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파리 구석구석 돌아보기(4)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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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호텔 아침식사를 하다가 우리가 온 이후로 계속 마주쳐온 아랍 계통 가족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우리 부부 바로 옆에 앉아서 자연스럽기도 해서. 이집트에서 온 아흐메드 가족. 남편과 부인이 모두 의사라고 하니 상당한 인텔리 계층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빠리 휴가를 일주일 왔다고 하니 돈도 잘 버는 것 같고.) 그런데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 딸인 누르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K-pop을 좋아하는 눈치. 그래서 BTS를 언급했더니 바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탕 화면은 BTS 멤버들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고, 그들에게 장미 한 송이씩 바쳐놓은 정성이 놀라웠습니다. 국위선양은 그 누구보다도 우리 K-pop 젊은 가수들이 제대로 하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이 가족들과 인사하고 집사람과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저는 공부하느라 1985-90년 사이 5년간, OECD 근무하느라 1997-99 사이 2년간 프랑스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알제리에 산업개발경험을 전수하느라 알제리 출장 11회, 알제리 대표단 한국 방문 지휘 6회 등의 기간 동안 (각 회당 일주일씩) 불어로 중요한 정책을 설명한 경험이 쌓여 불어 실력이 상당하다고 자부해 왔습니다. 지금도 불어를 쓰는 개도국 공무원들이 왔을 때 통역없이 이들의 국별보고, 액션플랜 등의 발표와 토론을 지휘하는 단골 좌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 달간 '빠리 구석구석 돌아보기' 프로젝트는 반쯤은 '식은 죽 먹기'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경고하네요. 하나는 제가 이미 만 63세의 '노인급'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습게 생각하다가 오늘 아침 큰 코를 다쳤습니다. '빠리지앵 흉내내기'는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매일매일 어딘가 나간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 피곤해서 쉬는 코스라고 생각했는데 더 많이 걷게 되는 오류를 범하기 얼마나 쉬운지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인상파 화가 뱅상 반 고그 (불어 발음: 빈센트 반 고흐)가 그의 후원자의 한 사람이었던 의사 가셰의 집에서 머물며 70일 정도 지냄으로써 인상파, 특히 고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빠리 서북쪽 교외도시인 Auvers sur Oise (오베르 쉬르 우와즈)로 기차를 타고 (기차 안에서 쉬면서 라는 생각으로!!! 철저히 틀렸습니다. 에어컨 안 나오는 기차를 타고가는 것도 중노동이었습니다.) 가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끊은 나비고 카드의 위력이 여기까지 미친다는 사실도 이 결정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St Michel 역에서 기차를 타는 순간부터 반대방향의 기차를 타더니, 돌아올 때도 서두르다가 역시 반대방향의 기차를 타 버렸습니다. 아침에는 곧바로 정신을 차려 다음 역에서 내렸는데, 돌아올 때는 역방향 좌석에 앉은 바람에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기차 진행 방향에 대해 헷갈려하다가 두번째 역에 가서야 내려서 (이곳은 교외선이라 역 간격도 넓고, 기차 배차 간격도 뜸합니디.) 결국 1시간이나 허비하고는 빠리의 러시아워에 도착하여 정신이 없었습니다. 오늘도 결국 1만5천보를 걸었으니 판단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돌아올 때는 둘 다 파김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Auvers sur Oise에서 걸어다닐 때도 거의 환자처럼 비실비실 걸어다닐 정도였네요. 내일은 정말로 어디 가까운 공원에 가서 아무 것도 안하고 하루 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돌아오는 길에 기차를 갈아타는 역 (Persan Beaumont)에서도 기차를 잘못 타서 내린 역 (Bornel)에서도 재미있는 가족들을 만나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갈아타는 역에서 역방향 차를 타게 된 것을 어쩌면 꼬마 아가씨의 눈이 참으로 반짝인 아프리카 이민자 가족들과 이야기하느라 약간 정신을 놓아버린 까닭인 것 같기도 합니다. (사진 참고)
역방향으로 가다가 내린 역에서는 모로코 2세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제 옆에 앉아서 유튜브 노래를 재생하면서 신나하는 꼬마 일리어스를 부추겼더니 이 녀석이 (엄마 말로는 평소와는 달리)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며 흥을 돋우었습니다. 그 덕분에 약 30분 가까이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한 줄 몰랐네요.
기대를 많이 했던 Auvers sur Oise는 역시 차도 없이 땡볕을 맞으며 걸어다니는 일이 힘들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과거 방문했던 관광 프로그램이나 ('인상파 시대로의 기차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뇌리에 남아 있었죠.) 고그 그림판 등이 많이 없어져 버린 느낌을 주었고, 무엇보다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친 몸을 이끄느라 참으로 고생을 한 날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두 번의 역방향 기차타기도 겹쳤지요.) 몇 개의 관광 포인트 사진들, 특히 고그의 동상, 그리고 고그 형제의 묘소 사진 등을 담습니다.
그래도 오늘 이곳에 와서 가장 크게 감동적으로 느꼈던 점은 프랑스가 문화대국, 특히 미술대국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를 눈과 몸으로 목격하고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곳에서 인상파 그림에 대한 많은 설명과 (매우 어려운 수준의 설명) 현란한 화면을 방문하는 방마다 계속 보여주는 Chateau d'Auvers (오베르 성)에 갔을 때, 들어가는 길에서 이미 초등학교 중간 학년쯤 되어 보이는 학생들 한 무리를 만났는데, 성 안의 설명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동안 계속 함께한 초등학교 1학년 꼬마들을 바라보면서 더욱 그 생각이 짙어졌습니다. 보조 지휘 선생에게 물었더니 이 초등학교 1학년생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2시간 가까이 걸리는 St Quentin en Yvelines에서 온 아이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린 꼬마들에게 이렇게 먼 길을 달려오게 해서 이런 문화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하는 프랑스 문화교육 현장이 저의 뒷머리를 강하게 때렸기 때문입니다. 이들과 함께 했던 사진들을 몇 장 담아봅니다.
저의 실수가 거듭되었던 프랑스 빠리 주변을 달리는 기차들과 역들, 그리고 저녁 6시 경 참으로 붐비는 시내 중심지의 환승 역들 분위기를 몇 장 담아둡니다. 파란색 제복의 사람들은 기차표 검표원들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 겨우 산 오늘의 Le Monde 머리 사진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차지했네요. 기대와 의심이 교차하는 긴 기사도 기차에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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