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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빠리 구석구석 돌아보기 (26)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1월24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1월29일 13시12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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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오늘도 빠리는 폭염입니다. 최고 기온 40도에 육박했으니까요. 호텔 방도 더우니까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 날씨를 당한 것 치고는 제법 그럴 듯하게 피서를 하고 돌아온 것 같습니다. 대부분 반쯤 시원한 기차, 지하철, 경전철 등을 타고 다니거나 시원한 대성당 안을 돌아보며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오늘의 주제는 '프랑스 왕릉 방문'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기실 이 정도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드니 대성당 (Cathedrale de St Denis)의 방문은 이런 수식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가치가 있었습니다. 불타버린 노트르담 성당을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보상하고도 남는 경험이었습니다.

아울러 몇 가지 기억할 만한 곳을 스치듯 방문했습니다. 프랑스가 1998년 월드컵 우승을 했던 생드니 근처의 Stade de France 축구장, 그리고 어제 실패한 오를리 공항 두 곳을 방문했네요. 이들이 소재하고 있는 빠리의 중요한 두 교외도시 생드니와 빌쥐프 (Villejuif) 이야기도 간단히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의 중심 주제인 생드니 대성당을 보러 가기 전에 그 앞에 있는 Stade de France 축구장에서 사진 한 컷 했습니다. 저희가 사진을 찍으니 지나가던 프랑스인이 바로 '그래요 월드컵 우승 자리지요.'하고 자랑스러운 반응을 하네요. 저에게는 한국이 첫 게임 벨기에 전을 힘없이 지는 모습을 본 장소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힘차게 팔도 들어 보았네요. 이 동작이 뒤에 큰 인연을 만나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거기에 곁들여 생드니 대성당 바로 앞에 있는 생드니 시청 앞의 사진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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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를 타고 몇 정류장 가니 드디어 생드니 대성당. 비록 계속 개보수를 했지만 아직도 12세기 당시의 건축 형식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흔적과 내부의 초기 고딕 양식이 잘 어우러진 매우 오래된 대성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꽃 그랑드로즈, 파이프오르간, 매우 섬세하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성당 기둥들, 그리고 지하납골당의 더 단단한 모습까지 사진들을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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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성당의 모습을 보고나서 오늘의 주제인 왕릉 방문을 하러 가는 도중에 재미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가 매표소의 직원과 영어/불어로 (동양인만 보면 영어로 말을 거는 프랑스 사람들의 행동 변화!!!) 말을 주고 받으며 직원의 국적 질문에 한국에서 왔노라고 했더니 뒤에 줄을 서서 매표를 기다리던 한 서양 사람이 가만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직원과 저의 대화가 우스워서 미소를 지은 줄 알았더니 이 분은 아예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미국인 Marc Benyan (스펠링은 확실치 않고 마크 베년이라고 들었네요.) 씨였습니다. 이 분은 현재 Idaho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분인데 과거 선교사 활동을 하느라 한국에 2년간 체류한 경험이 있다고 하면서 한국말로 인사와 대화를 나누게 되어 금방 가까워졌습니다. 그는 일행으로 부인과 네 자녀, 그리고 그 자녀들의 친구 둘, 모두 합쳐서 7명을 이끌고 미국에서 방금 도착했다고 하는데 (사실 샤를르 드골 공항에서 이곳까지는 RER선과 버스를 갈아타도 30분 정도밖에 안 걸립니다.) 마침 에어비앤비로 생드니에 숙소를 잡았지만 오후 체크인을 앞두고 대성당을 방문하러 왔다고 하네요. 더 재미있는 점은 만 14세인 큰 딸이 한국 친구와 사귀게 되면서 아버지가 살았던 나라 즉, 우리나라의 일제시대 여러 가지 문제를 과제로 정하여 공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는 사실이지요. 이중으로 한국과 인연이 있는 베년씨 가족들. 제가 축구장을 방문해서 만세를 불렀던 인연이 이 분들을 만나게 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곳에서 사진 찍느라 최소한 30분은 더 썼고 그런 이유로 그 분들 가족들과 같은 시간에 매표소 앞에 줄을 서게 되었으니까요. 참 인연은 이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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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본격적으로 프랑스 왕릉으로 들어가 볼까요? 기실 이곳을 언필칭 프랑스 왕릉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만)으로 정한 것은 이곳의 주교였던 생드니가 프랑스 왕국의 수호신으로 추앙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4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프랑스 왕들의 장례의식에 의하면 프랑스 왕과 왕비, 혹은 중요한 왕족들이 죽으면 그 시체에서 심장과 내장을 분리하여 부패를 막고 그렇게 속이 빈 송장을 대성당에 보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심장, 내장, 송장 등은 모두 다른 곳에 보관하도록 하였는데 바로 송장의 보관소가 이곳 생드니 대성당이 되었던 셈이지요. 그래서 이곳에는 실제의 송장이든 가상의 송장이든 그 송장들의 본을 뜬 '드러누운 상' (불어로는 gisant이라 부르네요.)들이 무려 79기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것을 보려고 무료로 돌아볼 수 있는 대성당 내부에서 매표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프랑스 왕릉이라고 부를 만하지요. 그곳에 만들어진 여러 가지 형태의 gisant들 몇 가지를 올립니다. 요절한 작은 체구의 왕자와 공주들의 모습도 가끔 있어 측은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흰색의 대리석으로 gisant들을 만들어 두었는데 유일한 검은 색 대리석의 이름 모르는 여자 왕족, 그리고 금빛 등으로 장식한 관 두껑 등의 모습도 있습니다. 드러누운 모습이 아니라 서 있는 모습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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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감흥이 없으시지요? 그래서 약간의 스토리가 필요한 겁니다. 1260년 경에 성루이왕은 (이 시리즈 초기에 생트 샤뻴을 방문했을 때 소개드린 왕입니다.) 