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화의 종언과 한국경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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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화, 금융위기 이후 종료된 것으로 판단 * 반세기 이상 지속된 세계교역/GDP 비율 상승세, 세계 금융위기 이후 소멸 * 최근 미국의 신 워싱턴 컨센서스, 세계화 종료를 사실상 공식화 - 세계교역 둔화로 한국의 수출주도형 성장도 종료 * 2010년대 이후 수출증가율 크게 하락 (1990~2007년 13.2% → 최근 10년 2.4%) * 최근 10년간 수출증가율, 경제성장률을 하회 - 미중 갈등 심화로 향후 교역환경 더욱 악화 가능성 * 세계경제 디커플링 시 세계 GDP 최대 6% 하락 추정 (IMF) * 미중과 교역 비중 크고 중간재 수출 비중 높은 한국은 특히 큰 충격 * 향후 수년~10여년이 세계화 종료 이후 교역환경 결정에 중요한 기간 - 교역환경 악화를 막기 위한 국제 공조 노력 필요 * 세계경제 디커플링이 한국의 이해관계에 부합되지 않음을 천명 *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국가들과 더불어 개방적, 비차별적 교역환경 추구 - 민간소비와 수출이 동반 견인하는 성장체제로 전환 |
세계화를 세계경제의 GDP 대비 대외교역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이라 정의할 때, GATT 체제 출범 이후부터 반세기 이상 지속된 제2차 세계화는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반세계화 여론 확산과 최근의 미·중 갈등 심화로 세계 GDP 대비 무역 비율의 상승 추세는 소멸되었고, 세계화의 주도자였던 미국은 소위 신(新)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 자유무역을 내세웠던 1990년대의 워싱턴 컨센서스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천명하면서 사실상 세계화의 종료를 선언하였다.
세계화의 종료는 세계교역에서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세계화 종료 이후의 세계교역 환경이 어떤 내용으로 정립될지는 아직 유동적이며, 향후 수년에서 십여 년간의 세계 각국의 행동이 이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미·중은 분명 다른 나라보다 큰 영향력을 갖겠지만, 이제는 어느 나라도 세계경제에서 지배적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나라의 대응 역시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세계화에 힘입은 수출주도형 성장을 통해 발전을 이룩한 한국경제에서 세계화의 종료는 중대한 사건이다. 세계교역의 둔화로 최근 10년간은 실질 수출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밑돌면서, 한국경제에서 수출주도형 성장도 사실상 종료되었다. 미·중 갈등 심화로 향후 교역환경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이 세계경제의 블록화로 이어질 경우 미·중 모두와 교역 비중이 높은 한국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우선 세계교역 환경의 추가적인 악화를 막기 위해 대외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자유무역의 수혜자이자 세계 8위 교역대국으로서 세계교역 환경의 악화를 막기 위해 노력할 이해관계와 도의적 의무, 잠재적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다. 세계경제 디커플링이 한국의 이해에 부합되지 않음을 명확히 하고,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나라들과 더불어, 세계교역 환경이 보호주의적이거나 블록화로 치닫는 것을 막고 비차별적이고 자유로운 교역 환경이 유지될 수 있도록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략은 설사 세계경제의 디커플링이 진행되는 경우에도 한국경제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아울러 국내적으로는 수출의 성장 기여 하락에 대응하여 민간소비와 수출이 성장을 동반 견인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세계경제 격변기의 리스크 관리 노력의 강화가 필요하다.
1. 서론: 세계화의 간략한 역사
세계화(Globalization)를 세계경제의 GDP 대비 대외교역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이라 정의할 때, 산업혁명 이후 세계경제는 크게 두 차례의 세계화를 경험하였다. 그 첫 번째는 19세기 후반에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이를 흔히 제1차 세계화라 부른다. 이 기간에는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세계교역이 크게 증가하면서 세계경제의 GDP 대비 대외교역 비율이 뚜렷한 상승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제1차 세계화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종료되었고, 그 이후 대공황과 보호주의 확산,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수십 년간 세계교역이 크게 침체되었다. 세계교역 침체로 이 기간 중에 세계교역/GDP 비율은 제1차 세계화 정점 대비 약 1/3 수준까지 하락하였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브레튼우즈 체제의 성립과 더불어 GATT가 출범하면서 세계교역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최근까지 세계교역은 세계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세계경제의 GDP 대비 대외교역 비율은 제1차 세계화의 정점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상승하였다. 이를 제2차 세계화라 부른다.
