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사건이 만들어내는 이상한 담론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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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국민의 질책이 이어지고 있다. 탈영, 총기난사, 자살, 성추행, 구타 등 국민을 실망시키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최근 윤 일병을 죽음으로 몰고 간 병영 내부의 가혹행위가 밝혀지면서 성난 민심이 군을 더욱 어려운 처지로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냉정하게 되돌아 볼 때가 되었다. 성난 민심이 만들어내고 있는 담론들이 과연 합당한 것이지 다 함께 곱씹어 볼 때가 된 것이다.
군(軍)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건인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책임의 소재와 관련된 것으로 ‘군만의 책임’이라는 담론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해, 결코 군만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건들은 아니다. 탈영이니 자살이니 구타니 하는 것들은 애국심이 충만한 군대에서는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이다. 때문에 이런 사고에 대한 책임의 상당부분은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나라’ 가르치거나 학생들을 빨치산 추모제에 데리고 가는 선생님들이 져야 할 책임이 적지 않으며, 더 크게 보면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건국기념일이 없는 나라로 방치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다.
물론, 군이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군에 있으며, 군이 개혁해야 부분들도 많다. 문제는 재발방지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국방부는 8월 13일 부랴부랴 전군지휘관회의를 열고 ‘인권·안전·기강’이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인권이 보장되는 안전한 병영을 만들면서 군기강도 확립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이대로 될 것으로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다음번에 비슷한 사고가 터지면 군은 같은 약속을 반복할 것이고 성난 민심은 또 다시 포효할 것이다. 사회가 젊은이들 에게 국가관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는 한 이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군에게만 석고대죄를 요구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때 이른 모병제 주장으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윤 일병 사건이 파생시킨 또 하나의 이상한 담론은 모병제론이다. 성난 민심이 “이럴 바에야 차라리 모병제로 가자”는 담론을 만들어 낸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말해 될성부른 말이 아니다. 현재 한반도에는 남북한을 합쳐 도합 180만의 군대가 대치하고 있다. 특히, 120만 명에 달하는 북한군은 인구대비 5%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병력비율인데, 이는 수령독재 체제 하에서 병영국가가 되어버린 북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군사력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것은 오늘날 비전문가들도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군사밀도가 가장 높은 한반도에서는 군사력의 양도 여전히 중요하다. 복지의 후퇴가 어렵듯 모병제도 한반 실시하면 징병제로 되돌아오기 어렵다. 현재 한국이 이만큼의 국방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은 젊은이들이 군복무를 신성한 의무로 알고 무보수로 군복무를 해야 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통일이후에나 가능할 모병제 바람을 불어넣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현재에도 국방비에서 인건비 등 고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전력증강에 쓸 수 있는 돈은 1/3이 되지 않는데, 모병제로 전환하여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면 국방비는 어떻게 꾸려나가며 전력증강 예산은 어디에서 염출할 것인가. 빈부차이로 인한 위화감이 가져올 수 있는 전력차질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렇듯 수두룩한 현실문제들을 제쳐놓고 무작정 모병제를 주장하는 결코 책임있는 지식인들의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니다.
용맹스러운 장수들은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임 병장 사건, 윤 일병 사건 등이 군 인사에 미치는 파장도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군인은 매 단계에서 진급경쟁을 거쳐야 하고 경쟁과정 자체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보니, 흠결사항이 있는 사람들을 진급에서 배제하는 것이 일종의 전통처럼 자리잡고 있다. 음주운전, 회식자리의 상관에 대한 직언, 부대원의 자살 사건, 훈련 중 부대원 사망 등 진급의 결격사유로 간주되는 원인들은 다양하다. 게다가 출신학교별 또는 출신지역별 안배라는 암묵적인 기준도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애국심, 용맹성, 전투력 등이 주된 평가기준이 되어야 하는 군인의 인사제도가 이런 식이 되어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시험성적이 좋은 사람, 흠결사항이 없는 사람, 사고를 치지 않은 사람, 상관에게 곱상하게 처신하는 사람 등이 진급에서 우대를 받는 것이라면, 전쟁이 났을때 목숨을 초계처럼 던지면서 나라를 지켜낼 용맹스러운 장수들은 언제 길러내는가. 임 병장 사건이나 윤 일병 사건은 병사들과 스킨쉽을 나누는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등이 가장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지만, 노도와 같은 국민적 분노 앞에 지휘계선의 윗선의 간부들도 줄줄이 징계를 받았고 결국 멀쩡한 육군 참모총장까지 물러나야 했다. 앞으로도 이런 사고들이 얼마나 더 많은 ‘괜찮은 군인’들을 도중하차시킬 것인지 걱정스럽다.
윤 일병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나?
공연한 걱정이기를 바라지만, 개운치 않은 대목은 또 있다. 이런 식으로 병영 사고가 이어지면 언젠가는 ‘끝장세력들’이 등장하여 정쟁화(政爭化)를 부추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반대하고자 하는 사안이 발생하기만 하면 갈 데까지 가보자며 달겨드는 이들의 덕분(?)에 한국은 국정원 직원들의 위법행위가 드러나면 국정원 해체를 주장하고 건설회사 부실시공으로 교량이 무너져도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언제 또 이들이 등장하여 ‘한국군 해체’, ‘윤 일병 특별법’, ‘대통령 하야’ 등을 주장하고 나올지 모를 일이다.
물론, 윤 일병 사건을 접하면서 공연히 군을 편들 생각은 없다. 군이 국민 앞에 사죄하고 환골탈퇴를 기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무슨 사고가 나면 의례히 은폐부터 하고 보는 과거 관행을 말끔하게 청산해야 함은 당연한 첫 출발점이다. 병사들의 일과 후 자율권을 확대하는 일과 초급장교들의 자질 향상책을 강구하는 것도 필요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뒷감당을 할 수 없는 초강경 조치들을 요구하면서 끝없는 정쟁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렇다. 한국군이 ‘국민의 군대’인 이상 국민은 군을 질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질책에는 증오가 아닌 애정과 격려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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