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계층 간의 이득과 부담의 배분이 재조정되기 때문이다. 즉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계층은 부담을 더 하거나 기득권의 일부를 내려놓아야 하는 반면에 다른 계층은 최소한 부담이 완화되는 혜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는 계층은 반발하고, 장기적으로 혜택을 보는 계층은 소리(voice)가 없다. 따라서 반대하는 계층의 반대 명분을 약화시키는 최선의 길은 구조 개혁정책에 대한 소리 없는 국민들의 지지를 높이는 것이다.
한편 이 성과와 소리의 시간적 비대칭성으로 인하여 구조 개혁은 경제적 타당성과 정치적 득실 또한 비대칭 하는 모순(?)을 내포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비대칭성의 모순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이해집단과는 물론 국민들과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정부의 구조 개혁정책의 대의(大義)와 진정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 등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속 좁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명칭 자체가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공무원 자신들의 정책과제를 국민들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즉 명칭부터 국민을 설득하려는 목표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3년 안으로 완수 하겠습니다” 라고 보고하는 속 좁은 계획을 가지고 있다.
기득권을 가진 계층도 시대가 변한 만큼 이대로 갈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언제 어떤 식으로든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양보를 할 때는 양보를 할 만한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즉 공무원연금의 적자가 이대로 커진다면, 다음 세대로 갈수록 부담이 커지는 만큼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내세워야 기득의 수급자들과 공무원들도 납득할 수 있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실행을 위해 양보를 하라고 한다면, 누가 그런 제안을 납득하겠는가? 3개년은 정책추진 목표시한이자, 현 정부의 3개년이며, 담당 공무원들이 잘 보여야 할 현 정부 인사권자에게 중요한 3개년이지 공무원연금 기득권자에게나 일반국민들에게는 3개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따라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대의(大義)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현 정부의 목표나 시한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들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한 목표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서도 명칭을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명칭을 쓰는 것이 타당하다.
2003년 독일 당시 슈로더 총리가 내세웠던 “Agenda 2010”이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 경제를 재생하기 위한 국가개혁과제를 국민들에게 내걸고 설득하는 것이지 슈로더 정권의 목표를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가의 장래 10년·20년 나아가 100년을 내다보고 국가과제를 혁신하고자 한다면, 예를 들자면 「경제혁신 2030」과 같은 명칭을 붙이는 것이 국민들을 설득하기 좋다. 최경환 부총리는 금년 신년사에서 “구조개혁 고통 딛고 30년의 성장기를 마련합시다”고 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3년으로 하다가 새해가 되었다고 갑자기 30년으로 늘어나니 그 “30년의 성장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대의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해질 턱이 없다.
“슬며시 끼워넣기”
굳이 문건의 체계를 따진다면 공무원연금 개혁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큰 틀 속에 있는 세부과제라고 할 수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언급이 공식 자료로 처음 등장한 것은 2014년 3월 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세부실행과제 확정발표 자료에서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2014년 1월 15일 “추진방향”이 발표되고, 2월 25일 “참고자료”가 기재부에서 발표되었으나, 이 두 번의 발표에서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하여 하등의 언급이 없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것은 연합뉴스 2014년 2월25일자임. 그러나 기재부의 자료에는 2월 25일 발표된 “참고자료”에는 관련 내용이 없으며, 3월 5일 발표된 “세부실행과제”에 포함되어 있음.
. 세 번째로 3월 5일 발표된 “세부실행과제”에서는 “직역연금 개혁”이란 제목 하에 “재정 재계산 등을 통해 직역연금의 제도적 개선방안 마련”이 과제 내용으로 붙어 있다. 세부적으로는 2014~‘15년간에 직역연금 재정재계산을 실시하고 ’16년까지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공무원연금 개혁논의는 수면 밑으로 들어갔다가 10월 17일 정부가 새누리당에 보고하는 것으로 다시 부상하고 10월 27일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세부과제이긴 하지만 연금개혁은 이해관계자의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만큼 공무원연금 수급자는 2013년말 현재 363,017명, 현직 공무원 수는 2014년말 현재 100만명을 초과,
군인연금 수급자는 82,313명(2014년말).
