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와 한중, 한일관계의 전략적 모색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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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3호(2020.3.20.)에 실린 것으로 세종연구소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는 것입니다.<편집자> |
코로나19 확산은 ‘블랙 스완(Black Swan)’처럼 기존의 상식으로는 예측되지 못하는 사태이다. 즉 현재 코로나19의 상황은 국제관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며 대응 또한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메르스(MERS) 때만 하더라도 지구가 하나가 된 세계화의 현상으로 나타난 병리 현상으로 보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파워를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리스크를 발생시킨 것이다. 중국과 상호의존이 심화된 국제관계로 인해 각국은 중국발 위기에 고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국제관계의 새로운 양상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첫째 경제 글로벌화가 국내외적 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코로나19는 기존의 경제 위기와는 달리 수요의 급감과 동시에 공급망(Supply Chain)에 영향을 주었다. 국제민간항공기관(ICAO)는 2020년 상반기 항공 여객수가 최대 1,960만 명이 줄었을 것으로 예상될 만큼 영향은 크다. 중국에 공장이 있는 애플은 스마트폰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현대자동차의 부품생산에도 영향이 미치는 등 세계 경제는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둘째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은 기존의 방역대책과 경제부양을 위한 재정확대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각국이 국경을 차단하고, 공급망을 폐쇄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는 리스크 관리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인적교류와 교역을 해야 한다는 기존의 국제정치경제 상식보다 리스크 관리를 우선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지속한다면 자유경제질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셋째 중국이라는 비민주주의 국가에 의해 위기 현상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중국이 보여준 언론 통제와 시진핑 일극 집중체제는 코로나 사태의 초기 대응에 실패하는 원인이 되었다. 중국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함으로써 우한발 코로나19는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널리 전파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국제관계의 변화는 동북아 질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글에서는 한중관계, 한일관계를 살펴보면서 한국의 전략적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1. 한중관계의 영향
신종코로나 사태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한중관계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중국도 코로나19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여전히 기존 국제관계의 파워에 집착한 외교를 해서 빈축을 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 의료 지원, 50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중국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라고 한중 운명체론’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국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면서 한국에서 온 여행객을 가장 먼저 격리했다. 또한 한국의 항의에도 중국 정부는 한국에 대한 푸대접을 개선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애초부터 전문가들이 중국 입국 제한을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시진핑 방문을 의식해서인지 문 정부는 마이동풍이었다. 북한 문제를 고려한 중국의 눈치 보기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크다. 문 정부는 한중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으며 사드(THAAD) 국면에 비해 호전되었다고 했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보여준 중국 정부와 중국인의 한국에 대한 차별과 푸대접은 대중관계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중관계의 냉각은 근본적으로 한중관계 기본구도가 변화되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1992년의 수교 이후 2000년대까지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장 측면에서 한국의 요구도 수용하면서 양국 관계 심화, 발전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에는 비약적으로 증대된 국력을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영향권을 확대하려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미중 전략경쟁 과정에서 중국은 국력을 바탕으로 한미 동맹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의지를 표출했다. 한중관계 냉각의 원인이 된 사드 문제에도 중국의 의도는 나타난다. 중국은 애초 사드 문제 자체를 북한 핵에 대한 대응용으로 간주하지 않고 미국의 對중국 견제에 대한 동참으로 간주하였다. 중국 정부는 문 정부가 사드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믿었지만, 사드 배치를 묵인한 문 정부에 대한 불신이 남아있다.
중국의 방향 변화에 대해 한국이 확실한 대응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것도 한중관계 갈등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문 정부는 중국에 대한 ‘이념외교’의 허상 속에서 중국의 과도한 기대를 제어하지 못하면서 외형상 우호관계 관리에만 주력하였다. 대북정책에서 한미, 한중관계를 동시에 카드로 활용하려는 문 정부의 구상은 중국에게 한국 압박의 빌미를 만들어 주었다. 이 과정에서 문 정부는 중국에 제대로 ‘할 말’을 못하였고, 중국의 요구 또한 거세졌다.
결국, 한중관계는 비대칭적인 관계가 확대되면서 합리적인 외교를 어렵게 만들었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한국이 당면한 딜레마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미중의 갈등과 경쟁이 증폭될수록 중국은 한미 동맹에 대해 더 큰 우려와 견제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통일 문제에도 기본적으로 북한 정권체제의 유지에 중점을 두는 중국의 접근은 한국 외교에 대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동맹국의 더 많은 부담분담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할 때, 한중관계와 한미 동맹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구상은 자칫 이율배반적인 과제가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보여준 중국 정부의 푸대접과 무성의함은 한국의 대응이 얼마나 어설픈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지금이라도 문 정부는 중국의 눈치 보기 차원이 아니라, 한국의 국가대전략 차원에서 한중 양국 관계를 균형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2. 한일관계의 영향
공교롭게도 한일 양국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대응 실패로 똑같이 국민들의 반발에 처해있다. 한국과 일본 공히 중국 입국제한을 하지 않으면서 ‘자국민보다 중국을 우선한다’는 거센 비판에 휩쓸리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방역문제로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였다기보다는 기존의 국제관계 틀에 얽매여 있는 한일 양국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베 정부는 4월 초 예정된 시진핑 주석의 방일이 무산될까 봐 노심초사하다가, 시진핑의 중국 방한이 무산되자 중국과 한국에 대해 전격적으로 입국제한 조치를 시행하였다.