제2차 세계화 속에서도 대략 1980년경을 경계로 한 전반기와 후반기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일부 학자들은 이를 구분하기도 한다. 1980년대부터 세계 금융위기 이전까지의 기간은 세계화의 범위와 내용이 한층 확대되고 고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수출주도형 성장을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 경제의 성공에 자극되어 개도국들의 세계화 참여가 늘어나고, 특히 냉전 종식 후에는 중국과 동구권이 세계교역에 참여하면서 세계화의 지역 범위가 크게 확대 되었다.
이에 더하여 이전의 단순한 교역 확대에서 글로벌 밸류 체인(Global value chain)으로 특징지워지는 생산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내용 면에서도 한층 고도화되는 특징을 보였다.
2. 제2차 세계화의 종언과 세계교역 환경의 변화
(1) 제2차 세계화의 종언
20세기 후반 이후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제2차 세계화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그림 1>에서 보듯 세계 GDP 대비 교역 비율의 상승 추세는 금융위기 이후 멈추었고, 동 비율은 10여 년간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물론 세계 GDP 대비 교역 비율의 상승 추세가 10여 년간 관찰되지 않는다고 해서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동비율의 상승 추세, 즉 세계화가 끝났다고 반드시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은 제2차 세계화가 끝났음을 시사한다.
우선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 증가율이 현저히 둔화되면서, 세계 GDP 대비 교역 비율의 상승 추세가 소멸되었고 이러한 추이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0년2007년간의 연평균 실질 세계교역 증가율(7%)에 비해 최근 10년간 증가율(3.1%)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그림 3).
이에 따라 금융위기 이전에는 세계교역의 GDP 탄성치가 2에 가까웠는데 금융위기 이후에는 절반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세계교역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대외투자의 변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금융위기 이전 상승 추세를 보이던 대외 직접투자/GDP 비율은 금융위기 이후 뚜렷한 하락세로 반전되었다 (<그림 2> 참고).
이와 더불어 세계화의 종언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논거는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의 둔화를 가져온 주요 요인들이 여전히 지속 중이거나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상당 기간 세계교역이 금융위기 이전과 같은 증가 추세로회복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함을 의미한다. 오히려 최근의 상황을 고려하면 세계교역 환경은 향후 더 악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 부진을 가져온 주요인은 선진국의 반세계화 여론 확산과 최근의 미·중 갈등이다. 금융위기에 뒤이은 대침체(Great Recession)로 실업이 급증하고 불평등 문제가 부각되면서 선진국에서는 반세계화 여론이 크게 확산되었다.
선진국의 반세계화 여론은 현재 별다른 완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헤게모니 갈등이 세계교역 환경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동인이 되고 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세계교역 환경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정치나 안보, 금융 등의 분야에서는 기존 패권국의 경쟁자인 중국이 기존 체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실물경제 분야에서는 거꾸로 기존 패권국인 미국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화의 밑바탕이 된 세계교역 체제의 설계자이자 주도자였지만, 세계화가 중국 부상의 통로가 되었다는 인식하에 기존 체제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추구하면서 특히 첨단산업에서의 대중 교역이나 기술 교류를 차단하고 동맹도 이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미·중 관계는 악화 추세를 지속하고 있어, 미·중 갈등의 세계교역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향후에도 지속되거나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발표된 미국의 소위 신 워싱턴 컨센서스(New Washington Consensus)는 자유무역을 전면에 내세우며 세계화 확대를 주도하였던 19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와는 거의 정반대의 인식과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다.1) 무엇보다 여기서는 기존의자유무역체제가 미국의 이해관계에 부합되지 않으며, 따라서 더 이상 이를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신 워싱턴 컨센서스는 제2차 세계화에 대한 미국 입장에서의 종료 선언이라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2) 세계화 종언 이후의 세계교역 환경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제2차 세계화의 종료는 세계교역과 관련하여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기존 체제의 종언을 가져온 것은 한마디로 세계 정치경제의 변화이다. 서구 선진국의 정치적 환경은 대부분 반세계화로 돌아섰고, 더욱이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 기존 세계교역 체제의 설계자이자 주도자가 그 체제의 와해에 앞장서고 있어 기존 체제로의 복귀는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세계화 종료 이후의 세계교역 환경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정립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현재까지는 세계 GDP 대비 교역 비율이 정체 상태를 지속하고 있지만, 교역 환경이 더욱 악화되어 동비율이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탈세계화(Degloꠓbalization) 국면으로 진행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미·중 관계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악화 일로이고, 더욱이 최근에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자국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정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미국의 신 워싱턴 컨센서스에서는 고용 창출과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산업정책을 