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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와 열린 창의성·2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1월21일 20시0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52분

작성자

  • 우찬제
  • 서강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메타정보

  • 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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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가 그려졌던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세한도>에 대한 흠숭과 수용은 그치지 않았다. 여러 문학 작품들에서 <세한도>를 직접 다루거나, 주요한 제재로 사용했다. <세한도>의 열린 창의성 덕분이다. 여기서는 <세한도>를 고전적 맥락에서 수용한 한승원의 장편소설 추사(2007)와 현대적 맥락에서 재창조한 장석주의 시 「세한도」를 중심으로 <세한도>의 열린 창의성 현상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늠해 보기로 한다.

 

유(儒)·불(佛)·도(道) 융합과 원각(圓覺)의 경지

한승원의 추사(2007)는 추사 김정희를 주인공으로 재현한 역사적인 소설이다. 추사의 일대기를 역사적인 사료에 바탕을 두고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을 보태어 형상화한 작품이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2권에는 ‘세한도’라는 장제가 붙은 대목이 나온다. 추사가 <세한도>를 그리는 순간을 상상적으로 재현한 부분이어서 특별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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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청나라를 다녀온 이상적이 보내온 서책들을 추사는 뒤적거려보기도 하고, 붓의 털들을 쓸어보기도 한다. 먹의 향기를 맡아보기도 하면서 추사는 겨울 한파 속에서도 이상적과 같은 따뜻한 이들의 온정이 있어 자신이 살아갈 수 있음을, 추운 난세를 견딜 수 있음을 절감한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추사는 뜨거운 감회를 주체하기 어렵다. 하늘을 향해 심호흡을 하며 추사는 이렇게 고마운 이상적에게 어떻게, 무엇으로 보은해야 할지 잠시 고민한다. 고민도 잠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른 것이 없음을 그는 이내 간파한다. “시방 나의 형편으로는 난을 쳐주거나 그림을 그려 보은하는 수밖에 없다. 설 전후의 추위를 견디고 있는 난이나 소나무를 통해 내 마음을 형상화시켜주자.” 작가 한승원은 여기서 난과 소나무에 대해 각각 도학자 풍과 유학자 풍이라고 말한다. “줄기가 없지만, 칼 같은 잎사귀와, 봉이나 흰 코끼리의 눈 같은 꽃으로 기품을 드러내는 난이 도학자 풍이라면, 줄기가 튼실하고 헌걸찬 소나무는 유학자 풍이다.” 그러다가 이내 생각을 더 밀고 나가며 소나무에 대한 복합적인 상상력을 펼친다. “소나무가 지맥 속에 뿌리를 깊이 뻗고 짙푸른 하늘을 푸른 가지로 떠받치고 있는 것을 보면 공자의 모습이지만, 그것이 드리우고 있는 거무스레한 그림자를 먼저 보고 태허 속에 우듬지를 묻고 사유하고 있는 자세를 보면 깨달은 석가모니의 모습이다. 하늘과 달과 별과 구름과 안개와 바람과 새들과 소통하는 소나무의 몸은 신화로 가득 차 있다.” 소나무에서 공자를 읽어내고, 또 석가모니를 통찰하고, 이내 우주의 신화적 비의를 관조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어지간한 대목이다. 그런 상상력으로 소나무를 성찰할 수 있었기에, 추사의 내면 정경 또한 웅숭깊게 형상화한다. 그것은 곧 불후의 명작 <세한도>의 동기를 추적해 들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추사는 문득 겨울 한파와 적막과 침잠 속에서 다사로운 몸피를 둥그렇게 키우고 있는 우주의 시원을 형상화시켜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림 한 폭이 머리에 그려졌다.”

 

 설 전후의 고추 맛보다 더 매운 찬바람이 몰아치자, 모든 짐승과 새들은 모습을 감추고, 푸나무들은 죽은 듯 말라져 적막하건만, 건장한 소나무만 푸른 가지를 뻗은 채 우뚝 서서 제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하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를 부축하고 있다. 그 부축으로 말미암아 늙은 소나무는 간신히 푸른 잎사귀 몇 개를 내밀고 있다. 그 두 나무 옆에 집 한 채가 있는데 그 집은 마음을 하얗게 비운 유마거사처럼 사는 한 외로운 사람의 집이다.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앓고 있는데 어찌 깨달은 자가 앓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며 칭병하고 누운 채 문병하러 오는 불보살들에게 불가사의 해탈의 진리를 설하는 유마거사. 그는 일체의 탐욕으로부터 벗어난 손님들에게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줄 심산으로 그의 집 거실을 텅 비워놓았다.

