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별 일’ 다 있는 청와대 인사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인사의 핵심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그 자리에 앉히는 일이다. 개념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이 무엇인지 정리한 후 그에 맞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 이런 청탁과 정보왜곡 속에 중심을 잡는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사를 직접 관장하는 참모들의 경우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정책업무 등 다른 일이 있는 인사위원 등의 입장에서는 때로 인사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가 된다. 청탁이나 정보왜곡이 그만큼 집요하고 끈질기다는 이야기이다. 이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 장관을 대신해 대통령에게 사실여부를 확인해 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 대통령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심지어 청와대 참모들에게도 마음 놓고 물어보기도 어렵다. 자칫 자신이 그렇게 물었다는 이야기가 인사를 압박한 그 대통령 주변인사에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있다. 인사권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자리의 인사는 그 일을 아는 인사들이 주도하게 하라 권하고 싶다. 인사 관련 부서는 서기업무를, 민정 관련 부서는 검증업무를 하면 된다. 내각인사를 비롯한 주요 정책관련 기구의 인사는 당연히 그 일을 아는 부서가 인사추천 등 그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청탁과 정보왜곡이 인사과정을 어지럽히는 일도, 또 실수와 속임도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시스템을 갖추고 신경을 써도, 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도 무리한 일이 일어나고 실수도 일어난다. 때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떤 엉뚱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한 번 짚어 보자.
미리 이야기해 둘 것은 어느 특정 정부의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통령이라는 절대 권력이 존재하는 조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짐작해 보는 것으로 받아 주었으면 한다.
청탁과 정보왜곡
인사에 있어 청탁은 기본이다. 청와대라 하여 크게 다를 리 없다. 거의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하지 말라,” “패가망신 시키겠다” 등 온갖 소리를 다 하지만 그렇다고 근절되는 일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청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추천인지 청탁인지 구별이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형태도 여러 가지이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돈이나 이권을 앞세워 접근할 수도 있고, 어려운 처지를 호소할 수도 있다. 고위직을 목표로 하는 경우 충성의 징표로 수기로 쓴 메모나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훗날 충성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 그 편지로 망신을 주어도 좋다는 뜻이다.
대부분이 읍소의 형태이겠지만 예외적으로 오히려 위협을 해 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선거에 공을 세웠거나, 선거과정에서 쉽게 공개할 수 없는 ‘공범 행위’를 같이 한 경우 등이다. 선거를 어떻게 치렀나에 따라 그 수가 적지 않을 수 있다.
정보왜곡은 주로 상대에 대한 음해와 중상을 말한다. 실제로 인사와 관련해서는 어느 정부 없이 적지 않은 투서와 잘못된 정도들이 청와대로 날아든다. 공무원이면 각종의 숨은 비리에 관한 정보 등이 접수된다. 상하질서가 엄격한 계급조직일수록 더 심한 경향이 있다. 또 정치인 등 관료조직 밖의 인사들이면 선거기간 동안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했다거나, 최근 어디서 대통령을 비판한 적이 있다는 내용 등이 전달된다.
청탁이나 정보왜곡이 있는 가운데 의도하지 않은 실수도 일어난다. 주로 검증과정에서 챙겨봐야 할 것을 다 챙겨보지 못해서 일어나지만, 그 외에도 일어난다. 거쳐야 할 절차를 거치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따져 봐야 할 정치사회적 상황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가장 한심한 경우는 인사에 관계하는 참모들이 대통령의 말이나 뜻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를테면 대통령이 특정인에 대해 별 생각 없이 부정적인 말 한마디 한 것을 가지고 인사추천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앉아 있는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종용하는 하는 경우이다. 그 반대로 덕담 삼아 칭찬 한 마디 한 것을 가지고 인사추천 대상에 올리거나 승진을 시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대통령의 말이나 표정만이 아니다. 심지어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는 ‘심부름꾼’을 말이나 표정을 보고도 소위 ‘알아서 기는’ 경우도 있다. 특히 대통령이 잘 아는 인사가 인사 대상자로 올라오는 경우 못난 인사위원들은 대통령의 집사 노릇을 하는 총무비서관 등의 표정을 훔쳐보게 된다. 행여 대통령이 ‘심부름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을까 해서이다. 그 ‘심부름꾼’의 손짓 하나 고갯짓 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하나같이 한심한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제왕인 청와대 상황에서는 쉽게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물을 기회가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묻고 답하는 것 자체가 후일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과 참모들 간의 소통이 가장 잘 이루어지고, 또 인사를 가장 시스템적으로 했다는 참여정부 아래에서도 이런 일이 없지 않았다. 다른 정부에서는 그 상황이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대통령이 이러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심부름꾼’ 곧 바로 실세가 된다. 박근혜정부의 ‘문고리 3인방’ 논쟁이 바로 그러한 것 아닐까?
