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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안의 아시아: 비빔밥문화의 가능성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6월26일 19시5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2시12분

작성자

  • 최협
  •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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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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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안의 아시아: 비빔밥문화의 가능성

 

 대한민국이 자랑하던 단일민족․ 단일문화의 신화에 변화가 오고 있다. 1990년대 말까지만해도 30만 명에 머물렀던 국내 외국인의 숫자가 2013년 말 통계에 의하면 160만 명에 달하고 불법체류자의 수도 2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제주도의 인구가 60만 명가량이니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제주도가 세 개 더 새롭게 만들어진 셈이다. 외국인의 숫자가 지난 20여년사이에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귀화자의 증가가 큰 몫을 차지했다. 한국은 지금 극심한 출산율의 저하와 농촌지역의 인구 감소로 인하여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로부터 노동인력과 결혼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다문화사회에 대한 보다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사실 다문화사회에 대한 높은 관심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는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21세기의 흐름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이다. 한때 게르만민족의 순수혈통을 유지하려했던 독일조차도 20세기 후반 외국인노동인력을 대량으로 받아들임으로서 이제 인구의 9%가 외국인인 다만족국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독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프랑스나 영국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는 흔히 전통문화가 많이 남아있어 보수적일 것으로 간주되던 농촌지역이 가장 앞서서 국제화된 인구구성을 갖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2000년을 전후해 한국사회에서 크게 증가하기 시작한 국제결혼의 대다수가 농촌에서 이루어진 사실과 관련이 있다. 정부의 농촌 군 단위 통계를 보면 아시아의 외국인신부를 맞이하는 결혼비율이 30%를 상회하는 지역이 20개가 넘는다. 그래서 많은 농촌에서는 이미 신생아 3명 중 1명이 인종적인 혼혈이라는 사실을 최근의 한 보고서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확실히 한국 사회는 이제 문화적, 인종적으로 더 이상 폐쇄적인 사회가 아님이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문화현상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문화는 항상 변화하는 것이 본질이며, 동시에 인간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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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돌아보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국들은 모두 개방적인 다문화사회였다. 최초의 제국을 이룬 로마는 정복한 속국민에게도 로마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순수 로마혈통을 갖는 시민만의 획일적 지배체제를 고집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로마대제국의 영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참고로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흑인의 피가 섞인 북아프리카출신이었고 필리푸스 아라부스는 아랍출신이었다. 진정한 세계제국이었던 징기스칸의 몽골은 유라시아에 걸쳐있는 다양한 민족들의 서로 다른 문화를 용인하였고, 항복한 이민족들을 중용하는 정책을 펴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제국을 장기간 통치했다. 심지어 네델란드처럼 작은 국가도 17세기에 세계로 국력을 뻗쳐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타지역에서 배척받던 유태인들을 받아들여 상업과 금융 및 무역을 진흥시켰기 때문이었다. 시선을 현재로 돌려 보더러도 세계 최강국인 미국 역시 이민자들이 만든 최초의 국가로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다민족․ 다문화사회이다. 이처럼,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는 교훈은 매우 단순하고도 분명하다. 즉 진정한 사회 문화적 발전은 문화적 다양성, 관용과 포용, 그리고 나눔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학의 문화이론에는 ‘진화의 잠재력에 관한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문명사적 진화에 필수적인 요소는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것이 그 이론의 핵심인바, 다양성을 잃은 문화체계는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져 다음단계로의 진화에 실패한다는 이론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갖춘 사회는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환경변화에 역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예컨대 석유라는 에너지에만 의존하는 문화체계는 석유가 고갈되면 멸망한다. 그러나, 석유 이외에 태양, 바람, 지열 등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들을 고르게 활용하는 체계는 어느 한 에너지원이 고갈되어도 계속 유지 발전해 갈 수 있다. 이처럼 어느 사회에서나 문화적 다양성의 확보는 중요한 것이다.

 

현대의 세계에서 인구의 대량이동은 불가피한 현상이 되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들로부터의 인구유입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고, 한국사회가 받아들인 아시아로부터의 이주자들은 앞으로 한국사회가 다문화사회로 발돋움하도록 해주는 자원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 우리 정부도 이민자에 대한 정책을 바꿔, 과거의 일방적 동화위주의 정책에서 이주자의 문화를 한국의 배우자들이 배우고 이해하도록 하는 방안을 점진적으로나마 마련하기 시작하고 있다. 앞으로는 특히 농촌에서 크게 증가하고 있는 다문화가족 아이들이 그들의 어머니나라의 말과 문화를 접하게 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하면 그 아이들이 자라 한국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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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비빔밥이 음식한류의 중심으로 떠  올랐다. 다양한 나물과 반찬들을 고루 섞어 풍부한 맛을 자아내는 영양만점의 웰빙 음식인 비빔밥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는 사실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다양한 영양분과 맛들이 고루 섞여 훌륭한 전체를 만들어내는 비빔밥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한국도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되고 아시아와 함께 살아가는 ‘비빔밥 문화’의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은 풀빛출판사에서 펴낸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의 에필로그로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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