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베와 이순신, 정치에서의 과거와 미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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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치와 역사에서 ‘과거’와 ‘미래’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맞는 말이지만, 자칫 오해하기 쉬운 말이기도 하다. 잘못 이해해 과거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라는 과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다.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위의 말은 이렇게 수정하는 것이 좋겠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지금 앞날을 준비하지 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강조점은 역사라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찍혀야 한다.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95)이 지난 6일 사망했다. 무가베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다. 우리가 아는 ‘현재의 무가베’는 최악의 독재자이지만, ‘과거의 무가베’는 독립의 영웅, 아프리카의 자랑이었다. 그 극명한 괴리는 무가베가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고 자신의 종신 집권을 위해 ‘과거’를 이용하기만 한 데서 만들어졌다.
실제로 무가베는 처음부터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 아니다. 짐바브웨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을 이끌었고, 1980년 짐바브웨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선거로 초대 총리가 된 ‘영웅’이었다. 그러나 무가베는 1987년 무제한 연임이 가능한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통해 독재를 시작했고, 2009년 워싱턴포스트가 그를 세계 최악의 현직 독재자 부문 1위로 꼽기에 이르렀다. 그는 2017년 11월 41세 연하인 부인에게 권력을 넘기려다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어 싱가포르에서 사망했다.
마르크스주의로 시작했던 무가베는 한때 짐바브웨의 미래를 바라보며 자유주의, 민주주의, 포용주의, 자본주의를 추구했다. 짐바브웨를 국제무역에 참여시키며 잠시 아프리카 번영의 상징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독재자로 돌아선 후 백인 농장주로부터의 토지 몰수, 반대자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등 국가를 번영으로 이끌 수 있는 기존의 정책들을 정반대로 뒤집었다. 몰수한 경작지는 경작방법도 모르는 공직자들의 소유가 됐는데, 무가베는 이런 자신의 정책을 영국 식민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는 식민지가 되지 않을 것이며, 자체적인 방식으로 헤쳐 나갈 것이다“라는 말이 무가베의 구호였다.
그 결과는 짐작할 수 있는 그대로다. 짐바브웨는 실업률 80%가 넘고 기아와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했다.
무가베의 사망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진 그 날, 현 정부의 핵심 인사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미래’를 강조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대통령께 법무부장관에 지명되면서 세운 기준은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실제 어떤 정책으로 이어질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 표현을 접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필자가 정부의 핵심 인사들에게 듣고 싶었던 것이 바로 ‘미래로 나아가자’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조국 후보자의 ‘죽창론’ 등 ‘미래 준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말들을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많이 들어왔지 않았던가.
한일 갈등 속에 최근 정부가 이순신 장군의 ‘열 두 척의 배’를 자주 언급했지만, 우리가 이순신 장군에게 배워야할 교훈도 열 두 척의 ‘비장함’보다는 거북선 건조라는 ‘미래 준비’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13일 발발했다. ’난중일기‘에는 임란 이전에 거북선에 대한 기록이 네 번 나온다.
“이날 거북선의 돛으로 사용할 베 29필을 받았다.”(1592년 2월8일)
“거북선에서 포를 쏘는 것을 시험했다.”(3월27일)
“이제야 베로 만든 돛이 만들어졌다.”(4월11일)
“식사를 한 뒤, 배를 탔다. 거북선에서 지자와 현자포를 쏘았다.”(4월12일)
이순신 장군이 열 두 척의 배로 감동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거북선 건조라는 이 ’미래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과거에만 매몰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데이터와 인공지능(AI), 로봇의 시대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을 보면, 한국에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은 시대에 맞는 국가의 산업전략과 동맹전략을 수립하고, 기업은 새로운 시대에 번영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준비해야 한다. 그게 미래 준비다. 우리가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무가베가 반면교사이고, 이순신 장군이 교사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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