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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14> K-ART,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8월07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8월10일 10시11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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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한류의 효과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실감할 수 있다. 요즘처럼 한국인들이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한류 덕분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시기도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한국의 의식주와 관련된 해외의 관심도 높아지고 실제 해외 시장에서 이를 찾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디지털 강국답게 게임,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디지털콘텐츠가 강세를 보이며 공예와 의상 등 대중문화적 속성이 강한 분야는 나름대로 큰 성과를 얻고 있다. 

 

하지만 문학이나 미술, 연극, 무용 등 좀 더 본격적인 기초예술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세계적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는 세계 무대에서 차별화된 한국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가 병행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 원인으로 자체 내의 문화적 담론 생산의 미흡과 홍보 부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중 상대적으로 비언어적 속성으로 즉각적인 시각의 영역임에도 파급효과가 미약한 미술 분야인 K-ART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지난 칼럼에서는 방법적인 부분들을 다루었는데, 그렇다면 내용적인 측면에서의 과제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 상업적 차원에서 단색화(Dansaekhwa)가 해외에 약간 소개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예술 철학적 의미를 이해시키는 데는 미흡한 실정이다. 난해한 현대 미술 속에는 개념성이 내포되어 있어 이를 해석하는 명쾌한 논리와 철학 체계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이 ‘K-ART 원년’을 표방하며 노력하고 있지만, 단시간 내에 이루어질 과제는 아니라고 본다. 무조건 기존의 한국 미술을 백화점식으로 해외에서 전시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K-ART를 위해서는 한국만의 독특한 철학과 정신세계를 국제적 미술 언어로 설명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정신 문화의 특수성을 지구촌 무대에서 보편성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노력이 없지 않았음에도 이러한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한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하지만 최근 6~70년대 실험미술이 국제무대에서 관심의 포문을 열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마치고 8월 말부터 미국 순회전을 가지게 된 <한국의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심은 20여 년 전부터 당시의 실험미술의 대표작가인 이승택, 김구림 등 원로작가들의 작품을 지속해서 조명해왔고, 최근 해외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면서 촉발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50년대 말의 앵포르멜 양식이나 추상표현주의, 기하학적 추상 등 서구의 추상미술과 유사한 현대 미술이 있었지만, 서구의 어법과 차이가 없어 국제적으로 주목할 내용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의 실험미술은 추상의 형식주의를 넘어서는 점에서 서구의 그것들과 유사하지만 70년대라는 한국적 시대 상황을 담고 있는 차별성으로 인해 국제미술계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자국의 독특한 시대정신을 반영한 현대미술들은 서구 주류의 그것들과 차별화되기 때문에 관심을 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것들이 동시대의 국제적 예술맥락과 접맥되어야 하는 필수 조건이 있다. 

 

   서구 전위미술이 일본 현대 미술이 가진 동양의 선(禪) 사상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의 ‘구타이(具體)’가 그렇고 ‘모노하(物派)’도 그렇다.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 존 케이지(John Cage) 등이 활약한 ‘플럭서스(Fluxus)’의 실험예술가 중에는 쿠사마 야요이, 오노 요코 등 일본의 실험작가들이 대거 참여하였고 자신들의 선 사상을 현대 미술로 풀어냈다. 서양의 합리적 사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동양적 사유로서의 선은 당시 전위예술가들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백남준도 플럭서스의 구성원으로서 선 사상의 맥락에서 실험적인 음악에서 출발하였지만, 기술융합예술의 총아인 비디오 아트를 개척하여 국제무대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우리의 현대 미술이 국제무대에 독특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철학과 시대 정신을 국제적 언어로 해석해 내는 일이 필요하다.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는 우리만의 독특한 것을 지구촌 공동의 이슈와 접맥시켜 풀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빠른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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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백남준                                                      (그림2) 백남준,<TV부처>,1974 

 