선조를 받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600년대의 전설적인 왕들인 클로비스 II세와 프랑스를 이민족으로부터 지켜낸 왕으로 추앙받는 샤를르 마르텔 등의 gisant들도 만들라고 명했다는데 그렇게 만들어져서 그런지 두 사람의 얼굴 모습이 거의 같아서 놀라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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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이 왕릉에 영향을 많이 미친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남편인 앙리 II세가 일찍 죽고 오랫동안 살아남아 있던 그의 왕비 메디치가의 까트린느의 희망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부부 합장 gisant을 만들었는데 매우 장엄한 장식들을 (12사도를 바깥에 배치하는 등) 가진 높은 단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이 매우 특별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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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몇몇 왕과 왕비, 그리고 왕족들이 단두대의 희생양으로 시체도 찾지 못하고 있던 상황 속에서 왕정복고를 이룬 루이 18세가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아네뜨 등 많은 왕족들의 시체를 다시 찾게 했다고 합니다. (루이 18세가 직접 그 시체들을 확인했다고 하는데 이건 신빙성이 낮은 듯) 결국 그 유해들을 검은 묘비석 아래에 모시는 방식을 취했는데 그 어두운 방의 모습과 제가 사진을 찍고 있는 루이 18세의 모습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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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셔진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아네뜨의 모습은 이렇게 조각으로 세워 놓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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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실제로 이곳에는 프랑스 왕족들의 본래 시체는 모두 없어졌다고 합니다. 아래에 보이는 지하 납골당 가장 낮은 곳에 만들어져 있는 진짜 납골당에 모셔져 있던 진짜 시체들은 모두 프랑스 대혁명 때 훼손되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약간 허무하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예 왕릉을 별도로 조성했던 우리나라 왕조들의 방식이 왕들의 유해를 더 잘 보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프랑스 왕국의 수호신 생드니의 위력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구요. 그와 함께 그리스도와 12사도를 새긴 제단 모습을 담습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그 훼손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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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드니 대성당 납골당 안에는 저희들 같은 관광객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화가는 (아마도) 몇 시간 동안이나 한 곳에 서서 gisant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희 부부의 카메라 포착 대상 1호가 되었지요. 그리고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었지만 노트에 무엇인가 골똘히 메모하고 있는 연구자들 같은 모습의 사람들 사진 두 장도 함께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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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안은 참으로 시원했습니다. 높은 건물 그것도 돌로 된 건물이 가져다주는 효과인가 봅니다. 저희는 더위를 싹 잊고 심취되어 납골당을 감상하고 나왔습니다. 다시 현실의 더운 세계로. 대성당앞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그늘이라고 바깥을 택해서 먹었더니 아내는 식사 내내 등에서 땀이 줄줄 났다고 하면서 불평을 하네요. 마지막에 화장실을 사용하려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제법 시원했는데...

여하튼 오는 길을 되짚어 가다가 Chatelet les Halles 역에서 제가 발견한 새로운 루트로 오를리 공항을 가기로 했습니다. 7번선 Villejuif 종점으로 가서, 그곳에서 경전철을 타고 가는 방법입니다. 생드니가 북쪽 교외도시 (우리나라로 치면 의정부(?))인 데 비해 이 빌쥐프시는 남쪽 교외도시입니다. 도시의 특성상 분당을 뺀 성남(?) 같은 도시라할까요. Villejuif 시의 이름만 들으면 바로 유태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살며 만든 도시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분들도 많은 것 같구요. 그런데 불어판 포탈에 이 도시 이름을 치고 몇 페이지에 걸친 도시의 형성과 관련한 역사를 읽어도 유태인의 역할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프랑스에서 공산당과 우파의 대결이 극심했을 때 공산당원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던 도시라서 지금도 공산당 경향이 강하다는 이야기만 기억에 남네요. 여하튼 Villejuif로 가는 7번선 종점의 한 가닥은 역 이름 세 개가 Villejuif로 장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바로 앞의 역 이름이 Le Kremlin-Bicetre이고 그 다음 역이 Maison Blanche (영어로는 White House)이니 이 역들의 배열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저희들이 오를리 공항으로 가려고 탄 경전철의 역 하나 모습과 경전철이 달리는 잔디밭 사진도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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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리 공항. 빠리 구석구석 돌아보기를 시작한 사람이 포기할 수는 없지요. 결국 나비고 패스로 무료로 갈 수 있는 이 루트를 찾아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루트는 지하철과 경전철을 이어서 가는 길이니 다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편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Villejuif시가 의외로 인구도 많아서 지하철, 경전철 모두 다소 붐비고요. 그래서 다른 빠른 루트를 만든 사철이 요금을 추가로 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를리 공항은 이제 대부분의 장거리 국제선들을 북쪽의 샤를르 드골 공항에 내주고 국내선 위주의 공항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departure 리스트에 나와 있는 기착 공항들의 절반 가까이는 남쪽의 중요한 도시들인 Marseille, Bordeaux, Nice, Toulouse, Montpellier, Toulon 등과 서쪽 끝의 Brest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찾는 바캉스 기착지들인 지중해 연안 주요 외국도시로 가는 공항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의 유럽도시들은 물론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의 북아프리카 도시들로도 연결되고 있네요. 그래서 면세신고장도 있었습니다. 오를리 공항과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사용하려고 하고 있는 경전철 표정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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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1월24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1월29일 13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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