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사태가 주는 국가‘危急存亡(위급존망)’의 교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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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국민들은 굶주려 죽어가면서도 야당을 전폭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
- 정국 전환의 관건 세력, 軍 지도자들 “마두로 정권과 유착 유지가 이득” 판단
- Brookings 연구소 “야당은 분열되고 무기력해 부패 독재 정권 타도에도 역부족”
- Foreign Affairs誌 “마두로 정권 기반 공고, 정권 변환보다 인물 교체 가능성 커”
베네수엘라 정치 · 경제 불안이 시작된 것이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정(政情) 혼란은 현 마두로(Nicholas Maduro) 대통령이 금년 1월 2기 임기를 시작하자, 과이도(Juan Guaidó) 국회의장이 이끄는 야당 진영이 정통성을 부정하고 스스로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하고 저항하고 나서면서 본격화된 것이다. 배경은 작년 5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마두로(Maduro) 대통령이 재선을 거두었으나, 당시 유력 야당 후보를 투옥하는 등, 정권에 의한 노골적인 개입으로 국내외에서 부정 선거라는 비난이 쏟아져 분쟁의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두 명의 대통령이 공존하는 희대의 대치 정국 혼란이 본격화하자 3權과 軍部를 장악한 것으로 보이는 마두로(Maduro) 정권이 궁지에 몰렸으나, 과이도(Guaidó) 임시 대통령 측도 결정적 수단이 없어 교착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마두로(Maduro) 대통령을 지지해 오던 군(軍) 일부가 반(反)마두로 진영으로 돌아서는 조짐을 보이는 등, 자칫 내전(內戰)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 동안에, 극한의 도(度)를 넘은 베네수엘라 경제는 이미 철저하게 붕괴(崩壞)된 지 오래고, 국민들의 일상 생활은 도탄(塗炭)에 빠져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경이다. 심지어 생활 물자 부족으로 대부분 국민들이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해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하는가 하면, 병원에 의료품이 바닥나 긴급 환자들이 무시로 죽어가고 있는 등, 실로 형언하기도 어려운 참상이 예사로 벌어지고 있다.
한 때 주변국으로부터 한껏 부러움을 받으며 남미의 부국으로 칭송받던 베네수엘라가 이런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된 배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일국의 위정자들의 비뚤어진 사상과 이념, 국가 운영 정책 및 전략 부재가 나라의 명운을 잠깐 사이에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절실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최근 해외 미디어들이 전하는 정정 불안 상황 및 연구기관들의 관련 보고서 등을 참조하여 백척간두의 벼랑 끝에 서 있는 베네수엘라의 현 정국 동향을 요약, 정리한다.<편집자>
■ “극빈층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부유층은 지극한 향락을 일삼고”
해외 미디어들의 최근 보도를 종합해 보면, 금년 들어 정정(政情) 불안이 본격화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 및 공적 조직에 만연한 오직(汚職)과 부정으로 경제 · 사회의 급격한 붕락은 물론이고, 대다수 국민들의 생존이 지극한 위험에 처해 있는 ‘인도(人道)’ 위기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운영하는 공립 병원에는 의료기기들이 고장 난 채 방치되어 있고, 그마저 전기가 끊겨 긴급 환자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베네수엘라는 1930년대부터 원유 수출로 남미 제일의 풍요로움을 구가(謳歌)하며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독차지했던 윤택한 나라였다. 그러나 원유 생산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경제는 1980년대부터 원유 가격이 하락 추세에 들어서자 심각한 불경기가 시작됐고, 정부가 대외 채무 상환 자금 조달을 위해 보조금을 삭감하자 경제 격차는 확대됐고 드디어 1989년에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경제 실정의 근본 원인은 차베스(Hugo Chaves)의 뒤를 이은 현 마두로(Maduro) 정권이 대를 이어 쿠바(Cuba) 전쟁 영웅 카스트로(Fidel Castro)식 사회주의 경제 모델을 추종해 온 데 있다. 소위, 국가가 경제에 전적으로 개입하여 21세기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Chavismo” (Chaves 前 대통령이 주창한 사회주의 중심의 좌파 민족주의) 노선이다. 1999년에 집권한 차베스(Chaves)는 당시만 해도 막대한 원유 수입을 활용하여 융숭한 빈곤층 구제 정책을 실행했다.
