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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의 전통문화 반딧불이 <10> 허균의 마음을 달래준 음식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3월04일 18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2월25일 17시43분

작성자

  • 김용호
  • 전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한국학 박사(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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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홍길동전’을 쓴 조선의 문신이다. 또한, 허균은 귀양 시절 우리나라의 팔도 별미음식을 소개한 향토음식 품평서인 “도문대작”을 지은 이기도 한데 여기서 ‘도문’이란 푸줏간의 문, ‘대작’은 크게 씹는다는 뜻으로 ‘푸줏간 문을 바라보며 씹는다’. 즉 유배지에서 여러 음식을 떠올리지만 먹을 수 없었던 애처로운 자신의 처지와 더불어 자신이 식도락가(食道樂家)임을 암시한 제목이기도 하다. “도문대작”에는 전국의 지역 요소요소 특별한 먹거리들이 골고루 적혀 있다. 떡, 과자, 과실, 육류, 해산물, 채소 등 다양한 특산물을 중심으로 그 고장의 맛을 소개하고 있는데 음식이 무려 134종에 이른다. 오늘은 그가 귀양 갔던 곳인 전라도를 중심으로 몇몇 지역의 귀한 맛을 살펴보며 음미하는 시간과 함께 전통음식에 대한 공감대를 한번 나누어 보자. 

 

1. 장성에서 만난 “죽순” 그리고 익산 구룡마을

 

허균은 도문대작을 통해 <죽순절임(竹筍醢). 호남 노령(蘆嶺) 아래 지역에서 잘 담그는데 맛이 매우 좋다>라 평가했는데, 노령은 지금의 전라북도에서 전라남도 장성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대나무가 많이 나는 곳이다. 주로 대나무는 아시아의 따뜻한 아열대 지역에서 자생하는데 우리나라 남쪽인 전라남도와 함께 대나무가 풍성히 자라는 곳 중 최북단인 전라북도 익산 구룡마을이 유명하다. 허균의 글처럼 노령고개의 죽순은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고 구룡마을의 죽순은 각종 무기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갖은양념의 건강 요리로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혈압을 조정하고 원기를 회복시키는데 아주 좋은 재료로 쓰이고 있으며 종류로는 죽순 양념무침, 죽순전, 죽순 된장국 등 다양하다. 죽순 특유의 아삭거림 질감과 고소한 맛, 은은한 향은 전통음식 중 가히 독보적인 맛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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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주 봉동의 맵싸한 맛 “생강”   

 

도문대작에서는 <생강(薑). 전주에서 나는 것이 좋고, 담양과 창평의 것이 다음이다>라고 했다. 지금도 전주 인근 봉동의 생강이 유명한데 허균 이전 시기에 편찬된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전주의 특산물로 생강을 꼽았으니 조선 시대부터 이 지역의 생강은 이름난 품종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생강을 재배한 시배지(始培地)라는 자부심이 있으며 지금도 봉동에서는 생강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청, 생강고, 절편, 편강, 젤리, 생강가루 등 여러 가지의 가공식품이 개발되어 있으며 생강청과 꿀을 가미한 차와 음료는 허한 기관지와 기분을 한층 맑게 하는 특별한 기운이 있어 많은 사람이 즐기는 전통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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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함평·무안·나주에서 나는 달디단 “감태(甘苔)

 

감태는 갈조류(褐藻類)의 해조(海藻)로 갈색 빛나는 파래이다. 바다 전복의 먹이로 중요하며 깊은 바다에서 난다. 김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양식이 어려워서 지금도 자연산을 채취하는 경우가 많다. 감태는 시원하고 단맛이 나는 겨울철 별미로 건강에 좋은 성분이 많은데 알긴산 요오드, 칼륨 등의 성분이 함유되어있어서 신진대사 촉진에 좋은 역할을 한다. 허균은 <감태(甘苔). 호남에서 나는데 함평·무안·나주에서 나는 것이 썩 맛이 좋아 엿처럼 달다>라 하여 그의 애정 어린 식도락을 밝혔다. 감태는 무침이나 나물처럼 비벼 먹는 경우도 많지만, 김처럼 얇게 펴 밥에 싸 먹는 경우가 더 많다. 감태의 색이 청초한 초록색을 띠어 더욱 호감이 가는 음식이기도 하다. 필자는 허균의 글처럼 아직 엿처럼 단맛은 아직 못 느끼고 고소한 맛만 체험했는데 그 시대 감태는 청정 자연에서 나는 본연의 단맛이라 생각하니 그때의 맛이 정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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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해안 부안 곰소의 맵고 고소한 ”자하젓“

