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이 두려운 에듀푸어를 위한 조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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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19명에 불과하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초저출산 현상을 ‘집단적 자살행위’로 규정한 바 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야말로 가장 전형적인 자살행위 국가가 아닐 수 없다.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한국이 저출산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날린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무척 성공적이었던 산아제한 정책
한국의 경우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시작되기 직전인 1960년에는 합계출산율이 6.0명에 달했었다. 때문에 개발연대 동안 정부는 인구성장 억제를 위한 산아제한을 주요 정책과제 가운데 하나로 설정했었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더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를 도처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셋 이상 자녀를 둔 부모들은 갖가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셋째 아이부터는 의료보험 혜택이나 학자금 지원에서 배제되어야 했고, 아파트 분양 때도 두 자녀 이하 가구에 우선권이 부여되었다. 이러한 적극적 산아제한 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 1985년까지는 합계출산율이 1.7명으로 급감하게 된다. 이는 4반세기 동안에 이루어진 출산력 변동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성공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저출산과 에듀푸어 문제의 핵심은 과중한 교육비 부담
80년대 중반까지 진행되었던 급격한 출산력 변동 이후 90년대 중반까지는 합계출산율이 비교적 안정적인 추이를 보인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 외환위기를 경험한 뒤로 합계출산율이 다시 크게 감소하기 시작하여 2005년에 1.08명으로 역사적 저점을 기록하게 된다. 이후 상황이 다소 나아지는 양상을 보이고는 있지만 추세적인 반등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양한 요인들이 출산율의 추세적 반등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는 과중한 양육비 부담이 지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3년에 발표한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녀 1인당 대학 졸업까지 소요되는 비용이 총 3억 8964만 4000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계되었다. 그리고 자녀양육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교육비로 밝혀졌다.
자녀 1명을 기르는 데 이처럼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녀양육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교육비라는 점과 관련해서는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저출산을 고착화시킴은 물론 에듀푸어도 양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결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에듀푸어란 부채가 있고 지출이 소득을 초과하는데도 평균 이상의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교육 빈곤층을 가리킨다. 지난 2012년에 현대경제연구원은 ‘국내 가구의 교육비 지출구조 분석’ 자료를 통해 국내 에듀푸어 실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때문에 가난하게 생활하는 에듀푸어 가구 수가 80만 4000 가구이고 가구원은 30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전체 가구의 13%에 해당한다.
부모들이 추가적인 출산을 자제하고 노후까지 포기하며 과도한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은 자녀에게 보다 안정된 미래를 보장해 주려는 뜨거운 교육열의 발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지메이슨대 브라이언 카플란 교수는 이러한 선택의 맹점과 관련하여 상당히 흥미로운 관점과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 카플란 교수는 ‘자녀를 더 많이 가져야 할 이기적 이유(Selfish reasons to have more kids)’란 저서에서 자녀의 성공에는 양육방식(nurture)보다는 유전형질(nature)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설파했다. 구체적으로 자녀의 성공 가능성을 제고하려는 부모의 눈물겨운 노력이 아동기 초기에는 다소 성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자녀가 성인기에 진입한 이후에는 그 과실이 거의 사라진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인 카플란 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거로 상이한 환경에서 성장하게 된 일란성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수행된 다수의 연구들에서 얻어진 방대한 자료를 제시했다. 아울러 상술한 맥락에서 카플란 교수는 자녀가 어떤 바람직한 특성을 갖게 되길 원한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아낌없이 비용을 지출할 것이 아니라 그 같은 특성을 지닌 배우자를 고르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조언을 남기고 있다.
독친이 될 개연성을 높이는 저출산
우리 국민의 교육열을 추동하는 핵심요인 가운데 하나로 노력주의를 들 수 있다. 교육적 성취를 결정하는 것은 지능과 같은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투입된 노력이라는 점에 대한 강고한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노력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다수의 부모를 독친(毒親: toxic parents)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주 이른 시기부터 자녀를 자신의 욕심대로 양육하는 과정에서 자녀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학령기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자녀의 성격 형성에도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기영어교육 열풍 때문에 지난 10년 사이에 영아기 영어교육이 3배나 증가했다. 아울러 유아 대상 영어학원 가운데 학원비가 100만 원 이상인 곳이 지난 3년 동안에 2.8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는 최근 자녀를 하나만 둔 상태에서 그 자녀에게 부모의 교육적 열망과 경제력을 올인(all in)하는 일이 흔해지면서 상당히 우려할 만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을 개연성을 시사한다.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에 따르면 0∼3세에는 감정과 정서 발달에 주력할 필요가 있고, 전두엽이 크게 발달하는 3∼6세에는 인간성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언어교육은 두정엽과 측두엽의 발달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만 6∼12세에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만일 자녀를 과잉 조기교육에 내몰게 되면 가느다란 전선에 과도한 전류를 흘려보내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여 자녀가 각종 정신 질환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아동과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고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 같은 지표들은 우리 자녀들의 심신이 얼마나 피폐해 있는지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들이 노후까지 포기하며 이른 시기부터 자녀교육에 올인(all in)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되기 어렵다. 그보다는 각박하고 파편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때때로 의지가 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동기(同氣)를 하나 더 자녀에게 남기는 게 훨씬 더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카플란 교수에 따르면 자녀가 전혀 없는 부모와 한 자녀 부모 사이의 행복도 차이는 5∼6%포인트이지만, 첫 아이 이후 둘째부터는 행복도 감소분이 .6%포인트에 불과하다. 따라서 부모들이 독친이 되는 것을 불사하고 자녀교육에 매달릴 요량이 아니라면 자녀를 하나 더 두는 선택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금 인성이라는 가치가 무척 희소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나뿐인 자녀를 두고 애면글면 피를 말리는 세월을 보내는 것보다는 자녀를 최소한 둘은 갖고 좀 더 느긋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녀의 인성에도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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