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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의 절대 미학
미국 테네시 주의 주도인 내슈빌은 흔히 음악과 교육의 도시로 불린다. 시카고에서 세인트루이스, 내슈빌, 멤피스, 뉴올리언스로 이어지는 길은 언제나 재즈의 향연으로 넘쳐난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와 더불어 컨트리 음악의 성지로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멤피스와 더불어 내슈빌은 음악적 리듬으로 이루어진 도시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음악 도시 내슈빌은 내게 음악 이전에 미술적인 도시로 관심을 끌었었다. 내슈빌을 소개한 관광 자료에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실물 그대로 복원한 파르테논을 비롯해 시내 곳곳에 그리스풍 건축이 눈에 많이 뜨이기 때문에 남부의 아테네라 불리기도 한다는 대목 때문이었다.
테네시 주의 성립 1백주년 기념으로 1931년 센터니얼 공원(CENTENNIAL PARK) 중앙에 복원된 파르테논을 찾아간 것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지 5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1999년 처음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파르테논 신전은 감동 그 자체였다. 신들마저 질투할 것 같은 장인의 걸작이었다. 전체의 반 이상이 훼손된 상태였는데, 그게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만약 원형 그대로였다면, 아예 그 자리에서 놓여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남아있는 파르테논을 통해 고대 그리스 시절의 원형을 그려보다가 서점에서 그 원형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들어있는 책을 구입하여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그 파르테논을 실물 크기로 복원해 놓은 것이라니 내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그런데 막상 내슈빌의 파르테논 앞에 섰을 때, 나는 바라볼 수가 없었다. 모작의 천박함을 어쩔 수 없이 노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르테논은 비록 많이 부수어진 상태일망정 아테네의 진품, 그 단 하나로 족한, 아니 단 하나여야 마땅한 어떤 절대 경지라는 생각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꼭 같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한 경험을 베를린에서도 했다. 서베를린 지역의 관광 명소로 손꼽히는 샤롤로텐부르크 궁전(Schloss Charlottenburg)은 프리드리히 1세의 왕비인 조피 샤롤로텐의 여름 별궁으로 1699년 지었다는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동서 양쪽에 공예박물관과 선사초기 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으며, 왕후의 방도 공개된다. 뒤에 정원도 제법이다. 만약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지 않았더라면 상당히 경탄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베르사이유를 거쳐 온 경우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나 규모가 비슷하면서도 건축적 심미성 등 여러 면에서 베르사이유를 좀 서툴게 모방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창적인 첫 창작품과 그 유사품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유사 이해 세계는 늘 ‘첫’에 의해 변화를 거듭해온 것이 아닐까. 어떤 면에서 세계사는 ‘첫’들의 역동적인 역사에 다름아닌 것이다.
창의적 발상과 변화 창조
의미 있는 인간 행위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포함해 이웃과 세계를 변화시킨다. 새롭고 창의적인 발상에 의한 행위는 더욱 그러하다. 가령 농경 시절의 벼농사만 하더라도 그렇다. 직파법으로 벼농사를 짓다가 이앙법을 생각해내고 실천했을 때 그 영농 효과는 가히 혁신적이었다. 방적기의 발명이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고, 또 전기의 발명은 인류의 생활과 문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게다가 컴퓨터의 발명은 어떠한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는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혁신은 인간 삶의 패러다임은 물론 존재론적 감각마저 바꿔놓고 있는 실정이다. 컴퓨터 기술이 구축하고 있는 가상현실은 지금까지 인류가 견지해왔던 현실 감각과 존재 영역의 인식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그런 것만이 아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그런 사례는 아주 넉넉하다. 문학으로 좁혀 생각하더라도 그렇다. 스토우 부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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