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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의 대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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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12월06일 00시1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0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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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의 대가
저성장과 양극화 속에서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한국리서치의 2010년 조사결과를 보면, 네 명중 세 명이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미래연구원의 2014년 조사에서는 열 명중 아홉 명이 부의 분배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사회에 만연한 ‘갑을 관계,’ 각종 유착과 부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 전관예우와 유전무죄, 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들의 사익 편취 등을 생각하면, 이런 조사결과는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은 성장과 효율성에 집중하면서 불공정성 문제는 경시한다.  불공정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가?  우리가 불공정의 대가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인가?
 
경제학의 인간관
 
경제학에서 사람은 자기 이익만 냉철하게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소비할 때는 최대 만족을 얻도록, 사업할 때는 최대 이윤을 얻도록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뿐이다.  각자의 후생은 오직 그 자신이 얼마나 벌고 얼마나 쓰는지에 달려 있다.  남들이 뭘 하는지, 얼마나 버는지,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상관없다.  그래서 불공정하다는 생각, 시기심 등 남들과의 비교나 관계에서 오는 인식이나 감정은 나의 선택과 행동에서 어떤 역할도 없다.
 
경제학은 이 ‘합리적 개인주의’(rational individualism)에 입각해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을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 사람은 경제학이 상정하는 인간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공정성을 중시한다.
 
공정성(fairness)을 객관적으로 정의하거나 측정하기는 어렵다.  공정성의 인식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경제학은 거의 전적으로 효율성에 초점을 두며, 공정성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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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현실 세계에서 공정성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공정성을 중시하며, (불)공정성의 인식은 사람의 태도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행동경제학의 다음과 같은 실험 연구들은 사람들에게 공정성이 어느 정도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갑, 을)을 상대로, 갑에게 10만원을 주고 마음대로 을과 나눠 갖게 하되, 을이 갑의 결정을 따르면 그대로 나눠 주지만, 을이 거부하면 둘 다 아무 것도 갖지 못하게 하는 경우, 갑은 어떻게 돈을 나눌까?  두 사람에게 기회는 단 한번 뿐이다.
 
주류 경제이론에서 사람의 후생은 자신의 소득에만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을은 예컨대 1천원이라도 받는 것이 무일푼보다는 나으므로 갑이 1천원을 줘도 수용할 것이다.  따라서 갑은 을에게 1천원만 주고 9만9천원을 챙길 것이다.  하지만 위 실험을 해보면, 사람들은 이 예측과 다르게 행동한다.
 
실제로 갑들이 가장 빈번히 제시한 배분율은 50%, 평균 배분율은 43-48% 정도였다.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과도 균등 배분하는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대개 을들은 20% 미만을 제시받으면 거부권을 행사해서 둘 다 한 푼도 못 받게 한다.  을은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감수하지만, 20% 미만의 배분은 ‘너무 불공평’하다고 보아 아예 아무 것도 받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불공정한 행위로 이익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다.
 
경제사회가 불공정하면 생산성과 효율성이 낮아진다.
 
주류 경제학은 사람을 경제적 이익에만 반응하는 존재, 사익을 극대화하는 기계로 취급한다.  그러나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사람에게는 경제적 이익 외에 동기(motive)도 중요하다.  누구든 불공정한 취급을 받는다고 느끼면 열심히 일 할 동기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효율성 임금 이론’(efficiency wage theory)의 주장대로, 회사가 직원들을 어떻게 처우하는지가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근로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면 일을 태만히 한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 동료들과의 협동심 등도 갖기 어렵다.  행복한 근로자가 더 생산적이다.  사람들의 창의와 아이디어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작금의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불공정은 시장경제의 기반을 잠식한다.
 
시장경제는 신뢰, 협력, 준법 등의 사회적 자본 위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불공정은 이 시장경제의 기반을 잠식하고 파괴한다.
 
사업자들 간의 거래는 대개 지속적이고 장기적이다.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거래계약은 당사자들이 상황 변화에 맞춰 협력・조정해간다는 상호 신뢰가 있어야 체결되고 이행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사익만 챙기는 불공정 행위는 성공적 거래의 기반인 신뢰와 협력을 파괴한다.  이것이 갑을 관계의 대가이다.  소송을 통해서만 계약이 이행되고 분쟁이 해결될 수 있다면, 경제는 작동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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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호혜의 관계는 정치・사회적 합의와 협력을 이루는데도 꼭 필요하다.  견해가 다른 다수가 관련되어 있는 사안에서, 타협이 없으면 의사결정도 이뤄질 수 없는데, 타협은 상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일방이 자기 편의대로 사람들을 불공정하게 대하면 이 신뢰가 생길 수 없다.
 
사람들은 규칙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면, 규칙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규칙을 지키지 않으려 한다.  시장경제와 능력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와 믿음은 사라지고, 사회의 결속력도 약해진다.
 
협력, 호혜, 준법 등 사람들의 자발적 선행이 없으면, 경제사회는 작동할 수 없다.  이 자발적 선행들은 사람들이 공정하게 취급 받는다고 인식할 때 나오는 것이다.  경제사회가 불공정하면, 자발적 선행들이 위축되어 생산성과 효율성이 낮아지며, 우리의 삶은 더 힘들고 불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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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0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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