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보다 더 위협적인 글로벌 리스크와 투자전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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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코로나19로 긴장한 탓인지 요즈음의 피로감이 연말 같다. 전염병이 이토록 위험한 글로벌 리스크였었는지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글로벌 리스크 인식 조사(Global Risks Perception Survey)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궁금해 졌다.
세계지식포럼은 매년 초 공공, 민간, 학계 및 시민사회 등 약 1,000명의 의사결정자들을 대상으로 지구촌에 가장 위협적인 리스크 요인이 무엇인지 설문한 결과를 발표한다. 놀랍게도 (중국에서 이미 코로나19가 시작된) 올해 1월에 발표한 세계경제포럼 조사결과에 전염병(Infectious Disease)은 겨우 10위에 올랐다.
도대체 글로벌 리더들이 전염병 보다 앞 순위에 꼽은 리스크는 무엇일까? 올해 1위로 선정된 리스크(발생빈도기준)는 기상이변이고, 기후변화, 자연재해, 생물다양성, 환경재난이 그 뒤를 이었다. 10년 전 WEF가 글로벌 리스크 인식 조사를 시작한 이래 환경관련 리스크들이 5위까지 모두 차지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설문 응답층별로도 견해가 나뉘었는데, 젊은 층으로 갈수록 환경 위험을 더 많이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기후변화는 기상이변 및 자연재해를 초래하고 생물다양성 및 환경재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글로벌 리스크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6개월간 우리나라 면적에 버금가는 땅이 재로 변한 호주의 산불이 기후변화 영향이라는 사실 앞에서도 우리에게는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왜 기후변화 리스크가 전염병 보다 앞 순위를 차지했을까?
투자자 리스크 관점에서 자산가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 보자.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올리버위만에 의하면 기후변화의 원인인 탄소배출에 탄소세를 1톤당 50달러 부과하면 채무를 불이행하는 석유회사들이 2~3배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만약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대로 탄소세금이 톤당 75달러가 된다면 위험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또한, 약 200개 국가가 2015년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대로 탄소감축을 이행한다면 석유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석유매장량의 약 30퍼센트는 땅 속에서 꺼내지 못한 채 폐기해야 하는데, 매장량과 기업가치가 정비례하는 업종특성 상 석유회사의 시가총액의 약 20퍼센트는 증발한다는 파이낸셜 타임즈의 분석도 있다. 이른바 좌초자산(Stranded Asset)에 대한 우려다.
탄소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와 관련된 업종에 돈을 투자한 금융기관은 기후변화로 인한 장기적 손실 리스크가 위협적일 수 밖에 없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지난 10년간 석탄회사의 가치가 74%하락하는 것을 목격한 경험을 갖고 있고 발전회사의 예상치 못한 이익 감소도 겪었다.
다음은 석유회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일 수도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투자리스크는 높은데 금융기관은 여전히 기후변화에 다른 위험 시나리오분석 결과를 의사결정에 전면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2018년 한 해에만 글로벌 은행들은 약 700조원이 넘는 돈을 화석연료 회사에 제공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현재는 투자자가 화석연료 관련회사에 대한 투자를 본격적으로 줄인다기 보다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투자리스크를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미래 대응행동을 선언하고 있지만, 2020년은 투자자들이 말(기후대응선언)을 행동(탄소투자회피)으로 옮기기 시작하는 변곡점이 될 전조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공공 금융기관의 경우,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모임인 국제결제은행(BIS)도 기후변화로 인한 금융안정성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가 예기치 못한 시점에 경제에 가하는 충격을 우려하면서 이는 다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린스완’이라고 규정한 이 충격은 미국 경영학자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블랙스완은 발생 확률은 낮지만 발생하면 충격이 큰 리스크를 의미하는 반면 그린스완은 리스크의 발생 및 전개 등이 복잡하고 예측이 어려운 불확실한 리스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자연재해로 인해 농산물 가격 및 식료품 가격의 급등 가능성, 에너지전환으로 에너지 가격 급등 가능성, 기상이변으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노동생산성급락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도 제시했다. 특히, 작년 말 새롭게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취임한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경제분석시 기후변화의 리스크가 포함되어야 하고 감독기관이 은행들에게 투명성 공시와 기후 위험 평가를 요청하는 등 기후변화 리스크가 은행의 새로운 전략을 검토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후변화가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하면서 관련 투자를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하여 글로벌 전문가들도 양적완화 하에서 중앙은행이 채권구매 시 기후변화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고 신용등급에만 의존하는 전통적 금융정책은 시장실패를 재생산할 것이라고 지적하며, 기후변화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은 자산에 대한 자본비용(capital charge)을 높일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즉, 시장에서 기후변화 리스크를 고려한 투자의 조달비용을 줄여 이를 활성화함으로서 기후변화 리스크가 줄어 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큰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움직임은 금융기관의 투자결정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어 주목된다.