  국내에서 정상의 위치를 점하는 단색화나 이우환의 작품들이 국제적인 어법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신으로 승화된 물질’을 주장하는 단색화나 공간과의 상관성 속에서 신체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을 논하는 ‘관계항’의 이우환의 작품들은 매우 현학적이면서도 모호한 추상성으로 인해 쉽게 국제적 언어로 소화해 내는 데 한계가 있다. 시장의 수요에 따라 후기 단색화로 지칭되는 작가들이 출현하고 있는데 단색화의 작가들과 차별화된 심도 있는 담론을 개발하는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반면 이승택이나 김구림과 같은 6~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 작가들의 경우, 국제적 미술 언어의 맥락 속에서 한국 문화의 특성과 시대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승택의 <고드랫돌>이나 <바람> 시리즈나 김구림의 <현상과 흔적> 시리즈 같은 작품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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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김구림,<현상에서 흔적으로>,1970,성동구 살구지 다리 근처 한강변 둑.      (그림4) 이승택,<바람-민속놀이>,1970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한 K-ART의 원천은 백남준에서 찾을 수 있다. 국제적 인지도를 가진 그의 작품이 다루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과 접목된 개별적인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하면 훌륭한 K-ART의 다양한 유형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현대미술사의 거장으로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백남준의 작품의 원천은 한국 문화 아닌가? 백남준이 거둔 독특한 동양적이며 한국적인 사유는 서양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피아노를 부수는 행위라든지, 서양 복식의 전통인 넥타이를 자르는 행위라든지, 샬롯 무어만과의 누드 첼로연주라든지 숱한 전위와 실험의 황색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이후 조셉 보이스와의 만남을 통해 샤머니즘의 세계로, 그리고 동양과 서양, 시간과 공간을 융합하는 세계관으로 발전하며, 기마 유목민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미디어 유목주의로 발전한다. 그는 실제로 한국 문화의 원형을 자신의 예술세계로 무한히 구현해 내었는데 특히 굿의 세계라든지, 차원이 다른 다양한 오브제와 이미지, 영상, 기술을 조합하여 다차원의 역동적 세계를 구현했다. 그가 구현한 ‘랜덤 억세스(Random access)’는 무궁무진한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언어를 실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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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최치원 풍류탄생>전 포스터, 2014       (그림6) 전완식,<사의사색(寫意思索)w-24>,216x216cm,거울 위에 아크릴페인팅과 혼합재료, 2023

 

   이외에도 우리에겐 유불선을 통합한 ‘풍류(風流)’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고구려 고분벽화로부터 비롯된 채색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독특한 샤머니즘이나 불교의 세계, 성리학, 동학의 세계 등등 지구촌에 차별화된 우리만의 정신 문화와 시대의 정신이 너무도 많다. 또한 우리가 지속해서 극복해 내는 질곡의 근현대사는 지구촌의 역사적 맥락에서 차별화된 무궁무진한 K-ART의 원천 소스가 될 것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내는 담론들과 우리만의 미학을 구축하고 이러한 정신적 기반 위에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연결해 풀어내는 일은K-ART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최근 위에 예거한 다양한 담론의 실험들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치원의 풍류사상과 추사의 사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서예 및 미술 평론가 이동국, 풍수와 역술, 동학사상으로 자연과 몸의 상관성을 탐구하는 무용평론가 김남수, 기독교와 불교, 노장·공맹 사상 등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사상을 두루 탐구하고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 깨달음을 얻은 사상가인 다석 유영모의 철학을 탐구하는 김종길, 대상을 거경궁리(居敬窮理)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관점으로 시대와 상황 그리고 작가의 소양에 따라 변형시키는 사의사색(寫意思索)을 중심으로한 ‘융복합주의’를 선언한 전완식 등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초기의 시론이어서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지만 서구와는 다른 우리만의 자신감으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는 노력은 한류의 지평을 깊고 넓게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인문학적, 자연과학적 연구성과들이 예술과 융합하여 독특한 K-ART의 정신적 근저를 튼실히 할 때, 피상적이며 짧은 유행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세기를 열어갈 실질적인 우리 문화의 저력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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