세한 속에서 얻은 불가사의 해탈의 무한 광대하고 둥근 깨달음[圓覺]은 텅 빈 하늘을 흡수지처럼 빨아들인 신묘한 힘이다.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고, 세상의 모든 바닷물과 강물들을 한 개의 털구멍 속에 다 쑤셔 넣을지라도, 수미산과 겨자씨와 사해의 물과 털구멍들이 모두 끄떡도 안 하는 그 신묘한 힘은 공자와 맹자의 어짊과 안빈낙도와 노장의 무위와 다르지 않다. 그 힘은 그 집의 주인으로 하여금 장차 병에서 일어나 중생들과 더불어 살게 할 터이다.(한승원, 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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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작가의 개성적 상상력에 의해 <세한도>의 세계는 심원한 해석의 지평을 낳는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세한도>에서 건장한 소나무와 늙은 소나무 사이의 상생을 읽어내고,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 집 속의 인물을 대승적 해탈의 진리를 설파한 유마거사로 변용했다. 또 <세한도>에서 원으로 열린 문에 주목하고 원의 신화적 상징성에 근거하여, 집안의 인물과 집밖의 소나무 사이의 관계를 암시했다. 작가가 연상한 소나무와 집 속의 인물 사이의 유비를 통해 둥근 깨달음[圓覺]의 경지를 형상화하면서, 새로운 창조의 지평을 열었다. 이 소설에서 <세한도>의 수용 맥락은 복합적이다. 불교의 원각(圓覺), 공자의 인(仁)과 안빈낙도, 노장의 무위(無爲)를 융합한 맥락에서 미적 경험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복합적이고 대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응시했다. 작가 나름대로 상징적 변형을 시도한 경우인데, 이 때의 유·불·도 융합의 지평 또한 동아시아의 공통 감각을 형성한 기제였다. 그 융합의 지평에서 동아시아의 생태학적 동일성의 감각이 형성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 상생의 감각과 윤리, 자연 상태의 존재 감각 등이 그 내포를 이룬다.

 

생태학적 동일성의 훼손과 병든 나무

장석주의 「세한도」는 추사가 그린 세한(歲寒)의 정황을, 시인의 개성적 경험으로 변용하여 창작한 시다. 현대의 시인이 보기에, 절개나 원각을 상징하던 옛 소나무는 이제 환경 문제와 관련해 속절없이 병들었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생태학적 동일성이 훼손된 현실을 시인은 날카롭게 직관한다.

 

골재 채취한다고 산 한쪽이 뭉텅 잘려나가고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붉은 절개지는 겨울이 다 가도록 흉하게 드러나 있다

그 위 언덕에는 잎이 붉게 변하며 말라가는 소나무 몇 그루

소나무 가지에 걸린 달이 협곡으로 빠질 때

병든 가장(家長)이 식구들 없는 빈집에서

혼자 남아 기침을 하고 있다(장석주, 「세한도(歲寒圖)」)

 

<세한도> 당대의 청조문사들이나, 작가 한승원의 텍스트와는 달리, 여기서 소나무는 병들고 상처받은 상태다. 시인은 소나무와 사람에다 땅(“붉은 절개지”)의 문제까지 시적 대상을 확대하여, 그 모두가 병든 것으로 형상화했다. 한승원의 소설에서는 대승적 치유 가능성을 함축한 인물이었는데, 여기서는 단지 “병든 가장”일 따름이다.(유마힐과 병든 가장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멀고도 가까운가. 유마힐은 병든 가장이 있기에 유마힐일 수 있는 함께 앓는 치유사이기 때문이다. 또 병든 가장 역시 유마힐이 있기에 치유의 가능 지평을 알 수 있다.) 소나무도 절개나 상생과는 거리가 먼 채 붉게 병들어간다. 개발 과정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히 병들게 된 동시대의 현실적 경험과 맥락에 근거하여 수용하고 상징적으로 변용한 결과다. <세한도>를 통한 미적 경험과 시인의 현실적 경험은 동일한 것일 수 없다. 그 불화와 대조의 상호작용을 통해 상처받은 존재 상황에 대한 애도의 서정을 노래했다. 오늘날의 생태 현실의 맥락에 입각하여 가장 큰 상징적 변형을 보인 경우이다. 그러나 병든 소나무와 병든 가장에 대한 상태 진술은 그 자체로 상실된 생태학적 동일성의 세계의 회복을 위한 간절한 염원을 함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추운 겨울, 세한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많은 ‘병든 가장’들을 위한 힐링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만큼 추사의 <세한도>의 심미적 정서적 효과는 넓고도 깊다.

다른 시인들의 시 작품에서도 <세한도>의 열린 창의성은 계속되었다. 특히 ‘세한(歲寒)’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새로운 <세한도>들이 태어나곤 했다. 불후의 절대 미학은 이처럼 끊임없이 열린 창의성의 지평을 잉태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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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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