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의 바다’와 ‘바다주권’ 수호 해경은 ‘해체’가 아니라 ‘바른 해경’으로 거듭 태어나야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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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바다’에 던져진 해경
세월호참사로 우리 바다가 분노와 통곡으로 들끓고 있던 지난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느닷없이’ 해경해체를 선언했다. 통곡의 바다를 달래는 속죄양으로 해경을 던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에서 해경이 인명구조라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원인을 “해경이 출범한 이래, 구조 구난 업무는 사실상 등한시하고 수사와 외형적인 성장에 집중애온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되어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해경의 몸집은 계속 커졌지만 해양안전에 대한 인력과 예산은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고, 인명구조 훈련도 매우 부족”했다고 질타했다.
박 대통령은 해경의 구조업무의 실패를 구조적인 문제로 보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해경을 해체하고 “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기고, 해양 구조·구난과 해양경비 분야는 신설될 국가안전처로 넘겨서 해양 안전의 전문성과 책임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했다. 해경이 재난과 인명구조에 대한 예산도 부족하고 훈련도 부족했다면 앞으로 이를 확대 강화시켜주면 될 일인데 오히려 해체시킨다는 것은 설득력도 없고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국가적 대형 재난사고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데 구태여 해경을 해체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은 박근혜 정부의 해경의 탄생과 해체, 그리고 부활의 아픈 과거사에 대한 역사인식이 전혀 안되어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해양철학의 빈곤과 해양비전과 전략의 부재에서 비롯된 지극히 자의적이고 편향된 사려 깊지 못한 판단이란 생각이다.
1996년 8월의 결단
18년 전인 1996년 8월 8일로 정해진 ‘해양수산부(해수부)’ 발족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던 7월 말경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광일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청와대에서 긴급수석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해양경찰청(해경)’을 그대로 경찰청 산하에 둘 것인지 아니면 신설되는 해양수산부로 이관시킬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역시 고인이 되신 당시 이의근 행정수석비서관은 경찰청과 내무부의 입장을 반영 해경을 그대로 경찰청산하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수부 신설에 따라 농수산수석비서관을 농림해양수석비서관으로 바꾸고 해수부업무를 관장하게 된 당시 나의 생각은 달랐다.
1996년 1월 29일 ‘유엔해양법’의 발효를 위한 국회비준절차가 완료되면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획정 등으로 ‘신 해양시대’를 맞이하여 새로 출범하는 해수부의 관점에서 해경은 확장된 해양영토의 수호와 함께 해양수산에 대한 종합행정을 펼쳐나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하부조직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나는 해수부이관을 주장했다. 해수부신설의 대의명분자체가 신 해양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종합적인 국가해양수산정책의 수립 추진과 해양주권의 수호였다.
해경은 바로 바다영토의 수호라는 큰 축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1992년 대선당시 부산지역정서에 영합하는 정치적 공약으로 해수부 신설이 채택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YS정부 출범이후 해수부 신설은 반대에 부디 쳐 있었다. 그러다 유엔해양법 발효를 계기로 명분을 얻어 해수부 발족이 탄력을 받고 전격적으로 추진되었다. 해경이관 문제로 행정수석과 농림해양수석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자 김광일 실장은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대통령을 모시고 재론 대통령의 결심을 받자고 했다. 김 실장은 본인의 판단을 유보하고 공을 대통령에게 떠넘겼다. 대통령 앞에서 해경이관논쟁이 다시 벌어졌다. 이 자리에는 비서실장, 행정수석, 경제수석(고 구본영), 농림해양수석이 참석했고 행정수석과 나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 했다. 나는 내 의견 말미에 ‘만약 해경을 해수부로 이관 시킬 수 없다면 해수부 신설자체가 명분을 잃는 일’이라며 해경은 절대 해수부로 이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주저하지 않고 해경을 해수부로 이관시키라고 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해경의 해수부 이관은 그렇게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1961년 갑작스럽게 폐지된 ‘해무청’이 35년 만에 다시 해수부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해경도 해수부의 외청으로 독립하였고 그후 지위도 경찰청수준으로 격상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해수부 발족을 기하여 “동아시아의 거친 바다를 제패했던 조상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21세기 해양강국을 건설하자고”고 자신의 해양비전을 밝혔다.
‘평화선’과 '해경(Coast Guard)'의 탄생
사실 해경은 우리 바다주권을 수호하기위한 목적으로 처음 창설되었다. 1950년대 초 6.25동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우리바다는 일본 어민들의 밥이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동력선이 거의 전무했던 시절 우리 어민들은 낡은 배와 기술로 연안 어장을 맴돌고 있었다. 동력과 기술을 앞세운 일본 어선들은 우리 앞 바다까지 침입 요즈음 중국 어선처럼 불법조업과 남획을 일삼았다.
