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홍보의 허실(虛實)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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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국정홍보를 책임 맡는 청와대 홍보수석 내지 대변인은 일종의 부나방 같은 존재다. 화려한 불꽃(조명발)을 쫓다가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부나방. 유능한 언론인들이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져 갔고, 사라져 갔다. 말이 국정홍보이지, 실상은 정권홍보, 아니면 대통령 업적 세우기에 내몰리면서.
이런 자리는 청와대만이 아니라 정부의 각 부처에도 존재하고, 마찬가지로 부처 수장(首長)을 위해서 똑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주로 뉴스보도를 모니터링이고,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여 직•간접적으로 뉴스를 통제하는 일이다. 과거에 전직(前職) 언론인 출신의 공보처 차관과 홍보기획관들이 기사 하나하나에 줄을 쳐가면서 통제에 나서는 일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물론, 지금은 너무나 많은 수의 다양한 매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세심한 통제가 불가능할 것이지만, 여전히 영향력 있는 매체 중심으로 그런 작업이 상존하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런 언론통제 중심의 국정홍보 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가? 왜 위정자들은 국정홍보에 그렇게 목매달고 있는가? 도대체 왜 국민은 그런 정부의 국정홍보 노력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홍보 책임자들은 공중(public)과의 관계 짓기(relations)에 대한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근본적으로 국정홍보 관련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원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오히려 맨 나중 것부터 짚어볼 때,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든다.
공동체문제의 발생단계에서 해결방안을 건설하기 단계까지는 상당히 긴 여정이 소요된다. 하물며, 그 해결방안을 실현에 옮기기까지는 더욱더 긴 여정이 요구된다. 그런데, 국정홍보는 대부분 마지막 단계, 즉 정부가 마련한 정책적 해결방안 또는 국회의 입법과정을 통과한 법적 해결방안을 중심으로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헌법개정, 국민연금 개혁안, 노동개혁안, 금융개혁안 등은 모두 해결방안에 관한 것들이고, 이들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국정홍보가 효율적으로 수행되면 곧 공공정책의 정책적 목표를 완수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는 직접적으로 연관된 당사자가 아닌 한, 일반국민들이 그런 해결방안들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헌법개정을 정권 때마다 외친들 일부 정치가들을 제외한 일반국민의 입장에서는 누구 하나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헌법개정이라는 해결방안은 정치가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하나의 슬로건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이것에서 바로 넓은 의미의 국정홍보 실패의 대표적 사례와 그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우선적으로 생존에 위협을 주는 문제(problem)이지 해결방안(solution)이 아니다. 따라서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이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욕구(need)도 발생하지 않으며, 그 문제 자체에 대한 면밀한 주목,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능들의 탐색, 그리고 그 기능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해결방안 마련을 위한 고민(cognizing) 등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바로 개인(individual) 수준에서도 초기 문제의 발생에서부터 해결방안에 이르는 긴 여정을 간파할 수 있다. 이들 중간 어디에도 단절이 발생하면, 이미 자기 주도의 건설적인 문제해결 과정은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이런 개인의 문제해결 과정이 공동체 단위로 넘어가도 기본적으로 유사한 일련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 대상은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collective problem)이지 정책이나 법과 같은 해결방안이 아니다. 따라서 공동체 문제가 의제(agenda)로 발전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정책이나 법을 만드는 데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긴 여정이 기능적으로 이행되지 않는 한, 누구도 정책과 법에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적다. 이런 초기부터 중간과정에 대한 단계별 성취 없이 단순히 정책과 법을 국민에게 홍보하려는 이른바 현행 국정홍보 노력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하나의 공동체 해결방안으로 가끔 등장하는 헌법개정이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으려면, 현행 헌법이 갖고 있는 어떤 문제(들)가 얼마나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가를 피부에 와 닿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자주 거론되는 대통령 단임제가 공동체 생존의 심각한 위협으로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 한, 헌법개정이 국민의 주목과 공감을 얻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국민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한, 헌법개정 작업에 국민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과 연관된 어떤 대국민 커뮤니케이션 활동도 효과적인 국정홍보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정(國政)홍보는 국난(國難)홍보로부터 출발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정상적인 수순이다. 특히 대통령의 자리는 국가가 처한 난제(難題)들을 홍보하는 데 최고 적절한 위치다. 이번 정권에서 청와대가 수행한 가장 성공적이었던 국정홍보는 “규제문제”를 놓고 대통령이 주재한 소위 ‘규제개혁 끝장토론’이 아닌가 싶다. 그런 국난홍보 마당을 통해 공동체 의제가 분명해졌으며, 그로부터 국민과 정부가 팀워크를 이루어 규제개혁 대상들을 찾아내고 혁파하는 데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는 판단이다.
반면에, 세월호 사태는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안전미비의 국가적 난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다시 말해서 국난홍보가 자연스럽게 성공한 사례다. 따라서 사회 곳곳에서 안전국가 건설을 위한 획기적인 해결방안들을 국민의 전폭적인 ‘참여’ 속에서 구축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정부가 그 과정을 생략하고, 독점하면서 국민이 동참하고 숙지하는 효과적인 국정홍보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문제(problem)에서 해결(solution)에 이르는 발전과정에서, 일부 국민이 초기의 문제 단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전(全)국가적 피로감을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세월호 사태는 어떤 대국민 커뮤니케이션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비극 그 자체로 주저앉는 상황으로 끝나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지경이다.
그렇다면, 국가적 난제를 의제(議題)로 발전시키는 국난홍보, 국민의 동참 속에서 그것에 대한 해결방안을 구축하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공감(共感)을 확보하는 국정홍보는 면밀한 팀워크(teamwork)를 필요로 한다고 보여진다. 예를 들어, 청와대는 국난홍보에 가장 효과적인 기관이고, 그런 만큼 문제들(뉴스의 본질)을 판매하는 언론의 주목을 가장 손쉽게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각 정부 부처는 관련 난제 별로 국민의 동참을 끌어내고 해결방안을 건설하는 데 보다 효과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전자가 선행(先行)하고, 후자가 따라가는 청와대와 정부 부처 사이의 팀워크, 그리고 후자의 과정에서 국민의 동참을 끌어내는 정부 부처와 관련 공중(publics) 집단 사이의 또 다른 팀워크가 매우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위의 팀워크들이 순차적으로 순행한다면, 국정홍보는 성취해야 할 목표(goal)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결과(product)일 뿐이다. 그렇다면 공동체 문제해결에 성공하는 국가의 생산성은 국정홍보의 노력이 가장 불필요할 때 극대화 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국정홍보를 강조하는 정권, 정부일수록 공동체의 문제해결 과정을 거꾸로 굴리고 있으며, 그런 만큼 국가의 생산성 향상에 실패하고 있다는 증좌인 셈이다. 보다 좁게는 국정홍보를 위한 언론인의 차출이 불필요해질수록, 국가가 보다 생산적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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