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제도와 인터넷 정치의 부작용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청와대 사이트의 ’국민청원’이 한국 정치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인터넷이 간접민주주의를 보완해주는 직접민주제의 한 요소로 ‘선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에 의해 ‘악용’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는 청와대 사이트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참여자가 가장 많은 청원 1위는 5월19일 현재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이다. 4월22일 게시판에 올라온 이 청원은 182만 명을 넘어섰다.
2위는 ‘더불어민주당 정당해산 청구’다. 4월29일에 청원이 제기되어 현재 32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한국의 제1야당이고 더불어민주당은 집권여당이다. 한국 정치의 양대 축인 두 정당을 해산해달라는 청원이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서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 해산은 사람의 경우로 생각하면 ‘사형 선고’다. 제1야당과 집권당을 ‘극형’에 처해달라는 청원이 한 달 가까이 청와대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에 특정 정당을 해산해달라고 청원하는 것은 3권 분립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현 상황에서 법적으로도 실현 불가능한 주장이다. 청와대, 집권 여당, 제1야당 모두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방관하고, 나아가 이를 지지층 결집에 사용하고 있다. 무책임한 일이다.
집권 여당과 제1 야당 해산 청원만이 아니다. 정치인 개인과 대통령에 대한 공격도 나란히 국민청원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김무성 전 의원을 내란죄로 다스려주십시오’라는 청원이 21만 명으로 지금 3위에 올라 있다. 같은 정치인을 겨냥한 ‘자한당 김무성의원 내란선동죄로 처벌해주세요’라는 청원도 9만 명을 기록해 7위다.
5위는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청원합니다’라는 청원이다. 14만 8천 명이 동의했다. 야권의 유력 정치인을 비난하고 대통령을 탄핵해달라는 정치 공세에 청와대가 운영하는 청원 사이트가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시대다. 그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변화다. 인터넷은 정치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장점이 크다. 시민들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손쉽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게 됐다. 개인의 정치 참여를 높여주었고, ‘숙의(熟議)민주주의’의 가능성도 열어주었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그렇듯, 인터넷 정치에도 부작용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데이터 조작, 즉 여론 조작과 갈등 증폭이다.
드루킹 사건으로 세상에 밝혀진 것이 여론 조작이다. 드루킹 일당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포털 뉴스에 달린 댓글의 공감과 비공감에 무려 9970여 만회를 클릭해 여론을 조작했다. 만들어진 여론, 조작된 여론이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일이 된다.
인터넷은 또 유권자의 정치적 태도를 양극화(polarization)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포털 뉴스의 댓글들에서도, 정치학의 논문들에서도 양극화, 분극화 경향은 드러난다. 유권자들이 인터넷의 다양한 의견들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고 바꾸기 보다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들만 반복적으로 보면서 기존의 입장을 강화시킨다는 거다. 인터넷의 ’필터링 효과‘가 정치에 미치는 부작용이다. 이는 정치적 갈등의 심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인터넷 국민청원 게시판이 이 정치적 태도 양극화와 갈등 심화의 장으로 지금 이용되고 있다.
정치가 여론 조작과 갈등 증폭에 계속 시달린다면 우리 사회에 미래는 없다. 청와대와 여당, 야당 모두 여론 조작과 갈등 증폭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인터넷 정치의 부작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ifs POS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