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과 공공기관 통폐합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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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때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다. 1982년 일본 전자산업의 대표적 기업이었던 소니(SONY) 사장에 오가 노리오가 취임한다. 그는 동경대 음대를 졸업한 오페라 가수 출신이라고 한다. 그런 배경을 가진 그는 취임 후 탈 전자화를 시도하면서 영화, 음악 산업에 집중했다. 초반에는 CD와 플레이스테이션 사업이 대박을 터뜨렸지만 이후 콘텐츠에 비해 기술이 경시되면서 LCD 등 새로운 기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경쟁력을 잃었다. 소니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삼성은 반도체 사업에 승부수를 던지면서 기술력 개발에 총력을 다 해 소니를 능가한 것이다. 이것은 과거 정부에서 경제수석과 문체부 차관을 지낸 고위 관료의 말이다.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일본 추월이 적어도 전자산업에서는 일본을 추월한 것이다. 대단한 일이다. 우리 국민이 자긍심을 느낄만하다. 그러나 경제 관료의 말의 이면에는 소프트웨어보다는 기술이 우선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소니 CEO가 음대 출신이라서 제품 혁신보다는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가지는 바람에 소니가 실패했다는 그의 판단은 매우 단순한 도식적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소니의 실패 요인은 그들이 세계 제패의 성공신화에 안주해서 삼성전자의 추격을 우습게 본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시장 전환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소니의 몰락을 CEO의 판단 착오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음대 출신이라 경영 판단을 잘못했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역사에 ‘이프(IF, 만일~)’가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가 ‘만일 음대 출신이 아닌 상경대 출신이었더라면 오늘날의 소니는 달랐을 것’이라는 가정도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감성경영, 예술경영을 강조하는 마당에 그의 결정은 빨랐고 정확했고 더 옳았을 수도 있다. 소니가 실패한 다른 이유는 제품 생산 위주의 종래의 경영 방식과 조직문화가 새로운 소프트산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몰락한 측면이 더 큰 실패의 원인일 수 있다.
엘리트 공무원인 그는 ‘문화가 힘이다.’ 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가 한중 정상회담 수행 후 가진 중국 상무장관과의 대담에서 FTA 문제로 분위기가 딱딱해지자 화제를 영화로 돌렸다고 한다. 무협영화를 많이 본 그는 중국 감독과 배우 이야기를 꺼내자 식사 자리가 화기애애해지고 양측이 훨씬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일화다. UAE 원전 수주 때 번번이 만남을 거절당했던 왕세자에게 젊은 시절 쓴 감동적인 시 “그대 울지 마세요, 그대가 눈물을 흘리면 내가 당신 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잖아요.....”를 얘기하며 다가간 한국의 대통령과 왕세자는 매우 친해졌다고 한다. 그런 경험이 있는 그는 ‘문화가 경제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하고 있다.
경제와 문화정책의 최고위 관료였던 그는 이 대목에서 이중성을 보인다. 그 역시 문화의 중요성을 십분 이야기 하지만 소니를 놓고 얘기하는 그의 태도는 다분히 경제가 우선 인 것처럼 보인다. “음대 출신은 경제를 모른다. 그래서 소니는 망했다.” 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사고방식이다. 역대 대통령, 정치인, 고위 공무원을 막론하고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화를 모른다거나 문화는 그저 한가한 사치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하면 미개인 또는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니 실은 그렇게 생각해도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관료들 가운데 그럼에도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의의로 많은 것 같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이들이 문화예술인들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일전에 문화인들의 사적 모임에 고위 공무원이 합석한 적이 있었다. 다른 식사 모임에 참석 후 뒤늦게 그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좌중의 상석에 자리를 내어 달라더니 불쑥 앉았다. 약속 보다 늦게 온 터라 사람들의 심기는 이미 상해 있었다. 이때 한 인사가 “그 자리 말고 저 아래 앉으시오” 라고 강하게 말하자 마지못해 자리를 옮기는 촌극이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태도가 방자했던 그는 해외 출장 중의 행실이 문제가 되어 강제로 옷을 벗었다고 한다.
공무원들 가운데 특히 예산 당국자의 위세는 강하다. 들은 얘기다. 모 문화단체의 기관장이 예산을 타내기 위해 담당 공무원의 집 앞에서 몇 날 며칠을 기다려 읍소에 가까운 청을 넣어 겨우 확보했다는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은 적이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힘 센 그들이 최근 공공기관 통폐합을 시도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통폐합,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게임등급위원회의 통폐합, 출판산업진흥원과 한국문학번역원의 통합, 기타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체육인재육성재단 등을 통폐합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을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산업적 기반이 약한 순수예술인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전통예술 등을 지원하는 기관이고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초중고대학생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역할을 맡고 있다. 영등위와 게임위 역시 심의성격이 다른 장르적 특성 때문에 원래 한 몸이었던 것을 분리하였는데 다시 합친다는 말이다. 전형적인 효율성 위주의 사고방식의 결과다. 말로만 문화를 존중하는 척 하면서 실은 경제 우선이다. 경제 부처 공무원들의 이중성을 다시 확인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런 통폐합 시도가 형식적인 제스처는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야 말로 창조경제의 핵심이다. ‘문화는 상품을 포장하는 것이니 제품이 우선이다. 문화는 경제의 종속물이다. 문화는 필요하지만 없어도 당장 죽지는 않는다.’ 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한국의 문화융성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의 선진국 진입이 목표라면 이에 걸맞은 문화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특히 경제부처 공무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예산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인다고 문화부터 손본다면 그들이 창조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정책의 목표도 삶의 질, 국민행복에 있다.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이 퇴색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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