그러나, 차베스(Chaves)의 뒤를 이은 마두로(Maduro) 정권이 추종해온 중앙집권형 계획 경제 모델인 “Chavismo” 사회주의 정책은 정권 간부 및 부패 관료 등, 권력자들의 이권의 온상이 되었을 뿐이다. 익명의 중앙은행 간부는 “석유 국가 베네수엘라 경제의 근간인 국영석유회사(PDVSA)는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파괴됐다. 이익은 정권과 결탁한 자들이 장악하고 국민들에 환원되지 않고 있다” 고 분개한다.
흔한 광경으로, 빈곤층 지역에서 임산부들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가 하면, 시내 중심가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부유층들이 정부가 노동자들에 정한 월 최저임금의 10배가 넘는 고급 요리를 즐기고 있다. 한 해외 언론은 “베네수엘라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국민들 대다수가 처해 있는 빈곤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자 엘리트 계층이 즐기는 풍요로운 세계다” 라고 전한다.
■ 파탄의 度를 넘은 경제; 인플레율 연 82만%, GDP 성장률 (-) 22%
차베스(Chaves) 및 마두로(Maduro) 사회주의 정권이 저지른 실정은 구체적으로, 크게 4 가지로 요약된다; ① 국가가 빈곤층 구제를 위해 물자 및 서비스 가격을 통제하고, 대다수 농장 및 생산 기업들을 몰수하여 투자 및 생산이 급격히 위축된 것, ② 부적절한 외환 통제로 외화 부족 사태를 야기, 원자재 및 부품의 해외 수입이 어려워져 생산 시설이 정지된 것, ③ 기업들의 생산 활동 위축으로 부족한 식품 및 의료품 부족을 충당할 해외 수입이 불가능해진 것, ④ 재정 지출 확대 및 화폐 증발(增發)로 超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을 가속시키고 있는 것 등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국가 경제 활동의 근간인 석유 생산은 2000년 기준으로 하루 생산량이 300만 배럴이던 것이 차베스(Chaves) 집권 이후 급격히 감소해 2018년 12월에는 115만 배럴로 감축됐다. 특히, 마두로(Maduro)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軍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국영석유회사의 경영을 석유 산업에 문외한인 軍 간부들에 맡기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한편, 석유 수익은 모두 정부에 흡수되어 시설 투자는 전혀 불가한 상황이다. 여기에 2014년부터 국제 유가가 본격적으로 하락 추세에 들어서자 경제 및 재정은 여지없이 결정적 충격을 받았다.
베네수엘라 경제의 참상은 최근 국내외에서 발표되는 각종 경제 통계 수치를 보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최근 지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경제지표를 발표하고, 작년 인플레이션율이 13만%에 달했다고 밝혔다. 최근 베네수엘라 국회가 발표한 5월 인플레이션율은 연율 81만5,200%로 나타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1월에 연율 268만%를 기록한 뒤 4 개월 연속 전월 실적을 하회하고 있어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작년 말 IMF는 2019년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율이 연율 1,000만%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 바가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민간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편,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이 최근 발표한 경제 통계에서는 가장 최근인 2018년 3Q GDP 성장률이 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 22.3%로 나타났다. 이는 2014년 이후 5년 동안 매 사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2015년 말 이후 매 사분기마다 최소한 10%씩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결과인 것으로 나타났다. IMF는 2018년 연간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 18%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적이 있다.
이런 비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주변국들로 향하는 베네수엘라 난민(難民)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최근 야당 진영이 일부 軍部 봉기와 함께 시도했던 쿠데타가 동조 군인이 적어 집권 세력에 의해 어이없이 진압되어 불발로 그치자, 마두로(Maduro) 정권 교체 기대가 급격히 후퇴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인접국들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브라질 국경 지대 난민 시설에는 지난 4월까지 하루 250명 정도이던 베네수엘라 난민이 지금은 1,000명 가까이로 늘었다.
UN 난민高等辦務官사무소(UNHCR)는 이달에, 지금까지 난민 및 이민으로 베네수엘라를 떠난 국민들의 숫자가 370만명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美洲기구(OAS)는 현 마두로(Maduro) 정권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2019년말까지 국외로 탈출하는 인구가 최대 57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2020년까지는 8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이는, 3,200만명 수준으로 추산되는 베네수엘라 총 인구의 약 1/4이 머지않아 난민 및 이민 형태로 인근 국가들로 탈출할 것이라는 전망인 것이다. 한 마디로, 이건 정말로 나라도 아니다.
