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3년차 국정 현안들에 대한 입장과 구상을 밝혔다. 모두 발언에서 ‘경제’ 42번, ‘개혁’ 24번을 언급했다. 이번 회견의 요체는 “강력한 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향후 30년의 성장기반을 닦아나겠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집권 3년차 신년 기자 회견에서도 ‘경제 살리기’는 최고의 핵심 과제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추진,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를 통한 경제 성장, 김대중 대통령은 ‘개혁과 더 좋은 생활’을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 불균형 해소와 동반 성장’, 이명박 대통령은 ‘일자리 정부’를 제시했다.
집권 3년차때 대통령들이 한결 같이 경제를 강조한 것은 임기 반환점을 맞이하는 시기에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패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집권 3년차 신년 기자회견은 중요하다. 대통령이 현실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국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파악해 국민들을 설득해 새로운 국정 운영의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신년기자 회견 내용은 매우 실망스럽다. 내용은 고사하고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태도와 모습은 지나치게 오만하고 독선적이었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하고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은 없었다. 결국 국민들은 마치 ‘절벽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여하튼 이번 회견은 청와대 인적 쇄신을 아무리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우이독경’(牛耳讀經), 인적 쇄신을 하라고 하니까 엉뚱하게 청와대 특보단을 설치하겠다는 ‘동문서답’(東問西答), 청와대 쇄신도 못하는 대통령에게 국가 혁신을 기대하는 것 같은 ‘연목구어’(緣木求魚), 문고리 3인방 비서관을 살리려고 민심을 저버리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여론도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이다.
기자 회견 다음날 실시한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2%가 "잘못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인적 쇄신은 필요 없다는 대통령의 생각에 대해 56%가 청와대 참모진의 교체를 요구했다.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이 조작된 이야기라는 대통령의 해명도 52.8%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반면, 대면 보고보다 전화가 더 편리하다는 대통령의 소통 방식에도 48.1%가 ’동의하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1월 13일-15일)는 더 충격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정 운영 지지도가 35%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2014년 연두 기자회견 후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53%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무려 18% 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의 주요 지지 기반인 50대의 지지도가 크게 하락해서 처음으로 부정적 의견(50%)이 긍정적 평가(43%)를 앞섰다.
2014년 당시 50대에서 긍정 대 부정 평가가 74%대 22%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민심 이반이 일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 신년 기자회견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 '좋지 않았다'는 평가가 40%에 달했으며, '좋았다'는 평가는 28%에 그쳤다. 작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좋았다‘는 긍정 평가가 43%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여론이 이 정도면 이번 신년 기자회견은 민심을 역주행한 것이다. 과학이란 왜(why)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이다. 특히,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인과관계(causality)를 찾아 설명하는 것이다.
가령, 왜 손에서 물체를 놓으면 아래로 떨어지는지, 왜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지를 중력(gravity)과 자전(rot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과학에서는 설명(explanation)과 예측(prediction)이 동일하다. 다시 말해 설명 변수를 통해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과학(political science)도 마찬 가지이다. 정교한 이론에서 도출된 개념(concept)을 통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정치 현상에 대한 설명은 정치 과학의 영역이다.
왜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늘 민심과 동 떨어지는 것일까? 대통령의 ’인식적 오류‘(cognitive error)라는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 자신은 오로지 국가만을 생각하고, 비서실장은 사심이 없으며, 문고리 3인방 비서관은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민들이 왜 비서실장과 세 비서관을 교체하라고 요구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비서실장이 성실성, 헌신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사 참사, 문건 파동, 항명 사태에서 보듯이 업무 수행 능력에서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에 바꾸라는 것이다. 세 비서관은 비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존재함으로써 대통령의 소통이 먹통이 되기 때문에 교체하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청와대 인적 쇄신에 대한 잘못된 인식 말고도 소통에 대한 편협적인 인식도 문제이다. 대통령은 현장에 가서 많은 사람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고, 국무회의와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소통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런데 진정한 소통은 대통령이 의견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민심이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위대한 소통자’로 평가받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의 업무 시간 70% 이상을 야당과 만났고. 평소 ‘국민 속으로’(going to the public)를 외쳤다. 이렇다보니 레이건 대통령은 퇴임 직전 지지도가 취임직후보다 높았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국민 여러분과 힘을 합해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서 그 결실을 국민 여러분께 안겨 드리고 싶다“는 소망이 이뤄지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은 민심과 적극 소통하며 정치적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할 것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 리더십’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은 인식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적기에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경제도 죽고, 정치도 죽고, 민심도 크게 이반되기 때문이다. 열광과 환멸의 주기가 지극히 짧은 한국 정치에서는 ‘기대 → 실망 → 분노→ 혐오 → 민심 폭발’이라는 ‘민심 이반 5단계의 법칙’이 작동한다.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결국 알아 줄 것이고 역사적으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변한지 오래됐고 실망이 분노를 넘어 혐오로 치닫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유일한 길은 대통령이 인식의 대전환을 하고 정치적으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최근 "혁신의 기회를 다 놓치고 힘 다 빠졌을 때, 그때부터 부산을 떨어봤자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인식 전환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