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게 애원하는 대통령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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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정부 누가 더 셀까. 정부가 당연히 더 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옛날에는 분명히 그랬다. 이제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한국경제는 이제 재벌의 인질이 되었다. 그 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에 재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나라경제 전체가 마비된다. 재벌이 투자를 축소하면 나라경제 전체가 위축된다. 재벌이 정부정책에 비협조적이어도 정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저 사정하는 수밖에 없다.
민주화 이후 정권은 5년 단임이다. 거기다가 2년만 지나면 레임덕에 들어간다. 재벌들이 이런 정권을 무서워 할리 없다. 불편한 정권은 2년만 참고 적당히 성의만 보이면 다음 정권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재벌은 영원하고 권력은 유한하니 당연한 일이다.
이제 재벌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어디에도 없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주영 후보 때문에 선거 때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재벌을 벼르고 있었고, 취임하자마자 재벌로부터 일체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재벌개혁을 시도 하였다. 재벌들은 바짝 엎드렸다. 투자도 접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초조한 쪽은 정권이었다. 정권 초기에 무엇인가를 보이고 싶어 하기 마련인데 경제 활성화가 최고의 선물이다. 김영삼 정부는 신경제 100일 계획이라는 것까지 내걸고 경제 활성화에 힘을 쏟았다. 그렇지만 아무런 징후가 없었다. 재벌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에서의 성과 없이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대통령은 결국 재벌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치하여 자기의 트레이드마크인 칼국수를 대접하면서 재벌들을 도닥거리고 안심시켰다. 그 이후의 정책방향은 뻔해졌다. 재벌개혁이 아니라 재벌지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조차도 강력한 재벌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재벌개혁은 하는 척만 하다가 성과도 내지 못하고 물 건너 가버렸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재벌정책이 오히려 후퇴하는 아이러니를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재벌지원을 부르짖었기 때문에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재벌 주도 성장론을 주창했다. 이명박 정권이 내세운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는 이를 압축적으로 대변하는 정책 슬로건이다. 정부가 갖가지 지원정책으로 대기업을 띠우면 소위 말하는 낙수효과에 의해 중소 및 영세기업도 뜨기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국가경제 전체가 활성화된다는 논리였다. 이를 위해 이명박은 취임하자마자 각종 재벌규제를 폐지하는 등 대기업 지원책을 우선적으로 시행해 나갔다. 그 혜택은 고스란히 대재벌에게로 돌아갔다.
재벌은 다시 확장되어 나갔다. 그러나 비 재벌부문은 한겨울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항구에 물이 들면 큰 배도 뜨고 작은 배도 뜬다고 했는데 작은 배는 개펄에 박혀있고 큰 배만 항구를 들락거렸다. 재벌은 돈이 넘쳤지만 비 재벌은 엄동설한이 계속되었다. 재벌은 돈이 넘치고 사내유보금이 쌓여갔지만 이를 풀지 않았다. 투자는 늘지 않았다.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임기 2년여가 지나자 이명박 정부는 깜작 놀랐다. 주장하고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갑자기 ‘공정사회’를 들고 나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이 아닐 수 없다. 공정사회와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정반대 정책인데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의 실패도 인정하지 않은 채 아무런 대책도 없이 공정사회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이제는 동반성장이라는 메뉴가 활개 치기 시작했다. 어느 정책이 이명박 브랜드인지 완전히 헷갈리게 만들었다.
말로만 외친다고 공정사회가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의 경제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 되고 말았다. 국가경제의 재벌집중 현상은 심화되고 양극화는 한국경제를 벼랑으로 몰고 갔다. 박근혜 후보는 이를 방치하고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느닷없이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나왔다. 그때까지의 박근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슬로건이었다.
어쨋든 외치고 외치면 국민들은 마취되고 세뇌되기 마련이다. 박근혜가 마치 경제민주화의 해결사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마음에 없던 얘기는 언젠가는 겉으로 들어나기 마련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된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경제민주화는 완전히 폐기시켜 버렸다. 이제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경제민주화는 신화 속의 얘기가 되고 말았다.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당선되었던 박근혜 대통령조차도 재벌과 한통속이 되어 버렸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도 다시 재벌 중심으로 그 궤도를 되찾아 갔다. 이명박 정부보다 더 친 재벌 기조로 돌아섰다. 소위 규제개혁이라는 슬로건은 부동의 재벌 브랜드이다. 오래 전부터 재벌들은 눈만 뜨면 규제개혁을 외쳤다. 규제개혁은 필요한 정책이지만 한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은 아니다.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야 하지만 필요한 규제는 더 강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의 이면에는 항상 재벌이 있다. 규제는 재벌에게 불편하고 불리하다. 재벌은 그 자체가 한국경제이기 때문에 경제규제는 모두 재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재벌은 항상 규제개혁을 외치는 것이다. 지금 주장되는 규제개혁은 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다르게 표현한 별칭에 불과할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명박 정부를 그대로 이어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한 술 더 나아간 재벌 중심 경제 전략이다. 재벌들이 불편해 하는 규제를 풀어 재벌에게 국가 자원을 몰아주면 경제가 활성화 될 것이라는 구태의연한 접근이다. 이 정책은 이미 앞의 여러 정권에서 실패를 경험한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최경환 부총리를 내세워 더 노골적인 재벌 육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일본의 아베가 내놓고 있는 확장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 정책이 효과가 있든 없든 재벌이 없는 일본에서는 그나마 부작용은 최소화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확장정책의 수혜자는 재벌일 것이 틀림없다. 경제구조는 더 뒤틀어질 것이다. 박정희 시절에나 통했던 정책을 30년 후에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을 보면 이제 재벌의 힘은 통제 불가능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모든 대통령들이 선거 때는 재벌개혁을 외치다가 당선되고 나서는 재벌과 한통속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재벌의 힘이 그만큼 막대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벌을 바꿀 수 있는 세력은 이제 없다. 이것이 한국경제의 가장 큰 고민이다. 재벌개혁은 선거 때만 나오는 정치구호로 타락해 버렸다. 새로운 대통령을 또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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