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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 규제개혁위원회부터 개혁하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2월17일 22시3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46분

작성자

  • 김상조
  • 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

메타정보

  • 31

본문

지난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장장 7시간에 걸쳐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경제를 ‘온탕 속의 개구리’로 비유한 맥킨지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규제개혁이야말로 특단의 개혁조치”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규제의 양면성을 인정하면서 “규제강화와 규제완화의 균형”을 강조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론적 선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의 논의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식의 강경 드라이브 기조가 확인된 이후 각 행정부처는 규제철폐의 양적 지표를 채우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인 반면,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규제개혁이 일방적인 규제완화로 경도되어 경제민주화의 후퇴 또는 시스템 리스크의 증폭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격렬하게 비판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양측 입장의 정면충돌은 향후에도 계속될 것이며, 따라서 규제개혁의 방향 및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개혁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경기규칙(rule of game)을 변경하는 것인 만큼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 나아가 정치적 신념의 충돌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그 결과 규제체계의 보완⋅대체 관계가 훼손되면서, 어떤 영역에서의 과잉규제와 다른 영역에서의 규제공백이 공존하는 혼란이 지속된다. 특히 진영간 대립이 격화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규제개혁 논의는 각 진영의 내재적 한계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즉, 한편으로, 보수진영은 국가개입의 최소화를 통한 시장의 자유를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이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의 폭력적 개입을 요청하는 자기모순을 되풀이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진보진영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통제를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국가의 민주성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관치적 개입을 비난해야 하는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탈출구가 없다. 문제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보자. 한국의 규제개혁 논의에서 흔히 간과되는 핵심이 있다. 규제개혁은 누가 어떤 절차로 진행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특정 규제의 효과를 선험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실체적 기준을 찾기는 어렵다. 국내외 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결국 규제개혁의 향배는 얼마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규제개혁을 추진하는 기구의 구성원을 다양화하여 국민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기구가 내린 의사결정의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규제개혁은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고 심판이 선수로 뛰고 있다고 의심하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경기의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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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칙적으로 모든 규제는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규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법률의 위임을 받아 각 행정부처가 제정하는 시행령⋅세칙⋅규정⋅지침 등의 하위법령에서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중요 법률은 행정부가 발의하는 정부입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세계 각국은, 행정부처가 제정하는 하위법령의 합헌⋅합법성을 자체 점검하고, 규제체계 전체의 합리성 및 개개 규제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행정수반 또는 내각 산하에 규제개혁 기구를 설치⋅운용하고 있다. 물론 그 구체적인 형태는 나라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규제개혁 기구의 투명성과 책임성 정도가 규제개혁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규제정보포탈(www.better.go.kr)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등록규제만 14,971건이 존재하고, 미등록 행정규칙도 14,0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많은 규제들을 지난 3월 20일 행사처럼 대통령이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면서 개혁할 수는 없다. 결국은 규제개혁의 실무작업을 조정⋅관리하는 control tower가 필요하다.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 소속의 규개위는 정부의 규제정책을 심의⋅조정하고, 규제의 심사⋅정비 등에 관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1998년에 설치되었다. 현행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르면, 규개위는 20~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장 등 2명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공무원인 정부위원을 제외한) 민간위원은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중에서 대통령이 위촉’하는데, 전체 위원의 과반수가 되어야 한다.

 

  현행 규개위의 특징은 다음 두 가지다. ⅰ) 공무원 조직인 행정기관으로서의 성격과 민간인으로 구성되는 자문기구로서의 성격이 혼재된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ⅱ) 민간위원 전원을 대통령이 위촉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형태로, 국민 대표성과 책임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즉,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반면, 그 의사결정에 대해서 전혀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규제개혁의 control tower로서 규개위의 권위를 인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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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을 위한 입법예고 기간 중에 다음과 같은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우선, 장기 과제로서, 규제개혁 기구를 ‘실무집행 기능을 맡는 행정기관’과 ‘민간인으로 구성되는 자문기구’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현재 영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한편, 단기 과제로서, 현행 규개위의 민간위원 전부 또는 일부를 국회에서 여야 협의를 통해 추천하도록 함으로써 국민 대표성을 제고하며(현재 방통위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규개위의 관할 대상에서 국회⋅법원⋅감사원 등의 헌법기관은 물론 공정위⋅금융위⋅방통위 등의 합의제 행정위원회도 제외함으로써 그 자율성을 보장하고(현재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규개위의 의사결정 내용 및 그 근거 자료는 물론이고 심의 과정에서 접촉한 이해관계자와의 의견교환 내용도 모두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현재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이 제안들 중 수용된 것은 하나도 없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률개정안에는 규개위의 국민 대표성과 책임성을 제고하는 내용은 전혀 없이, 오히려 그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만이 담겼다. 그 대표적인 조항으로, 시장진입 또는 사업활동을 제한하는 규제에 대해 ‘원칙허용⋅예외금지’의 네거티브 규제방식 적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면서 규개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그 적용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한 것, 그리고 규제를 신설⋅강화할 때에는 그 순비용 만큼 기존규제를 감축하도록 한 ‘규제비용총량제’를 도입하면서 그 예외인정 여부는 규개위의 심의를 거치도록 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래서야 “규제강화와 규제완화의 균형”을 달성할 수 있을지 지극히 의문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당인 새누리당이다. 최근 새누리당은 당론으로 ‘공공부문 3대 개혁법안’을 발의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국민행복과 일자리 창출⋅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개혁특별법안」이다. 이는 기존의 행정규제기본법을 완전 대체하는 것인데, 규개위를 사실상 무소불위의 기구로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원칙허용⋅예외금지의 네거티브 규제방식을 ‘우선 고려’가 아니라 ‘우선 적용’토록 명기하고, 규개위가 그 적용을 권고할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반드시 따르도록 하였는데, 이는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포함되었다가 수정⋅완화되었던 것을 다시 살린 것이다. 나아가 규개위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중앙행정기관에 대해서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로써 규개위의 권고는 사실상 ‘명령’이 되는 셈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회의 입법권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내용을 국회의원들 스스로 발의했다는 점이다. 우선, 규개위가 법률의 개정 또는 폐지 등에 관한 의견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 역시 입법예고안에 포함되었다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반영하여 삭제되었던 것을 되살린 것이다. 또한, 국회⋅법원⋅감사위원 등의 헌법기관도 ‘자발적으로’(?) 이 법의 취지를 적용하도록 하였는데, 예컨대 의원입법의 경우에도 원칙허용⋅예외인정의 네거티브 규제방식 및 규제비용총량제 등을 적용하라는 취지이다. 이는 전경련이 강력히 주장해 왔던 내용이다.

 

  결론적으로, 입법예고 절차를 통해 국민 의견을 반영하여 수정된 법안을 완전히 무시하고, 전경련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는 새누리당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당인지 모르겠다. 이러고도 ‘국민행복과 일자리 창출⋅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개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후안무치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규제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규개위 구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규제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전경련의 요구를 받아쓰기 하는 수준의 새누리당 인식으로는 개혁은커녕 갈등만 부추길 것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로 하여금 규제개혁에 반대할 수 있는 안성맞춤의 빌미만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에 감히 충고한다. 규제개혁을 원하는가? 그럼 규개위부터 개혁하고, 당신네들 생각부터 개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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