첫 번째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 산업정책은 후발국의 추격을 위한 수단으로 주로 사용되어 왔는데, 세계경제의 최선진국들이 자국사업 보호를 위한 산업정책에 가세한다면 세계교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이에 더하여 작년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추가적으로 세계교역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세계화 여론의 확산과 미·중 갈등의 심화, 선진국의 산업정책 확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가 맞물린다면 세계경제의 블록화와 보호무역주의로의 퇴행이 나타나면서 최악의 경우 20세기 초반과 같은 세계교역의 대침체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와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 교역 확대를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신흥국들은 세계교역 환경을 위축시키는 변화에 반대할 것이다. 선진국 내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들 역시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질 것이다. 아울러 기후 변화나 팬데믹의 위협, 최근의 긴축 국면에 따른 신흥국의 부채 문제와 같이 전 세계적 공조를 필요로 하는 현안들 역시 세계경제의 블록화나 미·중 갈등 악화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마도 향후 수년 내지 십여 년간이 세계화 종료 이후 세계교역 체제의 구체적 내용이 결정되는 시기가 될 것이고, 이 시기 세계 각국의 전략 선택이 그 내용을 결정할 것이다. 우선 기존 체제의 구심점이자 최근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전략 선택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미국은 중국의 패권 위협 저지를 가장 중요한 정치·경제적 과제로 설정하고, 그 수단으로 중국과의 디커플링, 특히 중국을 첨단산업과 기술의 국제 교류에서 차단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선진국 중 무역의존도가 가장 낮고 세계에서 사실상 거의 유일하게 자급경제가 가능한 나라이다. IMF의 분석에 의하면 세계경제 블록화가 실현될 경우, 미국에 비해 중국이 상대적으로 훨씬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2)
다만 이 같은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주요 동맹을 위시한 다른 나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국가들의 동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따라 미국 전략의 내용과 수위는 달라질 것이다.3)
한편 중국은 정치나 금융 등 다른 분야에서는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기존 체제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지만, 대외교역에 관한 한 상당 정도 기존 체제의 수혜자란 점에서 변화를 추구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미국이나 서구의 대중국 디커플링이 진행된다면 중국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에 동조하지 않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자국에 우호적인 블록을 형성하려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내부적으로는 이전부터 추진해 오던 산업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고 또 경제 전반의 대외 의존을 낮추는 방향으로 구조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별국가로서는 이들 G2가 다른 나라에 비해 세계교역 환경에 훨씬 큰 영향력을 갖겠지만, 국가들 그룹으로 본다면 G2 이외의 다른 나라들도 그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제2차 세계화가 출범할 당시에는 미국이 세계 GDP의 50%에 가까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였지만, 현재에는 G2를 합해도 50%에 미치지 못한다. G2가 서로 갈등 관계에 있는 상황에서 어느 나라도 세계경제를 일방적으로 좌우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미·중의 전략 자체도 다른 나라들의 대응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주목할 만한 점은 구(舊)냉전 시기와 달리 이번 미·중 갈등 국면에서는 훨씬 많은 국가들이 미·중 어느 한 편에도 일방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중립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4)
특히 Global South로 불리는 신흥국들이 대부분 그런 전략을 취하고 있다. 구 냉전 시기의 비동맹 그룹은 경제적 위상이 미미하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세계 각국이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현재 미·중의 전략 못지않게 세계화 종료 이후 세계교역 환경의 정립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3.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1) 세계교역 둔화와 수출주도형 성장의 종료
한국경제는 제2차 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국의 하나이다. 한국경제는 수출주도형 성장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하였고 수출주도형 성장을 가능케 한 높은 수출 증가는 세계화가 제공한 우호적인 대외환경에 크게 힘입은 것이었다. 수출주도형 성장의 결과 한국경제는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경제구조를 갖게 되었고, 따라서 세계화의 종언이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그림 3>은 IMF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화 종료 전후 세계교역 증가율과 한국 수출증가율의 변화를 보여준다. 세계교역 증가율이 1990~2007년 평균 증가율 대비 최근 10년 절반 이하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한국 수출증가율은 1990~2007년 평균 12.9%에서 최근 10년 2.8%로 더 큰 폭으로 급락하였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1990~2007년 기간에는 세계교역에 대한 한국수출의 탄력성이 1.8이었는데 최근 10년은 0.6으로 1/3수준으로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실제 탄력성의 변화 정도와 그 원인에 대해서는 향후 좀 더 상세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주력산업 해외생산 본격화의 영향, 세계교역의 구조 변화, 한국경제의 성숙화5) 등이 탄력성 저하를 가져왔을 것으로 추측된다.6)
한편 <그림 4>는 좀 더 최근 시점인 금년 1분기까지의 국내 국민계정 자료를 이용하여 수출 변화를 살펴본 것이다(자료원과 집계 방식의 차이로 앞서 IMF 자료와는 수치에 다소 차이가 있다).
