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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교수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2월23일 21시4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07분

작성자

  • 이덕환
  •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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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교수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이 땅의교수들이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온갖 비리와 비행을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수능 출제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래서 작년부터 연이어 터져 나온 수능 출제 오류가 출제를 담당하는 ‘교수’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앞세워 검토 ‘교사’들의 역할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아서 생겼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난이도 조절 실패와 출제 오류로 엉망이 되어버린 수능의 출제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부가 구성한 개선위원회의도 교사 1명을 제외하면 전원이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멀쩡하던 수능을 망쳐버린 교수들에게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교수들의 추락이 어제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교수가 학문에 정진하는 양심적인 학자, 후학을 양성에 전념하는 훌륭한 스승,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유능한 전문가로 인식되었던 시절은 없었다. 교육 수준이 낮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 덕분에 그나마 교수들이 어정쩡한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 뿐이다. 더욱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권위주의 시대에는 실제로 교수가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변변한 교재나 자료도 없었고, 시설도 엉망이었던 대학에서의 연구와 교육은 선진국의 흉내를 내는 수준이 고작이었다. 대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이 아니라 학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우골탑’(牛骨塔)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알량한 전문성을 내세우다가는 자칫 권력에 아부하는 ‘어용’으로 내몰리기 십상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사정이 나아지고,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학의 사정도 크게 달라졌다. 대학의 수와 규모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교수의 수도 덩달아 증가했고, 대학에 대한 연구비 지원과 시설 투자도 크게 확대되었다. 대부분의 대학이 화려한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에 분주했고, 시설도 몰라보게 개선되었다. 물론 대학에서 교수들의 교육과 연구도 크게 활성화되었다. 1990년대부터 밀어닥친 세계화의 바람에 따라 비록 일부 지역에 편중되기는 했지만 외국인 학생의 수도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교수가 대학에서 해야 할 일도 늘어났고, 사회 참여의 기회도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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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팽창하고 발전하면서 교수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 것은 사실이다. 정치를 비롯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동이 크게 늘어났다. 특히 정치 참여에 적극적인 교수들에게는 ‘폴리페서’라는 반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여지기도 했고, 자질이나 자격이 부족한 교수들의 무분별한 정치 참여에 대해 ‘홍위병’ 논란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기업의 사외 이사 등의 영리 활동으로 상당한 부수입을 올리는 교수도 늘어났고, 정부의 지원금과 대학의 값싼 시설과 인력(대학원 학생)을 이용한 벤처 창업에 열을 올리는 교수도 많아졌다. 언론을 통해 명성을 얻은 교수도 크게 늘어났다. 물론 자신의 전문성을 앞세워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교수들의 노력을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대학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교수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는 필요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엇이나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 참여에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나 충분한 자질을 갖추지 못한 교수들이 자신의 주제를 잊고 무분별하게 나서는 것이 문제였다. 최근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대부분 그런 부류에 속하는 교수들이었다. 논문을 베끼고, 제자의 논문을 가로채고, 연구비를 횡령·유용하는 자신들의 행적을 과거의 관행 때문이라는 옹색한 주장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변명이다. 비록 우리가 연구 윤리를 명문화 하는 작업을 소홀히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표절·위조·변조를 용납했던 적도 없었고, 제자의 논문을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키는 황당한 일을 관행으로 인정했던 적도 없었다. 허영에 들떠 자신의 준비와 자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애써 망각하고 공직에 나서는 교수들도 각성을 해야겠지만, 공직 후보자의 윤리성·도덕성·전문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높아진 기대치를 외면하는 정치권과 정부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인사 실패는 정부에게도 치명적인 일이지만, 교수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에도 심각한 손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교수들의 사회적 위상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주체는 역시 교육부와 교수들 자신이다. 그동안 교육부는 대학의 구조 조정이라는 명분으로 앞세워 세계화, 특성화, 벤처, 대학원 중심, 세계적 수준의 대학(WCU), 산학협력, 융복합, 지역혁신, 교양 교육 등의 강화를 요구해왔다. 교육부의 무리한 요구를 아무 저항도 없이 수용한 교수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지금도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대학의 구조 조정을 핑계로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평가를 밀어붙이고 있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재정적으로 취약한 대학들에게 얄팍한 재정 지원을 앞세운 교육부의 요구는 결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교육부의 알량한 지원금에 눈이 멀어 교육부의 비현실적인 요구를 선선히 받아들인 교수들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대학은 가장 중요한 기초 학문 대신 정체불명의 실용학문이 넘쳐나는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목표를 상실하고 휘청거리면서 무의미한 구조 조정만 반복하고 있는 대학에서 정작 교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오히려 얄팍한 지원금으로 대학을 길들이는 일에 맛을 들인 교육부를 드나들면서 얻어낸 작은 정보로 대학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과 이익을 챙기는 뚜쟁이 교수들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 부처를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관료들을 위한 봉사 아닌 봉사에 열을 올리면서 대단한 권력이나 거머쥔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교수들도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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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의 구성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학문과 교육 경력으로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는 크게 줄어들었다. 오히려 특훈·특임·석좌·산학협력 등 무려 80여 종이 넘는다는 화려한 교수직을 차지하는 퇴직 관료·언론인·기업인들이 대학 사회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퇴직자들의 풍부한 경력을 활용해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명분은 공허한 것이다. 실제로 교육과 연구 경력이 전혀 없는 퇴직자들이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과거 경력을 부당하게 활용한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로비스트의 역할이 고작이다. 퇴직자들의 안식처로 변해버린 대학에서 교수들의 위상은 더욱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교수들의 대대적인 자정(自淨)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에 연이어 불거지고 있는 교수들의 성추문과 연구비 관련 비행에 대해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만 한다. 교수들의 집단 이기주의도 심각한 문제다. 자신들의 전문성만을 앞세운 ‘마피아’들에 의한 폐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교육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육과정·입시·제도·교사양성 및 재활용 등 교육정책 전부를 틀어쥐고 있는 교육 마피아와 원자력은 모두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우기는 원전 마피아의 중심에는 언제나 집단 이기주의에 깊이 빠져버린 교수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 명백한 우리 현실이다. 겉으로는 ‘융합’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집단 이기주의를 철저하게 해체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스승과 학자로서 교수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서둘러야 한다. 교수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대학이 무너지면 선진국 진입의 꿈을 실현시켜줄 창조적 인재 양성은 불가능해진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인 교수들이 스스로의 사회적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지 못하면 교수들의 추락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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