최근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입국제한 조치는 아베 총리가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까지 아베 총리는 시진핑 주석 방일을 추진하기 위해 중국인 입국제한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벚꽃을 보는 모임(벚꽃회) 스캔들과 측근인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상 부부의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 등으로 정치적인 위기에 몰리자 그동안 주저했던 한중 입국제한 조치라는 독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것은 코로나 19의 위기관리에 실패했다는 여론의 비난과 정권의 구심력 저하를 두려워한 아베 총리가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외교가 정치적 희생물이 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 입장에서는 아베 총리가 중국과는 사전 조율을 하면서도 한국에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시작되어 한일관계 발전에 기여한 상호 비자면제 조치 조차 아베 총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헌신짝처럼 버렸다. 게다가 무비자 입국의 중지로 발생할 악영향에 대한 우려는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대응 또한 ‘외교의 정치화’의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문 정부는 코로나19에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며 투명하게 대처한다고 자처하면서 논란이 된 중국에 대해서는 입국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 문 정부가 일본에게 만은 자신의 원칙조차 내팽개치면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에 비판적인 지지 세력만을 생각하여 취한 조치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코로나 사태로 100여 개 넘는 국가가 한국에게 빗장을 걸고 있는 현실에서 유독 일본에게만 대응조치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런 사전 설명 없이 한국인을 격리 조치한 중국에 대해서는 문 정부는 항의 한번 제대로 못 했다. 누가 보더라도 ‘힘센 중국에게는 할 말을 못 하다가 만만한 상대(일본)에 화풀이하는 꼴’이 된 것이다.
한일 양 정상은 지난 12월에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겠다고 선언을 하면서도 국내정치를 우선하여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민낯을 이번 조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양국의 국민들은 피해를 입고, 고통을 받았지만, 정작 양국 정부는 감정에 치우쳐 이에 대한 고려는 애당초 하지 않았다.
또한 문 정부는 일본 외교의 한계를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차라리 한국이 중국처럼 도쿄 올림픽을 위한 일본 입장을 이해하면서 코로나 협력 체제를 주장했다면 국제사회는 한국 외교에 갈채를 보냈을 것이 틀림없다. 일본 국민들 또한 한국을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 대한국 불신의 벽은 조금이라도 사라졌을 것이다.
3. 한국 외교의 대응 방향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한중관계, 한일관계의 불협화음은 그동안 누적되어 왔던 잠재적 문제점이 불거져 나온 측면이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제관계는 미중이 더욱더 경쟁적인 상황이 될 것이다. 향후 동북아질서는 더욱더 유동적으로 되면서 한국 외교는 더욱더 어려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라도 한국이 ‘소외되지 않는 동북아질서’를 만들려면 한중, 한일관계의 개선은 필수적이다.
우선 한중 양국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과도한 기대나 우려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차원에서 냉정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중국의 국력우위 압력 외교에 끌려가기보다는 양보 가능한 사항과 양보 불가능한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중국이 한국에 대해 가지는 불신이나 불만의 상당 부분은 중국이 제기하는 우려에 대해 한국이 ‘소극적 부인’ 혹은 ‘무대응’으로 일관한 탓도 있다.
이러한 태도에서 한국이 탈피하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중국 역할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한중 양국 정부 이상으로 양국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 역시 주요 과제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이 한중간 이견 발생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악의적인 이미지를 불식할 수 있도록 다면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점에서 민간외교와 공공외교는 더욱더 강화되어야 한다.
이제는 넓은 시야에서 한일관계를 고려하면서 동북아 협력을 이끌어 내는 실용 외교가 필요한 시기이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국면으로 들어가면 한일 양국은 입국제한 조치를 풀겠지만, 그 이후 한국이 어떻게 전략적으로 일본에 대응할지에 대한 과제는 남아있다. 우선 바로 눈앞에 닥친 사법부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 재산에 대한 매각조치는 한일관계를 더욱더 불안정하고 대립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한일관계에 더 큰 관심을 갖고 한일이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이다. 많은 해법이 나오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서 파탄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징용공 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한일이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해법은 없다. 가능한 것은 실타래가 얽힌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징용공의 문제에 대해 국장급 협의를 격상하여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 한일 대립이 더 이상 격화되지 않도록 당분간 잠정적인 동결방안을 제안해 봄 직하다. 한일관계에서도 감정보다는 전략적인 자세로 돌아와야 한다.
한일이 협력하였다면 한중일 협력의 꽃을 피울 수 있었건만,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서로 이웃집 불구경 하는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에 대한 동북아 국가들의 협력은 필수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예로 유럽에 가면 중국, 한국, 일본은 같은 취급을 당하면서 경원시 되는 것을 보더라도 한중일 삼국이 힘을 합쳐 코로나19에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명제가 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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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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