 

새우젓은 우리가 다 아는 상식선의 젓갈이지만 자하젓은 생소할 것이다. 자하젓은 새우보다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개체로 1~2cm 정도로 아주 작다. 곤쟁이젓, 감동젓이란 또 다른 별칭도 있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자하(紫蝦). 서해에서 난다. 옹강(瓮康)의 것은 짜고, 통인(通仁)의 것은 달고, 호서(湖西)의 것은 매우면서 크다. 의주(義州)에서 나는 것은 가늘고 달다>라 논했는데 자하(紫蝦)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은 새우와 달리 연한 자줏빛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곰소항에는 젓갈 단지가 유명한데 새우젓, 자하젓, 어리굴젓 등 다양한 젓갈이 생산되어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허균이 말한 서해의 특별한 맛을 체험하려면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곰소항으로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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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친구인 한석봉에게 ‘나는 평생 구복(口腹)만을 위한 사람”이란 편지를 전했던 위인이다. 그만큼 본인의 미식을 알리고 일생의 복을 <맛>에 정의하며 한반도의 다양한 음식을 음미하고자 했다. 허균의 말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지만 한편으론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먹거리가 얼마나 다양하고 맛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현대에 이르러 많은 종류의 외국 음식들이 들어오면서 우리 전통음식이 점점 사라지거나 외면당하는 일을 겪고 있다. 허균의 탐나 했던 산해진미는 이제 우리의 식탁에서 보기 힘들어지고 타국의 재료와 입맛에 점점 길들어져 그들의 입맛에 수용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곤 한다. 

 

전통음식에 담긴 우리 천혜의 식자재는 단순한 재료를 넘어 한국인의 삶과 철학을 담고 있다. 그것은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자 우리 건강의 원천이었다. 이제 역사 속 지켜오고 음미하던 우리의 문화적 산물을 앞으로 향후 어떻게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더욱 고민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 오늘은 잘 익은 푸른 감태김에 달곰한 조선간장과 밥을 돌돌 말아 한번 맛나게 먹어봐야겠다. 여러분도 맛난 우리 천혜의 재료 반찬에 든든한 밥 한 공기로 하루를 마무리하시는 것이 어떨는지? 

 

* 전통예술과 궁중음식의 창의융합 콘서트 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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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0월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에서는 고종의 진연의궤에 사용됐던 정재악장의 춤과 음악, 준비 음식을 연계하여 한식 전문가 해설로 스토리텔링 전통공연을 개최했었다. 궁중 연희와 관련한 장악원(掌樂院 현재 국립국악원)의 전악(典樂)과 궁궐 밖 명창·명인의 전통음악을 선보였으며 조선 발상지인 전북특별자치도와 전주의 위상을 높여 전통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노력했다. 

 

교육학예실의 각 전공 교수들은 전통음악인 국악과 전통음식을 연계해 국악을 좀 더 친근하고 가깝게 향유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여는 무대는 1902년 만들어진 조선의 마지막 의궤 ‘진연의궤’를 영상과 함께 우조시조 ‘월정명’이 채웠다. 

 

첫 번째 무대는 효명세자가 만든 궁중정재 ‘춘앵전’과 진연 잔칫상을 선보였으며, 두 번째 무대는 민속 악(樂)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와 순창 고추장의 합을 만들었다. 세 번째 무대는 민속 악(樂) ‘씻김굿’과 진도의 뜸북국을 연결하여 호남의 특징을 살렸다. 민속 무(舞)인 ‘교방굿거리’와 잡채가 합을 이루는 네 번째 무대에 이어 궁중정악 ‘천년만세’와 골동반이 함께 어우러지는 작품을 선보여 융합 스토리 창출의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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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민속 가(歌) 남도민요 ‘육자배기, 자진 육자배기, 삼산반락, 개고리타령’이 백산자(白散子)를 만났고 마지막 무대로 민속 악(樂) ‘삼도농악가락 앉은 반 사물놀이’와 탁주가 ‘대동(大同)’의 의미를 담아 음악회의 멋과 맛을 완성시켰다.  

 

전통음악과 전통음식의 창의융합 토크 콘서트였던 교수음악회는 전북특별자치도의 멋과 맛에 다시금 깊이 빠져드는 시간이었으며 격조, 품격과 함께 한국 궁중문화의 매력을 동시에 전하는 연주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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