한국의 실질 수출증가율은 금융위기 이전인 1990~2007년연평균 13.2%에서 최근 10년간(2013년 1분기~2023년 1분기)은 2.4%로 크게 하락하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경제성장률과 수출증가율의 상대적 크기의 변화이다. 1990~2007년간에는 수출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두 배 이상 상회하였지만, 최근 10년간은 소폭이나마 수출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하회하였다. 코로나 팬데믹이 서비스로부터 재화로 수요를 이전시키는 효과에 의해 수출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던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수출증가율은 1%대로 더 낮아져 경제성장률의 격차는 1%포인트에 달한다. 수출증가율이 경제성장률에 못미친다면 수출주도형 성장이라 부를 수 없다. 제2차 세계화의 종언과 더불어 한국경제의 수출주도형 성장도 종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산업별로는 수출 둔화 특히 제조업에 집중적인 충격을 미친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부가가치 대비 수출 비중이 120%에 육박한다. 1990~2007년 대비 최근 10년간의 제조업 부가가치 연평균 성장률은 1/4 수준으로 크게 하락하였고, 그 결과 1990~2007년간에는 제조업 성장률이 경제성장률을 약 1.3배 상회한 반면, 최근 10년간은 제조업 성장률(2.0%)이 경제성장률(2.4%)에 상당 정도 못미치는 수준에 머물렀다. 즉 수출주도형 성장의 종료와 더불어 제조업도 성장견인력을 상실하였다.
(2) 세계경제 디커플링의 영향
최근 세계의 정치·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향후 세계교역 환경은 지금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가장 중요한 변수인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추이이고 세계교역에 대한 그 영향은 향후 점차 가시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당시의 미·중 무역분쟁의 경우, 그 영향은 주로 양국 간 교역에 국한되었고 세계교역 전반에 유의한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 나아가 첨단산업에서의 대중국 투자와 무역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 그 영향이 세계교역에 가시화되기에는 너무 이르다. 미·중 디커플링은 이제 시작 단계라는 점에서 세계교역 영향은 앞으로 점점 더 표면화될 것이다. 그 영향의 크기는 디커플링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는가에 달려 있다.
세계교역에서 미·중 디커플링 영향이 가시화될 경우 한국 수출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부진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선 디커플링은 그 자체로 세계교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또한 기존 GVC 체제의 축소와 재편을 초래할 것이란 점에서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수출(그림 7)에 타격을 미칠 것이다.
특히 한국은 중국과 미국이 각각 제1, 제2의 수출시장으로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최근 5년 평균 기준으로 양국이 한국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 14%, 중국 31%(홍콩 포함)로 총 45%에 달한다. 더욱이 실제 양국이 한국의 대외거래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이 수치가 가리키는 것보다 더 클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에 포함되지 않는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 규모도 적지 않고 또 첨단산업의 핵심기술 상당 부분이 미국을 원천으로 한다는 기술 측면의 중요성도 있다. 중국에 대해서는 최근 중국경제의 성장 추세 둔화와 구조 변화로부터 대중 수출의 상당 부분이 타지역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큰 이변이나 한국 수출에 대한 상당한 타격을 수반하지 않고서 가까운 시일 내에 그러한 변화가 나타나기는 어렵다고 본다.