■ 참혹한 국가 현실에도 불구하고, 독재 부패 정권이 유지되는 까닭
한편, 혹독한 경제 참상이 이어지고 있어, 현 집권 마두로(Maduro) 정권에는 분명히 결정적으로 불리한 상황임에도, “차베스派” 사회주의 독재 정권이 유지되는 배경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두로(Maduro) 정권의 향후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외형적으로는, 마두로(Maduro) 정권이 작년 선거에서 야당이 장악한 의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권력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최고재판소 및 검찰 등 사법 조직, 각종 선거를 주관하는 선거관리위원회, 야당이 장악한 의회 권력을 대체하기 위해 새로 구축한 ‘제헌의회’ 등 거의 모든 권력 기구들이 여전히 마두로(Maduro) 정권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야당 세력이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선거를 통해 마두로(Maduro) 정권을 몰아낼 길은 요원하다. 야당 세력이 불복종 시위를 벌이고 있으나,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무력화되기 일쑤다. 그런 과정에서 야당은 분열을 보이기도 한다.
마두로(Maduro) 정권이 이렇게 엄혹한 경제 실상 하에서도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軍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두로(Maduro) 정권은 일찌감치 軍에 의한 쿠데타 가능성을 염려하여 일부 각료 직위를 軍 인사들에 할양하고, 국영석유회사(PDVSA) 경영층에 軍 인사들을 배치하는 등, 軍部에 이권을 떼어 주어 달콤한 유인을 제공해 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막대한 이권을 향유하고 있는 軍部로서는 마두로(Maduro) 정권을 배반하기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고, 그만큼 야당 진영으로서는 軍의 지지를 돌리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상응하는 유인책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최근, 일부 軍 간부 그룹이 과이도(Guaidó) 임시 대통령 진영으로 합세하여 쿠데타를 기도했으나, 현 정권에 의해 간단히 제압되어 실패로 끝났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노르웨이 정부가 중재에 나서 두 진영이 정권 이양 협상도 벌였으나 무위로 끝나, 무력 충돌을 회피하고 평화적 정권 이양(移讓)을 위한 협상의 장래는 지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기에, 국제 사회도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현 마두로(Maduro) 진영과 대항하는 과이도(Guaidó) 임시 대통령 주도의 야당 진영을 지지하고 있다. 마두로(Maduro) 대통령 지지 국가들은 중국, 러시아, 쿠바, 터키 등 주로 사회주의 계열 국가들인 반면, 작년 대선은 무효이고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과이도(Guaidó) 임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가들은 美, 英, EU, 日, 캐나다 등 자유 진영 국가들이다. 베네수엘라는 지금 적법성을 다투는 두 명의 대통령을 둘러싸고 해외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 있다.
■ Foreign Affairs “근본적인 제도 변환보다 인물 교체 가능성 커”
금후의 베네수엘라의 상황 전개는 전혀 예단을 불허한다. UN 안보리는 美 · 英 · 佛과 中 · 러가 대립하고 있어 완전한 기능 부전 상태다. 국제 사회는 분열되어 흡사 냉전 시대로 돌아온 듯한 구도가 되어 있어, 베네수엘라 혼란 정국의 연착륙 시나리오를 그리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중남미 및 유럽 국가들이 두 진영 간 대화를 주선하고 있으나, 美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상황에 따라 군사적 선택肢도 시야에 있다고 공언하는 등, 대열이 흐트러져 있다. 이에 더해, 야당을 이끌고 있는 과이도(Guaidó) 의장이 아직 국내외에 야당을 대표하여 마두로 정권을 대체할 인물로 충분한 확신을 주지 못하는 점도 조속한 타개책을 찾지 못하는 한 요인이다.
따라서, 향후 軍部가 언제까지 마두로(Maduro) 정권을 지지할 것인가? 하는 점과, 또한, 종전에 현 마두로(Maduro) 정권에 맞서 온 미국 등과 달리 마두로(Maduro) 정권을 지지해 온 중국, 러시아 등이 향후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 가능성과 관련하여 어떤 입장으로 나올 것인가, 등이 베네수엘라의 향후 운명을 결정할 하나의 관건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형국에, 중국 정부가 자국의 투자 자산 보전을 위해 베네수엘라 야당 세력과 은밀하게 접촉하고 있다는 보도는 흥미를 끌 만하다.
