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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39> 올여름 뱅크시(Banksy)의 거리 미술을 보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8월19일 16시51분
  • 최종수정 2024년08월18일 09시30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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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런던 거리에는 매일 자고 나면 한 점씩 야생 동물을 소재로 한 스텐실 작품이 등장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것들은 세계적 명성을 가진 얼굴 없는 거리예술가 뱅크시(Banksy)의 작품으로 인스타그램에 이미지를 올려 자기 작품임을 알렸다. 시내 이곳저곳에 9개의 야생 동물의 이미지를 작품으로 남겼는데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건물 외벽 좁은 돌출 구조물 위에 위험하게 서 있는 산양 한 마리, 건물 창가에서 서로 코로 대화하는 듯한 코끼리 두 마리, 낡은 차가 주차된 담벼락에 그려진 코뿔소, 생선튀김 가게 간판에 그려져 있는 생선을 집어삼키고 있는 한 쌍의 펠리컨, 철교에 매달린 세 마리의 원숭이, 동물원 셔터 위에 그려진 셔터를 걷어 올려 갇혀있는 새와 물개를 탈출시키는 고릴라, 건물 지붕에 놓인 위성 접시 위에 그려져 마치 만월을 배경으로 울부짖는 듯한 늑대, 도심의 경찰 박스 유리창을 큰 어항 삼아 그린 숱한 피라니 떼들. 거리의 가림막 합판 벽에 그려진 고양이 실루엣 등등….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은 매일 새로운 작품이 등장할 때마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무더위 속에 신선함을 만끽하기도 했다. 물론 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이 중 많은 작품을 훼손하거나 없애버렸다. 붉은 벽돌 담에 그려진 코뿔소는 다수의 시민이 지켜보며 만류하는 가운데 복면을 쓴 한 젊은이에 의해 스프레이로 파손되는 장면이 촬영 공개되기도 하였다. 공공기관들은 이 뱅크시의 작품들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노력을 기하기도 했다. 도시 벽면에 그래피티를 제작하는 일은 불법으로 그가 익명으로 활동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20여 년 동안 신출귀몰한 방식으로 너무도 많은 작품을 제작하여, 그의 작품은 이미 새로운 예술 브랜드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작품이 그려진 건물의 소유자들은 이들 예술작품으로 보호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이 작품을 판매하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미술의 제도적 메커니즘을 교란시키고 있기도 하다. 

 

  1970년대 초 영국의 남부 글로스터셔의 근처 도시인 예이트 출생으로 추정되는 뱅크시는 1990년대부터 브리스톨에서 풍자적인 거리 예술과 파괴적인 메시지를 자신만의 독특한 스텐실 기법으로 그려진 그래피티와 블랙 코메디를 결합한 초기 작품을 선보였다. 뱅크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많은 추종자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게릴라 거리예술가’의 팬과 수집가 중에는 배우 브래드 피트를 포함한 A급 연예인도 있다. 2000년대 초 런던으로 이주하여 명성을 얻었고 현재까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뉴욕은 물론,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나 우크라이나와 같은 전쟁 지역에까지 진출하여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유도 경기로 표현하며, 러시아의 거구 선수를 우크라이나의 소년 선수가 업어치기로 넘겨버리는 장면으로 그린 벽화작품을 전쟁의 폐허 속에 남겨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경찰이나 공권력을 조롱하거나,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등 매우 비판적이거나 풍자적 입장의 벽화를 제작하였는데, 예술적으로는 제작과 유통 방식의 측면에서 기존 예술의 어법과 제도를 전복하는 의도를 가진다. 대개는 키치적이거나 대중예술의 어법을 사용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미술사에 등장하는 렘브란트나 반 고흐, 모네 등의 명작들을 패러디하여 이를 새로운 맥락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는 지난 7월 8일자 본란 컬럼 '문화시평<36>예술의 힘 또는 자유와 평화'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대서양을 건너오는 국제 난민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민들의 이주선 구매를 지원한다거나 대형 아트 페스티벌에서 난민들의 문제를 돌발적으로 제기하는 등 작가를 넘어 정치활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미 50대에 들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뱅크시는 그간 몇 번에 걸쳐 자기 작품들로 제도권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가 하면, 작품을 소더비에 경매 의뢰한다거나, 그의 작품들의 이미지를 문화상품으로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제도적 맥락 속에 개입해 기존의 제도적 미술이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적 속성을 비판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 있는 하트모양의 풍선을 들고 있는 소녀의 이미지를 가진 작품 <풍선과 소녀>의 경매 사건이다. 이것은 2018년 그의 작품이 소더비 경매에서 104만 파운드(당시 환율 15억 원)에 낙찰된 직후, 생중계로 작품을 파쇄하는 퍼포먼스였다. 낙찰과 함께 경고음이 울리며 액자 하단에 장착된 쇄단기로 작품이 빨려들어 갔다. 뱅크시가 현대 미술시장의 작품거래 관행을 조롱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현장의 관계자들이 급히 분쇄를 멈췄을 때엔 이미 작품의 절반이 잘린 상태였지만, 낙찰자는 이 작품을 그대로 소장키로 했다. 그리고 작품명을 <사랑은 휴지통에>로 바꾼 이 작품은 3년 후 경매에서 잘리기 전의 20배 가까운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이 제도적 맥락에서 전시되거나 상품화될 때, 소유권이나 저작권상 복잡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뱅크시가 벽화를 제작한 건물의 소유주는 작품을 지우거나 때에 따라서는 작품을 오려내어 판매하기도 한다. 이 경우 소유권이야 건물주에게 있지만 이 작품의 저작권은 뱅크시에게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의 이미지를 상업적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뱅크시는 자기 작품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페스트 콘트롤(Fest Controll)이라는 대행사를 두고 그의 작품의 저작권과 진품 증명 업무를 관리토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근자에 인사동에 뱅크시의 작품을 다루는 전시 공간이 조성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유명한 뱅크시의 스텐실 벽화작품들을 전시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의 작품의 생명은 현장성과 장소 특정성임을 생각할 때, 작품이 전시되는 환경을 아무리 거리의 상황처럼 꾸민다고 하더라도 그 원작의 맛을 느끼기엔 한계가 있지만 관객들은 뱅크시의 명성에 환호한다. 결과적으로는 뱅크시가 비판하고자 했던 사회적 문제가 단순한 상품 이미지가 되어 미술시장이라는 자본의 블랙홀 속에 함몰되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특히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한 문화상품은 그 신랄한 비판적 아우라가 사라진 채 하나의 기호로서 상품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사회 비판, 풍자적 태도를 고려하면, 올여름에 등장한 야생 동물들 역시 이러한 문제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산양을 팔레스타인의 위기라든지 원숭이를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몰려나는 주민들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등 해석이 분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다른 경우와 달리 제목은 물론 제작 의도를 추측할 수 있는 공식적인 해석을 발표하지 않았다. 관람자들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고 있는데 모든 동물이 위협을 받고 있거나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생태 담론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의 작품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이론보다 더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 단순히 동물을 그리는 걸 좋아해서 런던에서 즐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우리의 상황은 영국과 다르지만, 생활 속에 대중과 긴밀히 소통하며 매일매일 시민들에게 신선한 도전이 될 만한 작업을 제공하는 탁월한 익명의 거리예술가가 출현하면 어떨까?    

<ifs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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