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좀 하세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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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lobby)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맨 마지막에 ‘권력자들에게 이해 문제를 진정하거나 탄원하는 일’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로비가 ‘권력자들에게 이해 문제를 진정하거나 탄원하는 일’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미국에서 입법과 정부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이익집단의 부탁을 받은 사람들이 연방의회나 주의회 로비에서 서성거린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로비스트이다.
미국에서는 로비스트를 합법화 하는 대신에 로비스트의 활동 내역을 구체적으로 신고하고 공개하게 되어 있다. 2014년 일본이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도록 하는 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로펌과 계약을 맺고 버지니아주 의회와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인 사실이 공개된 적이 있다. 이는 미국법상 로비 내용을 공개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개된 계약서에 의하면 주미 일본대사관은 미국 로펌에 로비 비용으로 7만 5,000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받고 공무원에게 로비를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변호사법 제111조 제1항이 공무원이 취급하는 사건 또는 사무에 관하여 청탁 또는 알선을 한다는 명목으로 금품, 향응, 그 밖의 이익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돈을 받고 로비를 한다는 것은 로비를 하는 사람이 로비 비용을 받는다는 것이지 공무원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에게 돈을 주면 그것은 뇌물이다.
굳이 금품이 매개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이나 행정공무원이 로비를 받았다고 하면 펄쩍 뛴다. 우리나라에서는 ‘로비’는 매우 나쁜 어감을 가지고 있는 단어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오로지 국민을 위해 흔들림 없이 일해야지, 이익집단의 부탁을 받고 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를 ‘공무의 순수성과 염결성’이라고 표현한다. 공무원들이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독립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분명 우리사회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이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에 대한 로비가 없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필자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재직 시절 국회의원들은 필자에게 대놓고 ‘변호사회도 로비 좀 하시라’는 말을 했다. 어느 국회의원은 필자에게 ‘모 대기업은 국회에 상주하는 인력이 20명이 넘는다’고 귀띔까지 해주었다. 실제로 수많은 기업과 이익단체들이 ‘대관업무’라는 이름으로 행정부와 국회를 들락거린다. 이익단체 뿐만 아니라 행정부 공무원, 심지어 사법부 판사들도 국회의원실을 출입한다.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을 만나서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고자 하는 수요는 어디에나 있다. 그러한 활동이 나쁜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필요하기까지 하다.
공무원들은 전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는 하지만 전체 국민의 단일한 이해관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개인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을 뿐이다. 공무원들로서는 자신들의 업무로 인해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게다가 우리 헌법은 청원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미국이 로비스트를 합법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청원권 때문이었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이상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공무의 순수성과 염결성’을 유지하면서도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안이 로비스트를 합법화하되, 그 활동 내역을 공개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로비의 대가로 비용을 받는 것이 금지된다면, 자체적으로 로비를 할 수 있는 인력을 갖춘 대기업들이나 거대 이익집단만이 공무원들을 접촉할 수 있고, 그들의 이해관계만이 반영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로비를 위해 누구를 어떻게 만났는지도 알 길이 없다. 법이 현실을 외면하고 불가능한 이상을 추구할 때 법은 규범력을 잃고, 현실은 무법상태로 전락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한다. 로비스트가 합법화 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로비를 제대로 안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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