美 정치 전문의 Foreign Affairs誌는 최근, 과이도(Guaidó) 의장이 마두로(Maduro) 정권을 축출할 동력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분석한 적이 있다. 그가 軍部로 하여금 마두로(Maduro) 정권을 계속 지지하면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데 결정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재 정권을 민주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는 원래 여당이 분열하고 야당이 단결해서 압박을 가해야 하나 여당은 일단 마두로가 장악하고 있고, 야당은 과이도(Guaidó) 의장이 ‘임시 대통령’ 취임을 선언한 뒤에 겨우 야당을 집결시켰을 뿐이다. 야당 세력에는 현재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관료 그룹이나 軍部로 하여금 정권 교체 이후에도 이권(利權)은 잃어도 권력은 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도록 설득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동 誌는 현 마두로(Maduro) 정권은 보기보다 정권 기반이 상당히 공고해서 향후 베네수엘라에는 ‘제도’ 전환보다는 ‘인물’ 교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즉, 현 마두로(Maduro) 대통령보다 ‘약간 덜 무능한(slightly less incompetent)’ 지도자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고, 민주 체제로 환원되기 보다 외세 지배를 형성하는 안정된 석유 의존적 체제 국가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설사, 현 마두로(Maduro) 정권이 미국의 후원을 업고 야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다른 정치 세력으로 대체된다고 해도, 여전히 사회 전반에 압도하고 있는 軍部의 영향력을 어떻게 감쇄(減殺)시킬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 Brookings “야당의 지리멸렬 상태로는 독재 정권 타도가 어려워”
결국, 관건을 쥐고 있는 것은 베네수엘라 국내 정세다. 그러나, 최근,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뒤, 미국 주도로 가해지고 있는 경제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마두로(Maduro) 정권과 야당 진영이 어렵사리 정권 이양 협상을 위해 대좌했으나, 야당 진영은 대통령 선거 재실시를 요구하고 있고, 집권 세력은 야당이 다수를 장악한 국회의원 선거를 다시 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일단 결렬된 바가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야당이 정권 교체 방안을 둘러싸고 심각한 딜레마에 처한 까닭은 자신들은 당장 마두로(Maduro) 정권과 유착되어 막대한 이권을 향유하고 있는 軍部의 동참을 이끌어낼 결정적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軍 일부 세력이 자신들에 합세하는 경우에, 자칫 현 집권 세력을 지지하는 군부와 유혈 사태를 빚을 수도 있다. 이는 사태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오래 전 美 Brookings 연구소가 발표한 정세 분석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야당 연합(MUD)이 의회 선거에서 2/3 이상 의석을 획득하는 압승을 거둔 이후, 마두로(Maduro)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30%로 떨어졌다고 전한다. 그럼에도, 2017년 지방 정부 선거에서 23개 지방 정부 중 18개 州를 휩쓰는 승리를 거두었고, 2018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일종의 불가사의라고 지적했다.