속임
속임도 많다. 먼저 ‘끼워 넣기’인데, 이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인사를 행하는 대통령 참모나 ‘심부름꾼’이 대통령 이름으로 자신의 인사민원을 끼워 넣는 일이다. 이를 테면 특정 참모나 ‘심부름꾼’이 대통령의 지시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어떤 자리에 앉힌다거나, 이들로부터 지시를 받은 행정 각 부처를 포함한 각 기관의 인사담당 간부가 다시 자신의 인사민원을 끼워 넣는 일이다.
이 경우 대통령은 하나를 지시하지만 그 참모나 ‘심부름꾼’이 몇 개를 대통령의 이름으로 끼워 넣고, 이 참모의 지시를 받은 각 기관 인사담당 간부들이 다시 몇 개를 끼워 넣게 된다. 대통령은 하나를 지시했지만 아래에서는 열 개 백 개의 인사가 대통령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결국 국민들 눈에는 대통령이 부처나 공기관의 국장 과장인사까지 모조리 챙기는 꼴이 된다.
이런 끼워 넣기에 이어 의도적 왜곡도 적지 않다. 공직생활을 할 때 실제 있었던 예 하나를 들자. 어느 부처의 장관이 전화를 했다. 대통령 주변인사 중의 한 사람이 자신을 찾아 와 대통령의 뜻이라며 어떤 자리에 특정인 누구를 앉히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관 자신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그 조직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다. 바로 대답했다. “하자 말라. 대통령의 뜻일 리 없다.”
잠시 후 대통령께 그런 인사를 지시한 적이 있으신가 물었다. 대통령의 답이 재미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내가 뭘 지시해. 당신들끼리 그렇게 하기로 했다며.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며 ‘좋은 분인데, 잘 되었네’ 했지.”
이러한 ‘별의별 일’이 다 있게 되면 인사는 엉망이 된다. 적재적소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고, 국정 역시 혼란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짧은 글인 만큼 간단하게 몇 가지만 정리해 보기로 한다.
첫째, 대통령이 행사하는 인사권의 범위를 되도록 줄여야 한다. 누구든 능력 이상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문제가 생긴다. 몸도 다치고, 일은 일대로 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인사권도 마찬가지이다.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게 되면 인사는 문제는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즉 청탁과 정보왜곡, 그리고 실수와 속임이 모두 청와대에서 일어나게 되고, 청와대에서 일어나는 만큼 적절한 통제기구조차 없다. 인사는 그만큼 더 혼란스럽게 된다.
둘째, 인사권의 범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즉 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디까지 그 권한을 행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이 분명치 않으면 많은 실수와 속임의 문제가 생긴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뜻이 어디까지인지를 모르는 가운데, ‘심부름꾼’이나 측근 등이 속임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청와대 인사위원들과 각 부처의 인사담당자 등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뜻이 아닌 것을 뜻으로 받아들이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셋째, 일과 과업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인사의 기본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그 일이 뭔지 분명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심장수술이 필요하면 심장에 메스를 댈 수 있는 의사를 찾아야 한다. 심장수술이 필요한지 두통약이 필요한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좋은 의사를 아무리 찾아봐야 헛일이다.
일에 대한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고, 그래서 사람을 추천하는 기준이 모호하면 일이 뭔지도 모르는 ‘심부름꾼’이나 소위 ‘실세’가 보다 쉽게 개입하게 된다. 정치적 판단도 과도하게 영향을 미친다. 즉 사람 좋은 사람이라 추천하고, 말 잘 듣는다며 추천하고, 충성심이 남 다르다 추천하고, 청문회를 통과하기 쉬우니 추천하고, 누구의 뭐다 하여 추천하고......... 인사는 그만큼 난삽해 진다.
넷째, 청와대의 인사 관련 조직은 되도록 작아야 한다. 크면 큰 만큼 권한을 행사하려 할 것이고, 그 결과 청와대의 인사권이 점점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야 할 일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흔히 참여정부 때의 인사수석실 존재를 이야기 하는데, 참여정부의 경우 비서실과 분리되어 국가정책을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조정하는 정책실이 존재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즉 일에 대한 정의가 비교적 명확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그만큼 대통령도 일과 사람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맺으며
끝으로 한 번 더 강조했으면 한다. 인사가 만사라 하지만 단순히 그렇지 않다. 인사 이전에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정부에게 묻고 싶다. 뭐가 ‘일’이라 생각하는가?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또 국민이 공감하고 같이 위기의식을 느낄 만큼 잘 정리되어 있는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권하고 싶다.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더 하라고. 그리고 그 다음, 그에 맞는 사람을 찾으라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