이와 같이 “끼워 넣기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알리기에 타당한 개혁과제라고 볼 수는 없다.
“시끄러우면 없던 일로”
기획재정부가 2014년 12월 22일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공공부문 효율성 향상의 세부방안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입법 노력을 강화하고 군인·사학연금의 개혁안 마련“이 언급되어 있다. 이미 2014년 3월 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세부실행 과제로 발표된 사항이므로 실무진으로서는 2015년 경제정책 방향에 언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언급을 하지 않았다면, 언론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을 사안이다.
그러나 이 소식이 국회에 전해지자 가득이나 공무원연금 개혁안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여당으로서는 여당과 협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에 대하여 반박했으며, 그 결과 기재부는 23일 ”군인연금과 사학연금의 개편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정된 입장이 아닙니다“는 해명 자료를 내고 한발 물러섰다. 이제는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개혁은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검토한 바 없는’ 일로 개혁과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 되었다.
경제개혁을 하겠다는 국회나 정부나 국민들에게 참으로 한심한 모양을 보였다. 국회는 대(對)야당 협상의 짐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다음 순서가 군인연금과 사학연금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져 있는데 마치 없던 일처럼 외면하여 비난을 피해보자는 여당 지도부의 태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편 국회가 한 소리한다고 해서 이미 2014년에 발표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검토한 바 없는” 일로 오리발을 내미는 정부가 어떻게 엄청난 반발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
3대 연금의 개혁 문제가 시끄럽다고 해서 없던 일로 처리해도 되는 일인가? 그래도 좋을 일이면 처음부터 시작을 말았어야 했다. 정부나 여당이나 과연 이 한 시대를 정리하는 힘든 과제를 밀어 붙일 정책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국궁진력(鞠躬盡力)하여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전달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정부는 지휘대, 국회는 행동대”
구조 개혁을 하자면, 관련법들을 개정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여당이 야당을 설득하여 협조를 얻어야 한다. 한편 야당이 여당의 입법 협조요청에 응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하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정부의 2중대”처럼 보인다면, 야당으로서는 여당에게 협조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여당의 2중대”로 보일 것을 우려해서도 협조하기 어렵다.
정부가 이미 2월에 보도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10월 17일 되어서야 여당에게 보고했고, 여당은 부랴부랴 27일 여당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렇게 정부가 여당을 “정부의 2중대”로 보이게 하는 한에는 여당이 국회에서 주도권을 잡고 야당을 설득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여당이 국정의 중심축으로서 위상을 보여 주어야 야당도 진지하게 협상할 정치적 명분이 서는 것이다.
슈로더 전 독일 총리의 충고, “정권을 걸어라!”
2003년 당시 독일 경제는 고령화와 통일비용의 부담, 경직적인 시장구조와 관료주의 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었으며, 이런 암담한 상황을 국민들은 체념하고 있어 개혁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높은 노동비용으로 인하여 기업들은 줄줄이 독일을 탈출하고 있었으며, 그 결과로 실업률은 높아지고 성장률은 떨어지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당시 슈로더 총리는 경제 악화와 정치 지지도 저하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The Economist지 2002년 12월 7일자는 “An uncertain giant”라는 독일 특집을, 2003년 2월 17일자 BusinessWeek는 커버 스토리로 “The Decline of Germany”를 실고, 독일이 취약한 경제와 개혁의지가 낮은 정치로 인하여 빠르게 일본을 뒤쫓고 있다고 비판하고, 독일인들이 깨어나 경제성장을 활성화하는 방법을 찾지 않는다면 회생 불능의 노제국(老帝國)으로 끝날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슈로더 총리는 2003년 3월 14일 연방하원에 “Agenda 2010“이라는 일련의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경제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대폭 인하하였으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세금감면 및 규제완화 등을 통해 저소득 일자리(mini-jobs) 취업 및 1인 자영업 창업을 촉진하고, 실업자들이 실업급여에 의존하는 유인을 대폭 축소했다. 한편 연금개혁안으로 사용자의 연금부담은 줄이고 노동자의 부담은 늘리면서 노동자의 퇴직연령을 늦추어 연금부담 총액을 확대하여 연금재정의 건전화를 도모했다.
