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의 길목에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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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0일 통계청이 “마침내” 경기변동 주기의 기준순환일을 공식 발표하였다. 2017년 9월을 제11순환기의 경기정점으로 설정하였다. 이로써 경기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약 2년전에 경기가 정점에 달한 이후 지금까지 경기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되었다. 현재의 경기상황은 후퇴국면을 지나 본격적인 불경기에 도달하였다고 진단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통계청의 공식 발표 이후에도 불경기 관련 대책에 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의 경기변동에는 우리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작동하고 있다. 이 점을 간과한 채 거시경제정책 수단을 동원하여 경기를 조절하는 도식적인 정책으로 대응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큰 과오를 범하고 말 것이다.
우리 경제는 이번 경기하강을 계기로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경기하락은 과거의 경기변동과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경제는 종전과 다르게 움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겠다. 이런 시각에서 최근 경기변동의 특징을 짚어보고 향후 시사점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금번 경기변동은 아주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표상으로는 지금의 경기하락이 과히 심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지경이다. 경기판단의 중추 지표인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2019년 7월 현재 98.4로써 과거에 비하면 과히 낮은 수준이 아니다. 이 지표는 과거 지금의 수준 이하로 하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특히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93에 비하면 지금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리고 경기하락 속도 역시 매우 완만하다. 직전 경기정점인 2017년 9월 101.0에서 낮아지기 시작하여 22개월째 하락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2.6 포인트 움직인 것에 불과하였다(아래 좌측 그림 참조)
현재에는 이와 같은 미미한 경기변동성이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요인 정도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종전의 경기하락 정도와 비교하여 금번 경기후퇴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기변동성 완화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과 그 이면에는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최근 경기변동의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 번째 특징은 경기 하강 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정점(2017년 9월) 이래 금년 7월까지 22개월 동안 하강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과거에는 1991년 10월부터 1993년 4월까지 18개월 동안 하강한 것이 가장 긴 하강국면이었다. 따라서 최근의 경기하강은 이미 과거 최장 하강기간을 경신하였다. 게다가 현재 경기 하락을 반전시킬만한 호재가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 갈등 장기화 조짐 등 경제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데다 국내에서도 제조업 해외 이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러 유형의 갈등이 격화됨으로써 경제활동은 더욱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상당 기간 경기 하락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둘째 외형적 지표상으로는 현재의 경기하강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것 같지만 실상은 과거 극심한 불경기와 견줄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경기 하강의 심각성을 파악하기 위해 간단한 통계적 기법을 적용하였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12개월 이동평균을 기준으로 연간 변동폭을 구한 다음 이 변동폭이 추세 이상으로 벗어나는지 여부를 점검하였다. 2019년 7월 현재 순환변동치 연간변동폭은 최근 5년간의 표준편차 2배 하한을 훨씬 하회하고 있다. 작년 9월 1배 하한을 관통한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직년 12월에 2배 하한을 통과하였고 그 이후에도 계속 낮아지는 추세이다. 현재의 추세는 경기지표가 2배 하한선 아래로 일시적으로 관통한 과거 불경기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앞의 오른 쪽 그림 참조). 이 분석의 결론은 현재 우리 경제의 실물경제활동은 위기에 해당할 정도로 극히 부진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특이점으로는 현재의 극심한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가시적인 혼란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종전에는 극심한 불경기 대부분이 경제위기와 같은 혼란을 수반하였다. 종전의 극심한 불경기는 금융위기 형태로 진행되면서 그 파급효과가 일시에 가시적으로 나타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었다. 특히 1998년과 2008년 불경기는 금융부문의 문제점으로 촉발되어 그 영향이 실물 부문으로 파급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에 비해 최근에는 실물 부문의 활동이 극히 저조하지만 금융부문에서는 불안징조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로써 우리 경제가 무탈한 것으로 여기고자 하는 견해가 없지 않다. 