴지의 힘을 가졌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진 만큼, 그에 걸맞은 규모의 왕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짓기 시작한 궁전입니다. 제가 오기 전 프랑스판 유투브를 본 바로는 이 궁전의 건설이야말로 루이 14세가 주도하였고 오직 그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대역사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중국의 만리장성 건설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루이 14세는 과거부터 써 왔던 왕궁인 루브르궁의 서남쪽 시골에 있던 조그만 성을 바탕으로 이 거대한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5,000명의 사람들이 머물 수 있다는 궁전 자체의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부속 정원과 왕실 사냥터로도 사용한 주변 숲의 규모까지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여기를 저희는 30여년 전에 젊었을 때 하루 종일 걸어다니며 구경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궁전을 건설하기 전에 이 모든 부지는 늪지대와 구릉으로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편평하게 만드는 작업 자체가 매우 힘들었고, 그에 이어 역사에 없는 규모의 궁전을 건설한 데 이어, 정원 분수에 물을 대기 위해 (그것도 루이 14세가 좋아한 분수 쇼를 하기 위해서) 먼 강으로부터 8Km에 이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그것도 베르사이유 쪽이 더 높아 물을 치차식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을 채택) 실로 상상하기 힘든 대공사를 한 결과라고 합니다. 그 사이에 수만명의 일꾼들이 지쳐서 죽어나갔다고 하니 태양왕 하나를 떠받드느라 백성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당시에 루이 14세는 ‘짐이 국가다.’라고 호언하였으니, 이런 희생 정도에는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이 궁전은 루이 14세 개인의 궁전이라는 인식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후의 프랑스 다른 왕들이나 황제가 된 나폴레옹도 이곳에 살기를 꺼렸습니다. 궁전 내외부에 있는 루이 14세의 동상, 조각상, 초상화, 문양 등을 담습니다.
그래도 이 궁전 덕분에 세계 각지로부터 구름같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니 프랑스 사람들 일부 (특히 관광업계는) 아직도 태양왕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지요. 대표적인 궁전의 화려한 곳들 (내부 궁정과 거울의 갤러리), 왕과 왕비의 침대 등의 사진은 올려야 하겠지요.
오전에 궁전 내부를 보고 나니 이미 기력도 소진되어 버렸고, 오늘부터 빠리도 날씨가 꽤 더워지기 시작해서 멀리 떨어진 두 곳을 (그랑 트리아농과 쁘띠 트리아농) 가는 일이 아득하게 느껴지고 배도 슬슬 고파지기 시작했는데,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주 궁전과 트리아농 지역, 그리고 대운하 지역 (Grand Canal)을 연결하여 운행하는 느린 작은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에 8유로를 내면 계속 내렸다 다시 탈 수 있는 기차) 트리아농 지역에 내려 기차 기사에게 물으니 고맙게도 식당도 안내해 주네요. 쁘띠 트리아농 근처에 있는 이름도 거창한 안젤리나 식당. 그런데 이곳은 프랑스식 바게트 샌드위치가 가장 큰 식사라서 겨우 허기를 면하고, 커피 한잔씩 한 뒤 다시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쁘띠 트리아농은 주 궁전에서 할아버지 루이 14세의 압도적인 그림자를 싫어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또와네트가 아담하게 꾸며놓고 (특히 벽면에 초상화들 걸기를 생략하고) 머물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 흔적을 살펴보고 특히 주 궁전과 그랑 트리아농 등에 부속되어 만들어져 있는 기하학적 형태의 프랑스식 궁전이 아닌, 구불구불한 산책길과 자연스러운 연못도 있는 영국식 정원을 거닐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랑 트리아농은 나폴레옹이 전쟁을 준비할 때 야전 궁전으로 썼다고 하는 만큼 나폴레용의 흔적이 눈에 띕니다. 물론 나폴레옹은 전성기에 건설한 빠리 정남쪽의 퐁텐블로 성에서 머물기를 더 좋아했을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 안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당구대와 당구 큣대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 어느 쪽이 좋다고 할 입장은 못 되지만 이렇게 피나무를 자로 잰 즛이 잘라놓은 모습은 좋게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같이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오늘은 다소 먼길을 왕복한 셈이고 특히 걷기도 많이 해서 비교적 일찍 호텔로 들어왔습니다. 오는 길은 다행히 RER C선을 타고 바로 올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맨 위 사진에서 노란색 선 하나만 있는 기차를 타고 온 것이지요. 그래도 방문 기념으로 대표적인 지점에서의 저희들 사진 한 장씩 더 올립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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