그러나 “Agenda 2010”의 추진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슈로더 총리가 속한 사민당 내부에서 좌파는 개혁안이 사회적 약자층의 부담만 증대시킨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발한 반면에 연정에 참여한 녹색당은 개혁안이 미진하다고 공격을 했다. 경제개혁안이 10월 하원을 통과하였으나, 개혁정책에 대한 반발로 사민당에 대한 지지도는 더욱 낮아 졌으며, 2005년 9월 총선에서 참패하자 슈로더 총리는 11월 사임했다.
슈로더 총리가 “Agenda 2010”을 발표했을 때, 개혁안이 미진하다고 비판했던 기민당의 메르켈이 대연정으로 총리직을 승계하여 슈로더 전 총리의 “Agenda 2010”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독일 경제는 놀라운 경쟁력을 보였으며, 이 과정을 통해 유럽의 맹주로서의 위상을 활보하게 되었다.
만약 슈로더 전 총리의 “Agenda 2010”이 독일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대안이 아니었다면, 메르켈 총리는 이를 승계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슈로더 전 총리는 단기적으로는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하고 정권을 잃었으나, 장기적으로는 “독일 경제를 구한 사람”으로 칭송을 얻었다. 슈로더 전 총리의 사례는 구조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권을 넘어서는 역사적 소명과 진정성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구조 개혁, 국민과 소통에 성공하려면?
구조 개혁은 저성장·고령화시대에 대응하여 한국 경제를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들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이것은 한 정권의 업적 차원의 과제가 아니다. 그런 만큼 정권 차원을 넘어서 저성장·고령화시대에한국 경제가 살아남기 위한 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을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정부가 보여준 모습에서 최대 문제는 이 역사적 과제를 박근혜 정권의 업적 차원으로 국민들에게 보이도록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란 정책명칭이 단적으로 그렇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세부 개혁과제들이 기재부에서 나오기보다 경제의 구조적 위기 극복을 위해 광범위하게 민간 인사들이 참여하여 진솔하고 진지하게 노력한 특별위원회 보고서 형태로 대통령에게 추진을 건의하고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으로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국민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기재부의 새해 정책과제로 꺼내기에는 너무 무겁고 어려운 과제들이다. 정권을 넘어선 역사적 과제로서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광범위하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그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진정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정부와 여당은 더 이상 표를 의식한 ‘꼼수’를 써서는 안 된다. “세금을 올린 정부”라는 정치적 주홍글씨를 달지 않기 위하여 정부와 여당은 담배 값 인상을 굳이 국민 건강을 위한 범칙금 인상이라고 우겼지만, 이 이야기를 그대로 수긍하는 국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로 정부와 여당의 이야기에 대한 진정성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것을 정부와 여당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들이 저성장·고령화라는 변화된 경제 환경 하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꾸려가는 데 필수적인 역사적 과제를 에둘러 심각한 것이 아닌 것처럼 관심 없는 것처럼 꼼수를 써서 피한다면 어떻게 그런 태도로 정책의 진정성을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국가의 장기적 명운을 결정하는 역사적 대의를 가진 국과과제인 만큼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정면으로 호소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대통령의 호소가 광범위하게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확산하여 지지를 얻어야 여당도 야당을 설득할 명분이 생기고 야당도 이를 수용할 명분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