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정책은 虎視牛步<호시우보>라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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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경제원론을 강의할 때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차이를 가르친다. 금융은 단기간에 끓고 단기간에 식지만 재정은 느리게 끓고 식는 것도 느리다. 금융위기는 강도는 높지만 단기간에 수습되는 반면 재정위기는 느리게 다가와서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PIIGs 국가나 일본처럼 재정건전성을 수십년 동안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77년부터 시행된 부가가치세다. 1970년대 초반까지의 세금은 그야말로 누더기 세제였다. 소비세의 경우 13개 항목이나 됐다.국세로는 영업세 물품세 직물류세 석유가스세 입장세 통행세 주세 전화세 인지세 증권거래세 등 11개 항목이나 있었고 지방세로는 유흥음식세 마권세 등 2가지가 있었다. 세율구조도 너무 복잡했다. 영업세는 세율이 0.5%-3.5%에 이르는 6개 종류나 됐고 물품세는 5%에서 최고 200%까지 17개 종류, 석유류세의 경우는 무려 54개나 되는 복잡한 세율로 이루어져 있었다. 따라서 정부의 재정정책은 ‘虎視牛步(호시우보)’, 그야말로 여러 가지를 신중하게 선제적으로 검토하고 고려하되 대신 한번 내딛으면 확고해야 한다. 이번 사태처럼 정책에 영이 서지 않으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제대로 이끌어갈 수 없다
또한 금융정책은 내부시차가 짧지만 재정정책은 내부시차가 길다. 일반적으로 법안을 만들 때까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고 국회까지 통과하는 동안 정치권과 언론의 주목을 받기 때문에 시행할 때까지의 내부적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그런 재정정책 가운데서도 특히 내부시차가 길어야하는 것이 조세정책이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예상되는 파장을 시뮬레이션 하여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시점도 정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조세는 시행된 이후 더 큰 말썽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시행이후 엄청난 반발과 후폭풍에 부딪혔다. 1978년 치러진 선거에서 여당인 공화당이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득표율에서는 패배하는 상황을 맞게 되자 여당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부가가치세로 돌렸다.
노태우 정부 때는 실현되지도 않은 부동산 가격상승 분에 대해 과세하는 토초세를 도입했다가 엄청난 후폭풍이 있었다. 결국 위헌소동까지 가서 위헌으로 판정되어 토초세는 사라지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종합부동산세의 신설과 과세로 ‘세금폭탄’ 논란이 일었다.
앞서 언급한 세금은 부가세의 경우 간접세이고 토초세와 종소세는 이른바 ‘부자증세’였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와서 벌어진 세금논란은 「직접세」인데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실상의 세금인상 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간 큰 과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공제받을 수 있는 세금 한도가 설정되었고 사실상 과세표준이 상승하면서 직장인의 상당수가 전보다 높은 세율을 적용받게 된 것이다. 세금을 환급 받기는커녕 더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직장인들로부터 성난 불만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화들짝 놀란 여당은 "개정된 세법을 개선하겠다."며 민심 진화에 나섰고 기회를 놓칠세라 야당은 "직장인·서민 유리지갑 털기 식 증세"라며 공세에 나섰다. 결국 정부도 한 발 물러섰다. “납세자의 불만이 많으니 세정 차원에서 고칠 점이 있으면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로 인해 정부 정책에 대해 신뢰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여론이 악화 되었다고 해서 정부가 손쉽게 태도를 바꾸면 모든 정책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의 공세가 거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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