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72> 이건청 시집 [실라캔스를 찾아서]를 읽고/ 김 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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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 시인께서 시집 [실라캔스를 찾아서]에 대한 상세 독후감을 보내주었다. 김완 시인께 고마움을 표한다." ---- 이건청 |
어제는 종일 이건청 선생님의 시집『실라캔스를 찾아서』를 정독하였습니다. 시를 쓰는 후학들이 읽고 느끼고 배워야 할 견고하고 고독한 영혼의 집 한 채입니다.
“시는 풍경의 세부를 애정 어린 눈으로 깊이 보는 일이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시인은 우리의 일상, 우리가 사는 난세 속에서 명징한 풍경들을 발견해내는 일에 신명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세하고 명징한 풍경들이 구체적 세부를 이룬 시들이 좋은 시라고 믿습니다.···”
-저자 어록 중에서.
산수(傘壽)에 펴내는 이 시집은 시인 스스로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되뇌어 물어보고 있습니다. 6부 64편의 시로 구성된 시집은 시집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고민하는 젊은 시인들에게 좋은 전범(典範)이 될 것입니다. ‘노년을 위한 엄혹한 죽비의 글 모음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시인의 말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여는 시로 실린 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나
돌아가고 싶네
300만년 쯤 저쪽
두 손 이마에 대고 올려다보면
이마와 주둥이가 튀어나온,
엉거주춤 두 발로 서기 시작한,
130cm쯤 키의 유인원
오스트라로 피테쿠스 아파란시스
고인류학자들이
최초의 homo속(屬)*으로 분류한
그들 속에 돌아 가 서고 싶네
학력, 경력 다 버리고
그들 따라 엉거주춤 서서
첫 세상, 산 너머를 다시 바라보고 싶네.
안보이던 세상 산등성이로
새로 뜨는
첫 무지개를 보고 싶네
실라캔스*몇 마리 데불고
까마득, 유인원 세상으로
나, 가고 싶네
그리운,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란시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란시스*」 전문
* 초기 영장류 중의 하나. 한 개체의 화석에서 골편 40% 정도가 수습되어 발굴 영장류의 대표성이 있음
* homo屬(속). 현생인류와 그 직계 조상을 포함하는 분류 속.
* 3억 6천만년에서 6천 5백만년의 지층에서 화석으로 발건되는 육지척추동물의 조상 물고기. 1938년 이후 살아 있는 실물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고 있음
이 시를 포함해 5편의 시를 제1부 귀향시편에 담았습니다. “버릴 것, 다 벗어버리고 바람에 실려 가는 내 생각과 느낌들이 한두 편, 시에 담겨서나마 닿기를 소망해보는··· 일망무제 평정 세계, 돌 속에 화석들을 품은 39억년 퇴적암의 어느 모서리에 늙은 몸을 깊게 기대보고 싶은 때도 있었던 것을···”-시인의 말 중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 숙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죽음의 문제를 절제된 언어로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죽고 나면 우주 속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실라캔스 몇 마리 데불고”라는 시구는 시인으로서 그 정신을 잃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입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들판을 가득 채운 꽃들이
꽃들끼리 모여서 무슨 모의를 하는지
꽃밭이 둘레를 키우고
목소릴 엮어
무슨 구호를 이뤄내는 것인지
나는 다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체 게바라도, 피델*도
뒤섞인 꽃들 속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의 꿈을 갖자고*
꽃 하나가
곁의 꽃들을 흔들어 깨우고
다시 옆의 꽃들을 흔들어 깨우면서
깃발이 만들어지고
난만해진 깃발을
펄럭이며 혁명 만세를 외치는
늦가을이
꽃밭을 가로지르며
씨앗들을 다독여주러 오는 걸
보고 있다
늦가을 들판 그득 꽃이 피었다
일제히 흔들린다
만세, 만세다.