민간 금융기관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7조달러(약 8200조원)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미국 블랙록(BlackRock)이 투자 시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핵심으로 고려할 것을 선언했다. 규모나 영향력 그리고 그 구체성으로 불 때 블랙록의 이런 움직임은 다른 투자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블랙록이 말하는 ‘환경’의 핵심은 기후변화다. 특히 블랙록이 투자대상회사를 상대로 밝힌 ‘친환경요구 리스트’에는 화석연료발전 및 석탄관련 매출 25프로 이상 직간접 투자를 금지하고 TCFD(탄소정보공개가이드라인)에 따른 공개’ 등을 요청하는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2015년 4월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은 금융안정위원회(Financial StabilityBoard)에 기후변화 리스크의 특성과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여 글로벌 전문가로 구성된 TCFD(Taskforce for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가 만들어 졌고, 2017년 7월 기후 탄소정보공개 가이드라인이 발표됐다.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기업이 기후변화 리스크를 미리 대비하기 위해 감독기능의 지배구조 확립, 시나리오별 대응전략 수립, 전사적 리스크관리 연계, 지표기반의 목표설정 등을 어떻게 할지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1,000개가 넘는 글로벌 기관들이 TCFD 권고안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심지어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주요상장사는 TCFD를 기준으로 기후리스크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의무화 법안이 년말까지 법제화할 예정이기도 하다. 글로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자가 투자대상회사에 대하여 요구하는 사항이 개념적 선언이 아닌 구체적 행동을 담고 있어 과거와 다른 파장이 예상된다.
이러한 요구의 배경은 지난 1월 블랙록 최고경영자(래리 핑크)가 전 세계 주요 기업 대표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 잘 나타나 있다.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투자자들이 목표를 재평가하도록 압박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 진전이 없는 경영진에는 반대하는 의결권을 보다 공격적으로 행사하고 파리협정(탄소감축합의)에 부합하는 경영전략을 공개하도록 기업들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전통적인 투자처이던 화석연료회사에서 투자를 철회할 수 있다는 새로운 운용 전략이고,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투자 및 비재무정보의 투명한 공개 등의 진전이 없다면 경영진과 이사회 등에 대한 주주관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전 세계 고객들은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응하여 블랙록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수정할지를 묻고 있는데, 기후변화 리스크로 기업과 투자자, 정부는 중대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서 다른 이해관계자의 역할까지 예측했다. 이러한 요구가 과거와 확실히 다른 점은 사회공헌적 선언이 아닌 구체적 행동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업적 판단을 기초로 한다는 점이다.
금융기관만큼 중요한 곳이 투자대상회사의 신용을 평가하는 곳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도 기업평가 전문회사답게 기후변화 리스크 대응을 이미 시작했다. 무디스는 2018년 환경리스크로 신용등급이 위협받는 11개 업종을 공개했다. 석탄산업과 발전업종을 우선위협대상으로 선정했는데, 이는 올해 발표한 블랙록의 친환경요구 리스트상 투자지양 업종과 일치한다. 같은 맥락에서 저탄소사회 부적응 리스크를 이유로 엑슨모빌의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하기도 했다. 또한, S&P도 작년 말 스위스 자산운용사인 로베코샘의 ESG 평가부서를 인수했는데 이는 기후변화 리스크 대응을 포함 ESG투자관련 증가하는 데이터 수요를 겨냥한 것이다. 그 즈음에 피치는 ESG상관점수를 공개하며 신용평가결과가 ESG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소개하기도 했다. ESG는 환경·사회·지배구조(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로, 투자자가 투자대상기업을 평가하는 비재무적 요소이다.
이처럼 기후변화 리스크에 미리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금융기관의 행동이 시작되었다. 미래 자산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비하면서도 손실규모를 최소화하는 목적도 포괄한다. 메르스 사태의 경제피해가 10조원이 넘었었는데, 코로나 사태의 경제피해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막대한 피해비용의 10분의 1이라도 미리 투자해 향후 생겨날 또 다른 바이러스 피해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어 두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후변화도 이미 피해가 발생하고 있고 피해비용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은 물론, 전염병의 피해와는 차원이 다르게 미래세대에 천문학적이고 불가역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기후변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지금부터 돈의 흐름을 바꾸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투자자는 사회의 주요 이해관계자로 상술한 투자전환이 본격화되면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가 설치류 등 숙주동물의 개체수를 증가시키고 강수형태 등 기상패턴을 변화시켜 전염병 확산도를 높일 수 있다는 모 대학병원의 연구가 기후변화와 점염병의 직접 상관성을 설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필자는 글로벌 리스크 차원에서 두 리스크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주목한다. 기후변화든 전염병이든 심각해진 후 대응하면 피해가 겉잡을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과 한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미국과 유럽은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다가 자국내에 확진자가 폭증하는 등 막대한 피해에 직면하고 있다. 한편 분명한 차이점도 있다. 전염병은 끝이 있고 다시 이전으로 회복될 수 있지만 기후변화는 끝을 모르고 늦으면 회복될 수 없다. 이것이 글로벌 리더들이 다보스에서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를 전염병 보다 훨씬 높은 글로벌 리스크로 선택한 이유인 것 같다.<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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