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은 정부 쌈짓돈이 아니라 국민세금이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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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안이한 재정인식 걱정스럽다
엊그제 세종정부청사에서 열린 재정전략회의는 내년예산 뿐만 아니라 앞으로 5년 동안의 재정전략(중기재정계획)을 가다듬는 자리였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지난 2년간 ‘혁신적 포용국가’의 시동을 걸었다면, 이제는 가속페달을 밟아야한다”고 전제하고, 저성장과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말하자면 재정지출을 늘려 사회문제를 풀어나가자는 재정확대정책을 주문한 것이다.
더구나 문대통령은 이날 토론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확장재정 마지노선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관리재정수지 –3%'를 제시한 데 대해 "근거가 무엇이냐", "재정수지에 왜 집착하느냐"고 질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말하자면 재정 당국이 국정운영 기조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재정지출은 매우 급속하게 증가해왔다. 세금이 조금 잘 걷힌 다고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소모성 예산지출을 늘려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정부가 중점을 두고 추진해온 일자리 늘리기 예산은 수많은 전문가들이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 일시적 미봉책으로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사회·경제문제, 특히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유는 두 가지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첫째로 세금도 잘 걷히는데 돈 좀 많이 써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쓰더라도 아직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높다는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전전략회의 모두발언에서도 그런 인식은 유감없이 배어 나오고 있다. 물론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니다. 재정건전성은 수치상으로는 선진국들에 비해 아직은 그렇게 위험 수준은 아니다.
다만 세금이 잘 걷히는 것이 경제 활성화를 통한 성장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면 좋아할 일이지만 법인세 등 세율인상을 통해 나타난 결과라면 그렇게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당장 세금이 많이 걷힌다는 것은 민간이 써야할 돈을 정부가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민간투자활성화에는 마이너스다.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크라우딩 아웃(crowding-out)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이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이 이뤄졌다. 부자증세를 내세운 결과다.
법인세를 많이 징수하면 회사가 투자할 돈이나 기술개발에 쏟아야 할 돈에서 법인세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많이 거둬 가게 된다 그러면 장비현대화나 기술개발을 할 자금여력이 줄어들 것은 빤하다.
그래서 대다수의 나라들은 법인세를 깎아주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치열한 국제경쟁체제하에서 다소나마 다른 나라 기업보다 자금 부담을 덜어주어 이익을 많이 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기업이 확장세를 유지하고 일자리도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적 추세와 역행하는 기업(企業) 세제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법인세 인상은 다른 나라 기업들에 비해 많은 비용을 부담해 상대적인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즈음 우리 기업들은 해외로 탈출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정책방향인가?
세금이 많이 걷히니 재정지출을 많이 해 소득격차도 줄이고, 경제 활성화도 도모해야 한다는 재정의 적극적 기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이른바 한때 정통경제학으로 받아들여졌던 케인지안의 이론은 재정을 많이 풀면 소비가 늘고 투자가 늘어 재정투자액의 몇 배(투자승수)에 달하는 경제성장효과를 거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공공재 등에 대한 투자를 통해 수요를 창출해 내는 우회생산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가능한 효과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재정을 늘리자고 하는 것은 소위 소득주도 성장정책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제도를 통해 근로자나 가계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보전정책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아니라 분배정책이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나눠주기 식 분배정책이다. 물론 이 역시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에 이전소득을 높여주면 그것이 소비증가로 이어져 수요증가와 경제 활성화와 투자증가라는 선순환을 가져올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못하고 취약한 우리 경제사회의 구조로 보아 이러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확대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현금보조보다는 기초생활에 필요한 의료나 사회서비스 등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더구나 무작정지원이 아니라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면서 소득분배효과를 노리는 정책수단의 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분배에도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지금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최저임금의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더 이상의 구체적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그 폐해와 부작용에 대해서는 이미 검증된 바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소득주도성장의 범주에 기존의 복지정책까지를 포함시켜 얘기하고 있다. 이는 역대정부가 추진해온 정책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
사실 재정문제에 있어서 핵심은 돈을 많이 쓰는 것도 문제이지만 인구고령화와 생산인력 감소 등으로 사회적 지출은 급속도로 늘어나는 반면 세금의 원천인 근로기반의 위축으로 생각보다 빠른 속도의 재정불안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벌써 지난 2월과 3월의 국세징수 실적은 전년 동월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런데도 재정확대를 본격화한다면 결국 그만큼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재정건전성은 악화될 게 빤하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우선 쓰고 보자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러니 국가부채는 매년 수십조 원씩 늘어나고 국민경제규모(GDP)에 대비한 국가부채 비율이 매년 높아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빚잔치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빚잔치로 그나마 국민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생활수준이 높아진다면 다행인데 경제성장률은 매년 낮아지는 뒷걸음질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재정지출이란 대개 한번 늘어나기 시작하면 가속되는 경향이 있다. 비근한 예로 기초생활연금을 한번 올리면 계속 더 올릴 수밖에 없다. 더 낮출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모든 복지지출이 그런 경직성을 띄고 있다. 더구나 우리사회는 급격한 노령화 등으로 사회복지지출의 급속한 증가를 수반하는 양상이다. 지금과 같은 방만한 자세로 재정운용을 하게 되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특히 외환위기라는 시련을 극복하는데 밑바탕을 이뤘던 재정건전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문대통령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
문대통령은 지난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확대를 강조하면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는 나라 곳간을 채우는 데 중점을 뒀으나, 지금의 상황은 저성장과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 매우 시급하다다.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임은 분명하지만 무작정 늘리면서 재정건전성을 해칠 정도의 능동적 확대는 신중하게 살펴볼 일이다.
사실 과거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으로 일관했던 개발연대에도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예산당국이 노력했던 눈물겨운 사연은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군사정부시절 국방비를 깎은데 대한 보복으로 예산실장에게 권총을 들이 댔지만 들어주지 않았던 일이며, 여당의 엄청난 협박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앞두고 동결예산을 편성했던 옛 경제기획원 예산실의 무용담은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당시 경제기획원 출입기자로 활동했던 필자가 이때의 주역이었던 예산관료들을 만나면 지금의 재정정책에 대해 거의 울분에 가까운 비판을 토해내는 것을 접하게 된다.
지금의 재정당국자들이 과연 그런 기백과 용기가 있는지는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혀 없을 것으로 확신되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경제정책의 사령탑’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조차 어려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비롯해 그 휘하의 국가재정을 책임지는 관료들이 과연 재정건전성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재정은 쌓아놓은 ‘정부의 쌈짓돈’이 아니다. 대통령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더 더욱 아니다.
‘경제성장은 바닥을 기고 국세수입은 주는데, 나눠주기만 계속 확대해 나가면…’
재정지출의 확대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많이 물리는 것과 맞닿아 있다. 재정의 과감한 역할을 주문하는 것은 국민들의 주머니를 더욱 샅샅이 뒤져서 세금을 거둬들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니면 정부가 국민이나 외국으로부터 빚을 많이 얻어 와서 우선 쓰고, 그 빚은 후손들이 갚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다. 어떤 방법을 막론하고 국민 부담을 늘린다는 점에서는 똑 같다. 그나마 경제성장의 밑바탕을 다지는 이른바 ‘생산성을 높이는 용도’로 쓴다면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시적 일자리를 늘리는데 돈을 나눠주는 식의 소모성 지출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경제성장 마저 둔화되는 양상이고 보면 조세수입은 줄어드는데 지출은 가속적으로 늘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자꾸 남미 베네수엘라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이다. 참으로 걱정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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