-「코스모스 꽃밭에서」 전문
* 피델: 피델 카스트로
* 체 게바라의 어록에서
작고 힘없는 것들은 외로 필 때는 수줍고 여리지만 무리 지으면 성숙해지고 힘이 세집니다.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코스모스 꽃밭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하고 그들의 모의와 구호를 다 읽어냅니다. 혁명 만세를 외치는 늦가을 들판에서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꿈을 잊지 말자고 나직이 이야기합니다.
하지 가까운 어느 날
호스피스 병동에서
노 시인 한 분 운명했다고
부고가 떴다
죽은 시인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겨져
빈소가 마련된다고
스마트폰 문자 부고가 떴다
인사동 한식 골목에서
손을 잡기도 했던
가죽 모자를 쓴
지팡이를 짚은
손이 따뜻했던
시인의 육신이
안치실 추운 box에 눕혀지고
급조된 시인의 액자 앞으로
2, 3일 만수향도 퍼지겠네
가죽 모자를 썼던
지팡이를 짚었던
손이 따뜻했던
시인 하나 지상에 사라진
인사동 한식 골목
어제나 그제처럼
라면 봉지 바람에 구르겠네
보안등도 켜지겠네.
-「2, 3일」 전문
제가 아는 가죽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었던 손과 마음이 더없이 따뜻했던 노시인과 많이 겹쳐 꼼꼼히 읽어 본 시입니다. 생과 사는 우리의 일상이지요. 이 시간에도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수많은 생명이 이 지구별을 뜹니다. “시인 하나 지상에 사라진/인사동 한식 골목/어제나 그제처럼/라면 봉지 바람에 구르겠네/보안등도 켜지겠네.” “머지 않은 때에 나 또한 2000년대 퇴적암 어딘가로 귀의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라는 시인의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길 하나가
휘어진 곳
사과밭이 눈발을 부르는
저 비탈 어딘가에
절간이 있고
사내 하나를 위해
천년동안 암반을 들쳐메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한다
저무는 산
하나나 둘
아니, 아니
사내 하나를 위해
저 산맥 연봉 모두를
펼쳐들고
풍설 속에
화엄의 날을 부르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한다.
-「선묘*」 전문
* 선묘: 의상대사를 사모한 중국 산둥반도의 처자. 용이 되어 따라와 의상의 부석사 창건을 도왔다 함. 부석사 뒤 浮石(부석)은 선묘 처자의 망극한 사랑을 담은 부석사 창건설화의 표징으로 이야기 된다.
전국의 오래된 사찰치고 원효와 의상의 이름 들어가지 않는 곳이 드뭅니다. 그만큼 도를 깨닫기 위한 간절함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던 것입니다. 몇 년 전 <한국의사시인회> 가을 문학기행을 경북 영주에 있는 김승기 시인의 초대로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부석사에 들러 절 뒤 浮石(부석)에 대한 설화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이 시는 부석사의 설립에 대한 설화를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 의상대사와 선묘, 기막힌 인연이지요. 현세에 이런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아야진항 방파제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본다
괭이갈매기 울겠지
지워지겠지
수평선 너머에서
파도를 딛고 말들이 올까
푸른 말들은 올까
무진장 말들을 캐러 멀리 간
시인 조정권, 시인 신현정
돌아오겠지
수평선 저쪽
환한 말들, 지고 끌고 오겠지
해 다진 수평선 쪽 향해 앉아
소줏잔 채우다 보면
말이 오겠지
별도 오겠지
수줏잔 그득 채워
건네고, 건네며
술 취한 말하고 별하고 앉아
몇 날밤 지새워도 좋으리
말 되어 돌아올 시인들을
기다리는
아야진 항
방파제.