정부는 우리바다의 어족자원보호와 일본어선 불법조업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이승만대통령의 단호한 결단으로 1952년 ‘평화선(일명 ’이승만 라인‘)’을 선포하고 이 선을 침범하는 일본어선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어선들은 평화선을 무시하고 불법조업을 계속했다. 정부는 평화선 수호를 위해 보다 강력한 해양경비기구가 필요했다. 정부는 휴전직후인 1953년 12월 내무부 치안국(경찰청 전신) 산하에 ‘해양경찰대’를 창설했다. 1955년 2월에는 더욱 강력한 평화선수호와 함께 수산, 조선, 해운, 항만 등 해양수산에 관한 정책의 통합적 추진을 목적으로 오늘날의 해양수산부에 해당하는 ‘해무청’을 창설하고 해양경찰대를 해무청 산하로 이관 ‘해양경비대’로 확대 강화했다. 그리고 평화선을 침범하는 모든 일본 어선을 나포하기 시작했다. 이 일로 현해탄의 갈등의 파고는 높아갔고, 당시 일본은 우리 평화선을 무력화시키고 해무청 (특히 해경)을 폐지하는데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했다고 한다. .
'해(양)경(비)'에서 '해(양)경(찰)'로 축소
1961년 10월 당시 박정희군사정부는 전격적으로 해무청을 폐지하고 해경을 다시 내무부 치안국 소속으로 이관 축소시켰다. 30년이 지난 1991년 경찰청 산하 해양경찰청이 되었다. 이런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해경은 해양경비(coast guard)라는 바다수호를 위한 해경 본래 기능은 축소 폐지되고 ‘육(지)경(찰)’의 연장선상에서 해(양)경(찰)
(maritime police)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정부가 왜 갑자기 해무청을 폐지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당시 일본정부가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한 젼제조건으로 평화선과 해무청의 폐지를 강력히 요구한 상황에서 경제개발을 위해 한 푼이 아쉬웠던 정부가 일본의 청구권자금을 받기위해 평화선과 해무청과 해경을 놓고 중요한 거래를 했을 것이란 추측만 남아있다.
그 후 해경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육경에 종속되어 1996년 YS정부에서 해수부의 외청으로 다시 태어나기 까지 35년간 내무부 치안국(본부)의 찬밥이 되었고 경찰청의 ‘말(末)청’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명색이 해경이지 실제에 있어서는 육경과 다르지 않았고 청장에서 말직에 이르기 까지 해경의 주요간부자리 대부분은 ‘해’자나 ‘수’자와 상관없는 ‘육경’사람들의 차지가 되었다. 한마디로 해경은 본래의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영혼없는 조직이 되었다. 나는 200해리 시대를 맞아 해경이 우리 바다주권을 수호하는 핵심기관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해수부 이관을 주장했던 것이다.
해경은 ‘바른 해경’으로 거듭 태어날 때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해수부폐지론’이 대두되었다. 해수부를 김영삼대통령의 부산정서에 대한 정치적 산물로 해석한 것이다. 나는 김영삼 대통령을 설득, 당신의 결단으로 만들어진 해수부를 존치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김 대통령이 직접 당선자에게 해양수산부 존치를 당부하는 것이라고 건의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던 해양수산부는 창립 12년이 되는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결국 폐지되었고 해경은 국토해양부의 외청이 되었다. 그러다 박근혜 후보가 부산지역정서에 영합, 선거공약으로 해수부 부활을 약속했고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해수부가 다시 부활되었고 해경도 해수부의 외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진단처럼 해경은 1996년 경찰청에서 분리 독립된 지 18년이 되었지만 35년간 길들여진 ‘육경 종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해왔고 독립기관으로 제자리를 잡지 못해 온 것 같다. 해경은 육경의 말청으로 안주하면서 낡은 구태를 청산하지 못해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년간 해경청장을 거쳐 간 인사들이 대부분 육경출신이었다는 사실하나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경을 재난과 인명구조라는 안전의 관점에서만 재단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가 아니다. 더군다나 불법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들과 바다주권수호를 위해 전쟁 아닌 전쟁을 계속하고 있고, 중국과 일본에 둘러싸여 독도와 이어도 수호, 해저자원개발 등 대륙붕개발을 둘러싼 갈등으로 동아시아의 바다가 요동치고 있는 이때 해경을 폐지하는 것은 우리 바다주권수호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해경은 폐지가 아니라 육경의 구태를 도려내는 자기혁신을 통해 ‘바른 해경’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아니 거듭나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른 정치, 바른 정치가가 해야 할 몫이다. 박근혜 정부와 국회의 바른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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