Brookings 연구소의 보고서는 현 마두로 정권의 최악의 실정과 바닥에 떨어진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은 야당 진영의 비극인 “분열” 이라고 진단한다. 야당 진영이 취약한 이유는 현 야당 연합이 단지 선거를 위한 기계적 결합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 외에도 ① 야당 연합 내에 기본적인 친교가 없는 점(little underlying comity), ② 이데올로기적 결속의 결여(little ideological affinity), ③ 정책 공감 부족(little shared policy consensus) 등을 들고 있다. 한 마디로 현 야당이 연대감이 희박하고 지리멸렬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NYT紙는 아직 마두로(Maduro) 대통령이나 과이도(Guaidó) 의장 진영 모두 軍部의 장래를 확실히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따라서, 일부 軍 지도자들이 마두로 정권에 반기(反旗)를 들기도 하나, 그렇다고 과이도(Guaidó) 의장 진영으로 선회하지도 않고 있다. 한편, 마두로 대통령도 軍에 대한 장악력이 여의치 않음을 감지하고, 아직 시위 진압에 軍을 동원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베네수엘라 정치 혼란 상항은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UN 추산으로도 베네수엘라 국민 중 어림 잡아도 700만명 정도가 당장 인도적 구호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해진다. 마두로 정권에 가까운 한 기업인은 “지금 누구도 마두로 정권이 유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는 물러가야 한다. 남은 문제는 언제 어떻게 물러가느냐는 것뿐이다” 고 토로했다. 그러나, 마두로(Maduro) 정권에 맞선 투쟁해오는 과정에서 수 많은 국민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경험해 온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이제 우려와 피로에 젖어 더 이상 총탄에 맞서기를 피하고 있다. 그들은 마두로(Maduro) 정권에 대한 반대도, 과이도(Guaidó) 의장에 대한 지지도 충분히 표시했으니 이제는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 『나라 경제가 망가지면 나쁜 정치가 싹튼다』 “他山之石”의 교훈
지금, 베네수엘라 국민의 80%에 가까운 사람들이 먹을 것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작년 말 마두로(Maduro) 대통령이 터키의 한 호화 호텔에서 고급 시가를 피우며 고가의 스테이크를 즐기는 장면이 보도돼 공분을 산 적이 있다. 이런 사례는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면 권력자들과 일반 대중들 간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아무리 부패한 정권이라도 권부를 장악한 집단의 총부리가 국민들을 겨누고 있는 한 오래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잘 보여준다. 베네수엘라를 지배해온 역대 사회주의 정권들은 누대로 부패에 의한 통치에 골몰했고, 이들은 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들에 충성을 바치는 대가로 군부에 막대한 이권을 제공해 온 것이다.
한편, 사회주의 추종자들은 자유시장 제도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을 끝장낼 탁월한 방법이라며 이상주의에 젖은 순진한 사람들을 유혹하나, 실제로 사회주의란 권력자들과 경제적 특권이 견고하게 결합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이들은, 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자발적 교환을 통해 균형을 이루는 과정에서 최대한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제도라는 사실을 원천적으로 배반하는 것이다.
그런 일그러진 이데올로기에 젖은 정치 집단들이 권력을 움켜쥐고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한, 그들은 국민 대중을 가혹한 희생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들 만의 이익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최근의 한 시산으로는 베네수엘라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석유 시설 등, 인프라 정비에 당장 1,80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긴급 구호 물자 반입도 시급하다. 날로 심각해지는 경제 상황에 나라를 등지고 탈출하는 인구가 급증하자 인구 격감으로 그나마 경제가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이대로 가면 2020년 말까지 900만 명이 베네수엘라를 떠날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영국 상원 의원인 Warwick 대학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교수는 “나쁜 경제가 나쁜 정치의 싹을 틔운다” 고 지적한다 (‘Project Syndicate’, Sep 20, 2018). 반드시 그런 이유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나 높은 상관관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7년~2016년 동안에 유럽 사회에 극단주의 정당들이 득세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프랑스 National Rally, 독일 AfD, 이탈리아 League Party, 오스트리아 FPÖ 등이 모두 선거를 통해 지지를 확장하고 있다.
스키델스키(Skidelsky) 교수는 “나쁜 경제” 란 금융시장이 실물 경제를 압도하는 경제를 말하고 “나쁜 정치” 란, 간단히 말해서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선 나라에서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가주의로 경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흔히 사회주의적인 보호주의를 선호하고, 재화, 사람,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을 지지한다. 대개의 경우, 사회주의자들은 정치 · 사회의 분열을 통해 이득을 향유한다. 그리고, 이들은 국제 분업 시스템 작동이 붕괴되거나 방해되면 더욱 준동하는 게 이치다.
따라서, 오늘날 극단주의가 급격히 세력을 얻는 것은 우리 세대에 절박한 경고가 되는 것이다. 스키델스키(Skidelsky) 교수는 좋은 정치를 지키기 위해 4 가지 현상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① 세계화(globalization)의 정치 · 사회적 한계, ② 실물 경제의 금융화(financialization), ③ 재정 · 금융 정책의 역할, ④ 급격한 기술 진보에 따라 자동화가 가속됨에 맞춘 노동에 대한 보상 문제, 등이다. 결론적으로, 이념 성향을 불문하고, 이들을 등한시한 정치는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다.