-「말들이 돌아오는 바다」 전문
아야진항이 어디인가 찾아보았습니다. 아야진항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리에 있는 어항입니다. 아야진항구는 속초시에서 차량으로 20여 분 거리이며 청간정과 인접해있고 항구가 특이하게 두 곳으로 나뉘어 져 있는 항구이고 항구 주변 바닷가로 바위가 많아서 낚시하기에도 좋은 곳이다고 합니다. 아야진항 방파제에서 소주잔을 기울리며 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말들, 푸르고 싱싱한 말들이 올까 기다리면서 먼저 무진장 말들을 캐러 떠난 시인들, 「산정묘지」의 조정권, 「바보사막」의 신현정 시인을 호명하며 그리워합니다. 이건청 시인에게 말들은 어떤 의미일까요? “‘말’은 삶의 오욕과 희망을 포용하는 모든 삶의 국면을 적적히 투사해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었던 것이지. 그리고 12간지로 톺아봐도 말띠로 태어난 내게 말의 상징은 나를 들어내기에 적절한 투사물이었다고 생각하네.”-이병일 시인과의 대담 중에서, 문화저널21.
말들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의 모습입니다. 시도 궁극에 이르면 道(도)가 됩니다.
실라캔스를 찾아서
==실라캔스는 원시 척추동물의 먼 조상으로 추정되는 물고기. 3억6천만 년에서 6천5백만 년 사이의 퇴적암 속에서 화석으로만 그 모습이 발견되었을 뿐, 오래 전에 멸종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화석물고기가 1938년 12월 12일 남아연방 어느 바닷가에서 어부의 그물에 잡혀 올라왔다. 진화의 대세를 부정하면서 6천5백만 년을 견뎌온 실러캔스, 그 부정과 저항의 정신에 이 시를 바친다.
화석연구가들이
6천5백만 년 이전의 퇴적암에서
원시 물고기 화석을 찾았다
짐승의 이빨과 다리 흔적까지 지닌
물고기 화석이었다.
고생물고고학은 이 화석물고기가
3억6천만년부터
6천5백만 년 전까지 살았던
육지척추동물의 조상물고기라고 적었다.
해와 달과 바람
눈 시린 파도 가고 오던
지구별에 너무 일찍 와
하염없었던,
진화의 대세를 따라
모든 동물들이 떠나가갔는데도
육지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물속을 찾아 간
육지척추동물의 조상
진화를 거부하고
지질 속에 화석만 남긴 채 사라진
숨어버린
진화를 거부한,
짐승의 이빨과 네 다리, 폐(肺)의 흔적까지 지닌 채
6천5백만 년을 물속에서 숨어 견딘
살아서 그물 속에서 잡혀 올라온 물고기
숨어서 자기를 지킨
부정과 저항, 푸드기는 푸른 정신···
* 실라캔스: 육지척추동물의 조상물고기
< 김완 시인의 시평 >
이 시집의 표제시입니다. ‘실라캔스’는 3억6천만 년에서 6천5백만 년 퇴적암에서 발견되는 화석 물고기입니다. 1938년 아프리카 남단에서 옛 화석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지닌 채 살아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3억6천만 년의 장구한 시간 동안, 물속에서 살아남은 실라캔스는 생명의 환희를 일깨워주는 지표가 될 수 있음을 시인은 발견한 것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거부한 채 원형 그대로를 지켜낸 실라캔스에 바치는 헌시입니다.
거기에서 시인들이 궁극적으로 가져야 할 정신을 본 것입니다. “부정과 저항,/푸드기는 푸른 정신···”.
지질(地質) 속 퇴적암 속엔 지나간 시간의 징표로서의 화석들이 고스란히 잠들고 있습니다. 실라캔스나 지질 속 화석들은 노년에 접어들면서 유한성을 자각한 시인이 새롭게 발굴해 낸 새로운 시공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부정과 저항,/푸드기는 푸른 정신···”이 죽비처럼 오늘 나의 나태한 정신을 내리칩니다. 막장, 주먹도끼, 화석 탐구, 반구대암각화, 실라캔스 등을 통하여 갇혀 있던 시공간을 넘나들며 지구의 역사를 상상과 사유 속으로 확장하여 한국시의 지평을 넓힌 시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시인 김 완>
► 김 완 : 2009년 시와 시학 등단.
► 시집으로 ‘지상의 말들’. ‘너덜겅 편지’,‘바닷 속에는 별들이 산다’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
► 현재는 김완 혈심내과 대표원장을 맡고 있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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