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 가능성, 크지 않지만 위험관리 차원에서 대응방안 준비해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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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의 공포
전 세계가 ‘Recession(침체)’의 공포에 움츠려들고 있다. ‘R’은 과거에도 수없이 많이 경험했던 경기변동의 한 국면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가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다가올지 모르는 ‘R’에 대처할 수 있는 정부의 정책수단이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적극적 완화정책에 덕분에 세계 경제는 침체의 늪을 벗어나 미약하나마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미국의 경우 120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경제가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 왔고, 일본의 경우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20년 동안의 침체기를 벗어나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는 등 경제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유럽의 경우에도 2011년 남유럽 몇 개국의 재정위기 이후 비록 국가 간의 불균형 문제가 있지만 독일을 중심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 과정에서 유로지역 및 일본 등 주요 기축통화국의 정책금리가 ‘마이너스 금리’ 영역으로 진입하였고, 주요국 중 가장 강력한 경제회복을 이루었던 미국의 경우에도 기준금리는 2% 수준에 머물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여 년 동안 진행된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해 이들 국가 중앙은행이 보유한 자산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태이다.
만일 세계 경제가 ‘R’의 늪으로 빠져들 경우 통화정책의 여력은 거의 소진된 상태이기 때문에 결국 이에 대한 대응책은 각국의 재정정책 또는 재정정책과 연계된 통화정책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재정정책은 통화정책에 비해 훨씬 복잡한 정치적 프로세스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정책의 실효성 측면에서 통화정책에 비해 훨씬 더 큰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어느 정도의 ‘마이너스’ 금리까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금융위기 이후 스위스, 일본, 독일 등 주요국 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우리나라의 금리도 아직 ‘마이너스’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1% 초반 대의 역사상 최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금리가 ‘마이너스’ 값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첫째, 대규모의 현금을 보관하는 데는 금고비용과 보험 등 상당한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이고, 둘째, 금리가 더 하락할 경우 채권가격 상승으로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인해 ‘마이너스’ 금리 채권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대규모 현금 보관에 얼마정도의 비용이 발생하는지는 통화별 화폐의 최고금액 수준, 보관하고자 하는 현금 규모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지만 대략 보관하고자 하는 금액의 2~5% 수준을 넘지는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소액 일반 예금자의 경우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현금을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회사가 일반 예금자에게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중앙은행과 금융회사 간에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거나, 중앙은행의 주요 투자대상인 국채금리가 ‘마이너스’가 될 경우 금융회사는 고객들에게는 ‘플러스’의 금리를 제공하고 자금운용에는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어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 물론 거액예금자에게는 현금보관비용 등을 고려하여 약간의 ‘마이너스’금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마이너스’ 금리 환경 하에서는 금융시스템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실물 화폐가 없어지고 모든 화폐가 전자화될 경우 마이너스 금리의 하한은 없어진다.
중요한 것은 ‘실질 금리’ (=명목금리-인플레이션)
완화적 통화정책의 목표는 실질금리를 충분히 낮추는 것이다. 즉 통화의 구매력이 시간이 흐르면서 감소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통화의 구매력이 시간이 흐르면서 감소해야 소비자들은 미래의 감소된 소비보다 현재의 소비를 선호하게 된다. 또한 차입자의 입장에서도 차입금의 실질가치가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차입하여 소비 또는 투자를 하게 된다.
실질금리는 대략적으로 명목금리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을 차감한 값과 같다. 경기진작을 위해 금리를 아무리 ‘마이너스’ 영역까지 낮추어도 인플레이션이 ‘마이너스’, 즉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실질금리는 양(陽)의 값을 갖게 되어 완화적 통화정책이 실패하게 된다. 반대로 경기억제를 위해 금리를 아무리 높여도 인플레이션이 명목금리보다 높아지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가 되어 긴축적 통화정책은 실패하게 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엄청난 규모의 양적 완화를 시행하면서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려고 했던 이유이다.
세계경제의 나침반인 미국의 장단기 금리 역전
장기금리는 미래의 경제상황과 기대인플레이션에 대한 시장의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 경제전망이 부정적일수록, 그리고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을수록 장기금리는 낮아진다. 위험의 관점에서 보면, 단기채권에 비해 장기채권이 더 높은 유동성 위험과 가격변동성 위험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장기금리가 단기금리에 비해 더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간혹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낮아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미래에 경제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서 단기금리가 점차로 하락할 것이라는 견해가 시장에 지배적일 때 흔히 발생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장단기금리가 역전된 경우 경제침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미국 장단기금리가 역전된 이유가 시장에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으로 인해 보험사와 같은 장기채권 투자자들의 투자수요가 몰려서 발생한 것이라는 시장분할가설로 해석하는 견해도 일부 존재한다. 만약 이 견해에 따를 경우 장단기금리 역전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으며 정책금리 인하도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 기준금리에 대한 추가적 인하 압력 지속
2019년 7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75%에서 1.5%로 0.25% 인하하였다. 당시 기준금리 인하는 경기위축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금리인하의 성격보다는 국내경제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으로 인해 이미 시장금리가 하락한 상황에서 금리 기간구조 정상화를 위한 금리인하이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실제로 2019년 7월 9일 기준금리가 인하되기 전 6월 말 시점에서의 금리구조를 보면 3년 만기 국채금리가 1.465%,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1.595% 이었던 반면 기준금리는 1.75%로 기준금리가 시장금리보다 낮게 형성되어 있는 기형적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준금리가 1.5%로 인하된 후에도 시장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8월 21일 시점에 3년 국채금리는 1.167%, 10년 국채금리는 1.280% 등 시장금리가 다시 기준금리를 크게 하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내외적 요인으로 인해 시장금리가 급격히 상승하지 않는 한 단기적으로는 기준금리의 추가적 인하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시장금리는 국내 경제상황에 대한 전망과 미국 금리에 따라 결정
시장금리를 예측하는 것은 주가를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기축통화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나라의 경우 미국금리와의 상대적 격차에 따른 자본유출입까지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금리가 제로금리 수준으로 근접하거나 반대로 큰 폭으로 반등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우선 국내경제를 살펴보면 당분간 2% 대의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우리보다 성장률이 낮은 유럽이나 일본처럼 국내 시장금리가 0% 대로 하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고 국내 시장금리가 큰 폭으로 반등하기도 어려워 보이는데, 이는 첫째, 인구감소 및 가계부채 등 구조적 이유로 인해 국내경제의 성장률이 크게 반등하기 어렵고 둘째, 인플레이션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우며 셋째, 미국의 시장금리도 장단기금리가 역전된 것으로 보아 크게 반등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관리 차원에서 제로금리 상황에 대한 대응방안 준비해야
그렇다고 해서 국내 시장금리가 제로금리 수준까지 하락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하기는 어렵다. 미·중 및 한·일 무역분쟁 등으로 인해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여 국내경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기대인플레이션이 더욱 낮아질 경우 국내 시장금리는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미국경제가 침체기로 들어서면서 미국 시장금리마저 제로금리 수준으로 하락할 경우 국내 시장금리 또한 제로금리 수준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비록 가능성은 크지는 않지만 위험관리 차원에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정부의 대응책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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