■ 지금 『철학이 없는 정치가 나라를 망친다』; 우리의 기막힌 현실
마침, 우리 사회에도 근년 들어, 정권이 좌 · 우 성향의 정치 세력 간에 순차적으로 교차하며 바뀌는 과정에서 나라 전체가 극명하게 양분되어 공연한 攻防이 벌어진다.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집권 세력도, 이에 대항하는 非집권 세력도 서로 상대방을 향해 100%의 옳고 그름을 다투며 무한 반복적 극한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내외 요인들이 암시하는 경제적 위험 신호를 깊이 우려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원래 정당이란 본연의 이념과 노선을 좇아 동류 성향의 개인들이 모인 결사체다. 그러나, 우리 정치 사회에는 여태까지 이러한 이념적 정체성은 멀리 사라지고 잡다한 사적 인연이나 이익 원천을 따라 부평(浮萍)같이 몰려다니며 패거리를 이루는 폐습이 정착되어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고질적인 병폐와 횡행하는 만악(萬惡)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고 많은 예를 다 제쳐 두고, 경제 정책 논쟁만 해도 마찬가지다. 소위 자유시장 경제를 본령으로 삼아야 하는 이른바 “보수” 정당들이 상대 정당이 집권하기만 하면, 자신들도 방금 전까지 해오던 것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복지 정책이라면 무조건 좌파 세력의 전유물인 것처럼 착각한다. 그리고는 전적으로 무분별한 분배 위주 정책으로 몰아가며 종국에는 파탄의 길로 갈 것이라고 비난하기 일쑤다.
다른 쪽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이니 5G니 하는 요란한 슬로건을 내걸고, 정부가 온갖 것을 도맡아 하겠다며 야단법석이다. 대부분 그냥 놔두기만 해도 훨씬 더 열정적인 경제 주체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기 마련임에도 말이다. 마치, 걸음마 걷는 마부가 준마(駿馬)를 이끌고 가려는 우매함에 견줄 수 있지 않을까? 대소 조직을 막론하고 ‘중복’은 ‘공백’을 낳게 마련이고, 여기서 말미암은 ‘과잉’과 ‘부족’은 대개 자신이 추구할 정체성을 망각한 데서 오는 자기모순이고 자가당착이다.
구태여 이쪽 저쪽 따질 것도 없이, 오늘날 우리 정치는 한 마디로, 이념 부재, 철학 빈곤의 질곡에 빠져 제 발에 밟혀 헤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특히, 보수 우파를 자처하는 정치가들은, 현 집권 세력에 종북 편향이니, 복지 포퓰리즘이니, 독재 폭정이니 하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지향하는 최고 이념 및 노선, 이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국가의 장기 비전이나, 이를 달성할 정책 수단은 무엇인지를 국민 앞에 당당하게 천명(闡明)한 적이 있기나 한 지 처절하게 자성할 일이다.
이미 오래 전에 이웃 나라 일본의 한 의기 투철한 논객이 이런 부류의 정치 집단을 향해 “철학이 없는 정치가가 나라를 망친다” 고 갈파한 적이 있다. “사회주의에도 경쟁은 있어야 하고, 시장경제에도 규제는 필요하다” 중국의 개혁 · 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鄧小平)의 투철한 정치 사상이고 개혁 이념이다. 공공봉사 정신이니, 인륜 도덕이니 하는 진부한 말들은 차치하고, 국민 앞에 나서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우선 극단을 피하는 실용적인 기본 이념을 확고하게 정립할 일이다.
그리고, 함께 추구할 동류의 정체성을 확립한 정당이라면 선거 때마다 급조(急造)하여 천편일률적으로 나열하는 입에 발린 “공약(空約)集”이 아니라, 자신들의 중심 이념과 노선, 그리고 이를 구현할 정책들을 유권자들에 서약하는 일종의 “메니페스토(manifesto)”를 국민들 앞에 소상히 밝히는 최소한의 정성이라도 있어야 할 일이다. 최근, 남의 나라 국민들이 겪는 비참한 현실을 몇 차례 읽다 보니, 우리네 현실이 묘하게 겹쳐져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주제 넓게 넋두리 몇 자 적어 본 것이니, 제현의 하해(河海)같은 양허(亮許)를 바랄 뿐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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