실물 위축, 금융 건재라는 최근의 현상에 근거하여 우리 경제의 실상을 재해석하면 최근 우리 경제는 경제개발을 거쳐 발전해온 지난 70여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실물 경제가 금융부문에 비해 먼저 위축되는 초유의 상황에 처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금번 불경기는 호황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는 점도 특이하다. 불경기의 성격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전의 호황기가 어떤 요인으로 형성되고 붕괴되었는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2017년 이전의 경제 상황을 평가해보면 당시 경제 상황이 결코 호황이라고 할 만하지 않았다. 2013년 3월부터 경기가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회복세는 아주 미미하였다. 2016~17년 당시 경제가 지표상으로는 경기가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인 데 따른 착시현상에 불과하였다. 사실 2010년대 내내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생산이 위축되는 등 경제 활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었고 경제의 역동성 저하, 경제주체의 위험회피성향 강화 등으로 금융투기활동도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큰 외생적 충격도 없이 경기 순환 과정에 전환이 나타난 것도 이번 경기변동의 특징중의 하나이다. 일부에서는 최근 경기 둔화를 미중 무역분쟁에서 찾고자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중무역분쟁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19년 중반 이후라는 점에서 미중무역분쟁으로부터 최근의 경기 하락 원인을 찾는 것은 무리이다. 2017년 9월의 경기 하향 전환은 외생적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최근의 불경기는 우리 경제의 내부 취약성이 점증하는 가운데 신정부의 개혁적 경제정책이 본격적으로 집행되면서 나타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경제 2010년대를 기점으로 중대 기로에 서게 되었다. 과거 개발연대 이래 제조업에 기반을 둔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을 택하여왔다. 그러나 그 전략이 한계에 이르렀다. 국내 제조업은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가 강해지는 상황에 더하여 주요 수출산업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중국 등에게 추월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대략 2014년 전후의 시기였다. 그 시기부터 우리나라 수출이 세계 교역신장률에 미달할 정도로 부진해지기 시작하였다. 수출 부진은 국내 경제활력을 전반적으로 약화시키고 경제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이 되었다. 경기변동성 축소, 실물부문 위축 등 앞에서 살펴본 금번 경기변동의 여러 특징들도 사실은 수출이 과거와 다른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였다. 수출 부진과 저성장의 결과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소득불평등 등의 문제가 심화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결국 수출부진과 저성장이 우리 내부의 취약성을 축적하는 근본 원인이 된 것이다.
최근 경기변동의 특징을 종합 해석하면 현재 우리 경제는 경제개발 이래 70년 동안 유지해온 경제 체제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상항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한 체제 변화에 그치는 게 아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 경제는 성장 동력을 상실할지도 모르는 단계에 이르렀다. 새로운 산업의 창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 같이 수출 제조업의 약화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우리 경제는 회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수출 제조업이 약화된 상황에서는 앞으로 해외 여건이 개선되더라도 우리나라 수출이 늘어날 가능성 크지 않다. 따라서 우리 경제는 현재 진행 중인 불황을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우리나 경제 앞에는 장기불황(ling-term recession)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 경제의 이와 같은 심각한 국면 전환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정책당국의 경우 그 정도 심하다. 지금의 경기변동이 시작된 박근혜 정부에서는 각종 사건 사고의 영향으로 경기 확장이 제한적이라고 보는 한편 창조경제와 같은 구호에 불과한 산업정책은 제시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한편 현 정부는 경기하강 그 자체를 인정하려하지 않고 있다. 제조업 약화를 배경으로 한 불경기가 이어지는 데도 그 실상을 살피지 않은 채 소득주도성장 등의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데에만 진력하였다. 요컨대 지금 우리 경제가 과거와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우리 경제 문제점 등에 관해 근본적으로 진단하고 대처코자 하는 시도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불황이 이어지더라도 그 원인에 따라 대처하거나 감내하는 등의 전략이 있으면 더 이상 불황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각 경제주체들이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경제 활동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장기불황(major recession)은 불황의 원인도 모른 채 아무 대책도 없이 헤어나지 못하는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는 상황을 뜻한다. 이 상황에 이르게 되면 각 경제주체들은 불확실성에서 직면하고 상호 불신과 갈등 등의 내적 요인에 의해서도 경제가 더욱 위축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라가 직면할 단순한 장기간의 불황(long-term recession)이 “속수무책 형의 장기불황(major recession)”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이 다방면에서 경주되었으면 한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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