한국 수출의 주력은 제조업 중간재이기 때문에 대부분 다른 나라의 제조업을 주 시장으로 한다. 그런데 현재 세계 제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과 EU를 합한 것에 근접하며(그림 8), 향후 그 비중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크다. 그런 점에서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상당기간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으로서의 잠재력을 가질 것이고 중국을 대체할 만한 다른 시장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7)
미·중 디커플링이 진행되면서 세계교역 환경이 더욱 악화될 경우 발생할 충격의 크기는 디커플링의 양상과 정도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에 추정하기 쉽지 않다.
여기서는 최근 주요 국제기관에서 발표한 추정 결과를 살펴보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표 1>은 관련 전문가들이 IMF나 WTO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발표한 추정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모든 연구가 디커플링의 양상과 정도에 대해 시나리오별로 추정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당연히 모든 추정 결과에서 영향의 방향은 부정적이고, 디커플링의 정도가 클수록 부정적 영향의 크기도 커진다. 전면적인 디커플링(세계경제 블록화)의 경우 장기적으로 세계 GDP가 최대 7% 감소하고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그룹은 GDP가 최대 12%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세계경제 블록화 혹은 미·중 간의 전면적 디커플링은 최악의 경우이지만, 최근 세계의 정치·경제 상황에 비추어 보면 그 가능성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기간의 차이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GDP 7% 감소는 대형 경제위기에 해당하는 규모의 충격이다(참고로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GDP는 약 5% 감소하였다). 국가별 혹은 권역별 추정의 경우 우리나라는 대부분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그룹에 속한다. 세계경제 디커플링은 우리로서는 전력을 기울여서 피해야 할 재난이다.
4. 한국경제의 대응 방향
(1) 대외 전략: 교역 환경 악화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공조
세계교역 환경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문제도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향후 수년에서 십여 년간 각국의 행동이 세계교역 환경을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현재의 세계경제는 복잡계와 같은 특성이 있다는 점에서, 비중이 작은 구성원의 행동도 비선형적 상호작용을 통해 전체 시스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한국은 세계경제에서 비중이 작은 구성원이 아니다. 한국은 세계 8대 교역대국이다. 또 앞서 한국 무역에서 미·중의 비중을 언급하였지만, 역으로 미·중의 무역에서도 한국은 상당한 비중을 갖는 교역 상대국이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은 중국의 제2 교역국이고 미국의 제6 교역국이다(그림 10). 이에 더하여 한국은 미·중 양국이 모두 탐을 내는 첨단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적절히 활용한다면 한국은 세계경제는 물론 G2에 대해서도 상당한 레버리지를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제국주의적 침략의 경험이 없고 20세기에 최빈국으로 출발하여 성공적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한 대표 국가란 점은 (특히 신흥국에 대해)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세계화 종언 이후의 세계교역 질서가 한국경제에 불리하지 않은 방향으로 정립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이 더 많은 효과를 거두려면, 첫째 가능한 한 많은 국가들과의 공조가 필요하고, 둘째 우리의 전략과 목표가 세계 공익과 부합하여야 한다. 이 두 조건은 물론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두 번째 조건의 경우, 우리와 이해관계가 다른 국가(미.중도 대상이 될 수 있다)를 설득하고 우리 행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런 조건을 고려할 때, 현시점에서 가장 적절한 전략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세계교역 환경을 추구하고 이를 위협하는 조치들에 반대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후,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협력하면서 그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대외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현재 세계교역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미·중 갈등에 따른 세계경제 디커플링 위험과 각국의 보호주의적 행동이다. 우선 세계경제 디커플링이 한국의 이해관계에 부합되지 않음을 명확히 하고, UN 제재와 같은 국제적 합의에 기초한 경우나 명백한 안보 위협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특정 국가나 지역을 차별하는 경제정책에 반대하며 이러한 조치를 시행하거나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나라들과 더불어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국제교역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은 설사 세계경제의 디커플링이 진행되는 경우에도 한국경제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화에는 분명 양지와 그늘이 있지만, 20세기 후반 이후의 세계경제 역사는 우호적인 교역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후발국의 빈곤 탈출에 가장 효과적인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세계경제 블록화를 초래할 수 있는 교역의 지나친 정치화(政治化)를 막고 자유로운 세계교역 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글로벌 공공재를 지키는 행동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무역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은 같은 길을 걸으려는 후발국을 위해서도 세계교역 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도의적 의무가 있다.
(2) 대내 전략: 민간소비와 수출이 동반 견인하는 성장 체제 구축과 리스크 관리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수출은 더 이상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경제성장에 못 미치는 수출증가율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잠재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출의 성장 기여 하락을 내수, 특히 민간소비의 증가가 보전하여야 한다. 즉 세계화 종언 이후의 한국경제 성장은 민간소비와 수출이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나누어 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소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GDP에서 차지하는 민간소비의 비중이 낮기 때문에 민간소비를 증가시킬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그림 11). 민간소비와 더불어 향후 상당기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관련 투자의 활성화도 요구된다.
한편 과거와 같은 수출증가율을 회복할 수 없다고 해도 한국경제에서 수출은 여전히 중요하다. 자원 부존 여건상, 그리고 인구변화 등에 따른 내수의 성장잠재력 하락 추세 속에서 경제의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수출의 중요성은 크다. 불리한 대외여건 속에서도 수출 증가세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경제의 변화 추세를 선제적으로 포착하여 새로운 수출 상품과 시장을 발굴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노력의 강화가 요구된다. 수출시장이나 공급망에서 특정 국가에 편중되어 있거나 첨단산업에서 특정국에의 기술 의존도가 높을 경우 그에 따른 리스크와 비용이 커질 수 있다. 시장과 공급망의 적절한 다변화와 더불어 기술 국산화를 통해 핵심기술의 해외의존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5. 맺음말
20세기 초 제1차 세계화의 정점기에 영국의 한 정치가는 유럽경제의 높아진 상호의존 때문에 유럽에서의 전쟁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주장하였다.8) 하지만 불과 몇 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제1차 세계화는 끝장났고 그 후 세계경제는 대공황과 보호무역, 그리고 또 한차례의 세계전쟁을 겪으면서 30년간 침체되었다. 제1차 세계화의 정점에서 어느 나라도 이후 30여 년간 벌어질 일을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않았겠지만, 세계는 그러한 참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제2차 세계화를 끝내고 G2의 패권 분쟁에 휘말려 있는 현재의 세계가 당시와 같은 상황으로 이끌려 들어갈 가능성이 없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향후 수년에서 십여 년간이 그 여부를 결정지을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 각국의 대응은 스스로는 물론 세계경제 전체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에서, 어느 때보다 중대한 무게를 갖는다. 한국경제가 이 같은 중대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인식과 지혜로운 전략 선택, 그리고 때로는 가보지 않은 길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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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 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반의 브루킹스 연구소 강연 내용,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speechesꠓremarks/2023/04/27/remarks-by-national-security-advisor-jake-sullivan-on-renewing-american-economicꠓleadership-at-the-brookings-institution/; E. Luce(2023), “The new Washington consensus: Yesterday’s US economic orthodoxy is today’s heresy”, Financial Times, April. 19 참조
2) IMF(2021), “Sizing up the effects of technological decoupling”.
3) 예컨대 최근 일부 유럽국가들이 디커플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미국도 옐렌 재무장관이나 제이크 설리번 안보보좌관이 중국의 경제발전 저지를 목표로 하거나 전면적 디커플링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발언하는 등 공세의 수위를 낮추고 있다. 하지만 실제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의 변화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4) Foreign Affairs(2023), “The Nonaligned world”, May/June; Financial Times(2022), “Middle powers are reshaping geopolitics”, 11.18. 참조.
5) 세계교역 구조 변화는 세계교역 구조가 한국 주력수출산업에 불리한 방향으로 변화하였을 가능성, 한국경제 성숙화는 경제성숙화에 따른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이 수출증가율 둔화의 원인으로 작용한 측면을 가리킨다.
6) 강두용·정인환(2015), “수출둔화, 구조적 현상인가”, 「e-KIET」 613호에서는 2014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한국 수출의 세계수입에 대한 탄력성 저하 현상을 분석하였다. 사용 자료와 세부 개념 정의에 차이가 있지만 동연구에서는 장기 탄력성이 금융위기 이전 대비 20~25% 하락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7) 중국을 대체할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도는 아직 인프라나 인적 자본에서 제약이 많고, 일부 부문에서 중국을 대체하는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는 베트남은 인구나 경제 규모에서 중국을 전면적으로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8) Ralph Norman Angell(1909), The Great Il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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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 5월 26일 보도자료로 배포한 자료를 옮긴 것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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